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툇마루무용단 김규진 김환희 이동하
동문 무용단, 시대에 맞춘 새 개념으로
  • 일    시
    2021년 2월 22일 오후 12시
  • 장    소
    아카데미아인(서울 동교동)
김인아_〈춤웹진〉 기자

ⓒ춤웹진




툇마루무용단 정기공연이 지난 2월 9-10일, 서강대메리홀 대극장에서 있었습니다. 무대에 오른 세 작품의 안무가들을 모셨습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동하: 툇마루무용단 대표이자 이동하댄스프로젝트 대표로 활동하는 이동하입니다. 이번 정기공연에서 작품 〈반복과 변주〉를 올렸습니다.

김규진: 툇마루무용단 김규진입니다. 안무 활동, 교육 활동, 무용 분야에서 여러 활동을 하고 있고, 이번에 〈산 것과 죽은 것Ⅱ〉를 안무했습니다.

김환희: 툇마루무용단에서 안무자이자 무용수로 활동하고, 이번에 〈결혼〉을 안무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춤벗’이라는 단체 대표로서 활동합니다.

이번 툇마루 정기공연은 ‘맥脈’이라는 제목 아래 세 작품을 올렸습니다. 작품 제작 경위를 알고 싶어요.
김환희: 툇마루무용단 정기공연은 2013년 이후 8년만입니다. 그동안 정기공연을 하고 싶었던 댄서들과 안무자들이 있었는데 진행이 잘 안 됐어요. 그러다 세 안무자가 힘을 모아서 정기공연을 해보자 해서 서울문화재단에서 후원을 받아서 진행했습니다. 원래 2020년 11월 즈음 예정하고 있었어요. 코로나 시기다 보니 관객을 10명 정도밖에 못 받게 되는 경우까지 있었고, 고민 끝에 내년으로 미루자 해서 2021년 2월에 공연이 올라갔습니다.

이동하: 8년 만이죠. 그 기간에 각자가 개인 중심의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갈증이 있었고 동문 단체로서 단원들과 함께 정기공연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번에 추진했습니다. 좋은 취지였습니다.




이동하 ⓒ춤웹진




오랜만에 만나는 툇마루무용단 공연이라고 생각했는데 8년만이었군요. 정기공연이자 무용 단원 모두가 모인 공연이어서 상당히 많은 인원이 출연했고 근래 봤던 공연 중 큰 규모의 공연이었던 거 같아요. 코로나 상황에서 연습하기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작품 준비 과정은 어땠지요?
이동하: 오랜만에 하는 정기공연이었고 욕심을 부리다 보니 예산적인 부분과 부딪히게 되더군요. 많은 관객이 관람하는 것을 가정하고 티켓 수익으로 작품 제작 지원비를 충당하려 했는데 그게 안 되다 보니 코로나 시기에 관객들이 공연을 보러 왔을 때, 과연 무엇을 원할 것인가 질문을 하게 됐어요. 무용예술은 현장예술이잖아요. 바로 앞에서 땀을 흘리고 역동적으로 움직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기존 작품을 지우고 새롭게 다시 작업했어요.

김환희: 저는 신작이었습니다. 저 포함해서 댄서가 6명이었어요. 제작비라든지 부담은 똑같아서 고민을 많이 하다가 신작으로 추진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연습이었어요. 보통 공연 연습을 하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일주일에 4~5번씩 만납니다. 저는 거의 몇 개월 동안 일주일에 두 번, 코로나 심해지면 연습을 정지하는 식으로 진행돼서 힘들었어요. 그리고 다같이 모일 수 없고 안무가끼리 회의하려 해도 모이기 힘들어서 카톡과 전화를 주고받아야 하는 문제도 있었어요.

이동하: 네. 그런 부분이 힘들었어요. 정부 지침이 계속 변동되어서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김환희: 가장 기억에 남는 건 5인 이하 집합금지가 시행됐을 때 연습할 수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이동하 선생님이 조항에 대해 찾았는데, 뮤지컬이나 공연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해당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어요.




