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제2회 영남춤축제
다양성을 보여준 국립부산국악원
송성아_춤비평가

우리 춤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최초의 문헌기록은 중국인 진수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이다. 나라 안의 큰 굿판인 고대 국중대회(國中大會)를 소개하는 동시에 풍물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집단군무와 연일 음주가무 하던 민족적 흥취를 보여준다. 한편, 서구 춤의 시작점으로 지목되는 것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 대한 숭배의식이다. 이른 봄에 거행된 풍농제로, 디오니소스를 모시던 마이나데스(mainades)가 신에 홀린 상태(enthousiasmos)에서 거친 들판을 누비며 미친 듯이 뛰고 빙빙 돌며 발을 구르는 모습이 많은 도자기와 부조를 통해 전해진다.
 기원전 5세기경에 이르면, 주신경배는 국가주도의 디오니소스제전으로 변모된다. 주신을 찬송하는 합창(dithyramb chorus),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는 비극, 신화 속 주인공을 희화화한 사튀로스극, 정치적 현안을 풍자한 구희극 등이 중심이 되었다. 더 이상 마이나데스의 신성한 광란은 찾기 어려워졌지만, 일탈과 반란의 유산은 유랑예인집단에게 이어졌다. 이후 각종 극은 서양연극의 발전을 견인했고, 떠돌이패의 춤과 놀이는 민속무용(folk dance) 및 발레 형성의 중요한 동인이 되었다. 모든 문화는 교류를 통해 발전한다. 이 점에서 중심부와 주변부는 교류를 통해 상호 영향을 미치며 성장하고 발전했다고 할 것이다.




영남춤 축제의 중심부


지난 7월14일부터 8월25일까지 제2회 영남춤축제가 국립부산국악원(원장:서인화) 연악당과 시민공원 야외마당에서 진행되었다. 행사의 모토는 전통춤의 올바른 계승과 창조적 변형을 통한 한국춤 일반의 발전이다. 여기서 중심부를 차지한 것은 극장무대에서 펼쳐진 전통춤과 창작춤 공연이었고, 개막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개막작은 2017년 한국춤비평가협회 베스트작품으로 선정된 강미리의 〈念-도드리〉,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의 〈승전무〉와 〈부산아미북춤&소고춤〉, 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의 〈박대성류 산조 합주〉와 〈영남민요〉 등이었다. 제1회 영남춤축제에서 초연되었던 〈念-도드리〉는 참 나를 찾아가는 도정을 그리는 작품으로 염불과장, 타령과장, 굿거리과장, 법고과장, 당악과장, 굿거리과장 등으로 이어지는 한영숙류 〈승무〉의 짜임새를 원용한 것이다. 예년에 비해 다소간 축약된 작품은 강렬한 색감, 치밀한 무대 구성 등을 통해 관객의 시각을 압도했다. 국악원무용단의 두 작품은 여러 번 공연한 바가 있는 익숙한 레퍼토리라는 점에서 다소간 식상했고, 〈상주아리랑〉 〈경상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옹헤야〉와 같은 신민요로 꾸며진 기악단 공연은 개막작이라고 하기엔 무게감이 떨어졌다.
 



