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춤문화 새 흐름 1. 무용동작치료
몸은 마음의 거울, 춤으로 마음을 돌보다
김인아_<춤웹진> 기자

청년 실업, 저출산과 고령화 등 여전한 사회 문제들 속에서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는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불안과 우울, 암울함을 극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치유가 절실해지면서 몇 해 전에는 웰빙·힐링 열풍이 불었고, 올해는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을 중시하는 ‘워라벨’,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小確幸)’, 가성비보다 가심비(價心比)를 택하여 마음의 만족을 따르는 소비패턴 성향 ‘플라시보 소비’와 같은 트렌드 키워드가 급부상했다. ‘나’와 ‘행복’에 무게중심을 두고 ‘마음’이 시키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현상이야말로 불안한 지금을 어떻게든 극복해보려는 강한 의지로 보인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불안과 우울 해소, 행복한 삶과 정신적 가치의 추구가 사회적 관심사로 대두되면서 예술치료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예술치유는 회복을 경험하고 자기내면을 강화시키며, 나아가 사회적 관계를 증대시키고 공동체의식을 형성하는 효과를 갖는다. 구체적으로 병원에서는 발달장애치료, 심리치료, 대체의학, 감각장애치료, 환자회복지원의 목적으로, 학교에서는 충동 및 감정조절, 학습장애 개선을 위해, 일반 사회에서는 자기발견과 삶의 의미, 행복 추구의 차원 등 목표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예술치료는 서구에 비해 국내에 반세기 가량 뒤늦게 도입됐는데 가장 먼저 1980년대 미술치료가, 뒤를 이어 90년대에는 무용치료, 음악치료, 연극치료가 소개됐다. 무용의 경우 1993년 한국무용치료학회(현 (사)한국댄스테라피협회)를 시작으로 대한무용동작심리치료학회, 한국춤테라피학회 등 협회·학회·연구소가 민간을 주축으로 설립되었다. 2018년 현재 예술통합 프로그램 가운데 무용치료가 포함되어 있거나 무용치료를 중점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단체로 약 12곳이 꼽힌다(하단 목록 참조).
 춤을 이용한 치료는 예술장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다. 동양의 샤머니즘의식에서부터 그리스신화의 코리반트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은 그 문명의 시작에서부터 춤을 심리적인 안정과 치유의 도구로 활용했다. 현대사회에서 이를 치료 측면에서 조명하게 된 계기는 1940년대 미국의 마리안 체이스(Marian Chace)가 만성정신분열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소통을 위한 댄스(Dance for Communication)’ 교육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또한 메리 화이트하우스(Mary Whitehouse)는 융의 분석심리학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이론과 실제적 접근으로서 무용이 아닌 움직임을 추구하는 ‘심층 동작(Movement in Depth)’에 근거한 동작치료를 발전시켜 무용치료의 방법론을 확장시켰다.

 

 

 미국공인 무용동작치료 전문가(BC-DMT)인 남희경 한국예술심리치료연구소장은 뉴욕 할렘가의 North General Hospital 정신병동에서 3년간 치료활동을 했다. 환자들의 공격성으로 위험판단을 받고 폐쇄 위기에 처했던 이 병원은 정신재활과 심리치료의 한 방법으로 예술치료를 제공하면서 폭력성이 떨어지는 성과를 얻었다. 약물로는 변화가 없던 갇힌 병동의 환자들에게 표출의 욕구를 끌어냄으로써 정신재활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예닐곱 명의 예술치료사들과 의사, 사회복지사, 간호사가 팀을 구성해 치료의 목표와 방법을 계획하고 체계적인 예술치료를 제공한 사례다. 남 소장은 이때 활동을 기반으로 국내에서 현장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무용치료는 인간 고유의 자연발생적 표현인 몸 움직임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언어적으로 자신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아동이나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 쉽게 접근 가능하다. 신체 움직임의 과학적 접근을 바탕으로 섭식장애, 유방암,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등과 같이 신체기능을 상실했거나 몸과 관련된 이슈를 가진 이들에게도 새로운 소매틱(somatic)의 경험을 제시한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지난해 도입한 ‘Dance for PD(Parkinson’s Disease)’는 파킨슨병 환자들을 위한 무용교육 프로그램으로 파킨슨병 증상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환우들이 안전하게 예술로서 무용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실제로 ‘Dance for PD’는 환자의 운동기능 증상을 호전시킬 뿐 아니라 정서적 교감, 사회적 연대감을 촉진하는 치료 효과가 높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파킨슨병과 같이 뇌질환으로 수술을 받거나 약물처방을 받으면서 재활치료를 하는 국내 병원에서도 무용동작치료를 도입한 바 있다. 인천 소재 라이온재활요양병원에서는 남희경 소장이 이끄는 무용재활수업을 12회에 걸쳐 진행했다. 뇌의 인지와 운동기능이 저하되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증상이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춤은 음악을 듣고 이미지를 상상하는 과정 중에 정서적 고양을 일으키고, 순서를 외우고 손발이 협응해야하는 다차원적인 사고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단순·반복적이고 수동적인 운동재활과는 다른 효과를 가진다. 무엇보다 운동재활과 달리 무용치료는 참여자들이 원을 이루고 사람들과 접촉하기 때문에 다같이 함께 한다는 공동체의식과 정서적 교감, 그룹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을 갖게 된다. 심리학 연구에서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먼저 ‘연결(connection)’이다. 트라우마는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분리하고 고립시킨다. 심리학적 용어로 해리(disassociation)라 불리는 이 증상의 회복은 관계를 맺고 연결시키는 것에 좌우된다. 또 다른 하나로 고통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외현(externalization)’도 회복을 위한 주요 방법이다. 환자들이 즐겁게 참여하고 춤으로 표현하는 무용재활수업은 연결과 외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뇌질환이라는 신체적·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한다.




