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큐 〈춤, 바람입니다〉의 예효승 · 나혜영
지하철 현장 사람들과 함께 자기를 찾아갔습니다
  • 일    시
    2021년 9월 15일(수) 오후 12시
  • 장    소
    아카데미아인(서울 동교동)
김채현_춤비평가



〈춤, 바람입니다〉 방송 캡쳐화면 ⓒEBS




김채현: 지난 8월 9일 EBS 방송에서 〈춤, 바람입니다〉가 방영되었습니다. EBS 다큐프라임의 ‘예술의 쓸모’ 3부작 가운데 첫번째 순서로 방송을 탔지요. 방송 서두에 ‘이 다큐는 지하철 청소 노동자들이 1년 동안 배우며 기록한 춤, 바람 이야기입니다’라 적힌 길다란 정지 자막이 삽입되어 인상적이었다고 할까요. 지하철 환경미화원들을 축으로 춤을 가르치고 몇 달 후에 그분들이 무대에 나서는 일련의 진행 상황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지요. 일반인이 참여하는 춤 이벤트가 지상파의 단일한 방송 프로그램으로 소개되는 일이 아직은 흔치는 않은 편인 가운데서도, 특히 다큐멘터리로 진행되어 생생한 현장감부터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예효승님은 안무자로서, 나혜영님은 조안무로 참여했었지요? 진행하느라 수고하신 줄로 압니다. 우선 궁금한 바로서, 방영 후에 주변 반응은 어떠했던가요?
예효승: 주로 우연히 봤다고 하면서 감동적이었다는 말들을 했었습니다. 참가하는 분들에게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 이벤트를 끝낸 느낌으로는 춤, 신체 표현이라는 것이 그냥 편안하게 다가오는 일이 아닌 것 같다는 감이 듭니다만, 그래도 저에게나 나혜영님에게나 의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예효승 ⓒ춤웹진




이번 다큐 프라임에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제작지원을 하는 등 역할을 한 것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예효승: 네, 다큐 프라임 3부작 자체를 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함께 진행한 것으로 압니다.

방영 내용에 소개되기를 2020년 10월에 참여할 분들을 모집했더군요.
예효승: 네. 작년 10월 중순 즈음, 〈춤, 바람입니다〉를 담당한 안상민 피디에게서 연락을 받고나서 10월 말에 참여자를 모으는 오디션을 했습니다. 2021년 상반기의 최종 결과물 공연을 비롯하여 프로그램의 전반적 진행 사항은 그전부터 계획이 잡혀 있었습니다.

피디가 제안한 내용은 어떠했어요?
예효승: 그쪽에서 저에게 섭외 연락을 주었어요.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진행 사항을 제안하였고, 그에 맞추어 좀 신속하게 진행하기를 원했었어요.

지하철 환경미화원을 대상으로 하면 좋겠다고 제안한 건가요?
예효승: 네. 환경미화원으로 미리 정해진 상황이었어요. 일정이 가장 중요했는데, 그 당시에 제가 결심하면 되는 일이어서 하루 이틀 고려하다가 좋은 취지여서 수락했고 조안무가 필요했기에 나혜영님을 섭외했습니다.

10월 말 있은 오디션부터 진척 상황을 듣고 싶습니다.
예효승: 애당초에 24분 정도 응모했고 모두 12명을 선발했는데 3명이 나갔고, 마지막으로 아홉 분이 남았습니다.
나혜영: 가정사로 그만두신 분, 적응이 낯설어 도중 하차하신 분도 있습니다.