 개막식 이후 전개된 무대 공연의 두드러진 특징은 원로의 전통춤 공연이 많았다는 것이다. 춘당 김수악기념사업회(대표:김인권)의 〈김수악류 전통춤〉, 시 단위의 무형문화재를 중심으로 한 〈명무열전〉, 원향춤보존회(예술감독:엄옥자)의 〈어화둥둥 춤이여라 원향이어라〉, 윤여숙무용단(예술감독: 김온경)의 〈춤 4대로 이어지는 영남-동래춤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국가지정문화제 제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였던 김수악(1926-2009)은 악가무에 두루 능통했고, 진주 교방청과 권번의 춤을 후세에 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춤판은 생전 모습을 담은 20-30분 분량의 동영상과 함께 〈구음검무〉 〈김수악류 살풀이〉 〈팔선무 선경춘풍〉 〈진주교방굿거리춤〉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들 종목은 영남을 대표하며 오늘날에도 널리 추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보존회가 두 곳이고, 춤 또한 종목별로 제각각 분할되어 전승됨으로써 공연된 춤판의 내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비단 이 경우뿐만 아니라, 춤 보존단체의 난립은 올바른 전승을 위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국립부산국악원은 〈김수악류 전통춤〉과 더불어 〈명무열전〉을 기획했다. 춤판은 국가지정문화재 제43호 〈수영야류〉 전수조교인 이상열의 〈할미춤〉, 국립국악원 무용단 단장 및 안무자를 역임한 홍금산의 〈살풀이춤〉, 서울시문화재 제45호 〈한량무〉 예능보유자인 고선아의 〈강선영류 태평무〉, 대구시무형문화재 제18호 〈정소산류 수건춤〉의 예능보유자인 백년욱의 〈정소산류 수건춤〉,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47호 〈호남산조춤〉의 예능보유자인 이길주의 〈호남산조춤〉,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48호 〈藝妓舞〉의 예능보유자인 김광숙의 〈예기무〉, 부산시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한량춤〉의 예능보유자인 김진홍의 〈동래한량춤〉 등으로 구성되었다.
 시무형문화재를 중심으로 기획된 〈명무열전〉은 전통춤의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런데 명무(名舞)는 명작(名作)에 버금가는 말이다. 명작은 적어도 삼 세대에 걸친 검증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누구나 공감하고 동의하는 보편성을 전제한다. 주지하다시피, 시무형문화재는 전통에 기반을 두는 동시에 새롭게 창작의 요소를 가미한 경우가 적지 않다. 때문에 90년 이상의 세월을 거친 것으로, 특정 세대와 계층을 초월한 보편성을 확보한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즉, 시무형문화재 전체를 명무라고 확언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명무나 명인이라는 말은 보다 면밀한 검토와 정확한 가치판단 속에서 사용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국악원의 기획공연 이외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두 원로의 춤판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국가지정문화재 제21호 〈승전무〉 예능보유자인 엄옥자의 〈어화둥둥 춤이여라 원향이어라〉이다. 크게 2막으로 구성된 작품의 처음은 현대인의 공허한 삶을 다채로운 영상과 모던한 동작으로 이미지화한 것이다. 두 번째는 현대인의 살(煞)을 푸는 대목으로 엄옥자를 비롯한 많은 춤꾼들이 대거 출현하여 〈살풀이춤〉을 추었다.
 원로의 또 다른 춤판은 부산시무형문화재 제10호 〈동래고무〉 예능보유자인 김온경의 〈춤 4대로 이어지는 영남-동래춤이야기〉이다. 인문학콘서트를 표방한 공연은 〈동래고무〉 〈산조춤〉 〈덧배기춤〉 〈문둥이춤〉 〈태극무〉 〈동래입춤〉 등을 무대에 올렸고, 이들 춤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으며, 아버지 故김동민에서 딸과 손녀로 이어지는 집안내력을 소개했다. 특히 주목된 것은 한성준(1875-1941)과 강태홍(1893-1957)을 동위에 놓은 뒤, 한성준에서 한영숙으로 이어진 춤은 경기충청을 대표하고, 강태홍에서 김온경으로 이어진 산조춤은 경남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강태홍은 부산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가야금 산조의 명인이다. 한성준은 춤은 물론이고 북과 줄타기의 명인이었고, 전막 창극의 시대를 연 조선성악연구회의 핵심 멤버였으며, 오늘날 전승되는 여러 전통춤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인물이다. 과연 이 두 분을 동등하게 견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김온경의 주장이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명확한 학술적 논증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많은 제자와 가족들과 함께 꾸며진 두 원로의 춤판은 故하보경(1906-1997)을 상기시킨다. 국가지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였던 그는 시골 촌부의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다. 경쾌한 중량감으로 표현되는 디딤새는 관객을 덩실덩실 춤추게 했고, 별다른 기교 없이 무심하게 내뻗는 손짓은 절로 어깨춤을 추게 했다. 한국의 자연을 닮은 춤, 고졸한 예스러움의 춤, 천진한 아이를 닮은 노경의 춤 등으로 평가받는 그는 아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일체의 꾸밈없이 북 하나를 울러 메고 신명을 바쳤고, 여럿이 함께 무대에 오를 때도 세를 과시하기보다 명(命)을 다해 놀아 제쳤다. 화려한 외양 속에 이와 같은 지극한 몸 바침이 있었던가, 쉬이 대답을 하기 어려운 두 무대였다.



