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남식&댄스투룹-다 김남식 예술감독 1
청소년에게 절절히 가닿았으면 합니다
  • 일    시
    2021년 6월 13일(일) 오전 11시
  • 장    소
    아카데미아인(서울 동교동)
김인아_〈춤웹진〉 기자

김남식&댄스투룹-다 김남식 예술감독 ⓒ춤웹진




김인아: 지난 5월 말 공연한 김남식&댄스투룹-다의 〈내 이름 아시죠?〉는 청소년 자살이라는 무게감 있는 주제를 극무용으로 풀어내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5월 28-30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청소년 마음치유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붙여 올려진 이번 작업을 어떤 계기로 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김남식: 좋아하던 일을 용기 내서 했을 뿐인데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렇게 설명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저에게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예감했고, 용기 내서 만들었습니다.
 〈내 이름 아시죠?〉는 충북 음성에 단일 병동으로 있는 정신병원 ‘현대소망병원’에 방문하면서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부터 방문하게 된 그곳에서 너무나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환우로 있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러다 이번 작품의 모티브가 된 한 젊은 친구를 만나게 됐습니다. 뿔테안경을 쓰고 베이지색 카고 팬츠에 하늘색 스프라이프 셔츠를 입고 멍하니 있던 첫 인상이 계속 기억에 남았어요. 그 친구는 ‘어떤 이유로 이곳에 왔을까?’ 궁금증과 관심이 생겼지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이 1위입니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보면 학업에 지쳐있고 때로는 저보다 늦게 잡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오전 9시~오후 10시까지 수학과 과학 학원에 갑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자살요인 40%가 학업에 대한 겁니다. 아들을 보면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느껴요. 나의 춤으로 청소년 자살 방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현대소망병원에서 안경 쓰고 있던 친구와 제 아들이 오버랩 되더라고요. 사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작품으로 만든 이후에 정신병원을 소재로 한 작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다음 작업으로 계획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여러 생각을 하고 병원을 기웃거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튼 행사 끝나고 병원 관계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사무장에게 “그 멀쩡한 친구가 왜 왔냐?”고 물었더니 이 친구가 병원에 왔을 때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고 하더군요. 하루 폐지 주워 사는 할아버지와 결혼 못 한 이모와 셋이서 살았다고 합니다. 이 친구는 이모에게 부모님의 사랑까지는 못 느끼는 거죠. 그러다 보니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학교에 가지 않고, 사회 시스템에 의해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꾸 손목을 그었다고 해요. 자살 시도로 손목을 긋는 장면을 미디어에서 보게 되는데, 실제 그렇게 그으면 죽지 않는다고 해요. 진짜 죽으려면 다르게 그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살을 시도하는 아이들은 진정으로 죽을 의도로 행하는 게 아니라는 조사 결과도 있더군요. 나 좀 알아달라는 겁니다. 외롭고 힘들고 구해달라는 신호로 자해한다는 거예요. 이 친구가 세 번째 손목을 그으니까 주변에서 문제가 있다고 입원 치료를 권유했고 정신병원에 갔더니 더는 자해를 못하게 석고 붕대를 했다고 해요. 이모 입장에서는 조카가 정신질환 환자가 된 거잖아요. 업무과에서 접수하는데 이모가 앉아서 어떻게 하냐고 가슴을 치는데, 저벅저벅 장화 소리가 들리더니 복도 끝에서 할아버지가 오더래요. 할아버지가 “어떻게 키웠는데 또 이 짓을 했냐?”면서 석고 붕대 한 채 멍하니 있는 애의 뺨을 때리면서 언성을 높이는데, 할아버지 왼쪽 팔이 없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공사장에 일하다 팔이 끼여서 한쪽 팔을 잃고 폐지 주워서 하루하루 살고 있고, 이모는 가슴을 치고 있고 애는 멍하니 있고… 너무나 잊히지 않는다는 사무장의 얘기를 듣고 그날 밤에 작품 시놉시스를 썼어요. 당시 제목은 〈이제부터 너는 어디로 가도 봄이다〉였어요. 작품을 구체화시키면서 〈내 이름 아시죠?〉로 변경하여 선보이게 됐습니다.

