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보도_ 헌법재판소 대체복무제 시행 판결
대체복무 방안, 국군예술부대 창설 필요
송준호_문화칼럼니스트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제1항이 헌법과 불합치한다”는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렸다. 헌재는 과거에 병역법의 합헌 결정을 내릴 때에도 대체복무제 실시를 전제로 제도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이번 헌재 판결에 따라 정부는 2019년 12월 31일까지 대체복무제를 시행하는 내용으로 법을 필히 개정해야 한다. 이번 결정은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대체복무 형태를 제시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꾸준히 한계를 지적받았던 예술계의 병역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극소수자에게만 적용되는 예술계 병역특례제도가 있지만 대다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동안 체육 및 음악 분야와 달리 마땅한 대체복무기관이 없었던 실정에서 이제 춤계는 현실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앞두고 있다. 대체복무제 개선 방안을 춤계가 시급히 내놓아야 할 필요성이 커가는 가운데, 그간 꾸준히 대안으로 제시된 국군예술부대의 가능성도 힘을 얻고 있다.




예술계 병역특례제도 문제 많다

무용인을 위한 병역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현행 병역특례제도의 한계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병역법상 대체복무제 가능 대상자(보충역)는 사회복무요원, 전문연구요원, 산업기능요원 및 공중보건의사 등의 기타 요원으로 세분된다. 그중 병역 특례가 가능한 예술요원은 사회복무요원(일반적으로 공익근무요원으로 통칭)에 속한다. 예술·체육요원은 해당 분야에서 국위를 선양했거나 문화 창달에 기여할 목적으로 일정한 대회에서 기준 자격을 갖춘 이를 대상으로 한다. 예술요원의 경우 국내예술경연대회 1위,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상의 입상을 하면 공익근무요원으로 편입돼 2년 10개월간 해당 특기 분야에 종사하며 병역 의무를 대신한다.
 이 같은 현행 제도는 기본적으로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현역 병역 대상자는 대개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병무청장이 배정한 특정 근무지에 배치된다. 반면 예술·체육요원은 근무 방법을 택할 수 있기 때문에 현역 대상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 특히 예술·체육 분야의 병역 특례는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마치면 해당 분야에서 잔여 복무를 하는 방식이어서 사실상 면제 혜택이나 다름없다. 병역 특례자와 현역 복무자 간의 위화감이 실재하지만 해소되는 게 원칙이다. 이를 해소하자면, 병역 특례자가 현역 복무자와 최대한 유사한 복무 환경에서 ‘병역 면제자’가 아니라 ‘병역 의무 이행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복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논거에서 병역 특례자가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고 연마하면서 현역 복무와 매우 유사한 병역을 이행할 환경을 보장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익성 문제도 있다. 현행 제도에서 예술·체육 분야의 극소수 병역 특례 대상자들이 자신들이 받는 특혜에 걸맞은 공익적 활동을 하는지 의문이다. 춤계 현장에서는 “춤 분야 병역 특례 예술요원이 수행하는 복무 내용이 형식적이고 부실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해당 분야의 특수성을 적극 활용해 공익 활동에 복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춤으로 군 복무할 수 없는 춤계 청년들