 최근 심신상관의 메커니즘이 지속적으로 다뤄지면서 몸과 마음을 분리하지 않는 견해가 보편화되고 있다. 춤은 몸과 마음의 경험을 자각하고 표현하는 장으로서 무의식의 심층을 드러내고 통찰할 수 있는 좋은 매개다. 한국예술심리치료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심층심리학(Depth Psychology) 기반의 오센틱 무브먼트(Authentic Movement)는 움직임으로 무의식과 마주한다. 외부가 아닌 마음을 들여다보는 내면작업을 통해 정서적 불안이나 관계의 갈등 요소의 실마리를 찾고 회복을 돕는다. 무엇이든 마음에 집중해서 떠오르는 것을 따라가 몸으로 자유연상을 하는 단계, 이를 목격해주는 관찰의 단계, 연상과 목격의 경험을 언어화하는 단계로 내면작업을 구체화시킨다. 목격자의 역할이 있고 각자의 경험을 언어화하여 돌려줌으로써 삶의 지점과 상징언어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다는 점이 즉흥수업과 다른 점이다. 현대인들이 심리적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드러나는 불면증, 불안, 우울, 공황장애와 같은 증상은 10~12회 과정으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증상의 기저가 되는 이슈를 다루고 자아의 힘을 견고하게 만들어가는 데는 이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무용치료사와 내담자는 느낌과 경험이라는 에너지 순환 고리를 통해서 감정, 기분, 마음의 상태를 자각하고 상호 인지하여 표출한다. 이때 치료사는 단순히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춤이 가진 치유성을 경험하게 하는 것에 만족해선 안 된다. 남희경 소장은 “내담자와 신뢰를 쌓고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동안 만나 뵌 분들은 춤 자체보다 ‘사람’을 중시했다. 나의 고통을 드러낼 만큼 안전한 환경을 만들고 그 속에서 회복과 성장을 촉진하는 사람, 나와 사회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을 원한다”고 전한다. 대상에 따라 유연하게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안전한 동반자’로서 리더십을 가지며 움직임을 이어나가는 것이 무용치료사의 대전제로 꼽힌다.



[참고 문헌 및 웹사이트]
문화체육관광부 연구보고서 「문화예술치유 프로그램 지원사업 성과 및 발전 방안 연구」 (201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정책연구 보고서 「예술치유 활성화 추진모델 개발 및 사업타당성 연구」 (2013)
오원식 「예술치유의 현황과 발전방안연구 : '(가칭)국립예술치유센터' 설립을 중심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협동과정 학위논문, 2014)
GS칼텍스 사회공헌 문화예술치유 활동 마음톡톡 https://gscaltexmediahub.com/category/maumtalktalk/
전문무용수지원센터 파킨슨병 환자를 위한 무용 심포지엄 & 워크숍 “환자가 아니라 무용수예요” (<춤웹진> 2017년 10월호) http://koreadance.kr/index//bbs/board.php?bo_table=re_webjin_13&wr_id=180
미국 무용치료협회(American Dance Therapy Association) http://www.adta.org/

[국내 무용동작치료 관련 단체]
대한예술치료협회 053-811-7739 http://대한예술치료협회.kr/  
한국예술치료학회 063-850-6320 http://www.artstherapy.or.kr/
한국예술치료협회 02-575-7687 http://www.kaat.or.kr/  
한국임상치유예술학회 063-850-5097 http://www.lovearttherapy.com/  
한국표현예술심리치료협회 02-3481-5393 http://www.keapa.or.kr/  
대한무용동작심리치료학회 02-570-9762 http://www.ksdmp.org/default/  
한국댄스테라피협회 02-744-5157 http://www.kdmta.com/  
한국무용동작심리치료학회 031-782-5151 http://www.dmtsk.co.kr/  
한국무용동작치료교육학회 02-3143-0501 http://dmtedu.com/  
한국예술심리치료연구소 02-727-7544 https://iapkorea.modoo.at/
한국춤테라피학회 02-582-2181 http://www.dancetherapy.or.kr/  
힐링트리통합예술치유연구소 02-6408-3400 https://healingtreelab.modoo.at/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2018. 0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