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광역시 대전ㆍ인천ㆍ부산시립무용단 신작 공연 모음
송성아_춤이론, 부산대강사
대한민국의 시·도립무용단은 해당 지역의 춤 창작과 춤 대중화에서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적지 않은 무용수와 예산, 그리고 시설을 갖고 있는 이들 무용단의 작업은 그래서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각기 다른 콘셉트로 공연한 대전·인천·부산광역시립무용단의 신작 무대를 모았다. (편집자 주)
 
 
 
한국적 소재의 변주, 입체적 인물 표현은 불가능 한가

 한 세대 이상을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전‧인천‧부산광역시립무용단이 10월 나란히 새로운 창작 작품들을 공연했다.
 1985년 창립한 대전시립무용단은 제63회 정기공연 작품으로 상임 안무가인 김효분의 신작 〈춘향 丹粧〉을, 1981년 창립한 인천시립무용단은 제81회 정기공연 작품으로 상임 안무가인 윤성주의 〈만찬: 진, 오귀〉를, 그리고 1973년 전국최초로 설립된 부산시립무용단은 제77회 정기공연 작품으로 상임 안무가 김용철이 기획, 4명의 부산 지역 출신 안무가를 객원으로 초청, 〈DANCE FOUR'S〉를 무대에 올렸다.



 ‘춘향전’을 현대적 무용극으로 각색 대전시립무용단 〈춘향 단장〉
 서사 구조, 움직임, 캐릭터 창출에서 빈약

 한국인에게 친숙한 ‘춘향전’은 민간전승의 여러 설화에 뿌리를 둔 것으로 조선후기 판소리로 불러지다가 소설로 정착한 것이다. 120여종의 이본(異本)이 있고, 제목도 제각각이어서 익숙한 만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안고 있는 고전이다. 〈춘향 단장〉은 춘향과 몽룡을 고등학교 3학년으로 설정하고, 친구인 향단과 방자, 춘향 모(母)인 월매, 소리꾼인 창자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무용극으로 발단-전개-절정-결말의 짜임새를 갖는다. 

 


 11월 9일과 10일 대전시립연정국악원 큰 마당에서 펼쳐진 작품은 아이돌 그룹 워너 원(Wanna One)의 ‘오늘밤 주인공은 나야 나’에 맞춘 B-boy의 역동적인 춤으로 시작한다. 노래의 후미에 박스를 든 댄서들이 등장하고, 무대는 거리에서 교실로 변모한다. 수업에 관심이 없는 여고생들은 제각각 부산하고, 소리꾼이 등장하여 미색(美色)의 춘향을 소개한다. 그리고 향단의 소개팅 주선으로 춘향과 몽룡이 만나게 된다는 것을 미리 귀띔해준다.
 창자의 퇴장과 함께 박스는 절도 있게 움직이고, 무대는 남학생 교실이 된다. 잠입한 향단은 방자와 함께 춘향과 소개팅을 할 남자를 물색하고, 잘 생기고 공부 잘하는 몽룡을 파트너로 낙점한다. 김효분은 발단부라 할 수 있는 남녀 교실장면을 평범한 박스를 활용하여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일상적인 몸짓에 기반을 둔 움직임과 함께 청춘의 재기발랄함을 흥미롭게 그린다. 

 


