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무대 디자이너 페터 팝스트 서울 전시
피나 바우쉬 타계 10주기…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현재 모습은?
장지영_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최근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에서 핫한 전시는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열리는 〈페터 팝스트: White Red Pink Green〉이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인생샷’이 나온다는 입소문 덕분이다. 전시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흰눈이 쌓인 자작나무 숲, 빨간 장미 언덕, 분홍색 카네이션 들판, 카펫 같은 녹색 잔디밭 등의 설치미술이 사진에 예민한 젊은 층을 유혹한다.




페터 팝스트: White Red Pink Green〉




 사실 팝스트는 이름만 듣고는 바로 알기 어려운 아티스트다. 하지만 안무가 피나 바우쉬와 오랫동안 작업한 무대 디자이너라고 하면 공연 애호가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팝스트의 독특하고 감각적인 무대세트가 ‘현대무용의 여제’ 바우쉬의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무용수들이 춤추기엔 매우 불편한 무대지만 관객에겐 바우쉬 특유의 시적 정서를 느끼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바우쉬는 20세기 후반 탄츠테아터(Tanztheater)로 현대 공연예술계에 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추상적 속성을 가진 춤(Tanz)과 서사적인 속성을 가진 연극(Theater)을 결합한 탄츠테아터는 대화, 노래, 멜로디, 소품, 무대세트, 의상들을 결합해 무용을 총체적으로 구성한다.
 탄츠테아터 부퍼탈을 36년간 이끈 바우쉬는 아무 것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리허설 내내 무용수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무용수들이 질문에 대해 춤이나 대사를 넣은 동작으로 답하는 과정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냈다. 무대 디자인과 관련해서도 바우쉬는 팝스트에게 직접적으로 요구사항을 말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팝스트는 작품의 창작 초기부터 바우쉬와 작품에 대해 토론하면서 무대를 구상했다. 그리고 창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개의 모형을 만든 뒤 바우쉬와 조율을 통해 최종 무대를 만들었다.




페터 팝스트: White Red Pink Green〉 White_흰눈이 덮인 자작나무 숲




 서울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올해 피나 바우쉬 타계 10주기를 맞아 한층 뜻깊게 느껴진다. 바우쉬는 지난 2009년 6월 암 진단을 받은 직후 손쓸 틈도 없이 며칠만에 세상을 떴다. ‘피나 바우쉬 작품을 위한 공간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번 전시는 〈1980〉 〈카네이션〉 〈춤추는 저녁II〉 〈유리창 청소부〉 〈카네이션〉 등 4개 작품의 무대미술을 모티브로 한 설치미술, 〈러프컷〉에 사용된 영상, 바우쉬가 평생 안무한 작품들의 사진 60개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페터 팝스트: White Red Pink Green〉인 것은 설치미술로 선보인 4개 작품의 색깔에 따른 것이다. 흰눈이 덮인 자작나무 숲은 1991년 작품 〈춤추는 저녁II〉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창백한 햇살이 내뢰쬐는 눈밭에 150여 그루의 나무기둥이 세워져 있다. 부드럽고 차가운 소금이 눈과 같은 효과를 낸다. 전시실을 둘러싼 거울 덕분에 숲이 훨씬 확장돼 보인다.




〈페터 팝스트: White Red Pink Green〉 Red_거대한 빨간 장미 언덕




 거대한 빨간 장미 언덕은 바우쉬의 국가/도시 시리즈 가운데 1997년 홍콩을 소재로 한 〈유리창 청소부〉를 모티브로 했다. 당시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의 강렬하고 복잡한 이미지를 담아냈다. 관객들은 5만송이 장미 조화가 사용된 이 공간에서 포근함을 느끼며 뒹굴 수도 있다. 다만 사진 찍으려는 관객이 많아서 오래 머물 수가 없다.




페터 팝스트: White Red Pink Green〉 Pink_카네이션 공간




 미묘하게 톤이 다른 분홍색 카네이션 조화들이 심어져 있는 공간은 국내에서도 공연된 적 있는 〈카네이션〉의 무대를 모티브로 했다. 〈카네이션〉은 팝스트와 바우쉬가 화훼산업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꽃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출발한 작품이다. 무용수들이 꽃과 꽃 사이의 좁은 틈새를 움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독창적인 움직임을 낳았다. 이번 전시는 관객들에게 꽃 사이를 걷거나 밟혀서 쓰러진 꽃을 세우도록 함으로써 무용수와 같은 경험을 느끼도록 했다.




