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2018 제주국제댄스포럼
춤 예술과 국제도시 제주의 만남
송성아_춤 이론, 부산대 강사

(재)전문무용수지원센타(이사장:박인자)는 2007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단체로 춤 예술인의 권익향상과 창작활동지원을 목표로 한다. 주요사업으로 은퇴 후 직업전환을 위한 교육비지원, 직업전환을 위한 아카데미와 컨설팅지원, 공연 준비 및 공연 중 발생한 상해치료비지원과 상해예방지원, 공개오디션을 통해 무용단과 무용수를 연결해 주는 댄서스잡마켓 등이 있다. 이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5월28일에서 6월1일까지 2018년 제주국제댄스포럼을 개최하였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각종 유휴공간을 활용함으로써 지역의 예술문화를 발전시키고, 전문무용수의 창작활동 및 일자리 확대를 위해 마련된 이것은 학술포럼과 각종 부대행사로 구성되었다.   



삼인삼색의 학술포럼, 제주도 문화예술의 발전 모색

제주 메종글래드 제이드홀에서 개최된 학술포럼(6월1일)은 “유휴공간을 활용한 제주 문화예술 발전 모색”이란 주제 아래에서 진행되었다. 첫 발제를 맡은 김연진(한국문화관광연구원 예술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도시재생과 문화주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한국사회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된 2013년 이후 도시재생사업에 열중한다. 여기서 문화는 중요한 방법론으로 소비되는데, 예술창작공간과 같은 시설을 조성한 뒤, 도시 관광과 연계된 지역 명소화사업으로 이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진단한다.
 여기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지역 명소화가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으로 이어짐으로써 예술가가 자신의 터전을 잃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발표자는 그 폐해의 일단을 대학로, 홍대, 문래동, 성수동의 사례를 중심으로 예시한다. 그리고 다소간 원론적 입장에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데, 관련 법제의 보완, 시민주도의 자산화 전략 수립, 임대차 계약에 대한 투명한 모니터링, 예술창작물 생산을 위한 지속적이고 다각적인 지원 등이 그것이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이선철(감자꽃 스튜디오)은 강원도 평창소재 폐교를 활용한 지역문화운동가로 한국음악의 세계화에 기여한 김덕수사물놀이패의 주요 실무자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공연예술을 통한 지역 활성화」를 통해 지역에 대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고 본다. 요컨대, 오랫동안 지역은 중앙에 반대되는 변방으로 인식되었고, 정치적 혹은 경제적 목적에 부합하는 기능을 중심으로 설명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독립성과 자치성에 강조점을 두며, 지역민의 삶의 질과 관련된 문화 및 복지 향상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지역에 대한 변화된 인식은 ‘창조도시론’으로 이어지는데, 일본의 대표적인 창조도시론자 마사유키 사사키(Masayuki Sasaki)의 주장을 빌려, 예술가·창작자·시민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창의적 예술 활동은 혁신적인 창의산업을 일으키고, 나아가 환경문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즉, 창조도시로의 발전은 문화예술을 활용한 지역 활성화를 의미하고, 문화예술은 미적 체험과 인성교육,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 예술가의 고용창출, 산업의 활성화 등을 위한 중요한 방법론이 된다는 것이다.
 발표자는 창조도시건설을 위해 문화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고, 그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정착과 원활한 운영을 위한 휴먼웨어(humanware)의 구축이 동반되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의 현실화를 위해 행정가·전문가·주민의 원활한 협업이 요청되며, 시민의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구체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특히, 쇠락한 탄광도시에서 예술문화도시로 변모한 영국의 게이츠헤드(Gateshead)를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예시하였다.

마지막 발제를 맡은 장광열(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은 「댄스 빌리지 조성을 통한 국제도시 제주의 이미지 고양」에서 춤 예술을 통해 지역 및 국가 이미지를 고양시킨 프랑스, 핀란드, 스위스, 일본, 인도 등의 사례를 예시한다. 이어 국제도시 제주 또한 이미지 고양과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춤 예술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보면서, 제주댄스빌리지(Dance Village in Jejo) 설립을 제안한다. 이것은 춤을 통한 제주의 이미지 고양,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활용한 문화상품의 개발, 고유한 문화유산을 활용한 콘텐츠의 개발, 국내외 춤 네트워킹의 장 마련 등에 목적을 둔 춤 문화 복합시설이다.
 발표자는 철도차량기지를 춤 전용공간으로 개조한 뒤셀도르프 독일탄츠하우스, 탄광지대를 문화시설로 개조한 독일 에센의 아티스트 센터, 모나코의 댄스포럼, 스페인 카나리아제도의 MASDANZA 국제무용축제와 안무콩쿠르, 한국의 가평 뮤직 빌리지와 가평 두레 봉사관광 등의 운영사례를 소개한다. 그리고 제주댄스빌리지의 운영방향을 제시하는데, 춤 예술의 대중적 향유, 춤꾼들의 다양한 협업, 자연환경을 이용한 환경예술의 배양, 지구촌 커뮤니티 댄스의 생성과 운용, 세계 민속춤 공연의 유통과 체험 등에 방점을 두었다.