처음 선발할 적에 어떻게 오디션했나요?
나혜영: 대학로예술극장(서울 동숭동) 스튜디오 하늘에서 진행했습니다. 오디션은 총 3시간 정도 소요됐습니다. 현대무용을 관람한 경험부터 전무한 분들이다 보니 댄스스포츠처럼 저희가 순서를 제시하면 숙지해서 오디션을 본다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오디션 때 각자 마음에 드는 의상을 입고 한 명씩 일직선으로 가는 동안 자기 작업이나 일상, 젊은 날의 추억, 무엇이든 간에 표현하고 싶은 순간을 표현해보시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청소하다가 화나서 앞치마 던지는 걸 했고 또 어떤 분은 고등학교 때 개다리춤을 많이 췄다면서 껌 씹고 침 뱉는 시늉도 하셨어요. 그날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초반에는 한 명씩 나오는 것도 어색해했었지만 나중에는 재밌게들 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성격 같은 것도 엿보였던 것 같아요. 예 선생님과 제 소개를 하고 아이스브레이킹처럼 몸 풀고 막춤 추고 나서 한 분씩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원 동기, 무엇을 하고 싶은지 대화를 나누다가 각자 솔로를 했습니다. 다들 재밌어하셨어요.




나혜영 ⓒ춤웹진




방송에 나타나기로는 참가하신 분들이 60대 안팎의 중년층이었습니다. 지하철공사 역장을 정년 퇴임하고 다시 취업하신 분, 중년 나이에 제2의 삶 준비 차원에서 환경미화원에 취업하신 분들도 있더군요. 지하철 청소 노동자로서 여러 역이나 기지에서 근무하는 분들을 모으고 또 그분들 근무 시간도 동일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해야 했을 텐데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겠다는 짐작이 들더군요.
예효승: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YTN 건물에 문화예술교육진흥원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서 진행했고, 갑자기 연습이 추가되면 사설 스튜디오를 렌트했습니다. 오디션 다음 날부터 9명이 함께 했습니다. 근무 시간이 다르므로 미리 사전에 공지하면 공사 측에서 조율해주었습니다. 9주 동안 주 1회 진행하면서, 다 함께 모여 집단으로 하는 가운데 한 분씩 1:1 개인 레슨도 했습니다. 코로나 상황으로 여러 변수도 있었지요.
나혜영: 월별로 계속 교대가 되어서 수요일과 금요일 번갈아 가며 오후 6시쯤 시작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참여한 남녀 성비는 어떠했습니까?
예효승: 남자 2명, 여자 7명입니다. 최종 공연이 있던 날 한 분이 집안 사정상 참석하지 못한 점이 참 아쉽습니다.

지난 5월에 북서울 꿈의숲아트센터에서 공연하기로 결정된 건 언제예요?
예효승: 원래 계획은 2월 말 ~ 3월 초에 공연을 갖기로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계속 지연되다가 공연을 갖고 결국 8월에 방영했습니다.
나혜영: 공연 작품이 10분 길이이고, 그동안 했던 리허설 과정, 카메라로 담았던 것을 영상으로 보여줬고 관객과의 대화까지 준비했죠.

모여서 할 때 가장 먼저 한 교육이 있을 겁니다. 몸 익히기부터 단계별로 소개해주세요.
예효승: 매번 간단한 요가와 기본적인 발레 클래스, 두 가지로 몸풀이를 했습니다. 발레를 의외로 좋아했어요.
나혜영: 처음 진행할 때부터 예 선생님이 각자 개인이 고스란히 녹아있을 솔로를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각자 이름들을 몸으로 써보게 하셨어요. 도중에 갑자기 결정된 것들은 아니고 진행 과정에서 하나씩 구축되었습니다.