김환희 ⓒ춤웹진




일주일에 2~3번 정도 만났고 연습 기간은요?
김환희: 연습 시작은 작년 8월 정도부터 시작했고 11월 공연이 미뤄지고 나서 여유 있게 다시 2월까지 했으니까 거의 7~8개월 정도 연습했어요.

꽤 오랫동안 했네요. 세 작품을 ‘맥’이라는 공연 타이틀로 모은 이유가 있나요?
김환희: 맥을 잇는다는 느낌으로 처음에 타이틀을 잡았습니다. 2013년 이후 첫 정기공연이라서 그동안 끊겨있던 맥을 다시 이어서 흐르게 만든다는 취지로 맥이라는 단어로 선정했습니다.

김규진: 맥을 이어 가보자는 첫 스타트로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코로나 때문에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다가 반대로 긍정적인 측면을 찾으려고 노력해보니까 그래도 마음으로 다같이 소통하고 있는 거 같아서 좋은 계기였어요.




김규진 ⓒ춤웹진




코로나 시기에 대규모 공연을 올리는 것이 마음을 모으지 않고서는 너무 힘든 일이죠. 무대 위 단원들의 굳은 의지가 느껴졌고 열기도 남다르게 와 닿았습니다. 오랜만에 현장예술로서 많은 움직임을 보게 된 것도 좋았고요. 제작 과정에서 공동의 드라마투르그라든지 연출 과정이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니면 각자 안무하고 세 작품을 한 무대에 올리는 것으로 각 안무가가 독립적으로 진행한 건가요?
이동하: 후자 쪽입니다. 각 개인이 가진 아이덴티티를 살려서 진행해보자는 의도였습니다.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연습실 사용이 제한됐고 리허설 때 피드백을 주고받고 보완하면서 무대에 올렸습니다.

작품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어떤 작품이었는지, 안무에서 주안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동하: 작품 제목이 〈반복과 변주〉였고 저 포함해 많은 친구와 사람을 봤을 때 반복적으로, 그 반복 안에서 변주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일상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무대화시키는 작업을 좋아하는 편이고, 이번에도 일상적인 움직임에서 작품을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볼레로〉 음악을 사용했는데, 이 음악 자체가 계속 반복되고 변주됩니다. 우리 삶과 맞닥뜨려 있다고 생각했고 작곡가 라벨이 한없이 커지는 음악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한 번에 끊을 수밖에 없었다는 메시지를 저는 읽었거든요. 읽은 순간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크게는 삶에서 죽음까지 반복되고 변주되는 우리의 삶을 일상적인 움직임으로 발전시켜서 무대화해보자 했어요.








이동하 〈반복과 변주〉 ⓒ옥상훈




원작 〈볼레로〉를 재연하거나 원곡에 영감을 받은 작품이 상당히 많지요. 이동하님 작품에서는 원형 구도를 과감히 깨어서 대각선, 직선 등 다양한 공간구도를 형성한다든지 상체 동작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또 다른 역동성을 보여주셨는데요, 그런 점에서 추가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동하: 삶과 죽음이 너무 큰 범위라는 생각에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 하루 마무리까지 미니멀하게 다가갔어요. 처음에 누워서 시작, 음악이 알람이라고 생각했고 일어나서부터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한 얘기를 담았습니다. 일상적인 움직임, 시계를 보거나 커피를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 동작 리서치를 했습니다. 거기서 확장해서 음악에 맞춰 리듬을 발전시켜서 작품을 진행했습니다.

