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2020 맞이굿 탈판 〈거리굿, 소녀상 일어서다〉
살림굿의 몸짓, 오늘 현안에 맞서다
서성준_탈춤연구가·생명문화운동가

2020 맞이굿 탈판 5 〈거리굿, 소녀상 일어서다〉가 2월 14~15일 이틀 동안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극단 자갈치의 합동 공연으로 펼쳐졌다. 40여 명의 출연진과 소극장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함께 민족예술에 기반한 생명 되살림 한판을 벌였다.
 예술감독(채희완: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은 “생명문화기획자·민족예술인 고(故) 강희철 선생 1주기 기념 공연이기도 한 〈거리굿, 소녀상 일어서다〉는 전승탈춤 중 여인을 중심축으로 하는 탈춤 마당과 문둥춤 마당,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거리굿과 오늘 이 땅의 일놀이를 축원하는 탈춤 군무 등을 옴니버스 스타일로 엮어냈다”고 말했다. 고 강희철 선생은 맞이굿 탈판 거리굿 3 〈2002 붉은 악마에서 2017 촛불혁명까지〉(2018년 12월 8일 공연 : 효순과 미선이의 죽음,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의 죽음, 촛불혁명 등을 촌극 형태로 꾸민 생명 살림의 거리굿)를 기획하는 중에 갑작스럽게 귀천(歸天)하였다. 이번 공연은 생명문화, 민족예술에 대한 고인의 애정과 열정을 되새기며 그의 뜻을 현재화하여 이어가고자 하는 살림굿이기도 하다.




2020 맞이굿 탈판 〈거리굿, 소녀상 일어서다〉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첫째 마당은 여성, 문둥이, 생명 이야기다. 우선 ‘양주별산대 애사당 법고놀이’로 판을 열었다. 이 판은 창작탈춤패인 지기금지의 중요활동목표 중 전승탈춤의 원본적 계승을 잘 보여준 판이며, 양주별산대놀이 전수 조교 석종관 선생의 지도하에 영남의 춤꾼들이 펼친 놀이마당이다. ‘애사당 법고놀이’는 왜장녀가 딸인 애사당을 팔아먹는 장면, 왜장녀와 애사당의 이별춤, 말뚝이와 완보의 재담과 대무가 그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는 여성이 인신매매의 대상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삶이 피폐해지면 여성들이 희생을 겪는다. 말뚝이와 왜장녀의 흥정 장면에서 말뚝이는 말로 뜻을 전달하나, 왜장녀는 춤과 마임으로 의사를 표현한다. 여성들의 의사가 남성인 말뚝이에 의해 해석, 전달된다. 이처럼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발화 권력을 지니고, 여성은 발화 권력에 의해 휘둘리는 존재일 뿐이다.
 왜장녀가 말뚝이와 애사당 사이를 오가며 추는 춤은, 딸을 흥정하는 과정에서 묻어나는 인생 애환의 몸짓이다. 한편 애사당과 왜장녀가 돈을 받고 기예와 몸과 술을 파는 천한 신분의 여자임을 감안하면, 애사당의 법고놀이는 성매매를 전제로 한 기예적 행위이다. 성매매는 자신들의 생계를 잇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이다. 한편, 탈춤의 기본 구조는 재담과 춤의 반복적 교차구조이다. 재담은 서사를 이어가는 축이기도 하지만, 이어지는 춤의 의미를 암시하기도 한다.
 말뚝이와 완보의 재담에서 ‘법고놀이’는 ‘벗고 놀이’로 바뀐다.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언어유희가 법고놀이를 성행위로 연상케 한다. 오입장이인 말뚝이와 완보는 예전에 하던 지랄을 하자고 한다. 예전의 지랄이 성행위라면, 둘의 대무 역시 그런 의미이다. 농경 사회에서 성행위는 곧 다산과 풍년의 기원이다. 다산과 풍년은 생명의 본원적 활동이자 민중의 소망이다.
 이와 같이 애사당 법고놀이에 나타난 성은 여성을 착취하는 행위, 힘겨운 삶 속에서 목숨을 이어가기 위한 생존 방식, 동시에 생명을 이어가는 본원적 활동이다. 이처럼 성의 의미는 복합적이다. 법성게의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이다. 하나 속에 여럿이 존재한다.