 무대 뒷막에 비쳐지는 영상을 통해 도시의 밤하늘이 동화처럼 그려지고, 천천히 그네가 내려오면서 전개부가 시작한다. 서정적 정취가 가득한 무대에서 그네를 타던 춘향과 몽룡은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내 둘은 월매에게 목격되고, 어머니의 반대와 감시가 시작된다. 월매의 눈을 피해 몰래 사랑을 나누지만 또 다시 발각되고 둘은 긴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춘향과 몽룡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리는 전개부는 한국춤과 발레를 결합한 움직임을 중심으로 시각적이고 여성적인 아름다움(優美)을 강조한다. 이러한 움직임 표현법은 무용극의 초창기였던 196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식 발레 또는 신무용류로 불리며 널리 일반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갈등이 최고조로 달하는 절정부는 창자의 입을 빌린 월매의 한탄으로 시작한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몽룡과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딸과의 갈등은 구성진 창과 아니리(대사)로 표현되고, 괴로워하는 춘향은 무대 하수에 웅크려 앉아 있다. 이어 월매는 부잣집 아들 학도를 소개하고 둘의 결혼을 종용한다.
 다소간 정적이었던 무대는 H형태의 이동식 철제 프레임을 밀고 들어오는 군무를 통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고, 열심히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몽룡의 모습이 부각된다. 철제 프레임은 다시 이동하여 결혼을 거부하는 춘향을 둘러쌈으로써 쑥대머리 장면을 비유적으로 재현한다. 이것은 판소리에서 옥에 갇힌 춘향이 자신의 처지와 심정을 토로하는 대목이다.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쑥대머리 대목 말미에 몽룡의 사법고시 합격이 전해진다. 무대는 박스를 들고 나오는 춤꾼들과 함께 결혼식 장면으로 전환되고, 춘향은 월매의 손에 이끌려 결혼식장에 들어선다. 서약의 마지막 순간에 몽룡이 등장하고, 춘향과 함께 식장을 벗어나 탈주한다.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나왔던 워너 원(Wanna One)의 노래와 춤이 반복되고 무용극은 막을 내린다. 

 


 대전시립무용단의 〈춘향 단장〉은 가족무용극을 표방한다. 이 점에서 상자와 철재 프레임을 이용하여 각 장면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극 중간에 재담과 소리를 하는 창자를 등장시켜 이야기의 전개과정을 손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몸짓, B-boy의 역동적인 동작, 신무용 계열의 우미한 동작 등을 적절히 혼합함으로써 대중적 관심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무용극의 성공을 단언하기에는 이르다.
 기본적으로 무용극은 극과 춤을 결합시킨 장르라는 점에서 탄탄한 이야기구조와 그 개연성을 담보해줄 인물창출이 중요하다. 그리고 움직임을 통해 언표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움직임 언어 구사력 확보 또한 중요하다.
 〈춘향 단장〉에서 갈등의 주된 축은 딸 춘향과 어머니 월매이고, 갈등을 촉발시킨 원인 제공자는 몽룡이다. 그런데 인물 좋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묘사된 그를 갈등의 원인 제공자로 선듯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서사구조와 인물창출에 대한 보다 다각적인 고민을 필요로 하는 대목이다.
  한편, 〈춘향 단장〉은 일상적 몸짓과 B-boy의 춤을 포섭하고 있다. 그러나 움직임 표현력이 강조되는 부분은 모두 한국적 발레 또는 신무용류로 불리는 움직임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움직임 언어 구사력 확보를 위한 새로운 활로 마련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지노귀굿’의 현대적 재해석 인천시립무용단 〈만찬: 진, 오귀〉
 굿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굿 이야기

 한국의 신은 저 멀리 높은 곳에 있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문 앞, 곡간, 변소, 장독대, 외양간, 우물, 부엌, 대청, 안방, 탑, 장승, 서낭당, 솟대, 신목(神木), 당산(堂山), 당집, 마을 샘 등에 널리 편재해 있는 친숙한 존재로 인격신의 면모가 강하다. 또한 개인적·공동체적 삶의 일상에서 크고 작은 굿판을 벌렸는데, 이 중 망자의 넋을 저승으로 천도(遷度)하는 굿이 있다. 서울경기도와 황해도의 지노귀굿, 동해안의 오구굿, 전라도의 씻김굿, 함경도의 망묵굿, 평안도의 수왕굿이 그것이다.
 11월 10일과 11일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진 〈만찬: 진, 오귀〉는 지노귀굿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다. 특히, 만신(萬神) 김금화로 대표되는 황해도 강신무계(降神巫界)의 ‘사재거리’ ‘넋대내림거리’ ‘시왕가르기거리’ 등을 주된 모티브로 삼고 있다. 작품은 프롤로그-소환, 만찬Ⅰ-여정, 만찬Ⅱ-신의 놀음, 여정의 끝, 에필로그-일상 등 5개의 장면으로 구성되고, 각 장면은 왕무녀, 박수무당, 망자, 산자, 저승사자, 시왕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구체화된다. 