김규진님의 작품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김규진: 2017년에 〈산 것과 죽은 것〉이란 작품을 초연했어요. 그때는 여자 무용수와 듀엣이 었어요.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새벽 6시 즈음에 지하철을 탔고, 출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자거나 핸드폰만 보고 있더군요. 그때는 그 모습을 부정적으로 봤고 ‘과연 살아있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1~4차 산업까지 발전된 이유가 인간의 이로움, 잘 살기 위해, 편하게 살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는데, 기술 개발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는지와 함께 이전보다 바쁘게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예전에는 내적인 것을 많이 채우려고 했다면, 요즘은 외적인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2017년에는 디지털에 빠진다는 것에 대해 아주 부정적이었고 아날로그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흙을 갖고 놀고 책을 보고 글을 쓰기 시작해야 하는데 지식 전달과 습득 방법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2017년 듀엣 작품 할 때 여자 무용수가 죽은 감정을 표현, 저는 거기에 반항하는 진흙이나 흙 속의 새싹처럼 표현했습니다.
 원래 이 작품을 툇마루무용단 정기공연에서 선보이지 않고 다른 작품을 하려 했습니다만, 팬데믹 이후 이 환경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세상이 오지 않았나란 의문에서 한 번 더 하게 됐습니다. 산 것과 죽은 것 중에 산 것만 감정을 전달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저의 오산이었습니다. 죽은 것도 우리에게 감정을 전달해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번에는 죽은 것과 산 것을 나누지 않고 무용수들에게 작품, 산업 발전, 디지털화에 관해 설명한 후 자신이 느끼는 대로 표현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무용수들이 지금의 환경이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이걸 수긍한다면 본인 스스로 감정을 좀 더 표출해주고 그게 아니면 무감정으로 표현해달라고 했어요. 안무자로서 답을 정확하게 내리려 하지 않고 관객과 무용수에게 질문을 던지고자 했어요. 무대 위 화분 속 태블릿pc에 꽃이 핀 걸 보면 아름답습니다만, 그 자체로만 느끼면 살아있는 것이고 저게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죽은 것으로 되는 거니까요.
 이전 작품에서는 외적인 걸 많이 표현했어요.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표현적으로 접근했는데, 일 년 동안 연습도 못 하고 집에 갇혀있는 상황에서 저만의 예술관을 끌어내고 바꿔보려고 노력했어요. 핸드폰, SNS를 통해 여행가고 꽃구경하잖아요. 예전에는 산에 올라가거나 자연에서 피는 꽃을 봤는데 지금은 디지털로 대리만족을 느끼고 과거를 회상합니다. 이제는 이런 것을 받아들여야 할 시기가 되지 않았냐는 생각으로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김규진 〈산 것과 죽은 것Ⅱ〉 ⓒ옥상훈




말씀해주신 대로 물음표들이 생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보고 나서 다차원적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관객 반응은 어떠했나요?
김규진: 호불호가 갈린 거 같아요. 젊은 친구들, 10~20대에게 물어보면 힘들었다는 의견도 있고 저보다 나이가 많거나 비슷한 또래는 몰입해서 잘 봤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나이대별로 반응이 달랐어요. 지금 시기에 이걸 표현해야만 해소가 될 거 같아서 했는데, 1~2년 뒤에 하면 작품이 완전히 또 바뀔 거 같아요. 이번 작품도 2017년 〈산 것과 죽은 것〉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주제는 비슷하게 가되 이번에는 죽은 것과 살아있는 것에 대한 경계를 표현했습니다. 3~5까지 계속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이번에 30분하고 1시간 품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업그레이드되는 과정도 지금 시의성과 잘 맞는 거 같아요. 김환희님 작품 〈결혼〉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무할 때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도요.
김환희: 저도 결혼했지만 많은 사람이 결혼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거 같아요. 미혼 또는 비혼인 분도 그렇지만 기혼자들도 다른 사람들의 결혼생활이 어떤지 궁금해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로 궁금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 〈결혼〉은 결혼이라는 것에서 시작된 건 아닙니다. 관계에서 시작했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보는 시기가 있었어요. 그 당시에 카프카의 소설 중 〈변신〉을 여러 번 읽다 보니까 가족 안에서도 관계가 한순간에 끊어지기도 하고, 도대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더군요. 공연 준비할 때 인간과 인간이,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는 순간도 결혼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헤어질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길 수도 있고 싸워서 혹은 불의의 사고로 여러 가지 방면으로 헤어짐이라는 게 오잖아요. 그렇게 됐을 때 이혼이라고 생각하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더 중점적으로 다루고 싶어서 ‘결혼’이라는 단어를 빌어서 얘기했어요. 작품을 만들다 보니 제 결혼 생활이 어쩔 수 없이 스며들어 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제목이 가진 힘이 강했지만, 그러면서 그 끈을 놓지 않으려고 가장 신경을 많이 썼어요.
 좋아하는 말이자 많이 생각해봤던 말인데,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란 말을 했잖아요. 그 말을 크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분명히 두 사람이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희생하고 있고 어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사람이 강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도 그 사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 삭히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모든 사람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걸 중점적으로 표현을 해보고 싶었어요. 시작부터 끝까지 제가 작품을 끌고 나가는 케이스가 됐는데, 처음에 의도했던 거 아니었어요. 드라마적으로 끌고 나가기보다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체적으로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장면을 던져줬을 때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했어요. 끝나고 나서 들었던 이야긴데 한 장면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게 달랐어요. 어떤 사람들은 비극적이었다 혹은 희극적이었다, 또 어떤 사람은 알 수 없었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 그런 부분이 재밌었어요.








