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국가인권위원회 제3차 미투운동 토론회
문화예술계 성폭력, 원인은 무엇인가?
김인아_<춤웹진>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현재 우리사회의 핵심 이슈로 부상한 ‘#미투운동’ 현상을 종합적으로 짚어보고, 각종 성폭력 및 성차별의 원인을 진단하고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총 3차례에 걸쳐 ‘미투 연속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앞서 인권위는 4월 5일 1차 토론회를 열어 ‘미투로 연대했다’의 주제로 젠더폭력 실태를 통해 본 미투운동의 의의를 논의하는 한편, 12일 열린 2차 토론에서는 ‘도대체 법제도는 어디에?’라는 주제로 성폭력 관련 법제가 영역별·부처별로 다른 상황 등을 꼬집고 향후 대책을 진단하는 자리를 가졌다. 19일에 개최된 연속 토론회 마지막 3차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원인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문화예술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의 원인과 실태를 짚어보고 대책 마련에 중지를 모으는 시간이었다.
 3차 토론회에는 무용, 연극, 문학, 영화 등 각 분야의 예술인 및 현장 전문가들이 모여 문화예술계 성폭력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윤단우 작가/무용칼럼니스트, 이연주 연출가, 이성미 여성문화예술연합 대표/시인, 유지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가 발제를 맡고 이지현 춤비평가, 김태희 연극평론가, 정세랑 작가,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 조형석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조사과장이 토론에 참여해 열띤 논의를 펼쳤다. 

 


 무용계는 미투운동에 소극적이다. 사회 전반으로 퍼진 거센 물결 속에서 무용계는 지난 4월 15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무용 강사에 의한 성추행 의혹 이외에 이렇다 할 움직임 없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신체 접촉이 불가피한 예술이기 때문에 성폭력에서도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추정, 때문에 무용계의 폭로는 더욱 크게 발화할지 모른다는 예상은 비껴갔다. 일각에서는 이런 강고한 침묵이 말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에 의한 것은 아닌지 우려와 걱정을 표하기도 한다.
 윤단우 작가는 무용계가 미투에 침묵하는 이유를 무용계 착취구조와 갑질 문화 속 성폭력의 사례에서 단서를 찾았다. ‘무용계의 침묵, 그리고 침묵은 어떻게 유지되는가?’라는 발제에서 윤 작가는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얻어낸 표본들로 사례를 유형화하여 침묵의 이유를 설명했다.
 피해 유형을 언급하기에 앞서 1999년 중앙대 무용과 교수의 남자 제자 성추행 사건이 제기되었다. 20여년 전 마무리된 이 사건을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까닭은 법적 처벌 이후 예술계가 보여주었던 가해자에 대한 대응을 통해 무용계 침묵의 이유를, 나아가 현재 진행형인 미투운동 이후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공기관의 지원금 수령은 물론이고 국공립단체의 안무자로 참여하거나 안무작이 전통춤으로서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명작무’로 지정되는 등 사건 이후에도 공적 특혜를 여러 차례 받았다. 예술활동에 제약은커녕 지지를 받으며 권력을 유지해온 가해자의 행적이야말로 무용계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선택하게끔 하는 암묵의 강요와 다름없어 보인다.
 윤 작가는 스승과 제자 간 위계화된 도제식 학습체계가 뿌리 깊은 무용계라 할지라도 관계는 일방적 명령과 절대적 복종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을 뿐더러 피해에 대한 침묵을 피해자의 공포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가스라이팅(gaslighting·심리나 상황을 이용하여 현실 인식과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일)이라는 공고화된 구조로 통제하고 길들이는 것이 관계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성추행과 춤 교습의 애매모호한 경계 위에서 성폭력이 지도방식으로 왜곡되거나 피해자 스스로 피해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례, 애정과 충성으로 맞물린 긴밀한 사제관계에서 피해를 침묵하게 되는 상황, 피해자가 성폭력을 인지하더라도 진로결정권을 쥐고 있는 스승에 맞설 수 없어 참아야 하는 경우에서 강력한 가스라이팅이 작동되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가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주변 환경이나 가해자와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고 오해하여 성폭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양상도 제시되었다. 한편 남자 스승이 남자 제자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성폭력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는데 이때 동성 간 성폭력이 단순히 성적취향의 문제로 오인받기도 하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아우팅이라는 또 다른 피해를 감수해야 하므로 피해 사실을 고발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고 밝혔다.
 덧붙여 윤 작가는 “앞서 소개된 사례는 침묵의 이유를 추정하는 단서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무용계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지, 이후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용분야 토론을 맡은 이지현 춤비평가는 최근 미투운동의 사례로 한예종 전통예술원 강사에 의한 성추행 의혹, 한국춤비평가협회의 미투 소위 구성,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 발표를 추가로 소개하였다. 특히 현재의 미투운동을 젠더담론으로 한정할 수 있겠지만 무용계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착취의 문제를 직시하고 예술 인권과 예술 노동권으로까지 시선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현장의 춤예술가, 춤예술 노동자들이 겪는 미투를 포함한 착취의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관련 기관에 제시한 여섯 가지의 ‘실질적인 제언’은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⑴ 무용계 미투 상황을 논의할 수 있는 한국공공운수노조 산하의 문화예술협의회, 세종문화회관지부, 문화예술노동연대의 관심과 지원 필요
⑵ 미투 토론회 이후 무용계 미투 상황을 착취, 학대, 차별의 상황 속에 있는 예술인권의 문제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원회의 관심과 지원 필요
⑶ 서울문화재단의 특대위가 성추문 춤예술가에 대한 지원 철회, 자격검증과정 신설, 환불 등 실질적인 제재 장치 마련
⑷ 문광부의 무용계 성범죄 ‘실태조사’ 진행 또는 지원 촉구
⑸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 성추행 조사 촉구
⑹ 한국무용협회는 K씨에 대한 명작무 선정 취소 등 성범죄자 회원에 대한 실질적 조처 마련

