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춤문화 새 흐름 2. Dance for PD
심신에 자유, 행복을 더하다
김인아_<춤웹진> 기자

7월의 더운 여름날, 서울 동숭동에 위치한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스튜디오 마루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였다. 둥글게 배열된 의자에 앉아 서로 마주보고 흥겹게 움직이는 사람들. 조용필의 <바운스> 노래가 흐르니 동작은 더욱 커지고 미소는 함박웃음으로 바뀐다. 춤을 제법 추는 사람, 몸이 불편해 많은 동작을 놓치고 힘겹게 움직이는 사람 구분 없이 모두 이 시간을 즐기고 몰입한다.

 




국내에 도입한 Dance for PD

‘Dance for PD’는 춤으로 파킨슨병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춤 프로그램이다. 2001년 뉴욕의 마크 모리스(Mark Morris) 무용단과 브루클린 파킨슨 환자 커뮤니티가 함께 개발한 이 춤은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동작들로 구성돼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환자들은 70분간 춤을 따라하며 심신의 자유를 만끽한다.
 춤은 몸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노인성 신경질환인 파킨슨병 환자에게 특히 유익하다. Dance for PD를 받은 환자들은 동작을 분석하고 음악과 연결하며 인지능력을 사용할 뿐 아니라 자신의 몸을 움직여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다른 운동에서 경험할 수 없던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춤이 파킨슨 환자들의 운동 기능을 높이고 우울감이나 불안을 완화함으로써 전반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춤이 파킨슨 환자들의 운동능력과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1]에 따르면, 8주 20시간에 걸쳐 Dance for PD를 경험한 참가자들의 경우 운동 기능이 향상되고, 걸음걸이와 수전증이 호전되는 놀라운 변화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2]에서는 춤을 춘 파킨슨 환자들의 균형감각이 개선되고 걷는 속도와 거리가 증가했다는 긍정적인 결과를 밝혀냈다.
 벌써 18년 동안 파킨슨 환자의 치유를 도운 Dance for PD는 현재 전 세계 20개국, 140여 개의 커뮤니티 그룹에서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전문무용수지원센터(www.dcdcenter.or.kr)에서 강사양성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곧이어 파킨슨 환자를 위한 춤 클래스를 개설했다. 매주 월요일의 이 무료 수업에 환자들의 신청율은 꽤 높은 편이다. 적게는 10명, 많게는 20명까지 참여해 춤을 즐긴다. 그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Dance for PD 강사, 현대무용가 박소정씨와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임혜경씨가 진행하는 현장에서 그간의 소감을 들어보았다.

 




매주 다른 70분간의 전문 수업

1주 한번 열리는 이 프로그램은 70분간의 수업으로 진행된다. 거동이 아예 불가능하면 참여하기 어렵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수업은 처음 인트로덕션을 가진 후 워밍업, 메인 움직임, 마지막엔 풀다운 움직임으로 마무리된다. 안무가 특정하게 짜이지는 않고 매 수업마다 강사 자기만의 특화된 주제와 움직임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임혜경씨는 자신의 수업을 이렇게 소개한다. “발레 클래스를 맡아 생상의 <백조>, 탱고 프로그램을 주로 한다. 스토리텔링으로 분위기를 조성해 환자 분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대부분 의자에 앉아 제한된 공간에서 하는 동작이지만 몸의 각 부분을 이용해 다양한 움직임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매 수업마다 내용이 다르므로 앞으로 회를 거듭할수록 프로그램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수업에서는 네 명의 강사가 한 팀을 이룬다. 주강사가 한 사람이고, 나머지 3명은 보조강사인데 수업마다 로테이션으로 바뀐다. 수업엔 자원봉사자와 환자들의 보호자도 참여한다. 환자들의 증상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보조강사와 자원봉사자, 보호자들은 각 환자에 맞춰 옆에서 돕는 역할을 한다. 박소정씨의 소개에 따르면 “몸이 점차 경직되는 병이기 때문에 손이나 발이 움직여지지 않는다거나 수전증을 보이는 분, 온몸을 떠는 분도 있다. 허벅지 안쪽 근육부터 굳어가기 시작해서 자주 넘어지는 분도 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우울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 이전처럼 사회활동을 유지할 수 없어 삶의 질이 떨어지기도 할 것이다. “겉으론 식별되지 않을 정도로 움직임에 자유로운 분도 있고, 파킨슨병이 노인성 신경질환이라지만 40대 분도 있다.”
 국내에서 Dance for PD 강사 양성 사업은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2017년에 처음 시작하였다. 일정 워크숍 후 50시간의 실습을 거치는 3단계를 수료하면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먼저 1, 2단계 온라인학습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3단계 워크숍에 참가할 수 있다. 작년 9월 이틀 동안 있은 워크숍에는 Dance for PD 창립강사이자 프로그램 디렉터인 D. 레벤탈이 직접 수업을 진행했다. 이 수업에서는 파킨슨 환자를 위한 클래스가 어떤 것인지 몸소 배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 환자가 아니라 무용수라고 생각하고 움직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됐다 한다. 지난해 26명이 강사자격을 얻었고 그 중 19명이 활동하는 중이다. 워크숍 후에 클래스가 시범 개설됐으며 올해부턴 매주 월요일 정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다. 임혜경씨와 박소정씨는 1월부터 한 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법이 샘솟는 시간들