현행 예술요원 병역특례제도는 춤계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국무용협회 등에서 주최하는 일부 무용 콩쿠르와 해외 특정 무용 콩쿠르 입상자에게만 병역 특례를 주는 현 제도는 오래전부터 개선의 필요성이 지적됐다. 극소수만 혜택을 받는 이 제도에서는 대다수 남성 무용수들이 현역에 복무해야 하기 때문에 병역 기피 심리를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또한 “국내외 경연대회에 몰입해서 예술보다는 기술에 연연하고 설령 특례 혜택을 받아도 예술 복무 내용마저 부실해서 소중한 청년기를 허송할” 부작용을 우려하는 여론도 적지 않다. 이에 못지않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보면 “경연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이 및 경제적 비용 부담으로 무용가로서의 장래까지 포기하고 싶을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다.
 2008년 병역법 개정 때 서울국제무용콩쿠르, 독일베를린국제무용대회 등 4개 대회가 추가되며 특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기회가 줄었다. 외국 경연 대회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무용수는 참가하기 어렵고, 국내에서 개최하는 국제 대회도 실력 있는 해외 무용수가 참여하기 때문에 국내 무용수의 ‘상위 입상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
 ‘유능한 인재 양성을 통한 국내 무용계의 발전’이라는 2008년 병역법 시행령 개정 취지는 이처럼 극소수의 인원만 혜택을 받는 제도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대다수의 춤 전공자들이 특기를 살리면서 연마하고 군 복무를 수행할 대체복무 형태를 요구하는 춤계 내부의 여론은 커져왔다. 2006년에 민예총의 한국춤예술연대는 “체육 특기자들이 복무하는 국군체육부대(상무)처럼 국군예술부대를 만들어 개인이 국방 의무를 수행할 동안 국가는 개인의 예술적 기량을 보존할 환경을 제공해야한다"면서 이를 위해 국군예술부대의 창설을 공론으로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체육 분야에 국군체육부대, 음악 분야에 군악대나 국군교향악단이라는 제도가 있는 반면에, 무용 분야는 특기를 살릴 수 있는 대체복무기관이 전무한 실정이다. 이제는 현행 병역특례제도의 한계를 보완하면서 공익과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대안을 서둘러야 할 때다.




‘국군예술부대’의 가치 그리고 국내외 사례

현행 예술요원 병역특례제도, 특히 춤 전공 대상자를 포함한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 전공자를 아우를 군 복무기관의 신설에 초점이 모아진다. 이 방안에 따르면 무용수들은 기관 신설 시 특기를 유지하면서도 병역 의무를 이행할 수 있어, 지금까지의 국가적 손실을 최소화해 국익 창출까지 기대된다.
 국방부는 이미 예체능 분야의 특기를 살리고 군인들의 사기 진작과 국방 홍보, 국위선양을 위해 운영 중인 국군체육부대와 국군교향악단을 운영 중이다. 일반적으로 ‘상무’라 불리는 국군체육부대는 과거에 육해공군으로 나뉘어 운영되던 체육 종목을 통합해 1984년 정식으로 창설됐다. 우수 선수들에게 병역 의무 이행의 기회와 지속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 이 부대는 우수 인력의 경기력 저하를 방지하며 우리나라가 세계 스포츠 10대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2010년 창단한 국군관현악단(현 국군교향악단) 역시 국군예술부대 신설과 운영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이 부대는 창단 후 부대별 순회 연주회와 기념 연주회를 통해 장병과 부대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양질의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여 형평성과 공익성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 활동을 잇고 있다.

 



 국가가 운영하는 예술부대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붉은 군대 앙상블이다. 이 앙상블은 1928년에 창설된 알렉산드로프 앙상블과 1977년 창설된 레드스타 앙상블이 서로 완전 독립 조직으로 쌍벽을 이룬다. 그 가운데 한국에 자주 내한해 이름을 알린 것은 레드스타 앙상블, 즉 ‘레드스타 레드아미 코러스&댄스 앙상블(The Red Star Red Army Chorus and Dance Ensemble)’로서, 여러 차례 내한해 뛰어난 기량과 예술성을 과시한 바 있다. 레드스타 앙상블은 붉은 군대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음악 전공의 현역 군인들로 구성해 육군 미사일 부대 내에 창설됐다. 초기에는 정열적인 군가로 소련군의 사기를 증진하는 역할이 주였지만, 소련 해체 후에는 러시아 각 지역의 대중적인 민속음악을 발굴하고 열정적인 발레를 레퍼토리화해 전 세계에 러시아 예술의 우수함을 알리는 문화 외교관 역할을 수행한다.
 러시아는 18~27세의 ‘건강한’ 남성 모두가 징병 대상이다. 하지만 실제 징병 과정에서는 필요 인원 초과나 건강상의 이유로 해당 연령대의 1/3만 선발되고 1년의 복무 기간을 거친다. 옛 소련(蘇聯)은 붕괴했어도 사회주의 시대 국가 안보의식이 여전한 러시아에서 병역 거부는 물론 민간 차원의 대체복무도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여긴다. 따라서 철저히 국가적 효용성과 공익성에 중점을 둔 국가 주도의 대체복무 제도인 레드스타 레드아미 코러스&댄스 앙상블은 러시아 국민들에겐 자랑스러운 아이콘이 될 수밖에 없다. 특례 대상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는 우리나라의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춤비평가 장광열은 “러시아 레드 아미 앙상블 운영은 러시아 전역에 있는 국립 발레단의 남성 무용수 100명에게 병역 혜택을 주는 제도와 함께 남성 아티스트들을 보호 육성, 러시아의 예술을 살찌우게 하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과 타이완, 이스라엘에서는 우수한 남성 무용수들의 경우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국립 예술단체에서 활동하며 병역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의 남경에는 군부대 예술단체들이 공연하는 군인 전용극장이 있다“고 말한다.