방송 내용에 나옵니다만, 처음에 참여자들의 입장에서는 현장에서 익히는 것이 춤인지 아닌지 모호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움직임 개발 면에서 어느 분은 처음에 “탱고를 배울 줄 알았는데...” 라며 푸념 아닌 속마음을 고백하더군요. 말하자면 본인의 개인적 느낌에서 나오는 몸짓 또는 직장에서 직무에 따른 활동 움직임이 축을 이루었지요. 처음부터 그런 점을 주지시켜 드렸던가요?
예효승: 네. 훈련할 수 없는 상황이고 이분들의 삶 속에서 습관적인 움직임이라든지 자존감을 드러낼 만한 것을 모티브로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춤, 움직임이라는 게 여러 연원을 갖습니다. 쉽게 말하면, 농경사회에서는 농사에서 연유한 동작들이 다듬어져서 춤사위화된 게 엄청 많습니다. 방송에 보니까 개인적 몸짓을 제외하면 산업사회 노동 현장에서의 움직임을 각자 맡은 부문에서 집중적으로 해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문화사적인 문제입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옮겨갔고, 이미 산업사회에서 디지털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사회가 달라지면 몸이 익숙한, 몸이 쓰는 움직임 자체가 달라집니다. 문명이 달라지니까 일상적 움직임에 대해서도 굉장한 변화를 부르고, 사람들이 쓰는 움직임에서 변화 양상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러면서 이번 작업에서는 놀이가 들어갔어요. 땅따먹기 같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단순한 놀이입니다. 작품으로서 어려운 이야기를 만들기보단 전반적으로 그분들한테 초점을 맞춘 거죠. 그분들에게 친숙하면서 쉽게 받아들일 움직임, 자기 자신을 나타낼 만한 그런 움직임을 개발할 적에 본인들의 반응은 어떠했던가요?
예효승: 춤에 대한 인지나 의미, 창작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고 춤사위나 테크닉을 배우는 것으로 여기고들 오셨어요. 따라서 대화 시간이 얼마간 필요했고,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선 진행 속도가 빨라지면서 부담 없이 참여하시더군요. 춤에 대한 관점이 교정되면서 서서히 창작이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신 거로 보입니다. 결과물을 보고 스스로들 신기해하시더라고요.

방송에 나오듯이 마지막 결과물들을 지하철 현장에서 자신들이 다시 보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이 장면에서 그분들이 각자 떠올릴 생각을 무엇이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런 부분이 굉장한 효과를 가져왔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홉 분 가운데 이전에 춤 공연 작품, 춤 예술을 접해본 분이 있던가요?
예효승: 한 분도 없었어요. 미술 전공하신 분이 있는데, 그분은 세미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어서 예술에 대한 편견이 없었고 표현에 대한 자유로움과 다양한 채널을 갖고 있었어요. 그분을 제외하면 현대예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습니다.

방영되고 나서 또는 진행 중에 춤 공연 같이 보러 가자는 제안을 했었나요?
나혜영: 제가 참여한 공연을 보러 오셨어요. 춤, 특히 현대무용은 난해하고 어렵고 해석하기 힘들고, 접하기 쉽지 않은 예술의 영역으로 인식하며 어떻게 보러 가냐고 했는데, 그래도 본인들이 무대에서 공연한 경험이 있다 보니까 전공인들이 하는 무용 공연을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 하셨어요. 보고 나서도 감동이 크셨나 봐요. 제가 하는 웬만한 공연을 다 같이 보러오셨거든요.
예효승: 변화가 작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 어느 예술 장르에 관심을 두는 것, 이런 점이 그분들에게는 큰 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춤, 바람입니다〉 방송 캡쳐화면 ⓒEBS




이번 다큐 프라임의 대전제는 예술의 쓸모를 보여주거나 묻고 있습니다. 춤도 그 쓸모가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춤은 도대체 무엇인지, 일테면 춤을 보는 또는 춤을 하는 사람에게 춤은 무슨 쓸모를 갖느냐일 텐데, 답은 단순하지 않을 테지요. 다만 이번에 〈춤, 바람입니다〉에서는 그분들이 자신감을 느끼게 됐다는 것, 춤에 대한 자신감도 있겠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 자기 정체성, 자존감을 갖게 됐다는 소감이 중심을 이루더군요. 그런 점에 대해 마음을 열고 소감을 말하는 순간들이 상당히 인상깊게 다가왔습니다.
나혜영: 자기 이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고들 하셨어요.

