인터뷰

슈투트가르트 현지 인터뷰: “새로운 캐릭터 창조, 벌써부터 흥분된다”
새 메이저 발레단 주역 무용수 강효정
장광열_ 본 협회 공동대표

세계 메이저 발레단에 또 한 명의 한국인 주역 무용수가 탄생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4월 20일 줄리엣을 춤춘 강효정을 공연 후 수석 무용수로 전격 승급시켰다. 슈투트가르트 현지에서 춤비평가 장광열이 직접 그녀를 만났다.(편집자주)



 “왠지 느낌이 좋았어요. 밤잠을 설치지도 않았고 그동안 아프던 발목도 덜 아픈 듯했고 긴장보다 기분좋은 설레임에 하루 종일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그 때문인지 막이 오르기 전 무대 위의 분위기는 뭔가가 달랐어요. 뭐랄까 보이지 않는 에너지들이 무대 위를 가득 메우고 있는 듯했어요. 그동안 많은 공연에 출연했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2011년 4월 20일 슈투트가르트 주립극장, 처음 줄리엣 역을 맡은 무용수의 데뷔 공연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녀는 열여섯 살의 줄리엣이 되어 혼신을 다해 춤추었다.

 

 

 

 “유모와 장난을 칠 때는 나도 모르게 웃음소리가 났고 로미오를 처음 봤을 땐 온 세상의 시간이 멈춘 듯했어요. 발코니 신에서는 온몸에 소름이 돋기도 하고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 전 죽은 로미오를 내 품안에 안았을 때는 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격적 승급, 동료들의 전정어린 축하에 성공 공연 실감

 2009년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때 만나고 난 후 2년 만의 재회였지만, 레스토랑에 앉자마자 난 줄리엣을 처음 춤춘 그날 공연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다.
 “막이 다시 열리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박수소리에 깜짝 놀라 파트너 알렉스와 난 정신없이 인사를 했지요. 갑자기 Reid Anderson 단장님이 ·무대 위로 올라 왔을 땐 모두 의아해 했어요. 녹초가 된 상태에서 관객들을 향해 말씀하시는 단장님을 그냥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두가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어요. 정말 믿기지가 않았어요. 지난 7년의 시간들이 빠르게 스쳐갔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함께 있었더라면 그 누구보다 기뻐했을 엄마생각이 가장 먼저 났어요.”
 4월 20일 극장에서 공연 현장을 지켜본 건축 디자이너 이창섭씨는 공연이 끝난 지 2시간 쯤 뒤에 필자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었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크게 환호했고 12번이 넘도록 커튼콜이 계속 이어지고 박수 소리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큰 소리로 울부짖는 관객들도 있었다. 갑자기 예술감독이 마이크를 들고 나왔고 그는 우리도 이제 집으로 가야하지 않느냐. 로미오 역을 춤춘 알렉산더 존스를 주역 무용수로 승급시킬 것이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줄리엣이 탄생했다. 강효정이란 한국 출신의 무용수이다. 이렇게 훌륭한 공연을 보여준 무용수를 어떻게 주역으로 승급시키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자 관객들의 환호는 더욱 거세졌다.”
 솔리스트 무용수가 전막 공연에서 주역을 맡았다고 하더라도 모두 수석 무용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수석 무용수로 승급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강효정과 이날 로미오를 춤춘 악렉산더 존스는 전격적으로 수석 무용수로 곧바로 승급했고, 그 사실을 단장이 직접 관객들 앞에서 발표하는 파격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로미오 역을 맡은 알렉산더 존스는 2년전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서 강효정과 함께 내한, <모나리자>와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2인무를 춤춘 바로 그 무용수였다.
 이는 그야말로 급박한 과정을 거쳤다. 세계일보 백소영 기자는 이날 무대 뒤에서 벌어진 급박한 순간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신예 무용수 커플이 데뷔하는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긴장한 채 보고 있던 리드 앤더슨 예술감독이 옆에 있던 타마스 데트리히 무대감독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수석무용수로 승급시키는 게 어떨까. 역시 소름 돋을 정도로 감동했던 데트리히 무대감독은 이에 찬성했고, 휴식시간에 스태프를 모아 의견을 물었다. 이견이 없었다. 공연 후 커튼콜이 12번까지 이어지며 관객들의 박수가 그치지 않았다. 앤더슨 예술감독은 이례적으로 무대 위로 올라가 “이제 저희도 집에 가고 여러분도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신예 커플의 수석무용수 승급이라는 깜짝 뉴스를 전했다.“ (세계일보, 5월 4일 기사 참조)  