 




 두 번째로 마고춤이 이어졌다. 마고할미(이연정)는 4명의 목중에 들려, ‘보니 엠’의 〈라스푸틴〉에 맞춰 등장한다. 은은하면서도 장중한 징소리에 맞춰 마고할미는 쓰러졌고, 김석출 선생의 태평소 산조에 맞춰 일어나 격렬한 춤을 추고 난 뒤 다시 쓰러진다. 마고할미는 창조의 여성신이자 탄생의 모신(母神)이다. 따라서 마고춤은 세상을 창조하며 생명을 탄생시키는 굿이다.
 등장 음악인 〈라스푸틴〉은 러시아 제정 시대 종말을 초래한 요승을 풍자한 노래이다. 이 곡에 맞춘 마고할미의 등장은 낡은 껍질을 깨고 이루어지는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는 표상이다. 공간을 찢는 듯한 태평소 가락을 타고 사방으로 뿌려대는 춤은 생명의 우주적 펼침이다. 마지막 마고할미의 쓰러짐은 생명 탄생을 이루기 위한 고통과 희생이다. 마고춤은 오롯이 춤만으로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양극화, 노동의 위기, 기후 위기가 우주의 모든 생명을 옥죄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세 번째 판은 통영할미(이강용)와 고성큰어미(구재연)의 춤이다. 통영할미는 재담과 노래가 돋보이는 한판이었다. 악사, 관중과 주고받는 재담은 놀이꾼과 구경꾼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모두가 극에 참여하는 놀이판은 바로 공동체이다. 통영할미는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영감을 부르며 등장한다. 할미가 영감을 찾기 위해 청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얼굴을 단장하고, 정화수를 떠 놓고 산신령에게 빈다. 이어 영감을 만나기 위해 부정을 몰아내는 노래를 부른다. 마치 무당이 신내림을 위해 잡귀·잡신을 물리치는 장면과 유사하다. 할미와 영감의 만남은 무당과 신의 만남과 같은 천인합일의 경지이다. 천인합일은 우주 만물의 조화이고, 생명의 질서이다. 따라서 만남에 대한 갈망은 생명 질서 회복에 대한 갈망이다.
 한편 고성큰어미는 재담보다는 고성오광대의 유려한 가락에 맞춘 춤이 압권이다. 담뱃대로 등을 긁고, 이를 잡고, 오줌을 누는 행위가 굿거리장단에 맞춰 자연스럽게 진행되기에 단순한 동작을 넘어 춤이 된다. 탈춤의 춤이 생활 속 동작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마당판에서 할미는 오줌을 누는 해학적인 행위를 한다. 농경 사회에서 오줌은 곧 거름이고, 오줌 누기는 생명 키움이다. 통영할미와 고성큰어미의 춤은 오입장이 영감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인의 고통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할미들이 갈망하는 삶은 영감 찾기이다. 영감 찾기는 가족 공동체의 복원이다. 공동체는 삶의 터전이며 생명 유지의 기반이다. 그러므로 공동체 해체는 삶의 해체이며 생명의 파괴이다. 그러기에 공동체 복원은 삶의 복원이며 여성 생명의 되살림이다.




  

 




 네 번째 판에서는 고성문둥춤(윤상순)과 진주문둥춤(조정림)이 이어졌다. 고성문둥춤은 독무로 문둥이의 한과 신명을 풀어낸다. 소고를 잡기까지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고통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소고를 잡고 난 뒤에는 신명나게 덧배기춤을 춘다. 고성문둥춤은 다소 화려한 춤사위를 보여준다. 이에 비해 원래 진주문둥춤은 재담이 있고, 출연하는 인물도 7명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문둥이 한 명이 독무를 추었다. 부채를 들고 자유롭지 못한 몸이지만 신명을 풀어낸다.
 한센인 시인 한하운은 「황톳길」에서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 리/ 먼 전라도 길’이라고 삶의 고통을 노래했다. 머나먼 천 리 길만큼이나 한은 깊다. 한이 깊을수록 신명이 난다. 한이 곧 신명이다. 고성문둥춤과 진주문둥춤은 이러한 역설의 원리를 잘 보여준다. 해월 최시형이 말한 ‘반대일치(그렇다, 아니다)’이며, 시인 김지하는 이를 생명 미학의 원리인 흰 그늘이라 명명했다. “그늘이 인생의 쓴맛과 단맛, 희로애락, 한을 표현한다면, 흰빛은 신성함, 신명 같은 것과 관련된다”고 말했다.




 




