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연재_ 춤 관찰기: 다시 생각하는 아시아 춤 인프라(1)
1. 대만의 춤 극장들
서정록_춤연구가
2000년대부터 한국 예술가들의 해외진출은 이전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며 가히 폭발적이다. K-Pop으로 대변되는 대중예술은 물론, 순수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춤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한국 안무가나 무용가가 해외 현지에서 활동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형태로 현지인들과 협업을 진행하는 것은 이제 그리 생경한 모습이 아니다.
 해외 진출과 교류에서 무용가들이 현지 사정에 정통하지 않은 탓에 종종 시행착오를 겪을 것 같다. 유럽이나 북미지역의 경우 인터넷 등을 통해서 기본 정보라도 얻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시아를 비롯 그 밖의 지역에선 기초 정보조차 얻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아시아는 가까우면서도 언어 문제로 인해 인터넷의 정보마저 정확히 이해하기가 녹록하지 않다. 이러한 기본 정보 중에 무용가들에게 특히 현지의 예술 기반시설(基盤施設) 또는 인프라(infrastructure)에 대한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상식대로, 현지 진출과 교류에서 현지 인프라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예술 기반 시설은 작품 활동의 근간이다. 무용가들에게 예술 인프라로서 당장 피부에 와닿는 것은 춤 공연 공간과 학교일 것이다. 아시아 각국과 교류하려는 무용인들을 위하여 앞으로 소개될 내용은 춤 공연장과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한 현지의 춤 인프라이다. 필자의 현지 경험에 바탕을 둔 인프라 관찰기를 소략한 대로 몇 회에 걸쳐 춤계와 공유하려고 한다.



대만의 춤 인프라, 다양한 설비로 기본에 충실해

대만(臺灣, 타이완)은 여러 면에서 한국과 엇비슷하다. 잘 알듯이 일제 식민지 경험, 독재정권, 그리고 민주화 과정 등 그 역사적인 면에서 많은 점이 닮았다. 또 빠른 경제 성장과 그에 따른 성숙한 시민의식도 한국 사회와 유사하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사회 기반시설 또한 한국이나 일본, 싱가포르와 유사하거나 견줄 만하다. 이러한 유사점은 춤 인프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선 한국의 국립극장이나 세종문화회관 또는 서울 예술의전당과 유사하게 대만에서도 고수준의 시설을 갖춘 극장들이 존재한다. 타이페이(臺北)에 소재하는 ‘국립국부기념관(國立國父紀念館, Sun Yat-sen Memorial Hall)’이나 ‘국가희극장(國家戲劇院, National Theater)’이 그것이다. 이들 극장은 그 크기가 대형으로 주로 그 규모에 어울리는 대규모의 음악회, 연극 작품, 전통예술 작품과 춤 작품들이 올려진다. 국립국부기념관은 본 건물의 크기가 9천 평에 야외 오픈 스페이스가 3만 5천 평에 이르는 큰 규모의 극장이다. 이 건물은 다양한 전시 공간, 도서관과 함께 2,500석 규모의 공연장을 갖추고 있는데, 대만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영화제인 ‘대북금마영전(台北金馬影展, Golden Horse Film Festival and Awards)을 개최하는 장소로도 세계에 알려져 있다. 

 


 한편 국가희극장은 국가음악청(國家音樂廳, National Concert Hall)과 마주하고 있는 극장으로 국가희극장과 국가음악청 두 건물은 모양만 조금 다를 뿐 그 규모가 비슷하다. 이런 이유로 두 건물을 함께 ‘국가양청원(國家兩廳院, National Theater & Concert Hall)’이라 부른다. 네덜란드 필립스(Philips)의 기술로 만들어진 1552석 규모의 본 극장은 특히 13미터 크기의 360도 회전 무대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가희극장의 티켓 가격은 작품과 좌석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데 대략 600 대만달러(한국돈 2만3천 원 정도) ~ 4500 대만달러(한국돈 16만6천 원) 사이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혹시 이러한 대형극장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만이 대한민국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면적과 비슷한 크기의 나라인 점을 고려해보면, 대만 사회의 공연예술에 대한 관심이 어떠한지 조금은 짐작해볼 만하다. 

 


 이 밖에도 대만 각 지역에는 한국 지자체들의 문화재단과 유사하게, 대부분의 지자체들에 문화재단이 있고 이러한 문화재단에는 거의 대부분 춤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예술을 올릴 수 있는 극장들이 소재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극장들의 이름은 한국과 유사하게 지역 이름에 ‘아트센터(Art Center, 藝術中心)’가 붙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한자로 예술(藝術)은 영어의 ‘아트(Art)’, 중심(中心)은 ‘센터(Center)’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타이중(臺中市)에 소재하는 아트센터의 경우 그 명칭이 ‘타이중시 항구 예술중심 (臺中市港區藝術中心, Taichung City Seaport Art Center, 546석)이다. 이러한 아트센터(Art Center, 藝術中心)들은 각 지역에서 대표적 예술 장소로 지리매김하고 있으며, 극장을 포함하여 미술관과 도서관 그리고 옥외 공연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극장들을 여기서 자세히 소개할 필요는 없고, 춤 공연이 자주 올려지는 극장을 중심으로 몇몇 대표적인 극장들을 소개해본다.
 대만의 수도인 타이페이에서 춤 공연으로 가장 유명한 극장은 ‘구링가 소극장(牯嶺街小劇場·구령가 소극장, Guling Street Avant-garde Theatre)’을 들 수 있다. 50~70명 정도의 관객을 수용하는 이 극장은 우선 극장 건물 자체가 제법 유서가 깊다. 이 극장은 일제시대인 1906년 지어진 건물로 본래는 일본 헌병대의 건물이었다. 일본에서 해방된 이후 본 건물은 대만의 경찰서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가, 2001년 경찰서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대만 문화부(中華民國 文化部, 한국의 문광부에 해당)에서 본 건물을 양도받았다. 문화부에서는 여러 자문을 거쳐 바로크 스타일로 지어진 본 건물이 그 벽이 매우 두껍고 가운데 공간에 기둥이 없이 뚫린 구조를 가지고 있어 극장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극장으로 개조하였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중국어권 최초의 현대무용단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 Dance Theatre, 雲門舞集·운문무집)도 소규모 공연에 자주 사용하는 극장이다. 이 극장의 티켓 가격은 작품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보통 700 대만 달러(한국돈 2만6천 원 정도) 수준이다. 

