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연재_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6)
춤 신명(神明)론 재론 ; 살풀이와 씻김, 그리고 유랑성과 엑스타시
채희완_춤비평가

춤은 원초 생명의 자기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명의 자기확인이란, 하나의 존재라는 것이 개체적인 존재자일 뿐 아니라 다른 무엇과 유기적인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 협동적인 존재자임을 스스로 확인한다는 것이다.
 춤은 생명력이 흘러 넘치는 살아 생동하는 것이어서 언제나 죽음이나 죽임의 상황에 대결하는 측면이 있다. 그만큼 적극적이고 쟁투적인 삶이다. 춤은 온갖 반(反) 생명에 대해 대항해 왔다. 우리는 춤출 수 없도록 사회체제를 몰고간 중세(中世) 시기에 춤추지 않으면 살수 없는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춤추다가, 죽어서야 춤이 그치는 ‘죽음의 춤’과 ‘(무도병)舞蹈病’의 역설적 사회병리현상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춤출 수 없게끔 만드는 죽음, 죽임의 세력에 대항하는 춤이야말로 춤의 가장 강력한 주제가 될 것이다. 반생명을 척결하고 살아있음에 겨워 신령스러움의 생성활동인 엑스타시를 체험하는 여기에서 우리의 독특한 신명론이 제기될 수 있다고 하겠다. 죽임인 살을 풀어 헤쳐 물리치는 ‘살풀이’ 과정에서의 극점이 바로 ‘신명’이다.
 신명은 ‘우주 생명력과 교합된 상태로 확대된 자아’이다. 말하자면 우주 생명이 인간내부에 지펴들어 자기 안에 우주가 확대되어 나오는 영성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명은 우리의 샤머니즘적 전통에서 얘기하듯 “신이 나고 들고 오르고 내리고 지펴 바람나는” 접신체험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주질서가 나고드는 내유신령 외유기화(內有神靈 外有氣化)의 동학주문과도 통한다. 자신이 한울님의 담지자임을 스스로 깨닫는 이마다 신명의 주체자이므로, 신명은 연행 예술가에게만, 농촌 정서 체험자에게만 다가오는 것이 아닌, 만인 보편의 것이다.
 예술가란 말하자면 일반인의 은폐된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신명의 대행자이다. 각자마다 내재된 신명을 은폐시키도록 몰고간 삶의 액을 제거하는 사제의 역할을 맡아하는 것이다.
 ‘신맞이춤’으로서 인간과 자연과 우주와 역사가 동시에 초청되어 공생에너지를 교감하는 생명포태의 신명이 있는가 하면, 화랑도의 가무처럼 접화군생하여 미적인 것과 생태도덕적인 것이 합일된 풍류의 본원적 신명이 있다. 그리고 병신춤에서 보이는 그늘진 신명이라든지 살풀이 춤에서 보이듯 전투적 현실인식을 통한 역동적이고 역설적인 신명 또한 있는 것이어서 신명은 단순한 한풀이나 소비적 정서가 아니다. 생긴대로 마구잡이로 추는 자생적 천성적 신명이 있는가 하면, 전문 예인의 별것 아닌 듯 천진난만한 고졸(古拙)의 ‘사로잡는’ 신명도 있다. 멍석말이 춤으로써 반생명적 상황을 극복하는 죽음맞이의 웅혼한 신명이라든가, 동학의 검결(劍訣)처럼 사회개혁과 우주 개벽의 신명, 원효대사의 무애가무(無碍歌舞)처럼 진속일여(眞俗一如)의 신명, 전(全)문명사적 전복을 꿈꾸는 신명 등으로 춤에서 드러난 신명은 이처럼 여러 갈래인 것이다.
 ‘활동하는 무(無)’, ‘움직이는 도(道)’, ‘텅 빈 자유’인 춤은 창조적 진화를 부추겨 마지않는 경건한 실천행이다. 이는 사람 마음 가운데 한울님을 모시는 천부경에서의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과, 동학교리에서 시천주(侍天主)의 ‘하나임’, ‘하느님’, ‘한울님’의 실천의례이기에 모방하며 존경하는 사(事)와, 존경하며 동무하는 동사(同事)의 이중교호로써 춤의 주체인 신명의 활동상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신령스런 빛을 모신 아름다움이 생성된다. 이는 한국예술의 아름다움은 ‘생활과 종교와 예술이 비분리된 민예(民藝)적인 것’임을 언급한 고유섭의 견해를 재음미케 한다.
 신명은 일과 놀이, 그리고 창작과 향수의 전일적 통일체로서 모든 생명을 포태하는 출산적 정취(mood)가 고조된 민중적 미의식의 모체이다. 한국전통춤의 형식원리이자 유형적 특징은 바로 우주 생명기운의 운행원리이자 영성적인 것이 빚어내는 역동적 균형으로서 궁궁을을(弓弓乙乙)의 무궁한 시공간성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신명은 이러한 형식원리뿐만 아니라 예술창조 과정에서의 내재적 충동으로서 열정(passion), 열광(enthusiasm), 영감(inspiration), 그리고 향수체험으로서의 출산적 에너지인 동시에 작은 살림살이에 무한한 창조적 계기를 부여하는 우주적 생명체험이다.
 어둠과 빛의 세계, 신산고초의 ‘한(恨)’과 신성하고 고결한 환희 그리고 미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 등의 결합처럼 대립하는 것 사이의 이중교호적 얽힘은 한국 미 또는 한국적 미의식의 핵심적인 특질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는 신명의 내재적 기능을 살풀이와 치유, 씻김과 연관하여 규정하는 한편, 샤머니즘적 유동, 전이로서 창조적 혼돈을 경험하는 초월세계 진입의 엑스타시 현상을 기술해본다. 그리해서 무한회귀하는 순환적 진화의 생성에너지를 통해 신명의 살아있는 현재성을 논구함으로써 민족미학이란 학문이 현재라는 시공간에서 새로이 생성되고 있음을 입증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채희완
현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
2018.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