〈페터 팝스트: White Red Pink Green〉 Green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건물 옥상에는 초록색의 실제 잔디가 카펫처럼 깔려있다. 그리고 의자와 박제된 사슴이 놓여져 있다. 팝스트가 1980년 바우쉬와 처음 작업한 〈1980〉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옥상에서 빨래를 말리듯 이곳에도 빨랫줄에 흰 천들이 매달려 있다. 이 천에는 팝스트와 바우쉬와 작업할 때의 일화나 당시 나눴던 대화, 무대 디자이너로의 철학 등이 쓰여 있다.
 또 ‘Peter for Pina'라는 제목이 붙은 전시실에는 팝스트가 탄츠테아터 부퍼탈에서 무대 디자인을 맡았던 역대 공연들의 사진들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60개의 대형 사진들이 흔들리면서 마치 사진 속 무용수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페터 팝스트: White Red Pink Green〉 Stairway




 각각의 전시실이 있는 4개 층을 잇는 계단에는 2004년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 〈러프컷〉을 만들 때 위해 팝스트가 촬영한 영상들이 비춰진다. 조각조각 분할된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이 영상은 동대문 패션타운의 에스컬레이터를 포착한 것이다.
 그런데, 전시에서 작품에 대한 설명이 적어서 사진만 찍을 관객이 아니라면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작품에 대해 노골적인 설명을 피한 바우쉬와 마찬가지로 팝스트도 자신의 무대세트에 대해 일일이 밝히는 것을 싫어한다. 관객들이 직접 걷고, 보고, 만지면서 느끼길 바란 팝스트의 의도에 따라 작품에 대한 설명을 최소화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진들의 경우 설명이 따로 없어서 대부분의 관객이 어떤 작품인지 알기조차 어렵다.
 이 때문에 팝스트 전시를 보면서 바우쉬의 위대한 삶 그리고 그가 이끌던 탄츠테아터 부퍼탈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는 관객도 많은 듯하다. 특히 공연 애호가들은 한발 나아가 바우쉬가 없는 탄츠테아터 부퍼탈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궁금해 하는 것 같다.

 피나 바우쉬는 위대한 안무가가 되지 전에 뛰어난 무용수로 주목받았다. 독일 폴크방 예술대학 무용과가 학생 시절 놀라운 재능을 보인 그를 기리기 위해 특별상을 제정했을 정도다. 무용수로서 독일 표현주의 거장 쿠르트 요스의 무용단 멤버로 활동한 그는 미국 뉴욕 줄리아드대에서 유학하면서 안무에 관심을 갖게 됐다. 미국 현대무용계의 거장 폴 테일러에게 안무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독일로 돌아온 뒤 본격적으로 안무에 뛰어들었다.
 그는 1968년 유럽 신진안무가들의 등용문인 쾰른 안무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주목받았다. 그리고 33살 때인 1973년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부퍼탈 무용단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됐다. 이후 타계할 때까지 44개의 주옥같은 작품을 쏟아내며 소도시 부퍼탈을 현대무용의 메카로 만들었다.




피나 바우쉬 〈카네이션〉, 2000 ⓒLG아트센터




 특히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 사이에 〈봄의 제전〉 〈칠거지악〉 〈푸른 수염〉 〈카페 뮐러〉 〈반도네온〉 〈카네이션〉 등을 선보이며 탄츠테아터를 세계 공연계에 각인시켰다. 탄츠테아터는 1990년대 후반 이후 다양한 춤 조류에 다소 밀렸지만 지금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장르간 혼합과 혼종이 대세를 이루는 요즘 그 뿌리로서 인정받고 있다.
 바우쉬는 1980년대 중반부터 각국 정부나 공연장의 의뢰를 받아 국가/도시 시리즈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1986년 로마에서 위촉받은 〈빅토르〉를 시작으로 2007년 인도를 방문하고 만든 〈뱀부 블루스〉까지 모두 15편이 나왔다. 국가와 도시를 소재로 만들었다고 해서 해당 지역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작품에 해당 지역만의 독특한 특징이 녹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사람들이 중심에 있으며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담고 있다.
 바우쉬는 한국에도 팬이 많다. LG아트센터가 2000년 개관 이후 꾸준히 그의 작품을 공연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카네이션〉 〈마주르카 포고〉 〈러프 컷〉 〈네페스〉 〈카페 뮐러〉 〈봄의 제전〉 〈풀 문〉 〈스위트 맘보〉 등 8편이 소개됐다. 특히 〈러프 컷〉은 LG아트센터의 위촉을 받아 한국을 소재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의 초벌 편집을 의미하는 제목처럼 한국의 역동성을 표현하고 있지만 정돈되지 않은 듯해서 초연 당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페 뮐러〉 2010, 〈마주르카 포고〉 2003 ⓒLG아트센터