 이연주 연출가는 ‘연극계, 권력문제로서의 젠더 폭력’이라는 주제로, ‘이윤택 성폭력 사건’으로 쟁점화된 연극계의 문제를 발제했다. 성차별적인 제작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연극계의 성폭력 원인을 제시했다. 제작을 책임지는 연출, 무대 감독들은 연출 역할을 강화하는 외부 비평 시스템, 섭외 권한 등과 연계해 연극 제작과정에서 권력을 독점하였다. 또한 연극 작품은 남성 중심적인 사고를 재생산하고, 이러한 작품들은 여성을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내지 않고 주변화하거나 삭제하는 방식으로 다뤄져 문제가 되어왔다.
 “지금의 미투운동이 한때의 현상 혹은 형식상의 조치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가해자를 배제하는 공공지원 제도화, 전방위적인 성폭력 예방교육 의무화, 성폭력 실태조사 등을 제시했다. 특히 발제의 마지막에 “작품의 결과물만을 목표로 하지 않도록 어떻게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협력하고 있는가를 살펴야한다…더 이상 우리의 작업은 아름다운 예술만을 목표로 삼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작업과정은 예술적 성취뿐만 아니라 노동권을 포함한 인권이 무시되지 않아야 하는 일터이기도 하다”고 언급하였는데 미투를 넘어 예술인권, 예술노동권의 문제가 다시 한 번 강조되어 눈길을 끌었다.
 문학계 발제자로 나선 이성미 여성문화예술연합 대표는 ‘문단의 권력구조와 젠더 차별’이라는 주제로 문학계 소수에 집중되는 권력구조와 여성들이 처한 조건을 살폈다. 문화예술의 성차별 이데올로기와 문단 내 젠더 폭력 피해 양상을 짚은 뒤 권력집중과 관련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공정성을 확보한 제도로의 개혁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한 토론자로 정세랑 작가는 성폭력, 위계폭력 재발 방지를 위해 문학계 권력 분산을 제안했다. 특히 주요 심사 부문에 연 단위 참여 명단을 정리해 권력의 지도를 공개하자는 주장은 문학계를 넘어 예술계 전반에 통용되는 아이디어로 주목을 받았다.
 영화분야 발제를 맡은 유지나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는 ‘영화계 젠더차별, 생산에서 소비까지’라는 주제를 통해 젠더권력을 기반으로 한 영화 생산‧제작 시스템과 여성이 성적 타자로서 소비되는 방식을 비판했다. 현재, 남성은 제작, 연출, 촬영, 조명 직군에서 각각 63.5%, 67.7%, 91.3%, 92.3%를 점유해 여성의 관점을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영화계 미투운동과 그로 인한 여성 영화인들 간 연대, 영화진흥위원회 소수자 영화정책 등은 영화계 젠더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주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인권위는 이번 토론회와 별도로 ‘성폭력 특별조사단’을 문화체육관광부와 공동으로 설치해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구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성폭력 조사를 담당하는 인권위 차별조사과의 조형석 과장은 문화예술계 분야가 가장 어렵다고 토로하였다. 공공기관은 성폭력 방지, 불이익 금지에 관하여 법령으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으며 민간 사업장 역시 근로 내 발행한 성폭력에 관해 조사 및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문화예술계의 경우에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현재 국회에서 발의한 어떠한 법률도 프리랜서나 아티스트의 직업적 특수성을 포함하고 있지 못하다”면서 현행법의 한계를 지적했다. 또한 “지속되는 권력의 집중과 광범위한 영향력으로 문화예술계에서 접수되는 사건은 다른 분야에 비해 심각한 문제를 갖는다. 이미 시효가 지났거나 문화예술계를 떠난 사람들의 신고가 주로 접수된다”고 밝혔다. 덧붙여 조형석 차별조사과장은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교육부의 세부 시행령, 가해자들의 법적 처벌 관련 시행령이 정비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문화예술계 특성을 반영한 별도의 법 제정으로 성폭력 전담기구를 설치해야한다”며 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참고자료]
국가인권위원회 제3차 미투운동 토론회 자료집 바로보기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2018. 05.
사진제공_국가인권위원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