 




‘남북 교류시대’ 새 그릇에, 응당 ‘국군예술부대’의 새 술을

 

남북 분단과 휴전이라는 안보 환경 아래 있는 우리나라에서 병역 문제는 언제나 민감한 사안이다. 고위 공직 후보자는 본인과 그 아들까지 병역 이행 여부의 확인 대상이 되고,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병역 문제 또한 온 국민의 관심사다. 정도는 덜해도 예술인 특례 조항 역시 시선을 끌기는 마찬가지다. 현행법에 의거해 콩쿠르 수상에 따른 정당한 혜택을 받는 경우에 대해서도 여론은 싸늘한 편이다. 병역 특례가 사실상 병역 특혜나 기피로 비치기 때문이다.
 국군예술부대가 신설되면 병역 기피 풍조를 제어하고 특혜 시비를 최소화해 국가 병역 정책의 효율성을 올릴 수 있다. 문화 예술 측면에서도 국군과 지역민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문화 향수의 기회 부여 및 정서 순화와 문화 수준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이제는 국방부도 해묵은 인식을 벗어날 때가 됐다. 비단 공연뿐만 아니라 오늘날 춤 쓰임새가 다변화되는 추세에 비추어 군에서 춤은 다양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는 국군 내에서 먼저 춤(과 예술)에 대한 인식부터 개선되어야 한다.
 남북 교류가 급물살을 타고 한반도 정세가 새 국면을 거듭하는 시점에서, 예술계 극소수에게만 특혜를 주는 방식은 더는 참신하지도 않을 뿐더러 국민 정서와도 거리가 있다. 국군예술부대 설치는 형평성 논란을 잠재우면서 군 사기 진작을 도울 것은 물론이고, 군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와 군 이미지 제고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문화의 역할이 날로 커가는 시대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국군예술부대의 신설에 국가 차원에서 적극 나서야 한다. 케이팝의 물결을 배경으로 국군예술부대가 개발한 레퍼토리를 국내외 무대에서 만나는 것을 상상해 보는 일은 그 자체로도 가슴 뿌듯하고 즐겁지 않은가.
 예술 부대의 분야는 공연예술에만 국한하지 않고 문학, 연극, 미술 등 폭넓은 분야로 확장할 수도 있다. 이처럼 예술부대의 규모가 커지면서 창작과 전시 공연 활동을 병행한다면 민간 예술단이나 다른 국공립 예술단과도 능히 어깨를 겨루는 수준의 예술 작품도 창출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병역 대상자의 국방 의무와 예술인의 기량 및 창의력 연마 노력을 동시에 충족할 최적의 대안이 아닐까.
 국군예술부대 실현을 위해 이제 심층적이며 세부적인 논의가 백가쟁명으로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에서 국회에 주문한 병역법 개정의 시한은 2019년 12월 31일이다. 정부와 예술계에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은 1년 남짓이다.

송준호
문화 전문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에서 무용미학을 전공했다. 주간한국과 한국일보, 더뮤지컬을 거치며 문화 예술의 각 분야를 두루 취재했다. 춤과 공연예술의 다양한 변화를 주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대학에서 춤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2018.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