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연재_ 춤 관찰기: 다시 생각하는 아시아 춤 인프라(6)
1. 다양성과 혼종성의 나라, 인도네시아
서정록_춤연구가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에 위치한 (공식적으로) 17,5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섬나라로, 인구가 약 2억 6000만명으로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 4위의 대국이지만, 한국에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라이다.
 무수한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볼 때, ‘다양성(diversity)’과 ‘혼종성(hybridity)’이란 말로 축약해 볼 수 있다. 먼저 종교적인 측면만 살펴보아도 이슬람교를 비롯한 힌두교, 불교, 기독교, 지방 토착종교 등이 혼재한다. 14세기부터 전파된 이슬람의 영향으로 현재는 상당한 부분이 이슬람화 되었지만, 여러 섬들로 이루어진 국토의 특성상 중앙 정부의 권위가 비교적 덜한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힌두교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곳들이 많다. 한편 네덜란드 식민통치 시기 네덜란드와 서구 국가들의 오랜 선교, 이주민인 화교들 중심의 기독교 개종으로 기독교도의 인구도 전체의 10%를 차지한다.
 또 인도네시아의 독립 운동 과정에서 제국주의 일본과의 긴밀한 관계로 인한 일본의 영향도 인도네시아 근대화 과정 가운데 제법 눈에 띄게 존재한다. 여기에 수카르노-수하르토로 이어지는 군부독재 시대 통치의 영향으로 다른 무슬림 국가들에 비해 이슬람 원리주의가 비교적 약한 것도 이러한 인도네시아 문화의 다양성에 일조하고 있다. 게다가 공산주의와 비교적 친밀하였던 수카르노 정부와 미국의 후원을 받았던 수하르토 정부의 성격도 매우 다른 데다가, 각각의 정부가 이루어 놓은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마지막으로 인종적, 언어적으로도 지역마다 매우 다르다. 인도네시아를 구성하는 종족은 300개 이상이 존재한다. 여기에 자바인(Javanese)이나 순다인(Sundanese) 아체인(Acehnese), 바탁인(Batak) 등등과 같이 본래 인도네시아에 거주하였던 종족들 이외에도 화교, 인도인, 아랍인들은 물론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 이주한 유럽인들과 현지인들의 인종적 혼혈인들(Indos), 포르투갈인들과 역시 현지인들의 인종적 혼혈인들인 마르디커(Mardijker), 그리고 일본 막부시대 카톨릭의 박해를 피해 정착한 일본인들의 후손들까지 인도네시아를 구성하는 종족은 너무나 다양하다. 언어적인 측면을 살펴보아도 이러한 혼종성은 바로 들어난다. 언어는 공식언어인 인도네시아어 이외에도 자와어, 순다어, 발리어, 마두라어, 람풍어, 바탁어, 아체어, 이반어, 다약어, 마카사르어, 부기스어, 마나도어, 말루쿠어 같은 언어들이 존재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지역의 언어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니며 생각보다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그러므로 비교적 단순한 민족 구성과 단일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 위에 서 있는 한국인들이 인도네시아의 문화적 다양성과 혼종성의 면모를 단번에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종교 각 지역의 인종적 특성 등등을 이해하지 않고, 다양한 인도네시아 문화 속에 나타나는 ‘인도네시아의 춤’을 단번에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와 가믈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복잡 다단한 문화가 혼재하는 인도네시아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고 있는 장치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전통음악인 가믈란(gamelan)을 꼽을 수 있다. 다양한 타악기, 즉 철금, 실로폰, 북, 징 등으로 구성된 이 앙상블 음악은 이슬람교는 물론 그 이전인 힌두교와 불교 문화가 전래되기도 전부터 인도네시아에 이미 존재하였던 음악 양식이다. 자바인들의 전설에 따르면 이 음악 형식은 사카시대(Saka era, c. AD 230) 상향 구루(Sang Hyang Guru)가 만들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가믈란이 하나의 형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발리, 자바, 순다 사람의 종족들에 따라 형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양한 종교에서도 각각의 의식에 가믈란이 사용되는데, 예를 들면 스까뜬 가믈란 (Gamelan Sekaten)은 족자카르타의 무슬림 예언자 무함마드의 생일 (Mawlid an-Nabi)을 기념하기 위해 연주되는 것이며, 발리섬에서는 거의 모든 종교적인 의식(대부분이 힌두교 계통)에 가믈란이 연주된다. 또 가믈란은 인도네시아 가톨릭 교회 의식에서도 연주되고 있어 가믈란은 종족적 문화적으로 복잡 다양한 인도네시아를 하나로 통합하는 기능을 하는 중요한 문화라 할 수 있다.