김환희 〈결혼〉 ⓒ옥상훈




이번 공연에서 움직임 메소드, 주목할 만한 무브먼트가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김환희: 저는 모든 순간에 강조를 주고 싶었어요. (웃음) 어떤 것 하나 아쉽게 지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게 컸어요. 관객이 봤을 때 그냥 쓱 지나가는 장면이 아니라 장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 동작 한 동작 신경 써서 만들었어요. 그리고 제작 당시의 의도를 최대한 놓치고 싶지 않아서 수정은 최대한 안 하려고 했어요.

이동하: 일상적인 움직임에서 모티브를 얻어 음악에 맞춰서 움직임을 만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하는지, 책가방을 메는 사람, 시계를 보는 사람, 양치하는 사람, 그걸 음악적 분석을 통해 만드는 걸 첫 번째 메소드로 잡았고요. 두 번째는 팬데믹 시대에서 반복과 변주하며 살아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변하고 있지 않나? 그리고 2002년 월드컵 때와 비교했을 때 개인적으로 변했고, 이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지만 사회가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고 요즘은 개인 SNS나 유튜브가 발달했지만, ‘정’이라는 게 옛날보다 결여돼있지 않았나는 생각도 들었어요. 리서치 할 때 팔꿈치로 누군가를 치고 올라서야지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된 독일의 ‘팔꿈치 사회’라는 용어가 눈에 들어왔어요. 팔꿈치부터 시작해서 손목을 이용하고 바깥으로 누군가를 치는 콘셉트 자체에서 움직임을 발전시켜보고자 해서 두 가지 움직임 메소드를 갖고 발전시켰어요.

김규진: 몇 가지 있었는데 예를 들면 새를 풀어놓으면 지구를 반 바퀴를 날아다니는데 새장 속에 가둬 키우고, 주인에게 가장 충성하는 강아지도 목줄로 묶어서 키우잖아요. 그것에 대한 부정으로 시작해서 꽃이 자연, 화단 속에 있어야 하는데 꺾어서 사무실에 갖다 놓고 인간이 봤을 때 아름답겠지만,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죽어가잖아요. 죽어가는데도 끝까지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는 꽃을 표현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여자 무용수들이 머리를 세우고 화면에서 꽃이 피고 인간이 꽃을 꺾으면 자기 스스로 살아나려고 노력하고, 마지막 남자 무용수도 계속 세상에 반항하면서 몸부림을 치는데 결국 자기 자신도 화분 속에 갇혀버리는, 그런 꽃이 포인트였어요. 꽃을 모티브로 살아있는 꽃과 죽어있는 꽃, 뒤에 펼쳐져 있는 꽃들도 다 죽은 꽃인데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해줍니다.
 여자 무용수들도 죽은 꽃들을 모티브로 외양적으로 만들었는데 결국 죽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표현했고 이번 작품을 하면서 그림이나 구성보다는 최대한 손끝 하나 눈빛 하나도 이유 없는 건 하지 않으려 했어요. 주제 자체가 산 것과 죽은 것이니까 아주 심오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여자무용수가 누워있으면 남자무용수가 꽃을 밟고, 꽃을 밟아서 죽였는데 다시 살려내는 인간의 이중 심리도 표현했고 한마디로 죽어있는 꽃, 살아있는 꽃, 죽는 꽃, 살아남는 꽃을 위주로 움직임을 뽑아냈어요.