영남춤 축제의 주변부

2018년 영남춤축제는 예년과 달리 프린지(Fringe), 기획자open무대, 코리아 댄싱 킹(K-Dancing King) 등을 신설했다. 프린지는 장르나 형식,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어 가는 문화의 장을 표방했다. 기획자open무대는 새롭고 참신한 춤 기획을 위해 마련된 것으로 공모를 통해 선정된 몇몇 기획자가 준비한 무대이다. 코리아 댄싱 킹은 전문인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춤 경연대회이다. 이들 모두는 기존 질서를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중심부인 극장공연을 에워싼 주변부라고 할 수 있다.
 프린지는 8월3일부터 8월5일까지 국립부산국악원 앞에 위치한 시민공원 야외무대에서 진행되었다. 유난히도 뜨거웠던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진행된 행사는 타악기공연, 퍼포먼스, 탈춤을 비롯한 각종 춤 공연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첫 시작은 혼성4인조 음악그룹인 루츠 리딤(Roots Redeem)의 공연이었다. 한국의 각종 장단에 아프리카 리듬을 섞은 그들의 음악은 더위에 지친 관객들을 위로하며 생기롭게 빛났다. 동호인 단체인 부산풍물사랑-판은 경상남도 농악과 사물놀이를 선보였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최선을 다한 그들에게 환성과 갈채가 쏟아졌다.
 퍼포먼스로는 임선유의 캘리그래피(calligraphy)와 백보림의 드로잉(drawing)이 있었다. 두 행위자는 커다란 천위에 아름다운 서체 혹은 선을 이용하여 영남춤축제의 건승을 기원하는 문구를 남겼고, 이를 야외무대 주변에 설치했다. 이전 국악원에서는 볼 수 없는 공연이었다는 점에서 신선하였다. 그러나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머물게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프린지에서 가장 주목을 끈 것은 2000년 전후에 복원되고, 부산에서 처음 시도된 〈합천 밤마리오광대〉와 〈마산오광대〉 전 과장 공연이었다. 탈춤은 연행의 주체에 따라 농촌탈춤, 떠돌이탈춤, 도시탈춤 등으로 구분된다. 원형에 해당하는 농촌탈춤은 마을굿의 일환으로 농민이 주도한 것이다. 농악대의 〈잡색놀이〉 〈북청사자놀음〉 〈강릉단오희〉 〈하회별신굿놀이〉 등이 대표적이다. 떠돌이탈춤은 농촌형에서 파생한 것으로 유랑예인집단들에 의해 연희된 것이다. 서울에 본거지를 둔 본산대패와 경남 합천 밤마리에 본거지를 둔 대광대패가 대표적인 단체이고, 도시탈춤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도시탈춤은 농촌형과 떠돌이형이 결합된 것이다. 18세기 이후 새로운 상업도시의 발전과 함께 출현했고, 상인·하급관리인 이속·지역민이 주도했으며, 1900년대에 최 절정기를 맞이했다. 오늘날 전해지는 황해도의 〈봉산탈춤〉, 경기도의 〈양주별산대놀이〉와 〈송파별산대놀이〉, 영남의 각종 〈오광대〉와 〈야류〉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합천 밤마리오광대〉 공연을 주목한 까닭은 영남지역의 각종 오광대와 야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대광대패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동안 단절된 이것은 합천밤마리오광대보존회(회장: 정수동)의 노력으로 〈오방신장무과장〉 〈중과장〉 〈양반과장〉 〈영노과장〉 〈영감할미과장〉 〈사자무과장〉 등 총 6과장으로 복원되었고, 이 전체를 공연하였다. 그런데 당혹스러웠던 것은 도시탈춤 형성에 원동력이 된 것은 대광대패가 아니라, 350년 전에 이미 존재했던 지역의 탈춤인 〈합천 밤마리오광대〉라는 것이다. 2018년 영남춤축제 안내책자의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전설에 따르면, 350년 전 대홍수 때 큰 나무궤짝 하나가 이곳 밤마리에 떠내려 와 마을 사람들이 건져서 열어보니 궤짝 속에는 많은 가면과 “영노전초권”이라고 하는 책이 한 권 들어 있었다. 당시 마을에는 전염병과 재앙이 그치지 않으므로 좋다는 방법을 다 해봐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으나 어떤 사람의 말대로 탈을 쓰고 그 책에 쓰여 있는 놀음을 하여 보았더니 이상하게도 재앙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탈을 쓰고 연극을 해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낙동강 물류의 중심지인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밤마리)에는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흥행단이 흘러 들어왔고 또한 낙동강을 따라 오가던 많은 사람들이 이 곳 밤마리의 오광대놀이를 보고 많은 곳에 전파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광대놀이는 밤마리가 발상지라 하는 것이며... (이하 생략)