 

 

 가믈란은 음악만 연주하는 경우도 많이 있으나, 노래와 또 하나의 인도네시아의 중요한 문화인 그림자 인형극 와양(Wayang)과 함께 자주 공연한다. 여기에 춤과 가믈란이 공연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인도네시아로 춤을 ‘따리(tari)’라고 하는데, 가믈란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으로 대표적인 것으로 우선 자이퐁(Tari Jaipong)을 들 수 있다. 자이퐁은 ‘픈짝 실랏(Pencak Silat)’이라는 무술에서 유래한 춤으로 순다 종족(Sundanese)의 춤이다. 한편 발목에 방울을 달아서 움직일 적마다 특유의 소리가 나는 춤인 레모(Tari Remo) 역시 가믈란이 반주 음악으로 사용된다. 사원에 강림해 온 신을 환영하는 의미를 지닌 발리의 유명한 춤인 펜뎃(tari pendet)도 발리 가믈란의 반주에 맞추어 춘다.
 인도네시아의 상징인 가믈란은 서양의 클래식 음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가믈란에 영향 받은 대표적인 작곡가들로는 클로드 드뷔시를 비롯하여, 프란시스 풀랑, 올리비에 메시앙, 브로니슬로 키퍼, 벤자민 브리튼 등 유럽의 다양한 작곡가들부터 존 케이지, 콜린 맥피, 필립 글래스, 죄르지 리게티같은 현대 작곡가까지 그 사례는 너무나 많다. 비서구권 음악 중 서양에 가장 영감을 많이 준 음악은 가믈란이다. 이러하 가믈란의 국제적인 위상은 고스란히 인도네시아 문화의 자랑이자 정체성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문화 다양성의 상징 인도네시아의 춤들

한편 인도네시아 춤의 경우, 가믈란과 전혀 반대의 방향에서 인도네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즉 인도네시아 문화의 특징인 다양성을 가장 잘 반영한 것이 춤이다. 이러한 양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는 인도네시아 지폐에서 드러난다. 인도네시아 루피아(Indonesian rupiah)의 모든 지폐 뒷면에는 인도네시아 각 지역을 대표하는 춤들이 그려져 있다. 각각의 춤들은 자카르타 지역의 춤인 바타위 춤, 발리의 레공 춤, 칼리만탄의 공춤, 살라야르섬의 파카래나 춤, 수카르타 지역의 감병 춤, 서수마트라의 피링 춤, 그리고 파푸아와 말루쿠의 티파 춤이 그것들이다. 이들을 각각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바타위(Betawi) 춤


바타위(Betawi)는 무용수가 가면를 쓰고 추는 가면무이다. 춤 동작은 이야기를 묘사하는 것으로, 그 배경 이야기들은 자카르타 지역의 전설부터 사회적 비판적인 내용까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경우는 모자 또는 머리띠를 착용하고 검은 색 사롱을 입는다. 반면 여성의 경우 긴 천과 스카프가 달린 케 바야 옷을 착용하고 화려한 머리 장식을 하고 있다. 춤은 보통 유연성과 우아함을 강조하고 민첩한 것이 특징이다.