임혜경씨는 파킨슨병 환자를 위한 Dance for PD 프로그램이 있는 줄 알았지만 크게 관심을 갖진 않았다 한다. “어느 날 어머니가 손목이 크게 떨리는 증상이 있어 병원을 찾았는데, 파킨슨 질환일 수도 있다는 소견을 받았다. 다행히 파킨슨병은 아니라는 진단이 나왔지만 이후로 부모님 건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아픔은 예정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언제든 올 수 있는 거다. 딸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저의 역할을 되돌아보다가 그 즉시 프로그램에 지원하였다. 파킨슨 환자 분들은 치료 목적이라도 춤을 추기 위해 이곳에 온다. 환자 분들에게 춤을 나누어 드리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멋진 일이다.”
 Dance for PD 강사양성 프로그램은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직업전환 프로그램의 하나다. 박소정씨는 말한다. “Dance for PD는 무용인의 새 직종으로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무용인의 기술 혹은 재능이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그것이 사회 활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정말 의미 있다. Dance for PD 강사는 무용인을 위한, 특히 무대 경험이 많은 무용가에게 최적의 넥스트 스텝이라고 생각한다.” 무용인이 직업을 전환한다고 해서 갑자스레 전혀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무용과 졸업생, 무용가들의 작품 활동 이후의 단계를 찾기 힘들어 하고 교수나 시간강사 외엔 실제 다른 길이 없어 보이는 현실에서 Dance for PD 프로그램은 시금석이 되고 있다.
 환자들에게 수업은 일상을 넘어서는 일일 것이다. 박소정씨는 수업 현장을 ‘마법의 공간’이라 표현한다. “일상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바뀌거나 젊었을 때 한창 잘 놀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곳이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수업 전부터 음악을 틀고 분위기를 만든다. 마치 공간 이동, 시간 소환을 한 것처럼 한다. 나의 올해 프로그램 주제는 ‘낭만’이다. 70, 80세대 이문세, 조용필 노래를 들으면서 다같이 흥겹게 한판 놀아보는 시간이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이지만 그렇다고 춤 동작이 유치하다거나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참여자들이 얼마간의 도전의식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움직임의 난이도를 조절해서 제시한다고 한다. 몸으로 말하는 춤의 언어로 어떤 언어를 말할 수 있는지, 개인마다 자신의 몸에 어떤 언어를 가지고 있는지를 찾도록 돕는 일에 강사들 역시 도전하고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춤 프로그램이 단순할 거라고 생각 들지 모른다. 그러나 Dance for PD 수업을 직접 참관해보면 그런 생각은 사라질 것이다. 임혜경씨는 환자들이 신체적으로 불편하지 인지기능이 떨어져있는 것은 아니며 몸이 불편하기 전에는 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셨던 분들이라 인문학적 소양도 매우 높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발레 클레스이다보니 클래식 음악을 활용하길 원하시는 분도 많다. 동작도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안무를 해오지 않으면 지루해 한다. 단순 동작을 만들어서 나열하는 차원이 아니라 완전한 구성의 작품을 짜야 한다. 수업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쏟는 열정은 무대에 올리는 작품을 안무할 때와 똑같다. 음악 해석을 완벽히 하고 파킨슨 환자들이 할 수 있는 동작을 고민해서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안무가로서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일 것이다. 그러나 공간만 달라졌을 뿐 환자 분들은 저의 또 다른 관객이자 무용수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강사와 환자라는 입장이 아니라 예술의 테두리에서 만났을 때 치유의 시너지 효과가 훨씬 크다.” 그 만한 정성을 쏟아야 참여자들이 춤에서 즐거움을 찾고 전보다 나은 활동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말 역시 수긍이 된다.