 

 만약 이들의 주장이 옳다면, 도시탈춤 형성에 유랑예인집단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학설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보다 면밀한 학술적 검토가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한편, 선유풍물연구소(대표: 이중수)의 〈마산오광대〉가 연희되었다. 1900년경 전후, 마산지방에 살면서 놀기 좋아하고 놀이에 능했던 김순일 등이 초계 밤마리 대광대패가 마산 장터에 와서 노는 것을 보고 배워 시작되었다는 이것은 영남일대에 산재한 여러 오광대놀이의 하나이다. 여타의 것에 비해 늦은 2006년에 복원되었고, 공연은 〈모심고사〉 〈오방신장무과장〉 〈문둥이과장〉 〈상좌 노장중과장〉 〈양반과장〉 〈영노과장〉 〈할미영감과장〉 〈사자무과장〉 등으로 이어졌다. 가장 특이했던 점은 여타의 〈할미영감과장〉과 달리, 할미는 물론이고 영감과 소무 사이에 태어난 새 생명도 죽는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의 죽음 뒤에 이어지는 상여 역시 지나치게 적막하다. 보통 상여장면은 굿판처럼 각자의 소원을 빌고, 인정(신에게 바치는 재물)을 받치기도 하면서, 흥겹게 출렁인다. 마산지역의 특수성인지, 혹은 복원의 문제인지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오광대 공연 이외에 이정화와 춤추는 사람들(대표: 이정화)의 〈두 번째 꽃길일래라-꽃을 보다〉, 신예담의 〈권명화류 소고춤〉, 박은하의 〈워라밸 전통춤 콘서트〉, 고선아‧최지현의 〈백합〉 등의 춤 공연이 있었다. 5장으로 구성된 이정화의 작품은 탈춤의 여러 춤사위를 원용했다. 그리고 삶의 맺힌 한을 풀어 위로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쉽고 명확한 주제 전달로 야외 일반관중의 즉각적인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수영야류〉 말뚝이의 배김사위와 〈봉산탈춤〉 제2과장 첫 목의 삼전삼복(三轉三伏)을 원용한 동작구성, 맺힘을 푸는 작품전체의 짜임새 등이 다소간 식상하고 작위적이었다.
 신예담은 신전통춤 계열인 〈권명화류 소고춤〉을 선보였고, 박은하는 각종 전통춤을 버라이어티쇼처럼 펼쳐보였다. 여기서 부각된 것은 춤이 아니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의상과 짙은 화장이었으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웃음들이었다. 신진 작가의 〈백합〉은 현대무용으로 분류해 볼 수 있는 것으로, 두 춤꾼이 만들어 내는 움직임은 시각적 즐거움을 주었다. 그러나 작가의 주제적 언표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무대였다.

 영남춤축제의 주변부를 지지한 또 다른 축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춤 경연대회와 기획자open무대였다. 이 중, 경연대회인 코리아 댄싱 킹은 8월19일 연악당에서 진행되었고, 초등학생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의 13개 팀이 참여하여 갈고 닦은 기량을 뽐냈다. “춤추지 않고서야 어찌 인생을 알리오”라는 그리스교도의 옛 찬송가 구절이 무색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춤으로 삶의 충일한 기쁨을 찾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새롭고 참신한 춤 기획을 위해 마련된 기획자open무대는 이노연의 〈진도 북놀이 즐기기〉, 구성심의 〈靑 ‘춤’, 첫발처럼 조심스레〉, 우지연의 〈잘‧먹‧잘‧살 talk〉등으로 구성되었고, 국립부산국악원 2층 연습실에서 진행되었다. 7월22일 있었던 〈진도 북놀이 즐기기〉는 일 굿에서 출발하여 양태옥과 박강렬로 이어진 전남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 북놀이〉의 대중화를 위해 마련된 것이다. 먼저 이노연의 〈진도 북놀이〉 공연이 있었고, 춤에 관한 설명과 교습으로 이어졌으며, 관객과의 질의응답으로 마무리되었다. 명쾌하고 맵시 난 디딤새는 좌중을 압도했고, 양손에 쥔 북채와 함께 타오르는 리듬은 절로 어깨춤을 추게 했다. 리틀엔젤스 출신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평가 절하되었던 춤은 이미 신무용을 훌쩍 넘어서 있었다.
 특히, 주목을 끈 것은 자신의 춤이 재창작된 것임을 밝히고, 창작 방법론을 시연과 함께 명시했다는 것이다. 방법론의 요지는 단순한 디딤과 장단으로 구성된 〈진도 북놀이〉의 핵심적 동작을 춤의 기본으로 보존하되, 태평무를 비롯한 각종 전통춤의 디딤새를 추가시켜 다채로운 무대 춤으로 윤색시켰다는 것이다. 오늘날 전통춤의 대부분은 재창작 과정을 거치며, 공연 팸플릿에 재창작자 이름을 명시한다. 그런데 누구하나 방법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이 같은 형편을 고려할 때, 이노연의 선명한 입장표명은 진위 여부를 떠나 의미 있는 선례가 된다고 할 것이다.