 



레공(Legong) 춤


레공은 발리지역의 유명한 춤으로, 발리의 한 지역인 수카와티(Sukawati)의 왕자가 병에 걸렸을때, 두 명의 아리따운 처녀가 가믈란 음악에 맞춰 춤추는 꿈을 꾸었는데, 후에 그가 회복했을 때, 그가 꿈에서 본 춤을 실제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2명의 여성 무용가와 1명의 보조 무용가 등 총 3명이 등장하는 이 춤은 사실 정교한 마임으로 다양한 인물로 변신하며 춤 춤다.

 

 

공(Gong) 춤

공춤은 동 칼리만탄 지방의 다야크(Dayak) 부족의 전통 무용으로, 공 즉 징이 춤의 중요한 특징이다. “공 댄스 (Gong Dance)”라고 외부에 알려진 이 춤은 다야크 사람들은 칸셋(Kancet)이라 부른다. 여성 무용수들이 공연하는 공 춤은 부드러운 몸과 손의 움직임이 특징적이다. 의상은 밝은 색 구슬로 장식된 다야크 여성의 전형적인 복장이다.


 

파카래나(Pakarena) 춤

파카래나는 과거 살라야르섬(Selayar)섬 왕국의 중심지였던 간타랑 라랑 바타(Gantarang Lalang Bata)에서 유래한 춤이다. 4명의 여성 무용수가 추는 파카래나는 투마누룽(Tumanurung)이라는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전래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이 춤의 내용은 사람들이 하늘의 천사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다.




감병(Gambyong) 춤

감병은 중부 자바 지역인 수카르타(Surakarta) 지역에서 시작된 자바(Java) 춤의 고전 중 하나로, 손님이 왔을 때 환영을 표하는 춤이다. 본래 감병은 독무이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여러 무용가가 함께 출현한다. 매우 체계적인 안무가 특징이 이 춤은 발과 팔, 몸통, 머리 등 몸의 거의 모든 부분을 사용하며 시선은 항상 손가락 끝을 향하여 있어 모든 손 동작은 다른 몸 부분의 동작들보다도 특히 중요하다.

 

 

피링(Piring) 춤

서수마트라(West Sumatra)에서 유래한 피링은 접시처럼 생긴 넙적한 작은 판을 들고 빠르게 움직이며 추는 춤이다. 이 춤은 본래 풍부한 수확을 맞이하여 신에게 감사한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음식을 제물로 바치는 가운데 추던 것이었는데 민낭카바우(Minangkabau)에 이슬람교가 전래된 이후 이러한 의미는 사라지고 이 지역을 대표하는 오락형 춤으로 정착하였다.


 

티파(Tifa) 춤

파푸아(Papuan)와 말루쿠(Maluku)의 티파는 원시적 생활 속에 사냥춤에서 기원한 것이다. 티파 (Tifa)는 춤의 이름이자 악기의 이름이기도 한다. 발을 두드리거나 박수를 치는 것이 주동작인 이 춤은 손님 맞이, 추수 의식 등에서 주로 선보인다. 이 춤은 파푸아와 말루쿠 종족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이상에서 간단히 살펴본 바와 같이, 인도네시아 돈에 새겨진 각 지역의 그리고 각 종족들의 전통 춤들은 인도네시아 사회와 문화가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동시에, 인도네시아에서 춤의 위상이 어떠한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즉 인도네시아의 춤들은 인도네시아 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다양성을 대표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비록 이들 춤 이외에도 인도네시아에는 무수한 전통춤들이 각 지역마다 그리고 각 종족마다 존재하지만, 이들 7가지의 춤만으로도 인도네시아 문화의 다채로움을 이미 충분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이를 춤 전통이 인도네시아의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춤 문화는 인도네시아 문화 인프라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서정록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교수. 태국 Mahidol 대학교 국제대학 강사, 국립대만대학교 초빙교수, 런던대학교 SOAS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한국춤 연구를 통해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의 문화 교류에 대한 역사 연구를 하고 있다.
2018.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