자기 이름, 즉 개인의 이름이 공공성을 띠게 되었다 그럴까요. 그런 순간이 불현듯 대단한 순간으로 다가오는 경우는 드물지 않습니다. 연습 과정에서 자존감이라든지 자기 찾기,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나요?
예효승: 그런 대화보다는 그렇게 작업을 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방송 내용을 구상했기 때문에 이해와 설득을 계속해 드렸고, 그분들도 잘 받아들이셨어요.

공연 후에 참여자의 주변인들과 대화를 나눠본 바가 있는지요? 어떤 변화 내지 긍정적 효과가 있는지 제삼자적 소감이 궁금합니다.
예효승: 그런 부분보다는 동료들이 함께 참여하지 못한 거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어요. 가족들은 무대에 나와 공연하는 것을 신기해했고요.




〈지하철 차차차〉 리허설 장면




공공 장소에서의 음악 연주나 합창, 미술 같은 행위와 춤은 엄밀히 말해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온몸으로서 나선다는 건 아마도 자기 자신의 전부가 나서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그림을 그린다든지 노래를 한다든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몸 전체를 쓴다는 것은 참 특별한 경험일 겁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신감, 자존감이 다져지지 않을까 합니다. 비록 10분일지라도 무대에 선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지요.
예효승: 네. 게다가 음악, 의상, 소품, 조명, 이 모든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10분이지만 60분 공연처럼 모든 과정이 필요하니까, 그것을 경험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출연진에게는 낯설고도 의미심장한 일이었겠지요.

무대 리허설은 몇 번 했는가요?
나혜영: 전날과 당일에 했어요.
예효승: 연습실에서 무대 규격에 맞게 세팅하고 연습했어요.

의상 제작비는 EBS에서 제공했나요?
예효승: 모든 비용은 EBS에서 제공했습니다. 의상은 개개인의 캐릭터에 맞추기 위해 기성품을 사서 리폼했어요. 시간이 부족했고 대관확보 등 공연작업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탓인지 일정에 문제가 있긴 했습니다. 그래도 제작진과 출연진들이 힘을 합쳐 잘 마무리 했습니다.
나혜영: 처음엔 조금 당황했지요.

참여자분들에게 출연료가 지급됐나요?
나혜영: 출연료는 우리 소관이 아니라서 모르는 부분입니다.




〈지하철 차차차〉 공연 장면




실제 1시간 정도 진행된 방송 내용을 보면, 공연장에서 10분 동안 진행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웠고 특히 일반 시청자 입장에서 궁금했어요. 전문 공연장 무대에서 공연을 진행했는데, 작품 타이틀, 주제나 기승전결이 있었을 텐데 소개가 안 되었죠.
나혜영: 공연은 ‘지하철 차차차’를 주제로 했지요. 방송에는 10분간의 공연에서 아주 일부가 보였지만, 직접 공연을 보러오신 분들은 너무 감동 받았다고 하면서 모두들 1년 가까이 열심히 노력한 게 무대에 고스란히 보였다고 했습니다. 공연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많았어요. 공연 당일날 출연진 한 분이 모친상을 당하셔서 갑자기 작품 수정이 있는 우여곡절도 있었어요. 공연 시작 전에 다같이 고인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하기도 했지요.

지금 들으니 다소 이해가 됩니다만, 그런 내용들이 방송에서 소개되었더라면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군요.
예효승: 〈춤, 바람입니다〉는 다큐멘터리이고, 컨셉의 방향성은 지하철 노동자들이 몸을 움직였고 그럼으로써 나를 세상에 노출시켰고 춤으로 나섰다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공연 팸플릿은 있었던가요?
나혜영: 포스터는 있었어요. 참여자 가운데 한 분이 출연자들을 크로키한 그림이 곁들여진 포스터였습니다.




〈지하철 차차차〉 포스터




방송 프로그램에서 출연진들은 각자 도시교통공사에서의 직무와 근무지가 소개되었습니다만, 예효승, 나혜영 두 분은 출연진들과 함께 이름만 소개되었습니다. 방송에서는 두 분을 뭐라고 표기했는지요? 그러니까 안무자인지 프로듀서인지, 아니면 모더레이터인지… 두 분의 역할을 뭐라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예효승: 네, 첫 방송이 나갈 적에는 저희 두 사람의 역할이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재방송할 때 총피디한테 우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크레딧을 넣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재방에서는 안무자, 조안무로 나왔어요.