김규진님이 꽃을 표현하셨다면 김환희님은 무대 전체에 수천, 수만장의 분홍 꽃잎을 깔았단 말이죠. 앞서 어떤 장면에 대해 비극적, 희극적, 혹은 알 수 없었다는 여러 피드백이 있었다고 하지만 꽃잎이 주는 서정성,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시각을 먼저 사로잡았죠.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공중에 흩날리는 꽃잎이 특히 그러했고요.
김환희: 보는 분마다 꽃에 대해서 느끼는 것들이 다를 거 같아서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생각한 건 아까 말했던 거처럼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를 가장 잘 표현해줄 수 있는 하나의 요소였어요. 처음 안무할 당시에는 마지막 장면에서 꽃이 떨어져서 무대를 뒤덮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꽃을 깔아놓고 나서 보니까 이 광경 자체를 포기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아름답지만 그 안에 상당한 치열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첫 시작부터 꽃을 깔아놓은 계기가 됐어요. 하나의 에피소드지만 많이 미끄러워서 극장에서 큰 변수로 작용했어요. 그리고 최대한 꽃밭에 온 느낌이 들게 하려고 디퓨저를 뿌렸어요. 처음에 막이 올라가는 순간부터 꽃 냄새가 확 날 수 있게 4D 영화처럼 그런 효과를 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2층에 계신 분들은 못 맡았고, 특히 마스크 때문에 못 맡은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1층 중간쯤 좌석에 앉았는데 막이 열리자마자 느꼈어요. 오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향기까지 세심하게 연출하셨더군요. 정서적으로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김환희: 하나 덧붙이자면 아내를 위한 헌정작입니다.(웃음) 앞서 작품 얘기를 할 때 어쩔 수 없이 결혼 생활이 작품에 스며들었다고 했는데, 후에 작품을 다시 보기 나니까 정말 제 결혼 생활이지 않았나, 슬프다 혹은 기쁘다 보다는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오히려 공연 연습 준비하면서 아내와 사이가 상당히 더 좋아졌고, 행복합니다. 제가 작품에 몰입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제가 아내에게 희생을 강요했던 거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반성을 많이 하게 돼서 여러모로 저한테도 많은 생각이 들게끔 한 작품이지 않았나 해요. 그리고 마지막에 심수봉 선생님의 〈백만송이 장미〉와 〈Il Mondo〉 두 음악을 고민했었어요. 그러다 〈Il Mondo〉를 사용했는데, 11월에 올렸으면 〈백만송이 장미〉를 선택하지 않았을 까란 생각도 들고 그러면 어땠을까란 궁금증도 있어요.