소년이 몇 살이었나요?
22살 정도 됐어요. 청소년이 지난 거죠. 대학 진학은 안 했어요.

성인 돼서 입원한 거군요.
네. 소망병원에 입원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우리가 손가락을 베면 외상치료를 받잖아요. 정신질환도 약을 먹으면 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과에 가면 정신병자가 됐다고 생각해서 병원에 가는 걸 미루고 또 미룹니다. 이모 또한 사회적인 인식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그제야 병원에 왔다고 해요. 정신과에서 말하길 우울증의 시작은 날씨 변화를 인지 못하는 거라는데, 이런 증상을 알게 된다면 다른 증상과 마찬가지로 약을 먹고 나아야 하는 거죠. 개인적으로 그 친구와 말해본 적이 없었지만 멍해 있는 모습이 잊히지 않았어요. 그 친구의 이야기를 마음속에 품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당사자는 그 이후에 치료했나요?
이후에는 못 만났습니다. 그 친구에 대한 소식이나 현대소망병원과 계속 연계되기 위해서는 계획했던 예술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교류해야 하는데 병원에 200명 가까운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잠정 중단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이번 작품은 현대소망병원에서 시작되었으나 공연 자체는 크게 관계하지 못한 것 같아요. 두산아트센터 공모 사업에 이 작품을 제출했는데 만약 내년에 운이 좋아서 선택된다면 이런 부분과 융의 정신분석학 이론까지 공부해서 디테일하게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거시적인 관점에서 청소년의 문제를 다뤘을 뿐이라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남식&댄스투룹-다 〈내 이름 아시죠?〉 ⓒ임채욱




이번 작품을 지원금 없이 자비로 올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 재정적 문제가 있었는데 이번에 일체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매년 지원 혜택을 받았던 사람 축에 들었어요. 실력보다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셨고 운이 좋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의미 있고 이슈가 될 수 있는, 무용하는 사람으로서 사회적인 책임을 조금이라도 지겠다는 좋은 뜻으로 준비한 이번 작품을 네 군데에 지원했습니다만 선정되지 않았고, 망설였습니다. 수익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지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이 있었죠. 코로나 상황인데 피해 가면 어떠냐고 주변에서 만류를 많이 했어요. 그럼에도 제가 이 작업을 한 것은 사회적인 책임이자 예술가의 자존심, 양심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 아시죠?〉야말로 내가 좋은 의지를 갖고 하는 건데, 나랏돈을 받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공연한다는 건 내 의지를 희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원금이 없어도 보란 듯이 멋지게 하려고 했어요. 원래 10일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3일 하게 됐고, 작품에 드는 경비는 제 노력과 투자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을 만나고 다녔어요. 이번에 출연한 제자들에게도 “선생님이 이번에 출연료를 줄 수 없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공연을 해서 그만큼의 출연료를 다시 주겠다”고 도움을 청했더니 모두 기꺼이 승낙했어요. 그리고 모든 사람이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대관료는 대관료 지원사업에 신청중이라 아직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돈을 빌려서 냈습니다.
 물론 많은 안무가가 자비로 공연을 올리고 있어요. 이번엔 특히 청소년 자살과 사회적인 환기를 꾀하는 작업이라고 명명했는데 나랏돈 받아서 번듯하게 하는 건 아니다, 접지 말고 해보자 했어요. 최고의 찬사는 아들에게 들었어요. “앞으로 나랏돈 받으면 안 될 거 같아요. 이번 공연 너무 절절하고 절실해서 와닿았어요”라고 하더군요. 이전 공연은 어땠냐고 물었더니 “과시가 많았다”고 하더군요.(웃음) 저는 공연할 때 왜 공연을 하는지에 대한 레퍼런스를 장황하게 기록물로 만듭니다. 어떤 분은 저를 보고 ‘과하게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저는 적어도 어떤 일을 왜 하는지를 기록합니다. 논문 쓸 때도 선행연구를 보잖아요. 저는 제가 하는 작업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다루지 않은 주제의 것을 제가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사람들은 저를 깊이 있게 보지 않고 잘난 척이 과하다고도 하는데, 이번 공연은 그런 부분이 많이 빠졌어요. 자비로 올려진 이번 공연은 저의 활동 가운데서도 보람되고 자부할 수 있는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