 

 

 

 갑자기 그녀가 두 번째 줄리엣을 춤춘 다음 공연(4월 23일)이 궁금해졌다.
 “또 한번의 공연을 하면서 나는 몰랐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어요. 첫번째 공연과 두 번째 공연은 스텝도, 파트너도, 무대도, 음악도 같은데 나의 느낌은 분명히 달랐어요.
 첫번째 줄리엣이 수줍은 소녀 같은 느낌이었다면 두번째 줄리엣은 로미오를 사랑하는 감정도 좀 더 깊어진 듯 했고 어떤 장면에선 마치 꿈을 꾸는 듯했어요. 파리스 백작과 결혼하기 싫어 부모님께 처음으로 반항하고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무릎 꿇고 빌때는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더군요. 공연이 끝난 후 예술감독님께서 오늘 공연은 첫번째 공연보다 오히려 더 좋았다. 발레라는 게 매번 똑같으면 무슨 재미냐? 사람의 감정이 매일 다르듯 이런 게 발레 공연의 매력이 아니겠느냐고 말씀하시더군요. 입단 후 지금까지 항상 즐거운 캐릭터나 어려운 테크닉을 요하는 작품을 많이 해왔던터라 줄리엣 같은 드라마틱한 배역은 나에게 발레에 대한 또 따른 매력을 알게해 준것 같아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다국적 발레단이다. 70명이 넘는 무용수들의 국적이 저마다 다르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우리 발레단의 경우 배역을 맡은 무용수들이 성공적으로 공연했을 때는 동료들끼리 진심으로 축하하고 격려해주지만 그렇지 못했을 경우는 차갑도록 냉정하고 냉소적으로 대해요. 이번 공연이 끝난 후 언론이나 관객들의 호평보다도 달라진 동료들의 모습에서 내가 춤췄던 줄리엣이 그리 나쁘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절감했지요. 발레단에서 조용한 편인 나에게 대화한번 해보지 못한 동료가 진심어린 응원과 함께 초콜렛을 주기도 했고, 다른 무용수들의 공연을 옆에서 한번도 보지 않던 동료가 막 바로 옆에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을 흘리며 보던 모습은 정말 감동이었어요.”
 빼어난 춤을 보여준 동료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것은 예술의 가치를 그들 스스로가 인정하는 것이고, 그것은 진정한 프로들만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 발레단에서 그런 예술의 경지를 실현하고 있는 주인공이 바로 강수진 선배님이세요. 발레단 내에서 그녀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는 아티스트이지요. 그녀의 존재감은 특별해요. 그런 선배님이 같은 한국인 무용수로서 나에게 도움이 될 때도 많지만, 동료들이 발레단에서 같은 국적의 무용수 두 명을 주역으로 보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했을 때는 솔직히 그녀의 벽을 절감했던 순간도 있었어요. 첫 줄리엣 공연 전 강수진 선배님은 나에게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을 선물하며 축하해 주었어요.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고 그런 격려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어요.”
 존 크랑코 안무의 드라마 발레는 대부분 주인공의 역할이 성공적인 공연의 승패를 좌우한다. 그만큼 타이틀 롤을 맡은 무용수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새로운 줄리엣은 어떻게 공연을 준비했을까?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는 DVD로 거의 모두 다 보았어요. 이모에게 전화해 우리말로 된 책을 모두 보내달라고 했어요. 책 속에서 읽은 몇 가지 대사들은 연기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갑자기 그녀의 가족 관계가 궁금해졌다.
 “연극을 하는 남동생이 있어요. 외할아버지는 LA에서 지휘자로 활동하셨고 큰 이모는 성악을 했어요.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성악을 배웠지요. 아버님께서 오시려고 했으나 결국 바쁜 공무로 공연을 보지 못했어요. 꼭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2006년 6월, 리허설이 끝나고 집에 갈 준비를 하는데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 왔었어요. 보통 엄마와 더 많이 통화하는데 그날은 웬일로 아빠가 전화를 하셨더라구요. 낯선 아빠의 목소리... 왠지 느낌이 이상했어요. 엄마가 지금 병원에 계신다고 빨리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자꾸 "효정아... 효정아!" 하고 내 이름을 부르시는데 순간 덜컥 겁이 났어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고 퉁퉁 부은 상태로 비행기를 탔지요. 10시간의 긴 비행은 마치 가시밭에 앉아있는 것처럼 괴로웠어요. 공항에는 큰아버지께서 마중을 나오셨더군요. 그때까지만 해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자동차가 병원에 도착해 장례식장을 행해 서서히 돌아서기 시작했을 때는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고 아빠와 남동생 얼굴을 봤을 때의 심정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어요.”
 워싱턴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 존 크랑코 발레학교를 전전하며 어릴 때부터 가족들을 떠나 있었던 강효정이었기에 성공적인 데뷔 공연을 가족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나의 춤추는 모습을 누구보다 좋아하시던 엄마였는데 발레단에 입단 후 매일 전화로 울기만 하고 춤추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한 것, 며칠 전 전화했을 때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짧게 통화하고 끊은 일 등 모든 일들이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 없었어요. 그게 엄마와의 마지막 통화인줄 알았더라면 사랑한다는 말을 목소리 나오지 않을 때까지 되풀이 했을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고, 물 흐르듯이 살아가던 내가 악바리로 변한 것은 그 일이 있은 후 부터였던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가까운 친구였던 사람을 잃은 슬픔과 그 공허감을 메워준 것은 바로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발레였어요. 다시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해줬지만 한 발레마스터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어요. 지금은 힘들고 괴롭겠지만 지금 느끼는 이 슬픔, 감정, 경험들이 언젠가 너한테 예술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그때는 몰랐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연습 내내 난 이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실감했어요.” 