작품도 타이밍이 중요하네요. 다른 버전의 〈결혼〉은 어떨까 상상하게 됩니다. 주제를 바꿔서 툇마루무용단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올해 이동하 안무가께서 무용단 대표에 위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이동하: 네, 올해 2월 툇마루무용단 대표가 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2013년 이후 정기공연을 8년 만에 올렸고, 정기공연을 안 올렸을 뿐 그 외 활동은 활발하게 해왔습니다. 이번에 정기공연을 해보니 다같이 모여서 한다는 게 굉장히 의미 있고 매년 정기공연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공모사업이 끝난 상황에서 대표직을 맡았기 때문에 올해는 내년을 준비하고 탄탄히 다지려 합니다. 내년부터 정기공연과 툇마루무용단 신진안무가전을 계획하고 있어요. 무용단 자체에서 신진들을 발굴해서 작품을 올릴 기회를 주고 싶어요. 요즈음 신진들이 안무할 수 있는 공간이나 페스티벌 자체가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있어도 경연 무대여서 자신만의 언어를 표현한다기보다 1등을 하기 위한 작품을 만들어야 하고 1등을 해야만 다음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어서 안타깝더군요. 그래서 무용단 자체 내에서 신진안무가전을 열어서 신진들을 발굴하고자 합니다. 현재로서는 이렇게 두 가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올해 툇마루 공연 라인업은 어떻게 되나요?
이동하: 올해는 국제현대무용제(MODAFE)가 대구와 제주도에서 열려요. 제주도에서는 〈해변의 남자〉를 올립니다. 대구는 페스티벌 성격에 맞게끔 작품을 선정해야 해서 미정입니다. 그리고 무용단에 있는 단원들의 각자 활동을 존중하고 싶어요. 이번 연도 같은 경우는 개인 활동도 많이 있다고 들어서 전폭적으로 지지를 해주고 싶어요. 서류 발표가 나지 않은 상황이어서 확실하게 얘기해드릴 수 없어요.

말씀처럼 안무가로서 꿈을 키우는 단원들이 경연이 아닌 방식으로 안무 역량을 펼쳐볼 수 있는 장이 있으면 좋겠네요. 안무자들의 개인적인 계획은 어떤가요?
이동하: 5월 MODAFE에서 작품 〈이미지의 배반〉을 대극장에서 올릴 예정입니다. 아마 내년부터는 제 작업이 현저하게 줄어들 거 같아요. 툇마루무용단으로 사업에 지원하면 개인 무용단 대표로 지원할 수 없을 듯하고요. 다른 페스티벌도 찾아봐야 하고 외국과 컨택하는 부분도 있어요. 얼마간은 무용단과 개인 작업을 병행하려 합니다. 2주 뒤에는 노정식 선생님 작품에 출연합니다.

김규진: 예년까지만 해도 페스티벌 위주로 지원했습니다만, 페스티벌 성향 자체가 20~30분 소요의 작품을 올려야 합니다. 이번에는 길게 작업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최소 1시간 이상 끌고 가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지원 사업 위주로 신청했고 아직 결과가 안 나왔습니다. 툇마루무용단 이름으로 방방곡곡 서류는 됐는데 코로나 시기이고 문예회관이 같이 돼야 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리고 대학 강의들을 하고 있어서 대학에서 작품을 많이 하는 편이긴 해요. 학생들을 데리고 학교 내에서 발표회 위주로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예술에 대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예술관을 쌓아서 무용단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김환희: 저는 거주 지역이 성남 분당 쪽입니다. 성남 무용협회쪽에서 일하면서 무용단과 더불어서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고 있고요, 개인적인 활동도 찾아보고 있어요. 올해 같은 경우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사업에 선정이 돼서 준비하려 하고 있고 저도 서류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요. 올해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에 힘을 실어서 실험적인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하나만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가장 크고요. 앞으로 좋은 작품으로 찾아뵈면 좋겠습니다.




ⓒ춤웹진




지난해 코로나 관련해서 여러 안무가를 찾아뵙고 안부를 묻는 인터뷰를 연재했었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쉬고 있는 무용인들은 없더라고요. 모두 연습실에 계시고 열심히 준비하면서 다음을 계획하고 계셔서 오히려 놀라웠어요. 오늘 모신 세 안무가분도 마찬가지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됩니다. 어렵게 마련된 무대에서 이전과 다른, 더 뜨거운 열정과 관객들의 호응을 느끼고 있습니다. 안무가께서 좋은 작품으로 지금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색깔이 다른 세 작품을 한 무대에 볼 수 있었던 이번 정기공연은 툇마루무용단의 새로운 행보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좋은 작품 기대하고 응원하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리: 이슬기 <춤웹진> 인턴기자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 ​ ​ ​ ​ ​ ​ ​ 

2021. 3.
사진제공_춤웹진, 툇마루무용단/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