공연을 올리기까지 다른 기관이나 개인의 도움이 있었다면 소개해주셔도 좋을 듯해요.
감사하게도 제가 의지를 갖고 움직이니까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셨어요. 밀알복지재단에 후원하는 한국수력원자력에서 무대 스태프와 기본 경비를 지원해주었고 덕분에 무대 감독님과 조명 감독의 최소 인건비를 지급했습니다. 그 조건으로 한국수력원자력이 후원하는 은평구 사회복지원 청소년들의 단체 관람을 요청했고 공연에 초대했어요. 둘째 날 은평구 사회복지원 청소년 40명이 단체 관람을 했지요.
 그리고 언론에서도 더러 다뤄줬습니다.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줘서 3일간 만석이었고 제 인생에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전석 매진을 했어요. 제가 공부하고 준비했던 것들이 의지만 갖고 되진 않잖아요. 공연은 필수적으로 돈이 수반되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의 도움과 후원으로 이 공연이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지원을 받았다면 워크숍을 할 계획이었어요. 마로니에 공원에서 사이코드라마 전문가, 고중곤 이사장님과 함께 50명 정도의 청소년을 불러서 워크숍을 열려 했어요. 구체적으로 껴안고 이름 쓰고 사진을 찍는 등 7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려 했는데 금전 사정과 연관이 있기에 쉽지 않았어요. 다행인 건 제 취지를 좋게 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홍보를 해줬어요. 고중곤 이사장님과 아티스트 토크를 했습니다. 사실 공연 끝나고 무대에서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하려 했는데 코로나 상황 때문에 안 됐지요. 만약에 이 공연을 다시 하면, 현대소망병원, 무용치료사 서주연 선생, 고중곤 이사장과 함께 사회적인 운동을 개진시키는 걸 준비하고 있어요. 그러고 나면 분명히 가고자 하는 지점까지 스텝이 상승하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수력원자력과는 어떻게 연결됐어요?
공연 10일 앞두고 아트앤컬쳐의 전동수 대표님의 소개로 알게 됐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과하게 드러낸다는 주변의 평판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창작과정에서 철저한 사전 계획과 연구가 선행되었기 때문에 많은 양의 기록물로 남기는 것도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제 지론은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입니다. 캐논 카메라 광고 카피였어요.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메멘토〉에서도 몸에 기록을 새기잖아요. 그런 데서 영향을 받아서 모든 걸 기록합니다. 결국은 내가 해놓은 걸 누군가 보면서 ‘이런 작업을 했네’라고 조금의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고 한 번 하고 사장되는, 평면으로 남는 비디오만 보고 끝내는 게 아니라 이걸 왜 만들었는지, 컨셉은 무엇이었는지, 그때 내 머릿속은 어땠는지 기록하는 겁니다. 이런 기록을 대학교 2학년 때부터 했고, 지금까지 18권의 노트가 있어요.