 

 

 이후, 구성심과 우지연의 무대가 8월14일과 22일에 있었다. 신진에게 전통춤판을 열어주고, 일반관중에게 춤을 소개하는 구성심의 공연은 연습실에서 전통춤판을 연다는 것 이외에 별반 새로울 것이 없는 안일한 기획이었다. 우지연의 〈잘‧먹‧잘‧살 talk〉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무용과 선배로 선정된 박연정(이팝컴퍼니 대표)과 김주빈(주빈댄스컴퍼니 대표)을 초대하여 그들의 성공담을 듣고 대화하는 것이다. 선배들의 무용담은 관객의 다수를 차지한 예고 학생들에게 유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취업을 고민하는 무용학과 대학생이나 일반인이 공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영남춤 축제의 성과와 문제점

제2회 영남춤축제는 8월 25일 폐막식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폐막작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위안부의 슬픔을 다룬 구미시립무용단(예술감독: 김우석)의 〈망향〉, 연못·강·바다로 흘러가는 물의 여정을 이미지화 한 울산시립무용단(예술감독: 홍은주)의 〈水作〉, 삶과 밀착된 굿의 희노애락을 강렬하게 이미지화한 부산시립무용단(예술감독: 김용철)의 〈댄스유토피아〉, 유랑예인의 삶을 각종 타악기와 함께 이미지화한 국립부산국악원(예술감독: 정신혜)의 〈별거리유희〉 등이었다.
 영남지역 주요 국공립단체의 작품으로 구성된 폐막식은 비록 초연작은 없었지만, 각 단체의 성의 있는 준비로 인해 무게감을 더했다. 또한 이들의 성격을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구미시립과 울산시립은 한국적 발레를 표방한 송범류의 한국창작춤에 기반을 두었다. 단, 당대성을 반영한 동작 수용에 있어 울산시립은 적극적이고, 구미시립은 소극적인 경향을 보였다. 반면, 부산시립과 국악원은 향토색이 짙은 각종 민속춤에 기반을 두었고, 움직임 표현력이 강렬하고, 다채로운 경향을 보였다.

 



 2017년에 이어 연속적으로 개최된 제2회 영남춤축제는 지역을 대표하는 축전으로 정례화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무대공연과 더불어 프린지, 기획자open무대, 춤 경연대회 등을 신설하여 다양성을 확보한 것은 고무할 일이다. 다양성은 교류의 전제조건으로 문화발전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그런데 각각이 제 빛깔을 선연하게 드러내지 못하면 교류와 발전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축제의 중심부와 주변부의 문제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원로의 전통춤이 강세를 보였던 무대공연은 신진과 창작춤의 부재, 보존단체의 난립으로 인한 전통춤의 질 저하, 가치판단을 유보한 채 관성적으로 남발되는 명무, 본질을 도외시하고 세 과시에 주력한 춤판, 전통춤 계보에 대한 검증되지 않는 주장의 난무 등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한편, 무대공연의 주변부는 축전의 다양성을 배가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몇몇 작품은 수준 이하의 기량을 선보였고, 새로운 기획이라는 말과 달리 진부한 경우도 있었으며, 복원탈춤의 진위 여부를 살필 수 있는 학문적 논의의 장이 부족했다.
 올해의 문제점을 단숨에 뛰어 넘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나은 다음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까닭은 한여름의 뙤약볕 속에서도 자리를 지킨 많은 지역민, 어려운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땀방울을 흘리는 춤꾼과 춤패, 부족한 예산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국립부산국악원 등의 노력과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중심부와 주변부가 제멋대로 살아 생동하고, 서로 만나 교류하면서 이 땅 춤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축전으로 자리매김하기를 소망한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와 경상대학교에서 현대문화이론과 전통춤분석론을 강의하고 있다.
2018. 10.
사진제공_국립부산국악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