 어쨌든 한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국내 아티스트들과 친분을 다진 그는 자신의 작품에 황병기와 어어부 밴드의 음악을 넣는 등 지한파 아티스트가 됐다. 바우쉬는 특히 한국 현대무용가 안은미를 독일에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2001년 자신이 주최하는 페스티벌에 처음 초청한 뒤 2004년 폴크방 탄츠스튜디오에서 안무를 선보일 수 있도록 지원했다. 안은미는 바우쉬와의 만남을 계기로 독일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독일에서의 활동은 안은미가 최근 유럽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거름돌이 됐다.
 그런데, LG아트센터에서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내한공연은 언제나 매진을 기록했지만, 처음 한국을 찾았던 1979년엔 딴판이었다. 그는 독일 문화원의 아시아 순회 프로젝트 일환으로 서울에서 〈봄의 제전〉을 공연했는데, 여자무용수들이 나체로 등장하는 장면 때문에 보수적인 한국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당시 한국의 반응은 인도에 비하면 나았다. 한국에 앞서 인도 캘커타 공연에선 여자 무용수들의 나체에 분노한 일부 관객들이 폭동 수준의 항의에 나섰다. 공연은 중단됐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바우쉬와 무용수들은 극장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물론 인도 역시 한국처럼 초연 당시 논란을 겪었지만 1990년대 이후 탄츠테아터 부퍼탈을 종종 초청했다. 그리고 2007년 인도를 소재로 한 작품을 의뢰할 정도로 바우쉬를 좋아하게 됐다.




피나 바우쉬 〈봄의 제전〉, 2010 ⓒLG아트센터




 그런데, 피나 바우쉬는 아시아 순회 프로젝트에 대해 슬픈 기억도 간직하고 있다. 그의 오랜 연인이었던 무대 디자이너 롤프 보르칙이 백혈병 투병 상태로 투어에 참가했다가 힘든 일정과 스트레스 때문에 병세가 악화된 것이다. 결국 보르칙은 독일로 귀국한지 얼마 안돼 세상을 떠났다.
 보르칙 타계 이후 바우쉬가 친구였던 팝스터에게 〈1980〉의 무대를 의뢰하면서 둘의 긴 예술 여정이 시작됐다. 의상 디자이너 출신인 팝스트는 당시 독일 연극 연출가 페터 차덱의 무대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로 무용 작품은 맡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1980〉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협업 관계를 유지했다.




