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연재_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1)
춤교육 현장에서 몇 가지 제안
채희완_춤비평가
춤교육 현장에서 ‘무용’이란 용어를 폐기 처분하고 ‘춤’이란 용어를 되살려 쓰기를 나는 1980년대 이래 재삼 제의한다.
 ‘무용’이란 용어는 일본의 근대시기에 느리고 우아하고 사려깊은, 그래서 ‘정신적인’ 무(舞) 자와 빠르고 거침없고 펄쩍 뛰는, ‘육체적인’ 용(踊)자를 합성한 말이다.
 1908년 영문학자 쓰보우찌교수가 지은 『신악극론』 에서는 ‘신무용’이란 말이 전통춤에서 벗어나 새 시대 새 풍조를 반영하고 앞서 이끄는 춤용어로 제창되었다. 일본의 신무용은 개화사상과 일본인 의식의 한 징표가 되었다. 이러던 것이 1926년 3월 내선일체를 기획의도로 숨긴 일본 근대무용가 이시이바꾸의 내한공연과 함께 본격적으로 한국 땅에 이식되었고 최승희, 조택원의 신무용 활동과 더불어 ‘무용’은 예술적이고도 근대적인 춤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한자문화권에서 춤을 지칭하던 ‘무도’(舞蹈)라는 말은 잠적하기 시작했고, ‘춤’이란 말은 예술적이지도 근대적이지도 못한 아랫것의 것을 지칭하는 데로 떨어졌다.
 1920년대 이후 한국 근대춤의 여명기에 이식된 신무용은 당시 한국춤 역사를 반영하는 과도기적인 것이었는데, 이는 마치 문학에서 신체시, 신소설류의 것에, 연극에서 신극, 신파극, 신연극류의 것에 대응하는 말이었다.
 전통시대에서 근대시기로 넘어오는 사이 문학은 그러한 과도기를 이내 벗어나 근대시, 근대소설, 근현대 문학으로 넘어왔고, 연극은 근대극, 현대극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춤만은 신무용의 세력이 과도하게 근대시기 한국춤을 잠식하여 제대로 된 근현대춤으로 넘어오지 못하고 만 것이다. 이때에 젖고 젖은 용어가 ‘무용’이어서 온통 한국땅의 모든 춤은 ‘무용’이란 말로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전통춤조차 전통무용으로, 민속춤조차 민속무용으로, 외래춤조차 외래 무용으로 된 것이다.
 ‘신무용’이라 함은 한국에서는 한국 근대춤 여명기의 춤 현실을 반영하는 특수용어로 한정하여 쓰자는 것이다. ‘무용용어 폐기론’은 ‘무용’이란 용어 속에 담겨있는 한국춤 근대 여명기의 역사적 암울함과 그릇된 예술 편중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역사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무용’이란 용어를 역사적으로 폐기하고 ‘춤’이란 용어를 되살리자는 것은, 말하자면 일본에서 ‘신무용’이 근현대의 여명기에 새 시대 새 문화운동으로 제창되었듯이, 이 땅의 근현대시기에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화운동으로, 새로운 ‘무용’이 아니라 오늘 이 땅의 ‘춤’으로 1980년대 이후를 열어보자는 뜻인 것이다. 세계문화의 새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한류’문화에 대한 인식근거도 이와 맞닿아 있다고 하겠다.

 그러기에 우선, ‘무용’이란 용어가 들어간 복합단어일 경우에는 이렇게 고쳐 써본다.
1. 전통무용, 현대무용, 교육무용처럼 ‘무용’이란 말이 뒤에 붙은 때는, 전통춤, 현대춤, 교육 춤이라고 씀에 능히 큰 불편함이 없다.
2. 무용학과, 무용계, 무용미학처럼 ‘무용’이란 말이 뒤에 붙은 때는, 춤학과, 춤계, 춤미학이라 하여 다소 어줍잖은 측면이 있으나, 이내 쉽게 통용될 만하고, 무용사, 무용가, 무용단, 무용제, 무용극장인 때는 춤역사, 춤전문가(세분하면 춤꾼과 안무가), 춤패, 춤잔치, 춤터 등으로 단어의 뜻에 따라 적절히 말을 만들고 가다듬어 쓴다.
 그리고, 덧붙여 춤교육 현장에서 시행되기를 기대하는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한국춤, 현대춤, 발레, 재즈 등 춤양식의 3분법 또는 4분법은 춤양식을 구별하는 교육실습 프로그램의 경우는 그대로 두되, 적어도 새로운 ‘춤’의 창작 상에서는 그 경계가 허물어지도록 유도하고, 이를 부추기는 것이 춤언어의 확장을 위해 당연하다고 본다.
둘째, 전통춤은 어떤 양식의 춤을 전공했든 간에 모두의 공동유산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서부터 창작의 물줄기를 대어 우리춤의 역사적 지속성을 지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춤창작자와 춤교육자는 한 사람이 두 일을 하더라도 그 기능과 역할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춤꾼과 안무가 또한 연주자와 작곡가(또는 지휘자), 배우와 연출(또는 극작가)처럼 창조자와 해석자로서 그 기능과 역할이 다른 것임을 춤교육현장에서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 ‘춤작가론’ 쓰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 땅의 춤작가가 다수 출현하여 춤평론가로서 행복한 부담감에 겨워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역사의식에 투철한 춤작가정신이 다른 예술장르에도 선험(先驗)이 되는 날을 또한 기대한다.
 그것은 춤교육현장에서 얼마만 하게 한국춤에 관한 역사의식을 고취하는가에 달려있다. 이는 한국춤의 현실과 한국춤의 세계사적 위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출발한다.
 한국춤의 역사와 춤의 세계사 그리고 춤인류학사와 관련한 교육교과의 확보가 최우선적인 과제이다.
채희완
현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
2018.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