 


 ‘프롤로그-소환’은 공연 시작 전 미리 오픈된 무대와 함께 시작되고, 저승사자를 모셔 노는 ‘사재거리’를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다. 안무가 윤성주는 무대 후면에 위와 아래로 구분된 세트를 설치하고, 두 곳을 연결하는 길을 하수 편에 마련한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은 저승길을 연상시키고, 괴기스러운 복장을 한 저승사자들은 무대와 객석을 넘나들며 관객을 희롱한다. 이 같은 세트와 퍼포먼스는 이승과 저승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인간의 삶 속에서 신이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만찬Ⅰ-여정’은 지노귀굿의 ‘넋대내림거리’와 (故)이동안의 〈신칼대신무〉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넋대내림거리’는 특이하게도 무당이 아닌 가족이나 친지가 신대(=넋대)를 잡고 망자의 넋을 받는다. 그리고 망자를 대신하여 못다 한 말을 하고 맺힌 한을 푼다. 〈신칼대신무〉는 무속에 기반을 둔 춤으로 무구(巫具)인 신칼을 들고 망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진혼무(鎭魂舞)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면은 망자와 산자, 왕무녀와 박수무당 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흰 소복을 곱게 차려입은 망자는 천천히 저승길에 오르고, 아들로 보이는 산자는 죽음 앞에 오열한다. 이어 넋대를 상징하는 긴 밧줄을 부여잡고 춤을 추지만, 그의 춤에서 망자의 못다 한 말과 한의 실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어 화려한 복식에 각종 무구를 든 왕무녀와 박수무당이 순차적으로 등장하고, 〈신칼대신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춤을 춘다. 안으로 모았다가 이내 밖으로 내뻗어 뒤집어지는 움직임은 빠른 비트와 함께 격렬하게 반복된다. 

 


 ‘만찬Ⅱ-신의 놀음’은 망자의 죄를 심판하는 장면이다. 위층에 자리를 잡은 시왕들은 발레 뤼스(Ballets Russes)의 〈목신의 오후〉에서 빠져나온 듯 몽환적이고 나른하며 퇴폐적이다. 이어 천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자리에 좌정한다. 시왕들 앞에 선 망자가 자신의 내력을 고하듯 웃옷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면 심판은 시작된다. 여기서 안무가는 망자의 지난 이야기를 무당의 춤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그런데 웃음을 머금고 도발적으로 움직이는 그녀의 춤에서 망자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여정의 끝’은 지노귀굿의 ‘시왕가르기거리’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천을 가르는 퍼포먼스가 주를 이루는 이 거리는 저승 가는 길을 똑바로 인도해준다는 의미를 갖는다. 왕무녀와 박수무당은 대각선으로 펼쳐진 천을 가르며 화려하고 강렬한 춤을 춘다. 그리고 하수에 위치한 망자는 저승을 향해 길을 떠나고, 산자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마지막 ‘에필로그-일상’은 ‘프롤로그-소환’의 반복으로 이승과 저승이 하나로 이어져 있고, 신들이 우리의 삶 깊숙이 함께 함을 다시금 보여준다.




 한국의 굿은 각기 다른 신을 모시는 거리로 구성되며, 각 거리는 신을 청하는 수신(受神), 신을 모셔 노는 오신(娛神), 신을 보내는 송신(送神)의 구조를 갖는다. 그런데 민속학의 여러 성과는 춤, 노래, 퍼포먼스, 연극 따위의 놀이로 표현되는 오신의 궁극적인 목적이 신과 더불어 놀며 인간사 맺힌 한을 푸는 살풀이에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굿의 요체임을 강조한다. 여기서 무당은 종교인인 동시에 연희자이고 억울함을 대신 말하는 고발자(告發者)라고 할 수 있다.
 지노귀굿의 몇몇 거리를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는 〈만찬: 진, 오귀〉는 이승과 저승을 상징하는 세트, 퍼포먼스의 포섭,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의상 등을 통해 작품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현대적 감수성을 확보한다. 그런데 주요인물인 왕무녀와 박수무당, 넋대를 잡은 산자는 굿의 핵심인 살풀이를 위해 밝혀야 할 망자의 한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대신 격렬하고 도발적인 무당의 이미지와 산자의 과잉된 슬픔만이 강조될 뿐이다. 굿을 모티브로 삼지만, 굿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 소재주의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김남진 박재현 박근태 강용기와 부산시립무용단의 협업 〈DANCE FOUR'S〉
 예술적 완성도에서의 편차