피나 바우쉬 〈네페스〉 ⓒJDWOO




 피나 바우쉬의 갑작스런 타계 이후 지난 10년간 탄츠테아터 부퍼탈은 무용단의 방향성을 놓고 고민해 왔다. 바우쉬의 전설적인 유산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롭게 혁신해야 하는 상반된 과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퍼탈시의 재정 악화로 지원 예산이 감소한 것도 무용단의 고민거리였다.
 바우쉬의 타계 직후 고참 무용수인 도미니크 머시와 리허설 감독 로버트 스툼이 단원들의 만장일치로 무용단을 이끌게 됐다. 이들은 동요하는 단원들을 다독이며 무용단의 혼란을 수습했다. 다만 신작을 만들 엄두는 내지 못한 채 전세계 공연장에서 쏟아지는 투어 요청을 소화해 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우쉬 타계 이후 수년간 해외에서의 초청이 타계 이전보다 많았다고 한다. 바우쉬의 안무가 무용수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생각과 동작을 끌어내는 스타일이었던 만큼 타계 이후에도 각각의 작품에 출연했던 오리지널 멤버들이 주축이 되면 작품을 손상하지 않은 채 공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50~60대의 고참 단원들이 머지 않아 무용단을 떠날 경우 작품이 변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각국 극장들이 이들의 건재 기간에 서둘러 초청한 것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엔 새들러스웰스 극장과 바비칸 씨어터에선 ‘세계의 도시’라는 타이틀 아래 10개 도시 시리즈 작품이 공연되기도 했다. 또한 미국 뉴욕의 대표 공연장 중 하나인 BAM(브루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도 바우쉬의 타계 이후 거의 2년마다 탄츠테아터 부퍼탈을 초청하고 있다.
 탄츠테아터 부퍼탈은 머시와 스툼의 과도기 체제를 끝내고 2013년 4월 폴크방 예술대학 교수인 루츠 푀르스터를 예술감독으로 맞이했다. 푀르스터는 1975년 탄츠테아터 부퍼탈에 입단해 오랫동안 무용수 겸 바우쉬의 조수로 활동했었다. 무용단 이사회는 그를 일찌감치 예술감독 적임자로 낙점했다.
 부담감 때문에 예술감독직을 거절하다가 이사회의 끈질긴 설득에 마음을 바꾼 그는 2015~2016년 시즌까지 신작을 발표하는 등 무용단의 방향성을 재정립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무용수 출신으로 안무가가 아닌 그는 객원 안무가들을 기용해 신작을 만들 방침을 제시하는 한편 단원들에게도 안무에 나서도록 권유했다.
 그는 취임 직후 2013-2014시즌을 ‘PINA 40’이라는 연간 페스티벌로 기획하고 바우쉬의 작품 12개를 부퍼탈, 뒤셀도르프, 에센 등 3개 도시에서 잇따라 선보였다. 바우쉬 생전인 2004년과 2008년 ‘피나와 함께 하는 NRW(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국제 무용 페스티벌’을 각각 한달 정도 개최한 적이 있지만 1년간 개최한 것은 처음이다. 2014년이 탄츠 테아터 창립 40주년인데다 신작을 준비할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페스티벌 기간 동안 바우쉬와 친밀했던 마츠 에크-안나 라구나 부부, 윌리엄 포사이스, 린화민, 안나 테레사 드 키에르스마커,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 등 유명 안무가들이 소품을 공연하거나 단원 워크숍을 위해 부퍼탈을 찾았다. 또 무용단의 40년을 되돌아보는 전시회, 무대 디자이너 보르직과 팝스트 그리고 의상 디자이너 마리온 치토의 전시회도 마련됐다. 이외에 〈여제의 한탄〉 〈댄싱 드림즈〉 〈PINA〉 등 바우쉬와 관련된 영화 및 다큐멘터리도 상영됐으며, 바우쉬와 인연이 있는 뮤지션들의 콘서트도 잇따라 열렸다. 한국 뮤지션으로는 공명과 어어부밴드가 초청받았다.
 1년간의 유례없는 페스티벌을 열며 시간을 벌었지만 푀르스터는 신작을 비롯한 무용단의 방향성에 대해 뚜렷한 계획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가 사의를 표명한 뒤 2016년 2월 독일의 여러 극장에서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한 아돌프 빈더가 예술감독 겸 행정감독으로 내정됐다.
 빈더는 무용수나 안무가 출신이 아니다. 베를린 발레단 등에서 예술감독과 행정감독을 역임한 그는 주로 프로듀서와 경영자로서 활약해 왔다. 이사회는 변화에 주저하는 무용단 출신이나 관계자보다는 과감하게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외부 출신을 데려오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2017년 5월 취임한 빈더는 이듬해 5월 그리스 연출가 겸 안무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그녀 이후(Since she)〉, 6월 노르웨이 안무가 알란 루시앙 오이엔의 〈여행 잘 다녀와, 밥(Bon Voyage, Bob)〉 등 신작 2편을 잇따라 선보였다. 바우쉬 타계 이후 탄츠 부퍼탈이 9년만에 소품이 아닌 제대로 된 신작을 마침내 선보인 것이다. 세계 공연계의 관심을 모은 두 신작은 대체로 우호적인 평가를 받았다. 부퍼탈 초연 이후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도 선보였는데, 워낙 관심이 높았던 만큼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빈더는 취임한지 1년만인 2018년 7월 해고됐다. 탄츠테아터 부퍼탈 이사회는 해고를 발표하면서 구체적 이유를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독일 언론은 빈더가 탄츠테아터 부퍼탈에서 핵심적인 바우쉬의 유산을 이어가는 부분이나 무용단의 새로운 방향성을 놓고 이사회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했다.
 무용단 이사회는 2018년 11월 예술감독으로 베티나 바그너-베르겔트, 행정감독으로 로저 크리스만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올 1월 취임한 바그너-베르겔트는 바이에른 극장 등에서 무용 책임자로 일했으며 여러 무용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역임한 인물이다. 특히 그는 바이에른 주립 발레단에서 수많은 해외 안무가들과 협업한 경험이 있으며, 청소년을 위한 무용 교육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그리고 크리스만은 독일의 세계연극축제와 벨기에의 쿤스텐페스티벌 등의 행정감독 출신이다. 두 감독이 취임한지 얼마 안된 만큼 무용단을 정비하고 방향성을 확실히 드러내기까지는 좀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피나 바우쉬 〈풀문〉, 2014 ⓒJDWOO