김남식&댄스투룹-다 사회적 춤활동 ‘광부와 그의 아들에 관한 마음 치유 프로젝트’
(강원도 정선 폐광 시설을 탈바꿈한 문화예술복합단지-삼탄아트마인, 2018) ⓒ강제욱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도 엄청난 기록과 함께 관련 연구를 깊이 하셨을 것 같아요. 작품 소개글에서 융의 정신분석학 이론에 근거했다고 보았습니다.
제가 융의 정신분석학에 접근해서 장황하게 말하면 제 함정에 빠질 거예요.(웃음) 고중곤 이사장님이 (사)낮은그룹경청학교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15년 넘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자살 예방 캠페인을 했습니다. 이사장님은 정신분석학이라든지 융의 철학을 공부했던 분이고, 저는 그렇게까지 깊이 접근했다고 할 순 없어요. 만약 깊이 있게 들어갔다면 오히려 공연을 못 했을지도 모릅니다. 가장 무서운 사람이 책을 세 번밖에 안 읽은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아예 책을 안 읽은 사람은 무섭지 않고,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신중하지요. 고중곤 이사장님과 얘기를 해보니 전 책을 세 번 읽은 사람이더라고요. 표피만 다루고 용감하게 작품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이사장님은 누가 자살을 시도했다 하면 직접 가서 껴안아 주고 같이 울어주거든요. 융의 분석에서 가장 영향을 받았던 건 이모하고 소년이 손으로 가슴을 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보통 “미쳤어. 왜 그랬니?”라고 하잖아요. 정신분석학과 관련한 표현의 방식에서는 “네 슬픔이 내 슬픔이다”라는 겁니다. 고중곤 이사장님이 청소년을 많이 만나봤을 때 그들이 가장 희망한 것은 단 한 번이라도 자기를 알아주는 것 그리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주 봐주고 옆에 있어주는 거였다고 합니다. 고중곤 이사장님과 대화를 통해 배운 것은 그들에게 온기가 더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사장님은 청소년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것들, 마술부터 다양한 것들을 합니다. 그들과 소통하기 위한 여러 채널을 갖춘 겁니다. 저는 오로지 몸이지만 이사장님은 여러 장치, 철학적인 배경을 갖고 그런 일을 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고 함께 가자고 부탁드린 거예요. 고중곤 이사장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보다 더 표피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해요.
 이번에 정신적인 것까지 깊이 들어가진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는데요. 〈내 이름 아시죠?〉는 청소년 자살 예방, ‘청소년 마음치유프로젝트’ 파트 1이고, 차후 두 번째, 세 번째로 늘려갈 겁니다.

(사)낮은그룹경청학교 고중곤 이사장님과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석달 전에 문화기획자 정혜령 선생에게 이 공연을 한다고 하니까 오랫동안 청소년자살예방 캠페인을 하고 있는 고중곤 이사장님을 만나볼 것을 권유하더군요. 이사장님은 ‘낮은무릎경청 캠페인’을 오랫동안 해왔고 깨끼박사라고, 청소년들 고민을 해결해주는 방송에도 나왔고 사회학, 무용치료, 예술치료, 문화기획도 했습니다. 15년 동안 청소년이 모인 곳에 가서 직접 피켓 들고 캠페인을 해오신 분이죠. 분당에 있는 이사장님 사무실에 갔어요. 처음에는 저를 그저 그렇게 보신 것 같아요. 제가 청소년 자살예방 관련 공연을 만드는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는데, 거리가 느껴지는 반응이어서 제가 연습실로 와주시라고 부탁했어요. 그리고 입체적으로 보여드렸어요. 이사장님은 피켓 들고 청소년들을 껴안았다면 저는 드라마가 있잖아요. 청소년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 쉽고 상징적인 요소들을 보여줍니다. 세 시간 동안 피켓 들고 껴안은 걸 몇 분 안에 함축적으로 보여주니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표현이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레퍼런스 노트도 드렸죠. 일주일에 세 번은 연습실에 오겠다고 할 정도로 그날부터 정말 친해졌어요. 앞으로 지속적으로 이 일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김남식&댄스투룹-다 〈내 이름 아시죠?〉 ⓒ임채욱