“사람에 집중하는 진정성이 아름답다”

지난 1월 한파가 기승을 부렸을 때에도 수업 참여 열기가 대단했다 한다. 임혜경씨는 “목이 굳어 옆을 보는 것도 불편해하셨던 분이 있었다. 단지 몸이 불편할 뿐이라고 하기엔 심리적으로도 너무 힘들며 우울해했고, 처음 오다보니 참여하는 것도 어색해하셨다. 두 번째 수업에도 참여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수업을 받고 안정감을 크게 느끼시더라”고 소개한다. 같은 증세의 사람들과 함께 하면 증상을 숨기거나 타인을 의식할 일도 없어 마음을 쉽게 열 수 있을 것이다. 평상시 표출하지 못한 욕구, 열망의 감정이나 직선적 표현도 춤으로 맘껏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한파에도 수업에 빠지지 않게 하는 매력 포인트는 상당히 복합적이라 생각된다. “일주일 내내 이날만 기다렸다 하시더라.”
 환자 입장에서 낮 2시에 센터에 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러나 수업을 하고나면 참여자들의 걸음걸이가 달라진 경우는 쉽게 눈에 띈다고 한다. 박소정씨는 “환자 분들이 힘겹게 센터에 들어오지만 나갈 때에는 좀 더 부드러운 걸음새인 것을 보곤 하며, 표정도 확연히 달라진다. 수업 후 피드백으로 ‘오늘은 팔이 부드러워졌다’ ‘걷는 게 나아졌다’ ‘생활에 활력이 생긴다’는 말씀을 많이 한다. 자연스럽게 수업에 대한 제언도 해주시고, 보완 사항은 다음 수업부터 바로 적용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나의 기술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훨씬 더 재밌고 즐거운 일”이라 한다. “움직임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특별하게 만나는 것은 무용가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무대를 벗어난 다른 공간에서 특별한 관객과 새 모습으로 만난다고 생각하면 이 수업 자체가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그렇지만 Dance for PD의 특성상 강사에 종사하려는 분들은 조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춤을 전공했다고 무조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우선 환자들의 삶의 배경을 고려하고 성향을 파악하고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진정성이 필요하다.”
 예술이 사람에 집중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을 임혜경씨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사람을 이해하려는 저의 정성과 노력이 환자 분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에서 저 역시 행복과 보람을 느낀다. 공연이나 안무, Dance for PD 활동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해서 저에게 도움 되는 것은 확실하다. 삶의 시선이 달라졌고, 고마운 시간이다.” 박소정씨는 현장 수업들을 계기로 춤에 대해 여러 생각을 키우게 됐다고 한다. “내가 즐기고 만족하는 춤만을 출 것인가, 누구를 대상으로 누구를 위해 춤춰야 하는가, 춤의 삶을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나는 어떤 춤을 춰야 하는가…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곤 한다. 가르침을 주는 것보다 오히려 깨달음을 얻는 게 훨씬 많다.”


[1] 「Dance for PD: a preliminary investigation of effects on motor function and quality of life among persons with Parkinson's disease」, NEUROLOGY AND PRECLINICAL NEUROLOGICAL STUDIES, 2015
[2] 「Biomechanical Analysis of Dance for Parkinson's Disease: A Paradoxical Case Study of Balance and Gait Effects?」, University of Florida, 2017

해외 파킨슨병 극복 춤 프로그램 참고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AIPKPN_smg
https://www.youtube.com/watch?v=5utV1ERgbs8
https://www.youtube.com/watch?v=7JW3JoQtppU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2018.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