발표는 모두 문화예술을 통한 지역발전을 논구하였다. 그러나 접근에 있어 김연진은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에, 이선철은 지역문화운동의 기본관점 정립에, 장광열은 제주 춤 인프라 구축에 각각 강조점을 두었다. 삼인삼색의 발표 뒤에 이어진 종합토론의 참석자는 강수진(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김석범(제주문화예술재단 공간사업본부장), 손인영(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상임안무자), 김철웅(제주매일 편집국장) 등이었고, 이 외에도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여러 선학들이 참석하여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였다. 포괄적 주제에서 출발한 포럼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합의를 도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지역 발전의 주요한 동력으로 문화예술이 활용될 때, 공동체에 대한 선(先)이해와 주민·전문가·행정가의 유기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유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 보다 진전된 실천을 위한 밑거름이 될 터이다.




다양한 부대행사, 제주즉흥춤축제 · 국제무용갈라공연 · 춤 사진전

대다수 예술에서 창작자와 표현도구는 분리된다. 연주자는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도구로 삼아 소리를 만들고, 화가는 붓이나 물감 따위를 도구로 삼아 색 또는 구도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춤은 주체와 객체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일체화되어있다. 즉, 창작자인 댄서의 몸이 곧 도구가 되어 움직임을 구현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춤은 인간 스스로를 가장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예술장르로 설명되며, 사전에 미리 합의된 정형화된 틀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즉흥춤은 그 특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된다.
 오늘날 즉흥은 예술춤 창작은 물론이고, 치유(healing)·치료(therapy)·공감(empathy)·참여(participation)를 목표로 하는 커뮤니티댄스의 주요한 방법론으로 활용되며,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공연의 한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조응하며, 제3회 제주국제즉흥춤축제(예술감독:장광열)가 제주돌문화공원 일대에서 펼쳐졌다. 제주국제댄스포럼의 부대행사로 개최된 이것은 즉흥워크숍(5월28-29일)으로 시작하였고,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생태 즉흥춤 공연(5월30일)으로 이어졌다.
 2016년부터 춤판을 기획한 장광열은 “서울과 제주에서 활동하는 30여명의 춤꾼과 멀리 스페인, 미국, 일본 등지에서 온 즉흥 아티스트들이 함께 만들어낸 생태 즉흥춤 공연은 춤 전문가뿐만 아니라, 지역의 일반시민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제가 되었다”고 자평하였다. 아울러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활용한 이 축제를 지속적으로 특화해갈 것임을 밝혔다.

 



2018년 제주국제댄스포럼의 또 다른 행사는 제주아트센타에서 펼쳐진 국제무용갈라공연(6월1일)이다. 참가작품은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의 <해녀춤>과 <제주놀이>, 제주도 아트프로제트그룹 나무꽃의 <바당 작은딸>, 국립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 아다지오, 유니버설발레단의 <돈키호테> 파드되, 이정윤의 <베라와 이카의 이별의 이인무-기도>, 2016년 모다페 출품작으로 스페인의 Lucia Vazquez Madrid와 일본의 Nobuyoshi Asai가 협업한 , 저글링을 이용한 Hisashi Watanabe의 <거꾸로 선 나무> 등이었다.
 <해녀춤>과 <제주놀이>는 해녀와 말(馬)이 많은 지역적 특징을 반영하여 창작한 작품으로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의 주요 레퍼토리이다. <바당 작은딸>은 해녀인 어머니가 막내딸에게 물질하는 요령을 알려주는 민요를 중심으로 창작한 작품이다. 이들은 지역에서 소재를 빌려오지만, 한국 창작춤 움직임 일반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특수성을 보편화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은 관객들에게 익숙한 레퍼토리와 전현직 주역 무용수를 내세워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는 다소간 식상한 신체접촉(contact)을 중심으로 움직임을 이어갔고, 저글링과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활용한 <거꾸로 선 나무>는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다.


 

 1200석 객석을 가득 메운 이날 공연은 문훈숙(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쉽고 대중적인 작품 선정과 친절한 해설을 통해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이 점에서 춤의 저변화에 일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주도 문화예술발전 모색이라는 포럼의 대의를 고려할 때, 일회적 이벤트를 넘어 지역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작품의 부재는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한편, 공연장 한 모퉁이에 위치한 갤러리에는 국립발레단 출신 박귀섭의 사진전(5월28일-6월1일)이 진행되었다. 공연 전후에 많은 관객들이 들러 아름다운 춤꾼을 포착한 사진을 감상하였다.
 닷새 동안 이어진 2018년 제주국제댄스포럼은 학술포럼을 비롯한 각종 부대행사와 함께 진행되었다. 이 전체가 겨냥하는 것은 유휴시설을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창작의 장과 일자리를 창출하고, 제주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예술가의 창작영역 확장과 일자리 창출, 지역 예술의 발전 등은 무용계의 중요한 현안이라는 점에서 포럼의 지속적인 개최가 요망된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2018년의 문제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는데, 학술포럼의 포괄적 주제는 실천을 도출할 수 있는 구체적 주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존작품들을 단순히 나열한 축하공연은 지역민의 삶과 요구를 반영하는 작품으로 변모해야 할 것이다. 지역문화운동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까닭에 주민·전문가·행정가의 유기적 협력은 물론이고 지속적인 노력과 시간을 요구한다. 긴 여정의 첫 출발을 알린 포럼의 건강한 자리매김을 기대한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와 경상대학교에서 현대문화이론과 전통춤분석론을 강의하고 있다.
2018. 07.
사진제공_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