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안무가 작곡가 프로젝트 브라질 벨로호리존치 레지던시 작업
풍요로운 예술 위해 희생할 준비되어 있던 삼바의 열정
이윤정_프로젝트 뽑끼 대표

 

 32시간의 비행 끝에 힘들게 도착한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의 3주간은 꿈을 꾼 것처럼 빨리도 지나갔다. 11월 개인 공연 후 몰려온 약간의 우울함은 브라질에 도착하자마자 한방에 날아가버렸다. 나는 우울할 틈도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고 어느새 여러 개의 작품들을 만들고 있었다.
 늘 작품을 만드는데 많은 두려움이 있었던 나는 매일매일 만들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어느덧 두려워할 틈도 없이 훅훅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3주 동안 참여해 주었던 브라질 예술가들의 열정이 있었다. 그들의 따뜻함과 삼바 리듬 같은 열정은 아마도 한 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온 작은 동양인 여자를 따뜻한 포옹으로 맞아주었고, 풍요로운 예술을 위해서 언제든지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가난하지만 멋진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사용하는 언어는 달랐지만 예술에 대해서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면서 너무도 부끄러웠고, 나의 작업에 대해서 늘 불안해하고 여유롭지 못했던 나의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기만 했다.



 어떤 재료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라!
 

 브라질 안무가 3명(Guilherme Moraisi, Ana Mundim, Mariane Araujo), 한국 안무가 3명 (윤지현, 이세승, 이윤정), 브라질 작곡가 3명( Leandro César, João Gabriel ,Vinicius Ribeiro) 그리고 퍼포머로 참여한 브라질 예술가들이 이번 Cho-Co Project (Choreohrapher-Composer)에 참여했다.
 Cho-Co Project는 European Dance Development Centre(EDDC)의 안무과정 중의 하나로 EDDC를 졸업한 윤지현 안무가와 브라질 벨로호리존치 SESC Paladium 극장이 함께 이 레지던시를 기획, 진행하였다. 벨로홀리존치는 브라질의 수도 상파올루에서 비행기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브라질의 큰 도시 중 하나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상파올루나 리오는 해변이 인접한 도시인데 반해서 벨로홀리존치는 해변이 없는 도시였다. 우리나라 70~80년대를 연상하게 하는 모습이었지만 우리와 함께했던 예술가들의 열정과 실력은 실로 대단했다. 그들과의 3주간의 모험 같은 실험은 나에게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를 갖게 해주었다.
 EDDC의 안무 워크샵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떤 재료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할 수 있다. 안무자는 매일같이 각각 다른 소재, 새로운 무용수, 새로운 문화를 만나면서 안무를 해내야 하는 마치 수행 같은 도전이자 실험이었다.

 



 첫째 주에는 3주 동안의 여정을 위해 각자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매일 밤 극장과 로비에서 6명 안무가들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퍼포머로 참여한 다양한 예술가들의 만남과 작업을 통해서 브라질의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게 되었고 서로를 알게 되는 중요한 시간을 가졌다.
 작곡가들은 본인들의 음악을 연주하거나 들려주었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곡가는 Leandro César 였다. 그는 잊혀진 브라질 전통의 악기를 직접 재구현해서 만들고 연주했는데 좋은 나무를 구하고 연구하는 모습이 마치 목수를 보는 듯 했다. 악기의 모양새는 세련되진 않았지만 소리만큼은 굉장히 아름다고 섬세했다. 마치 일레트로닉 음악을 듣는 듯이 매우 현대적이었다.
 이밖에 패션 디자이너의 디자인들,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발명품인 작곡하는 프로그램, 종이접기 아티스트의 작업노트, 주역을 풀어낸 브라질 리듬 배워보기 등 다양한 예술들이 교류되었다.



 도전에 대한 유연함 그리고 서로를 응원해주는 동료애

 