 │6월 29-30일 내한, 국내 초연작과 갈라 공연의 인기작품 선보여

 강효정은 이미 2009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주인공 오로라 역을 맡은 적이 있다. 공연하기로 했던 주역 무용수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인한 대타 출연이었지만 그녀의 춤과 연기는 특별한 주목을 받았었다. 극장에 비치된 2010/2011년 시즌 공연 안내 정보지 커버에 강효정의 솔로 사진이 선명하게 인쇄된 것에서 그녀의 달라진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몸이 성한 곳이 없고, 항상 아픈 몸을 이끌고 춤춘 시간의 연속이었어요. 내가 이렇게 영광스러운 환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파트너와 나를 지도해준 안무가와 발레마스터들, 가족 그리고 동료들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주역 승격 소식을 들은 지 며칠 밖에 지나지 않은 데다 큰 발레단의 수석무용수가 된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기쁘지만, 솔직히 주역 무용수로서 앞으로 내가 만날 새로운 역할들, 새로운 주인공들을 창조할 기회가 더욱 많이 생긴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흥분시켜요.”
 강효정의 줄리엣 공연 후 많은 언론들이 그녀의 성공적인 데뷔 무대에 대해 다루었다. 에슬링엔 차이퉁은 “한국에서 온 발레리나 강효정은 수줍은 소녀와 같으면서도 동시에 줄리엣의 뉘앙스를 잘 살려 연기했으며, 그녀의 연기는 모든 장면에서 적합하고 훌륭했다”고 평했다.
 주역 무용수 승격 후 그녀의 무용 스케줄은 점점 더 빡빡해지고 있었다. 5월 23일에는 러시아 페름에서 있을 발레 갈라 공연에 초청받았고, 28일에는 아우스부르크의 갈라 공연에 출연한다. 그리고 29일에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마농 역을 맡아 출연한다.
 6월말과 7월 초에는 시즌 중이긴 하지만 잠깐 짬을 내어 내한 공연도 갖는다,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서 수석 무용수인 제이슨 레일리와 함께 국내 초연 작품인 (안무 더글라스 리)와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 갈라 공연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안무 크리스티안 스푸커)를 선보일 예정이다.

 

2011. 05.
사진제공_장광열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