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연재_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5)
일과 놀이, 삶과 예술과 과학을 아우르는 춤을 찾아서 1
채희완_춤비평가
우리춤에 발을 놓는 법으로 ‘비정비팔(非丁非八)’이란 말이 있습니다. 두 발을 비스듬히 디디되 丁자 모양도 아니고 八자 모양도 아니라는 겁니다. 좀 더 면밀히 보면, 丁자 모양이 아니어서 八자 모양이고 八자 모양이 아니어서 丁자 모양이라는 겁니다. 丁자 모양이기도 하고 八자 모양이기도 한 것인데, 아무래도 조금은 어중간한 디딤새이지요.
 어찌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얼치기 회색의 행보인 듯도 싶고, 이것이며 또 저것인 것이어서 ‘2중교호의 기우뚱한 균형’이기도 합니다. 여기엔 직각과 둔각, 벌림과 오무림이 교차하고 한 고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수렴과 확산이 연동하면서 무궁한 태극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오금을 죽였다 도듬새를 놓았다 하여 몸 전체를 놀립니다. 앞으로 내딛고 뒤로 갈 때 비스듬 뒤축을 먼저 놓고선 살짝 들어 ‘덩실덩실’ 춤추고, 가슴에서 팔을 내어 엎었다 제쳤다 짓고 뿌려 ‘너울너울’ 춤춥니다. 디딤새와 발길이 날카롭기로 이름난 이매방 명인의 발 놓는 법이 그러하다지요. 이리해서 그분의 활갯짓은 더없이 자유롭고 거기서 정중동의 시김새가 나옵니다. 그늘이 어려 쩔은 데서 흰빛을 품에 그러쥐고 사방으로 뿌려줍니다.

 

 



 우리나라 활쏘기의 아랫몸 자세가 ‘비정비팔’입니다. 활 쏘는 이의 발의 위치는 丁자도 八자도 아니면서, 가슴은 비우고 배는 단단히 해야 한답니다. 대체로 스트레이트 스탠스(straight stance)라고 하여 두 발을 과녁과 직각으로 두는 양궁의 자세와는 다른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엉거주춤한 자세야말로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120보 앞 145미터쯤 떨어진 과녁을 적중시키는 힘의 원천인 것입니다. 칼날 같은 과학적 엄정성이 거기서 나옵니다. 바로 퍼지(fuzzy)이론이 그렇지요. 우리춤의 동작도 이러한 무술동작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둘러보면, 솜씨 좋게 대패질하는 큰 목수의 아랫몸 자세가 또한 ‘비정비팔’입니다. 그분이 아무렇게나 무심코 놓은 발모양새가 바로 ‘비정비팔’입니다. 그렇게 발을 놓고 몸을 써서 일하는 품새는 그것이 고역스런 일이 아니라 그대로 한가락의 춤인 듯 하거든요. 일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춤추고 노는 듯합니다. 일과 놀이가 따로 없이 신명이 나 있고, 이런 일은 이를 보는 이에게도 신명을 불러 감염시킵니다.
 ‘비정비팔’의 발놓기, 발디딤새는 우리의 무술에서나 춤에서나 일에서 매한가지로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자세입니다. 21세기 오늘 어떠한 춤의 과학, 어떠한 춤의 신명이 있어 일과 놀이, 삶과 유희, 과학과 예술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겠습니까?

채희완
현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
2018.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