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미투 이후
이제 현장에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규범과 강령’이 필요하다
이지현_춤비평가

한국여성인권진흥원(https://www.stop.or.kr/) 성폭력피해자 집중지원팀은 12월 20일 ‘성평등한 창작환경을 위한 문화예술 공공기관의 역할찾기’를 주제로 2018년을 리뷰하는 포럼을 열었다.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의 특징과 사회적 함의’ ‘2018년 여성가족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신고센터에서 만난 예술 현장’ ‘부산예술계 성폭력대응센터 운영공유 및 예술공공기관의 역할을 묻다’ ‘성평등 제도기반 마련을 위한 정책 시도’의 4가지 주제가 발제된 이날 포럼에서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의 특징과 사회적 함의’와 관련 이지현 춤비평가가 발표한 글을 전재한다. - 편집자 


‘미투’로 시작된 2018년이 마무리하는 시점을 맞고 있다. 연초부터 공연예술계에서도 충격적인 실상이 드러났고, 피해자들은 미처 준비하지 못한 2차 피해를 낳는 가운데, 첫 법적 사례인 이윤택은 항소심에서 피해자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자신의 죄조차 인정하지 않는 절망스런 상황이다. 피해자 입장에서 만족스러울 것 없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도 그간 몇 가지 긍정적인 흐름은 정부의 분명한 입장아래 국가인권위와 문화부가 미투 상황에 민감하게 응대한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특별조사단’의 활동으로 추가적이고 대대적인 실태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공공부문 직장내 성희롱•성폭력 신고센터’의 운영은 직장환경으로 밀착해 들어가 보다 현장의 목소리가 담긴 신고 사례를 담아내 문화예술계 공공예술단에 만연된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와 구체적 문제들이 발화할 기회를 제공하였고, 문화예술계를 직장 내 노무환경 문제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시사점을 제공하였다. 

 또한 미투가 문화예술계의 전반적인 고용환경과 고유한 성문화에서 기인한다는 인식과 해결에 대한 고민은 문화부의 ‘예술인들의 지위와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 제정 과정에 반영되어 ‘성희롱•성폭력 없는 예술환경조성’을 위한 조항으로 성희롱•성폭력 금지, 방지조치, 피해지원, 실태조사 등으로 포함되어 명시될 예정이다.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에 대한 사회적, 법적 보호 안에 “성희롱•성폭력 없는” 환경이 포함된 것은 올 한해 미투 운동의 결과로 이에 대한 문화부의 법제화의 응답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 행정적 대응과 법제화의 속도가 빠름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문제는 항상 법과 제도의 망보다 가늘고 빠르다. 뿐만 아니라 성문법화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 적용되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적용과 운영의 문제, 즉 적용하는 과정과 사람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직장 내 갑질 문화와 동성 간 성희롱 발언과 행동이 혼합되어 있는 국립국악원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문화부의 특별감사가 진행됐고 성희롱의 내용이 포함된 결과보고서가 하달됐음에도 전화통화로 간단하게 질문화해서 던진 담당자의 판단(“성희롱성 발언이 성희롱인가요 아닌가요?”)으로 사태는 해결의 실마리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런 판단의 배경에 담당자의 빈약한 ‘성인지 감수성’과 미숙한 ‘행정처리’가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면 현장에서의 문제는 1차적으로는 관련법을 제정하고 문화예술계의 상황에 맞도록 보완 개정하여 법적 장치를 갖춰 나가야 한다는 것과 피해자 보호와 구제책은 말할 것도 없고, 성인지 감수성을 갖춰나가게 하는 예방과 교육문제 또한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너무 광범위한 성평등 문화라든지, 포괄적 교육보다는 문화예술계 구체적 상황에 맞는 특화된 예방과 교육이 필요하고 그것을 전담할 전담조직이 필요하다.
 또 하나  〈2018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특별 신고 및 상담 분석보고서〉 (문화체육관광부, 서울해바라기센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발간)에 잘 나와 있는 해외 문화예술계의 행동강령 사례는 우리의 현실에도 매우 필요하고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이 행동강령들은 “문화예술계 업무특성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조직과 개인의 ‘책임’을 공유하며, 특정 창작 활동 참여자들 간의 프로페셔널한 차원에서의 교류와 접촉의 분명한 경계를 설정한 ‘동의’를 형성해야한다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삼고”있으며, “성폭력을 조장하는 분위기와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구체적 대안 및 이를 실행하고 가능하게 하는 관련조직과 기구 내 정책과 구제제도”까지도 담아낼 수 있기에 매우 효율적이다.
 영국의 공공극장인 ‘로얄코트극장’, 호주의 영화산업지원기관인 ‘스크린 오스트레일리아’는 공공기관에서 강령을 제정한 경우로 우리의 공공부문에서 모델로 삼을 만 하다. ‘시카고 극장 공동체’의 시카고 스탠다드는 민간의 거대한 조직적 자원을 동원하여 함께 만든 세세한 강령으로 오디션, 대역 배우, 연출, 성희롱 등의 항목별로 매우 구체적이다. 당연히 강령이 구체적일 수록 현장에서 많은 모호한 순간으로부터 피해상황을 줄 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성희롱과 관련된 항목을 몇 가지 소개한다. 국립국악원 사태에 혼란스러웠던 여러 지점이 명료해진다. 안전한 작업환경을 위해서 ‘규범과 강령’은 필수적이다.

 〈 Chicago Theatre Standards 〉

⁕ 성희롱은 다음을 포함하되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 작품 컨텐츠나 합의한 경계선을 벗어나는 것으로, 특정인의 신체, 복장, 젠더 또는 성적 지향에 대한 원치 않는 발언이나 농담, 조롱.
- 작품 컨텐츠나 합의한 경계선을 벗어나는 것으로, 인종, 젠더, 젠더 정체성, 종교, 피부색, 출생국, 계보, 혼인 상태, 성적 지향, 능력, 기타 법적으로 보호되는 지위에 대한 부정적인 정형화.
- 작품 컨텐츠나 합의한 경계선을 벗어나는 것으로, 옷, 신체적 특징 또는 활동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
- 작품 컨텐츠나 합의한 경계선을 벗어나는 성적 서비스에 대한 요청이나 요구로, 특히 그러한 요청/요구에 응할 때 보상에 대한 약속이나 보복을 명시저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포함하는 경우.
- 명시적 합의없이 성적인 컨텐츠를 즉흥적으로 포함시키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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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기술한 행동은 모두 개인과 집단에 부정적인 환경을 조성할 잠재성이 있다. 직접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만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창의적인 분위기가 언제나 ‘정서적으로 순수’한 것은 아니며 안전한 상태에서도 외설적이고, 불경하고, 저속하고, 도전적일 수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 합의를 도출하고 ⒝ 분명한 경계선 침범에 대해서는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때 두려움 없이 도전적으로 우리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확장될 것이라고 믿는다. 
 
출처 : 〈2018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특별 신고 및 상담 분석보고서〉 (문화체육관광부, 서울해바라기센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발간)

다운로드: (https://www.notinourhouse.org/download-the-standards/)

 

이지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춤비평가로 등단했다. 2011년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최근 비평집 『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 왕성한 비평 작업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사, 서울무용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 01.
사진제공_썸네일이미지: 연합뉴스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