 


 한편 지방에서 지자체가 운영하는 가장 대표적인 극장으로 타이완 북서부에 있는 대만 최대의 첨단 공업단지가 있는 신주현(新竹縣·신죽현, 현은 한국의 ‘도’ 개념)의 ‘신주현 정부문화국 실험극장(新竹縣 政府文化局 實驗劇場)’을 들 수 있다. 120석 규모의 본 극장은 그 이름에 걸맞게 주로 실험 공연을 중심으로 공연되는 곳이다. 이 극장은 대만에서 실험 연극은 물론 현대춤 공연이 자주 열리는 극장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실험극장’이라 이름이 붙은 극장들은 대만의 여러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각 지역의 아트센터(Art Center, 藝術中心)에 소재한다. 이러한 실험극장은 그 형태 때문에 현지에서 종종 ‘블랙박스(Black Box, 黑盒子·흑합자)’라고도 불린다. 대표적 실험극장 몇 곳을 소개하면, 이란시(宜蘭市)에 소재하고 있는 이란 전예원구 곡예관 실험극장(宜蘭傳藝園區 曲藝館 實驗劇場, 150석)이나 타이중시 둔구(臺中市屯區)에 위치한 타이중 둔구 예문중심 실험극장(臺中市 屯區藝文中心 實驗劇場, Experimental Theatre, Taichung Tun District Art Center, 200석), 핑둥시(屏東市) 소재 핑둥 연예청 실험극장(屏東演藝廳 實驗劇場, 150석)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극장의 티켓 가격은 작품과 극장에 따라 다르나 일반적으로 700 대만 달러(한국돈 2만6천 원 정도) ~ 800 대만 달러(한국돈 대략 3만 원 정도) 수준이다.
 대만의 춤 인프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비교적 찾아보기 힘든 춤 전용극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역시 신주현의 ‘아이언 루프 극장(鐵屋頂劇場·철옥정극장, Iron-Roof Theatre)’이 바로 그것이다. 50평 크기의 본 극장은 80~100명 정도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춤 작품만을 공연하는 것으로 특화되어 있다. 이런 춤 전용극장이 대만의 수도인 타이페이가 아닌 지방에 소재하고 있는 것이 흥미로운 점인데, 신주시는 타이완에서 1인당 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답게 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취향 또한 매우 다양하며 그 수준도 상당한 곳으로 바로 이들 극장은 이 지역 주민들의 춤 예술 향유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대만은 나라의 크기에 비해 우선 각지에 소재하고 있는 많은 극장들의 수(數)에서 양적으로 춤 인프라를 잘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질적인 면에서도 대만의 대부분의 극장들은 무대시설과 조명설비, 그리고 공연자를 위한 무대 뒤 편의시설 등은 한국의 대부분의 극장과 견주어서 그리 다르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특히 무대 스태프들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스태프들의 기량 수준을 일일이 거론할 필요는 없지만, 필자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예술인들의 다양한 요구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배려하려는 이들의 자세였다. 예를 들어 어느 공연에서 공연을 마치고 공연팀의 무대장치가 극장 밖에 놓여져 있는데, 갑자기 비가 오자 공연팀이 요청하기도 전에 자신들의 우산과 비닐로 무대 장치가 젖지 않도록 부랴부랴 배려하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물론 이러한 배려를 대만의 모든 극장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며, 이를 일반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사소하지만 예술가들을 위하려는 인간적인 모습들은 필자 눈에 자주 띄는 장면이었다는 점만 밝히고자 한다. 또 여기서는 크게 다루지 못하였지만, 극장 공간 이외의 다른 여러 장소, 예를 들면 카페나 서점, 도서관, 혹은 야외에서 다양한 춤 공연들을 올리는 경우가 사실 더 많다. 보통 이러한 공연들은 규모가 작으나, 이를 주최하는 다양한 예술 단체들의 열정과 이를 관람하는 이들의 진지한 자세를 목격하는 것은 제법 흔한 일이다.
 극장과 춤을 비롯한 다양한 대만의 공연 단체의 정보는 대만 정부에서 야심차게 구축한 문화부망로극원(文化部網路劇院, Cyberstage Taiwan, http://cyberstage.moc.gov.tw/)을 통해 기본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그리고 중국어로 서비스 하고 있는 이 인터넷 데이터베이스에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몇몇 중요한 극장과 무용단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정보가 중국어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의 경우 이러한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기가 사실 녹록치 않다. 그리고 본 웹사이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현재 정보를 업데이트 중이라고는 하나, 상당수의 극장 정보나 무용단체에 관한 정보가 매우 소략하여 기본 이미지들조차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대만 정부에서 이처럼 공연예술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인상 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국가차원에서 구축된 이러한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는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문 것 같다. 단순히 경제적 수준이 높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대만 사회의 춤을 비롯한 예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함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서정록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교수. 태국 Mahidol 대학교 국제대학 강사, 국립대만대학교 초빙교수, 런던대학교 SOAS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한국춤 연구를 통해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의 문화 교류에 대한 역사 연구를 하고 있다.
2018.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