오브제와 장치가 작품 깊숙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방을 의미하는 사각형의 테두리 속에서 평균대처럼 보이는 외나무다리 또는 의자가 위치했어요. 소년은 종이 인형과 그림자놀이를 했고 친구들은 풍선을 가지고 놀거나 〈백조의 호수〉 네 마리 백조로 알려진 알레그로 4인무를 추기도 했지요. 앞서 고중곤 이사장께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여러 채널을 가졌다는 말씀처럼 김남식 안무가는 이번 작품에 여러 의미 장치를 두어 상징적 표현 효과를 높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생명이 없는 오브제와 무용수와의 관계성을 집요하게 탐구합니다. 그 시작이 1997년 한일댄스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의자〉라는 작품입니다. 의자는 생명이 없지만 감정이 있을 수 있어요. 전기의자에 앉은 사형수에게는 그 의자가 그냥 의자가 아닌 것처럼요. 오브제에 여러 의미가 담겨있는데, 그 의미를 무용수와 연관시켰을 때 생명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품에 여러 오브제가 등장합니다. 사각형 권투링처럼 규획지어진 바닥 테이핑은 가로·세로 6m입니다. 이 작품은 중·고등학교 순회 공연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의자를 밀고 6m 공간만 있다면 어디서든 공연할 수 있지요. 교실은 6m 정도 나옵니다. 학생들이 마당놀이처럼 삥 둘러서 관람할 수 있어요. 6m의 또다른 의미는 소년이 살고 있는 방, 골방, 교실의 개념으로 그 안에서 모든 움직임이 이루어집니다.
 소년이 있었던 평균대는 제가 10년 전에 포천에 있는 목공소에 가서 참나무 소재로 된 것을 말려서 인위적으로 뒤틀리게 만든 겁니다. 사람들은 균형이 안 맞고 뒤틀려 있어서 불량품일 줄 알았다고 해요.(웃음) 6년 정도 집에서 사용하면서 언젠간 효과적인 상징으로 작품에서 쓰고자 했고 이번에 사용한 거예요. 1993년부터 제가 만든 모든 작품에 의자가 등장해요. 저의 시그니처이기도 합니다. 균형이 맞지 않는 건 소년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맨 처음에 난간에 서서 숨을 마실 때 흔들거리는 게 이 소년이 처해있는 상황입니다. 테두리, 다리의 난관 혹은 건물 옥상의 난관일 수도 있어요. 계속 흔들리는데, 마지막에 자해했던 칼을 이모가 다리 밑에 넣어줘서 균형을 잡아줍니다. 이제 안정을 찾아갈 수 있다 혹은 상처를 줬던 것들이 때로는 다른 작용을 할 수 있겠다는 것이지요.
 또 소년은 쇠를 때려서 단단한 칼로 만들잖아요. 강철도 두드려야 단련이 되는 것처럼 인간은 어떻게 강해지는가에 대한 의미의 표현으로 망치질합니다. 처음 망치질은 따그닥따그닥인데 마지막은 정말 세게 박잖아요. 그리고 낫을 만들고 칼을 만드는 것도 스스로를 단련시킬 수 있는 모습이었지요. 이렇듯 소년은 쇠를 단련하듯이 삶이 힘들어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굳세어지려는 거예요. 제가 중학교 때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형이 공부를 안 한다고 때렸거든요. 새끼줄을 들고 앞산에 가서 소나무에 목매달고 죽으려 한 적이 있어요. 사춘기 때는 별거 아닌 일로 극단적이게 될 때가 있지요. 모든 것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성장해가는 과정이에요.
 동그란 돌에는 “도와줘. 구해줘”라고 쓰여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노크하는 겁니다. 돌을 던지면 사람들이 던진 돌을 들고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잖아요. 이 소년이 어렸을 때 동그란 구슬로 구슬치기했던 친구들이 있을 거예요. 혼자 갖고 노는 일은 별로 없어요. “구해줘”라고 사인을 보낸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게 아니라 발로 밟고 밀쳐버립니다. 마지막에 꿈속 엄마 같은 모성을 담당하는 무용수가 돌을 들고 와서 결국은 너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 듯이 돌을 놓고 갑니다.
 종이는 소년이 처한 상황을 나타냅니다. 친구가 아무도 없는 소년에게 종이 오리기를 해서 햇볕에 비춰 생긴 그림자는 좋은 친구가 됩니다. 4살이었던 우리 아들을 데리고 14시간 비행을 했던 제 경험에서 착안했어요. 비행기 안에서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갈까 고민하다가 창문을 열고 냅킨을 찢어서 그림자놀이를 했지요. 골방에 햇볕은 들어오고 친구는 없고 외로우니까 종이 하나를 찢었는데 하나가 둘이 되고 넷이 됩니다. 누군가와 어울리고 친구를 구하고 싶은데 아무도 안 놀아주는 거잖아요. 결국은 외톨이가 되고 소외돼서 자살을 시도하는 과정으로서 종이를 사용했어요.