 한편 바우쉬의 예술유산은 독일 연방정부의 지원에 따라 국립안무센터에 해당하는 ‘피나 바우쉬 센터’로 만들어지게 됐다.
 피나 바우쉬 센터는 2012년 에센주 복합문화공간인 팍트 촐페어라인(PACT Zollverein) 예술감독 슈테판 힐터하우스가 처음 제안했다. 세계 공연예술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바우쉬의 예술유산을 국가 차원에서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나 바우쉬 센터가 탄츠테아터 부퍼탈, 피나 바우쉬 파운데이션, 국제 제작 센터, 시민 포럼의 4개 축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나 바우쉬 재단은 바우쉬 타계 이후 아들 롤프 잘로몬 바우쉬가 어머니의 생전 바람에 따라 만든 것이다. 재단은 그동안 바우쉬의 예술유산을 디지털화하는 아카이브 작업에 주력해 왔다. 여기에 피나 바우쉬 센터은 독일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무대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국제 제작 센터가 필요하며, 예술가들과 지역 주민 간의 워크숍과 토크, 심포지움 등을 개최하는 시민 포럼과 연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힐터하우스가 소위 ‘4개의 기둥 콘셉트’를 토대로 제시한 피나 바우쉬 센터 아이디어는 점차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2015년 처음으로 독일 연방정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부퍼탈시, 탄츠테아터 부퍼탈, 피나 바우쉬 재단이 머리를 맞댔다. 여러 논의 끝에 피나 바우쉬 센터가 현재 무용단이 있는 극장에 자리잡기로 했다. 다만 현재 극장이 낡고 협소한만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하기로 결정됐다.
 독일 연방의회는 2015년 말 피나 바우쉬 센터 설립을 위한 예상 경비 5840만 유로(약 810억원) 가운데 절반인 2920만 유로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도 1250만 유로와 함께 전문가 자문비용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부퍼탈 시당국은 섬유산업 쇠퇴에 따라 낙후된 도시를 재생시키는 ‘부퍼탈 2025’ 전략에 피나 바우쉬 센터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설립에 동의했다. 다만 부퍼탈 시는 재정난 때문에 건립 예산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관 이후엔 피나 바우쉬 센터의 연간 운영경비로 1000만 유로(약 135억원)가 예상되는데,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와 부퍼탈 시가 각각 340만 유로씩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피나 바우쉬 센터는 건물 완공까지 적지 않는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2016년 10월 온라인상에서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젊은 안무가와 무용수들에게 레지던스 기회를 제공하는 피나 바우쉬 펠로십도 운영하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는 건물 완공 전까지 피나 바우쉬 센터 운영비로 매년 63만 유로(약 8억5000만원)를 2024년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피나 바우쉬 〈풀문〉, 2017 ⓒJDWOO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내한 공연은 지난 2017년 〈스위트 맘보〉가 마지막이다. 언제 다시 내한 공연이 이뤄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페터 팝스트: White Red Pink Green〉를 보며 바우쉬의 10주기를 다시 한번 기린다.

2019. 09.
사진제공_LG아트센터, JDWOO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