 둘째 주에는 매일 한 명의 안무가와 한 명의 작곡가 그리고 퍼포머를 제비뽑기를 통해서 뽑게 되었고 매일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발표하는 과정을 갖게 되었다. 매일 다른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 공통의 주제는 ‘미신’, ‘부적절한’, ‘통역’, ’상상’ 등이었다.
 팀별 발표는 극장의 구석구석에서 이루어졌다. 대리석의 차가운 SESC 극장 건물이 따뜻한 온기를 갖는 듯했다. 서로 안되는 영어로 작업을 하려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좀처럼 구현되지 않는 날도 있었고 운좋게 잘 풀리는 날도 있었다.
 미신을 주제로 만드는 날이 있었는데 그들의 미신과 우리의 미신이 부딪혀 한 퍼포머가 좀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안되는 영어로 그녀를 설득하려고 했던 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공연은 생각보다 잘 나왔지만 과정이 너무 힘들어 집에 오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들은 전문무용수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몸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확실한 이유를 필요로 하기도 했다. 매일 밤 공연이 끝난 후에는 다같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미신을 주제로 한 날이 가장 늦게까지 열띤 토론을 벌인 날이었다. 그들은 인디언의 후손들이어서인지 우리만큼 다양한 미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신이 종교와 함께 맞물려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게 되었다.

 



 둘째 주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관객으로 와주었고 또 토론에도 참여해 열띤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도 많아지고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게 되었다. 도전과 실험에 대한 브라질 예술가들의 유연함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런 우리들에게 언어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고, 토론은 있었지만 논쟁은 없었다.
 소재를 대하는 각각 다른, 서로의 스타일에 대해 서로에게 보내는 응원과 지지는 잊을 수 없는 동료애를 느끼게 했다. 그런 동료애 덕분이었을까? 혹은 브라질 사람들이 보여준 새로움에 대한 유연한 도전정신 때문이었을까? 어느덧 매일 부딪혀야하는 새로운 안무 주제가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강박감,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2주가 지나갔다.

 




 도전에 대한 응원과 지지의 힘

 

 마지막 셋째 주에는 한 명의 작곡가와 한 명의 안무가가 만나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매일 시간에 쫓겨 만들었던 날에 비해 4일이란 시간은 마치 한 달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팀원들과 커피를 마실 시간도 있었다. 행복했다.
 퍼포머들로 참여한 아티스트 중에는 뮤지션들이 많았는데 마지막 주에는 퍼포머보다는 뮤지션으로 참여하는 자유를 주기로 했다. 그야말로 뮤지션 풍년의 시대였다. 풍성한 음악이 많은 대신에 퍼포머는 상대적으로 그 수가 모자랐다.
 우리 팀은 무용수 1명과 2명의 뮤지션들과 작업했다.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춤을 춰달라고 부탁했는데 너무나 거리낌 없이 그 큰 악기와 함께 이동하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 가장 몸이 뚱뚱했던 기타리스트 VINI는 나와 짧은 춤을 만들기도 했다. 춤을 추는 음악가들과의 작업은 한동안 잊지 못할 듯하다.
 6명의 안무가들의 모든 공연이 끝나고 우리의 모든 일정도 끝이 났다. 관객들은 모두 진지했고 또 작가들에게 격려의 박수와 따뜻한 마음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힘을 주었고 힘들게 가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응원해 주는 듯 했다.

 



 이렇듯 낯선 지구 반대쪽 브라질에서 보낸 3주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물론 춤만 출 수 밖에 없는 최적의 환경이 도와준 것도 있었지만 예술을 바라보는 진지하고 여유 있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 많이도 부러웠다.
 브라질의 모든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아무데서나 삼바리듬이 나오면 춤을 추었다. 연습을 하다가도 또 쉬는 시간에도 삼바리듬이 나오면 모두 일어나 흠뻑 젖게 춤을 추었다. 그냥 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춤을 추러 주말마다 어디론가 가야하는 우리와는 너무도 달라 있었고 그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은 우리와는 너무나 차이가 있었다. 마치 자연스럽게 몸을 만들어야 하는 우리와 이미 자연스러운 그들과는 상대적으로 많은 다름을 느끼게 되었다.

 



 언젠가 부터 나의 춤은 멋이 있어야 할 것 같았고 또 자랑하고 싶은 춤을 만들어야 했던 것만 같았다. 작은 틀에 갇혀 그 안에서만 벗어나고 싶어했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고 또 잘 하고 싶은 마음에 나를 가두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작업이 안 나올 때도 있고 잘 나올 때도 있는데 안 나온 때에 갇혀 살진 않았나?
 뒤돌아보지 않고 앞에 펼쳐질 재미난 일들에 많은 관심을 두기로 했다.
 이번 3주는 작업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나의 삶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또 내년에는 어디로 또 나가볼까 기웃거리게 되었다. 일단 1월부터 영어학원에 등록하기로 했다. 브라질 참여예술가들과 안무가 윤지현, 이세승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15. 0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