 11월 23일과 24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 〈DANCE FOUR'S〉는 4명의 부산출신 안무가와 부산시립무용단 무용수가 협업한 정기공연이었다.
 40대 젊은 안무자가 모두 현대무용 전공자라서 장르의 융합을 통한 한국춤의 새로운 발전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기획이었다. 무대에 오른 작품은 김남진의 〈또 다른 봄〉, 박재현의 〈금홍아 금홍아〉, 박근태의 〈카르멘〉, 강용기의 〈무애행〉이다. 이 중 김남진과 박재현은 한국 근대사 또는 근대인물을 소재로 잡았고, 박근태와 강용기는 현대를 사는 개인을 소재로 삼았다. 

 


 김남진의 <또 다른 봄>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 3개의 긴 테이블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故)박병천의 구음 대목이 중간에 삽입되어있다. 앞과 뒤는 모두 일본군 위안부로 끌러갔던 소녀들의 처참한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재현한다. 여기서 테이블은 좁은 독방이 되기도 하고, 독방이 촘촘히 배치된 수용소, 건물 위 옥상, 사타구니에서 흘린 피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확대경이 되기도 한다.
 공포와 긴장감을 조성하던 음악이 멎고 나직한 구음이 나오면, 상처투성이의 소녀들은 한동안 가만히 멈춰 선다. 그들은 따로따로 부류하듯 서서히 움직이고, ‘살풀이춤’이나 ‘산조’에서 나올법한 동작을 한다. 정서적 변화가 채 일어나기도 전에 ‘봄의 제전’이 다시 나오고, 더욱더 가혹해진 참상 속으로 들어간다. 작품의 말미, 적막 속에서 덩그러니 앉아 있던 그녀들은 ‘고향의 봄’을 쓸쓸히 부른다.
 김남진은 적합하고 치밀한 소품사용을 통해 여러 장면을 명징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직접적이고 명확한 움직임 표현을 통해 위안부의 참상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그러나 고통과 상처만 있을 뿐 고향에 살아 돌아가기를 소망하는 또 다른 그녀들에 대한 언급이 지극히 협소하다. 인물의 지나친 단순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참상을 고발하기 위한 선택인가, 아니면 타자화(他者化)된 그녀들에 대한 또 다른 타자화인가? 성찰을 요구하는 부분이다.
 박재현의 <금홍아 금홍아>는 시인 이상과 기생 금홍의 연애 기행을 담은 영화 ‘금홍아 금홍아’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춤으로 옮겨진 작품은 인물간의 갈등구조 보다 식민지 천재 예술가의 우울한 내면에 집중한다. 출연진의 진지한 몰입 속에 그려지는 처연한 정서는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그러나 빛나는 감수성을 가졌던 시인 이상의 불안과 좌절을 공감하고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박근태의 <카르멘>은 현대인의 신체 콤플렉스와 오페라 ‘카르멘’이라는 이질적인 두 가지를 섞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춤과 현대춤, 한복과 바로크풍을 혼합한다. 그럼에도 작가의 발언은 명확하고 인물 창출과 움직임은 새롭다. 

 


 많은 인원이 등장하는 〈카르멘〉은 2개의 대사 장면과 2개의 군무장면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여자가 마이크 앞에 선다. 그녀는 키에 너무 작아서 사람들을 볼 땐 언제나 키와 다리만을 본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키가 크고 다리가 긴 남자를 사모하게 되었지만, 몰래 훔쳐만 본다고 고백한다. 대사를 마치면 ‘카르멘’의 유명한 성악곡 하바네라가 나오고 군무장면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대사장면은 남자이다. 그는 마르고 왜소한 몸이 콤플렉스이고, 언제나 살집이 있는 여자의 말뚝을 훔쳐본다고 고백한다. 앞과 동일하게 대사를 마치면 ‘카르멘’의 성악곡이 나오고 군무장면으로 이어진다.