  

김남식&댄스투룹-다 〈내 이름 아시죠?〉 ⓒ최원일




〈백조의 호수〉 알레그로 4인무의 백미는 합일입니다. 네 명이 똑같은 박자로 같은 방향을 보고 화합을 하는 것인데, 소년은 그 안에 끼지 못하는 거지요. 감정의 폭이 하나에서 둘, 둘에서 넷으로 증폭되어 가는데 소년은 어울리지 못해 소외되고 말지요. 생명력 없던 로봇 청소기에 종이 인형을 붙여 친구로서 감정을 집어넣어요. 그렇게 청소기와 춤을 추는데 결국 청소기는 친구가 아니라 무생물이라는 것을 자각합니다. 그래서 풍선을 터뜨리고 극단적 선택을 해요. 그런 과정으로서 오브제들을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모든 상상력과 시도는 영화적인 문법으로 제가 해석한 거예요. 무용을 아카데믹하게 전공하고 이론적으로 공부한 분, 평론가의 눈으로 제 작품을 보면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좋은 작품, 완성도 있는 작품이라 하면 기승전결, 그러니까 불이 꺼지면 천천히 무대에 빛이 들어오고 그러다 마지막에 베자르의 〈볼레로〉처럼 몹신(mob scene)이 만들어지고 클라이맥스를 거쳐 다시 불이 어두워지면서 끝이 납니다. 우리가 아카데믹한 관점으로 본 대부분의 작품이 그럴 겁니다. 많은 작품이 공식처럼 그런 문법을 따릅니다만, 저는 대규모 군무씬을 지양합니다. 작품 선택이나 표현방식을 기존 안무가들과 다르게 접근하는데,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오브제의 상징성이며 무용수가 개입돼서 만들어지는 미장센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이 작품에는 소년의 삶, 처해있는 내면의 표현을 담은 상징적인 오브제가 있고, 전체 씬이 6분, 잘 훈련된 몸이 아닌 다른 몸이 있었습니다. 얼핏 훈련도 안 된 어중간한 무용수를 데리고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어떤 분이 제 작품을 보고 수없이 많은 오브제가 등장하는 마기 마랭의 〈총성〉을 떠올렸다고 해요. 2007년 로댕갤러리에서 선보인 윌리엄 포사이드의 〈흩어진 군중들〉을 어떻게 무용공연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윌리엄 포사이드가 움직임의 본질을 무시한 채 그런 전시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베자르처럼 작품을 잘 만드는 안무가도 많지요. 아카데믹한 관점으로는 제 작품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겠지만 저는 나름의 이 길을 계속 가고 싶습니다. Best보다는 Only one이 되고 싶은 마음이에요.




김남식 김남식&댄스투룹-다 예술감독 ⓒ춤웹진




(* 본 인터뷰 기사는 2회로 나눠서 게재됩니다. 다음 호에는 출연진과의 공동 안무 연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구절을 활용한 이유, 안무가의 사회적 춤활동 등에 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 편집자)

정리: 이슬기 <춤웹진> 인턴기자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 ​ ​ ​ ​ ​ ​ ​ ​​ 

2021. 7.
사진제공_춤웹진, 임채욱, 강제욱, 최원일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