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연재_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8)
주위를 어루만지고 스스로 어르는 춤대목, 근경
채희완_춤비평가

가까운 데를 살펴보는 것으로 우리춤에 ‘근경(近景)’이란 춤대목이 있습니다. 눈썹 위 이마에 손이나 부채를 펴서 얹고 주위를 살피는 것이지요. 지금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정황이 어떠한지를 알아보는 대목입니다.
 이는 먼 곳을 바라보고 내다보는 ‘원경(遠景)’과는 대척적인 것이지만, 이 둘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입니다. 리얼리즘과 쉬르 리얼리즘, 또는 언더 리얼리즘과 비욘드 리얼리즘이라고 할까, 가까이 둘러보고 살펴보면서, 멀리 건너다보고 헤아려보는 것이지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혜안도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하겠습니다.
 감성적 직관도 이런 관찰과 통찰의 과정 속에서 어루만진 보살핌입니다.
 우리춤에서 ‘근경’이란 사위를 감싸 맴돌거나 좌우로 몸을 틀어 고개잡이하는 동작으로 구성됩니다. 승무에 자주 나오는 ‘지숫기’도 아마 그러할 것입니다. 봉산탈춤이나 강령탈춤의 노장춤, 그리고 또 양주별산대놀이의 노장춤에도 자주 보입니다. 한평생 불도에 정진하던 노스님은 속가에 내려와 낯선 세상풍정에 몸가누기가 난감합니다. 가까스로 몸을 추슬러 부채를 펴고 주변을 살핍니다. 그러다가 눈 앞에 어여쁜 소매를 발견하고선 몸을 부르르 떱니다. 새 세상을 만난 것이지요. 그리고선 소매에게 다가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때 부채를 펴고 고갯짓을 하며 주변을 살피는 동작이 바로 근경입니다.
 이렇게 하여 지나간 여러 동작들과 다가올 여러 동작들이 관계를 맺습니다.
 ‘근경’은 이처럼 동작들과 동작들 사이 통과의례의 ‘다리’ 구실을 하고, 또 스스로 뒤를 갈무리하고 앞을 축원하는 얼러대기입니다.
 양주별산대놀이 중 맞춤대목의 고개잡이는 특별합니다. 앞의 다리는 무릎을 꺾어 세우고선 허리를 곧게 하여 뒷다리를 길게 뻗고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고갯짓을 끄떡끄떡합니다. 이 동작은 춤꾼이 탈판에 나와 불림을 하여 장단을 타고서는 크게 원진으로 한 바퀴 돈 후에 깨끼춤으로 직진하기 직전에 하는 동작입니다. 턱에 힘을 주고 고개를 전후좌우로 끄덕여 비껴 앞을 보는 동작이 바로 이 고개잡이입니다. 한바퀴 휘돌아 관중이 둘러앉은 선과 동심원을 이룬 후 직선으로 전진을 하는데 원진과 직진 사이에 고개잡이가 들어가 있는 것이지요. 원진과 직진이 막바로 이어질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이를 빼고서는 원진과 직진은 만날 수가 없습니다.
 춤동작 사이의 관계맺기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맺기도 엇비슷할 겝니다. 우리춤은 다른 어느 무엇보다 사람사는 일을 잘 보살펴 일구어낸 동작들이라 하지요. 근경이란 춤사위, 춤대목 이름부터가 그렇습니다. 그러하기에 ‘근경’을 제대로 미루어 보아서, 춤구성법도 익히고, 흩어져 모여 어느 춤패보다 자유로운 춤동인 ‘연분홍’의 짙은 춤인연도 깊이를 더해가길 축원할 따름입니다.

채희완
현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
2018.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