 〈카르멘〉은 대사장면과 군무장면을 동전의 양면처럼 밀착시키고 반복한다. 그리고 신체 콤플렉스와 카르멘을 덧입힌다. 그렇다면 카르멘은 무엇인가? 오페라 ‘카르멘’은 성실한 군인 돈 호세가 자신과 완전히 다른 집시 여인 카르멘을 열망(熱望)하다가 파멸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안무가는 오페라의 열망을 차용해 온 것이다. 이 점에서 대사장면은 신체적 콤플렉스이고, 군무장면은 카르멘으로 상징되는 열망의 표출인 것이다. 이를 통해 콤플렉스와 열망을 동시에 가진 입체적 인물을 창출하며, 자신의 언표를 명시화한다.
 여타의 작품에서 박근태는 움직임 표현에 있어 신체의 공간조직화가 다채롭고 리듬이 빠르다. 그는 단원들에게 익숙한 한국춤 동작과 자신의 움직임 구사방법을 섞어 발랄 무상한 움직임을 만든다. 특히, 미디(midi)길이의 바로크풍 한복을 입고 한국춤의 맵시를 강조하였다가 이내 접고 펼쳤다 뒤집어지는 움직임은 유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강용기의 <무애행>은 현대인 번민과 고뇌란 피상적인 소재에서 출발한다. 먼저 한 남자가 향을 들고 무대 중앙을 가로지른다. 이후 아크로바틱한 컨택(contact)에 주안점을 둔 움직임이 지속된다. 주제를 구체화하는 핵심 이미지나 정서를 찾기 어려운 움직임의 퍼레이드였고, 각기 다른 장르의 안무가와 댄서가 만드는 신선함 또한 찾기 어려웠다.



 한국적 소재의 다양한 변주, 입체적 인물의 부재

 대전광역시, 인천광역시, 부산광역시립무용단의 공연은 굿, 판소리계소설, 근대역사와 인물, 현대 소시민의 콤플렉스와 고뇌 등 다양한 소재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무용극, 인물을 중심으로 한 장면구성, 소품의 다양한 활용, 현대적 감수성을 가미한 세트와 의상, 퍼포먼스 및 B-boy춤의 포섭, 춤 장르 간의 협업, 이질적 소재의 혼합 등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했다. 한국적 소재의 다채로운 변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춘향, 몽룡, 향단, 방자, 월매, 창자, 왕무녀, 박수무당, 망자, 산자, 저승사자, 시왕, 일본군 위안부, 시인 이상, 신체적 콤플렉스를 가진 남자와 여자, 고뇌에 찬 현대인 등이다. 그런데 이들 대다수는 여러 면을 가진 입체적 인물이 아니라, 매우 평면적이고 단선적인 인물로 묘사되었다.
 울음의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이듯 감정과 사건은 단선적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의 인물들은 하나의 톤으로만 채색되었다. 물론, 작가의의 의도에 따른 단순화가 있을 수 있다. 가령, 전쟁의 참상이나 사회적 문제점을 고발하고자 할 때, 의도적으로 인물의 특정한 면을 부각시켜 단순화할 수 있는데, 김남진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작가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적 언표가 빈약하거나 부재할 때 인물은 단선적으로 묘사된다고 할 수 있다. 천도굿을 소재로 하지만 망자의 못다 한 말과 한의 실체에 대해 침묵하는 윤성주의 <만찬: 진, 오귀>, 고전의 인물과 줄거리를 현대로 옮겨오지만 인물의 성격 및 갈등구조가 진부한 김효분의 <춘향 단장>의 경우가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박재현과 강용기 역시 여기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
 한편, 춤 표현 전달의 가장 기본적인 매체(媒體)는 움직임이다. 이 점에서 입체적 인물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그 표현을 담보해 줄 수 있는 움직임언어구사력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대전과 인천 공연의 주요 움직임과 부산 공연의 번안된 움직임은 대체로 한국식 발레 혹은 신무용류라고 불리는 것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일부 전통춤에 기초하였다. 우리 춤에는 문둥이춤, 꼽새춤, 말뚝이춤, 취발이춤, 할미춤, 미얄춤, 영감춤, 상좌춤, 먹중춤, 중춤, 거사춤, 노승춤, 소무춤, 제대각시춤, 사당춤, 양반춤, 종가집도령춤, 피조리춤, 쩍쩍이춤 등과 같은 다양한 인물춤이 있다. 언어구사력 확보를 위한 다각적 연구와 실험이 요망되는 부분이라고 할 것이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와 경상대학교에서 현대문화이론과 전통춤분석론을 강의하고 있다.
2017. 12.
사진제공_대전·인천·부산광역시립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