그런 점이 더 충실하게 방송 내용에서 소개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이 글을 읽을 무용인들은 아는 사항이지만, 일반 독자들을 위해 잠시 소개하자면, 예효승님은 2000년대 중반부터 벨기에에서 세드라베무용단 단원으로 오래 활동하다가 귀국한 지도 꽤 되었고 우리 춤계에서 현대무용가로 활동한 지 아마 20년이 다 되어 가지요?
예효승: 만약에 작품 위주의 다큐였으면 당연히 우리의 인터뷰와 결과물에 대한 인터뷰가 있었을 거예요. 포커스 자체가 노동에서 쓰인 행위들이 무대에서 춤으로 승화되었다는 것이었어요. 관점에 따라서는 다르게 이야기할 만한 부분들이 아닌가 합니다. 저희들로서는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로 되기를 바랐었죠. 결과물은 그렇게까지 느껴지지 않아서 다소 아쉬웠습니다. 또 공연날 출연자 한 분이 갑자기 모친상을 입으셔서 아주 안타까운 마음에 그분의 스카프를 무대에 올려놓고 공연했어요. 그 부분도 방송에서 노출되지 않았네요.

다시 하는 말이지만, 방송에서 분명 출연자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하는 두 분이 어떤 경력자인지 어떤 경험이 있어서 이 일을 맡게 되었는지 방송에 전혀 소개되지 않아서 아쉽더라고요. 시청자 입장에서 ‘이분들이 왜 지도하지? 평소에 어떤 경력자여서 이런 작업을 지도하지?’ 같은 궁금증이 뒤따를 만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번 작업을 인도하는 안무진의 작업이나 활동 자체를 1~2분 정도 소개했더라면….
예효승: 촬영은 했어요. 다만 피디, 작가를 비롯해서 생각하는 방향성이 달랐던 거 같아요. 컨셉은 제가 지하철에서 솔로를 하면, 노동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춤에 관심을 두게 되고 그래서 작품까지 이어지는 것이었는데, 실행되지 않은 거죠.
나혜영: 저희가 바라보는 시각과 방송 쪽에서 바라보는 시각에서 차이가 났어요. 아무래도 방송 편집은 그분들의 몫이라고 여겨서 참여를 안 한 것도 다소 아쉬운 점이었고요.

춤을 지도하는 쪽에서나 방송을 제작하는 쪽에서나 이번 이벤트 제작이 큰 경험이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게다가 촬영된 자료들이 있기 때문에 방금 거론한 점을 참작해서 프로그램을 보완하여 새 버전으로 낼 수도 있을 거예요. 〈춤, 바람입니다〉 제목은 어디서 연유했는가요? ‘춤, 바람입니다’, 괜찮아 보이는 제목입니다. ‘춤바람’ 하면 부정적인데 쉼표 하나 들어가니까 감이 확 달라지는군요.
예효승: 그런 감각적인 센스가 있었어요. 결과물도 결과물이지만 출연자들의 연령대가 평균 63세인데, 인생에서 새 경험을 하셨다 하고 과거에 합창단 동호회도 활동도 하셨지만 가끔 단체 카톡방에다 몸으로 하는 것이 다르게 느껴졌던 부분에 관해 글을 올려요. 여전히 여운이 지속되는 걸 보면 춤이라는 것, 신체 표현이라는 게 타예술 장르에 비해 대단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하고요. 이번에 서울무용영화제에서 〈지하철 차차차〉를 상영합니다. 본사에 가서 승인받아야 하고 등등의 과정이 많다 보니 촬영분을 널리 노출하는 게 쉽지 않은 거 같아요. 춤계 내에서 맴도는 범위를 넘어서, 다행히 2주간 홍대입구역과 건대입구역 전광판에 노출됐어요. 제목은 EBS에서 정했습니다.




