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연재_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4)
해학과 비장, 겉웃음 속울음, 그리고 치유의 춤, 병신춤
채희완_춤비평가

한국민속춤은 해학적인 내용이 있으며 속울음을 웃음으로 전화시킨다. 이는 고단한 민중들에게 삶의 힘이었을 것이다.
 아내를 범한 역신을 노래와 춤으로써 감복시켜 물러나게 한 유덕한 인물의 한 상징이던 처용이 곱추였고 처용춤이 곱사춤임을 밝히는 글이 나왔었다.(김수업, 「진주오광대의 오문둥이마당」, 『배달말』 23, 배달말학회, 1998, ---, 「처용의 모습과 노래」, 『배달말』 25, 배달말학회, 1999) 이를 밝힌 김수업 선생에 의하면, 조선 왕실에서 처용춤을 나례 끝에 벌이던 것이나 영남지역에서 곱사춤이나 문둥춤을 아직도 버리지 않는 이유는 곱추 처용이 질병과 재앙을 물리치는 ‘땅서낭’이기 때문이라 하고, 동해 바닷가의 처낭굿처럼 신앙의 대상으로, 또 한편 진주오광대 같은 탈춤에서는 굿과 놀음이 어우러진 문둥춤, 곱사춤으로 내려오는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병신춤은 신라 헌강왕 시대부터 이미 그리하였다. 고려 때는 세상과 적대자와 자신을 비웃을 수밖에 없었던 신세인 충혜왕과 우왕이, 그리고 조선조 때엔 연산군이 즐겨 추었고 일반 귀족이나 사대부층 사이에서도 이런 곱사춤이 흔했다는 것이다. 이러던 것을 조선 왕조의 이념에 맞추어 세종이 처용과 처용무를 새로 크게 고치고 처용노래도 거기에 맞춘 것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궁중무악인 처용가무라는 것이다. 처용춤이 곱사춤, 병신춤이라고 밝힌 것은 아무래도 처용설화의 주인공이 과연 어떤 인물인가 하는 점에서부터 병신춤이란 과연 어떤 춤인가에 대해서까지 신선한 생각을 하도록 자극한다.

 병신춤은 그늘진 신명의 치유와 화해의 춤이다.
 병신춤은 몸이 성하지 않은 신체장애자의 춤이나 이는 결코 신체장애자를 흉내내어 모멸하기 위해 추는 춤이 아니다.
 병신춤은 춤출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춤출 수 있는 데로 나아가는 춤이기에 육체해방의 뜻이 품기어 있다. 바로 이런 육체해방의 춤을 통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육체해방의 감흥을 감염시켜 숨어있어 잠재화된 신명을 스스로 돋구어내게 한다.
 그것은 또한 불구자가 불구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자기폭로의 춤이다. 배냇병신이든 사회적 불구이든 자기 몸이,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가 비정상임을 허물 잡는 자기비판, 사회 비판의 춤이다. 병신춤은 제대로 춤출 수 없는 춤이기에 제대로 춤출 수 있는 정상의 몸, 정상의 사회가 될 때까지 추어져야 될 가이없는 해방기운을 담지하고 있다. 불구화된 것을 불구로써 척결하는 인간해방, 사회해방의 역동적인 신명의 춤인 것이다.
 옥죄인 몸이 풀려나가 정상의 몸짓을 되찾게 하고 이윽고 매인데 없이 활기차게 뛰는 춤으로 엮어진 병신춤의 구성방식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그리고 탈춤의 많은 부분은 병신춤으로 되어있다. 탈춤에 나오는 문둥이, 곱새, 봉사, 어딩이 등 민중적 전형 뿐 아니라 대부분의 양반탈들도 선택적 왜곡이 심하다. 언챙이거나 손님탈, 삐뚜르미 등이어서 한번 붙어 겨루어 볼만한 만만한 존재들이다. 그러기에 탈춤에는 사회적 장애나 비정상을 척결하려는 민중적 염원이 누대를 통해 적층돼 있다. 탈춤은 단순한 의미의 계급갈등을 넘어선 생명회복을 위한 문화적 전복이다.
 또 이 춤은 그늘진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원한 맺힌 어둠의 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춤은 그늘진 곳에서 밝은 곳으로 옮겨가는 신명의 춤이다. 어디라 풀 길 없이 맺힌 원한과 절절한 비통함의 속 그늘은 남김없이 끌어다 능청스럽게, 또 청승맞게, 그러면서 구성지고 푸지게도 웃겨주는 해학의 춤이다. 보는 이는 웃다웃다 보면 왠지 눈물이 어릴 법할 것이다. 특히 유랑광대의 개인장기놀음 중의 하나인 병신춤이 그러한데, 몇 년 전에 돌아가신 공옥진의 창작병신춤이 이런 정한을 잘 보여 준다. 이를 두고 신학자 현영학은 ‘오장육부의 미학’이라고 하였다. (현영학, 「병신춤」, 『예수의 광대』, 한국신학연구소, 1997) 바로 그러한 그늘진 속에서의 신명이야말로 그늘을 밝음으로 전화시키는 역동적이고 역설적인 신명일 뿐 아니라 숨어 그늘진 끝에 밖으로 차단된 신명에 불을 지르는, 집단공유의 민중적 신명이다. 그리하여 이윽고 누구나 더불어 춤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춤은 사람과 사람이 화해하고 친교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춤이다.

채희완
현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
2018. 0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