김채현, 나혜영, 예효승 ⓒ춤웹진




앞서 말했듯이 공공장소에서의 합창, 그리기 같은 행위와 춤은 공통점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으로 나서는 점에서는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비록 10분 동안일지라도 무대에 선다는 건 엄청난 일이지요. 몸이 나선다는 것, 그것은 글 쓰기 같은 것과는 차원이 아주 다른 활동이지요.
예효승: 네. 비전공자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몸, 오감이 확장되어야 표출이 가능한 춤은 참 특이한 장르입니다. 춤이 미디어 아트나 다른 장르와 콜라보하면 장르 자체가 힘이 떨어지는데, 왜일까 생각하곤 합니다. 물론 춤이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작업을 많이 하고, 또 영상이나 다른 매체처럼 물질적으로 잡힐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다 보니까 그들을 설득하고 그들하고 협력하는 데 있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무용계 종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다른 분야에서도 느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번 출연진 가운데 미술하신 분이 우리를 다 크로키했고 이걸로 개인 전시회를 열려고 하세요. 신체 표현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미술적으로 표현할 부분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 합니다. 춤이라는 것은 대단한 겁니다.

두 분은 이전에 이와 유사한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까?
예효승: 2018년 창작산실 창작실험활동지원사업에 선정됐습니다. 아르코예술극장 옥상 다락 연습실에서 2주간 매일 비전공자이자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성 소수자와 워크숍을 진행했고 문화비축기지(서울 상암동) T6에서 20분 정도 길이의 결과물을 발표했습니다. 영상을 제작해서 상영했고 저는 프리젠테이션을 했어요.

나혜영님은 혹시 어떤 경험이?
나혜영: 2018년 성폭력 피해자를 상대로 예술 치유 워크숍을 했어요. 한국여성상담센터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워크숍을 열었는데, 4~5명 정도 참여했어요.

성폭력이라는 트라우마를 벗어나게 하는 데 초점을 뒀나요?
나혜영: 네. 본인의 신체에 상처가 있는 분들이라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마주하는 걸 힘들어했었지요. 주 1회 3시간, 12주간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초반에는 참여자들의 신체 가동범위가 엄청 좁았어요.

몸이 움츠려져 있다는 거죠?
나혜영: 네. 그런데 12주 차 끝나고 13주 차 때 쇼케이스를 했는데 그때는 동작을 크게 마음대로 쓰시는 걸 보고 제가 오히려 많은 걸 느꼈어요.

어디서 쇼케이스를 했어요?
나혜영: 비공개 쇼케이스였고 카페 겸 아트 스페이스를 하루 대관했습니다. 참여자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모습이 담긴 사진을 상영했고 지인들에게 12주 동안 진행한 걸 보여드린 후 각자 소감을 말했고 케이터링까지 준비했어요.

자존감 찾기였군요. 두 분의 이런 활동들이 방송 내용에 짤막하게나마 곁들여졌더라면 시청자로서 더 깊이 공감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을 테고, 혹시 사정이 허락된다면 이번 촬영분을 다듬어 보완된 프로그램으로 다시 내놓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EBS가 내놓은 ‘예술의 쓸모’와 같은 개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꾸준히 추진해온 일반인들 참여의 예술 교육 사업은 춤 분야뿐만 아니라 어떤 예술 장르에서나 두루 필요하고 또 우리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공감의 범위를 넓혀가는 것으로 관측됩니다. 시대는 달라지고 있으며, 그래서 더 적극적인 행보들이 기대되기도 하지요. 시민의 발로서 수고가 많을 서울도시교통공사 그리고 그곳의 청소 노동자들이 이런 춤 이벤트에 동참한 것도 특기할 일입니다. 더불어 〈춤, 바람입니다〉가 여러 면에서 바람들을 일으키고 이런 유형의 작업이 지속되기를 또한 기대합니다.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1. 10.
사진제공_춤웹진, EBS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