 다섯 번째 판은 창작춤인 ‘번뇌’(김광숙: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8호 예기무 보유자)가 펼쳐졌다. ‘번뇌’는 마치 문둥춤, 병신춤을 연상케 한다. 번뇌는 생로병사로부터 생겨나며, 생명력을 저해하는 것이다. 문둥병은 천형이라 불리며, 엄청난 신체적 고통을 수반한다. 또한 문둥이(한센인)와 병신(장애인)은 공동체로부터 외면받는 심리적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런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아픔이 바로 번뇌이다. ‘번뇌’가 펼쳐지는 순간 공연장에 있던 모든 이가 숨죽이게 된다. 자기력이 주변의 물질을 자기장 속에 빨아들이듯, 춤꾼의 내공이 모든 사람을 춤사위에 빠져들게 한다. 춤은 호흡과 동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춤꾼의 날숨과 들숨, 휴지(休止)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어느새 관객들은 춤꾼의 호흡에 반응하며 탄식을 자아낸다. 공자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를 연상케 한다. 춤꾼은 법도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호흡에 따라 마음껏 자유롭게 춤춘다.
 한편 춤은 몸과 마음과 분리될 수 없으며, 몸과 마음의 테두리 내에서 진행된다. 번뇌는 일그러진 얼굴, 펴지 못한 손, 절뚝거리는 다리라는 몸으로 드러난다. 이런 뒤틀린 몸에서 나오는 춤 역시 밖으로 뻗지 못한 채 안으로 오그라든다. 제대로 된 춤을 추기 위해서는 마음과 몸의 교정이 있어야 한다. 마음이 바로잡히면, 즉 번뇌를 떨쳐버리면 틀어진 몸의 근육도 회복되고, 그래야 춤도 활기찬 생명력을 띠게 된다. 이제 진양조, 자진모리로 이어지는 장단과 구음에 맞춰 ‘번뇌’는 한을 신명으로 풀어낸다. 봇짐은 번뇌이고, 봇짐 벗음은 번뇌의 떨쳐버림이다. 들이키는 표주박의 물은 생명수다. 번뇌를 떨쳐버리고 생명의 기운을 되찾는다. 번뇌의 신명 전환은 곧 마음과 몸의 바로잡음이고, 생명 되살림이다.




 




 여섯 번째 판은 ‘남녘살풀이’(이노연: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이매방류 승무 이수자)가 뒤를 이었다. ‘남녘살풀이’는 한국무용의 다양한 춤을 공연했던 춤꾼의 공력을 잘 보여준다. 살풀이춤은 살(煞)을 풀기 위한 무속에서 나온 제의적 성격의 춤이었다. 그러나 현재 전승되는 살풀이춤은 ‘살풀이 음악에 맞추어 추는, 예술화된 춤’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공연 예술의 살풀이장단 구성과는 다른 장단의 흐름에 맞춰, 상복을 입고 추는 남녘살풀이는 죽은 이를 추모하는 ‘씻김굿’판에서 시나위 음악에 맞추어 추던 ‘죽은 이가 가진 좋지 않은 살’을 풀어주는 춤을 떠올리게 한다. 죽은 이의 살을 풀어 하늘로 인도하는 것은 이 세상의 생명을 또 다른 세상 즉 피안으로 평화롭게 보내는 제의적 행위이다. ‘번뇌’가 산 자의 생명 되살림이라면 ‘남녘살풀이’는 죽은 자의 생명 되살림이다.
 또한 남녘살풀이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이다. 시원을 살펴 근본으로 되돌아간다. 즉 살풀이의 원형을 찾고자 한다. 인간은 삶과 현실이 곤경에 처할 때, 과거나 근본으로 돌아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한다. 오늘날 춤이 삶과 유리되어 추상화(抽象化)로만 치달을 때, 삶의 한복판에서 사람살이를 가로막는 온갖 액과 살, 부정을 걷어내는 굿판의 춤이었던 살풀이의 원형은 우리 시대의 춤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범(典範)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춤꾼은 춤으로 문제제기를 한다.




 




 둘째 마당은 위안부, 소녀상 이야기다. 우선 ‘이팔청춘가’가 새 판을 열었다. 함잽이로 관객을 판에 불러들여 한판 진하게 노는 해학적 장면은 마당판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배우(홍순연)의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어린 ‘무자’는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신문명에 관심을 갖는, 평범한 소녀이다. 목소리 변조로(짐짓 심각하지 않음을 가장하나 예리한 비판을 날리는 방식) 일제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고, 조선 민중의 영웅인 안창남과 엄복동에 대한 열광적 동경을 표현한다. 그들에 대한 무자의 동경은 아이돌에 대한 10대 소녀들의 열망처럼 순박한 모습을 띤다. 그리고 무자가 사위를 맞이하는 장면으로 극화된 무자의 꿈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아들, 딸 낳고 손주 보며 오손도손 사는 일상의 소박한 삶이다.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된 무자는 독백을 통해 자신의 꿈이 강탈당했음을 토로한다. 꿈과 현실의 대비는 무자의 아픔을 더욱 애절하게 한다. ‘이팔청춘가’는 일제의 위안부 강제 동원이 여성의 일상적 삶을 무너뜨리고, 꿈꿀 수 있는 청춘마저 빼앗은 것임을 그려낸 1인극이다. 이처럼 민족의 아픔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형상화될 때, 즉 구체적 보편성을 지닐 때 더욱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두 번째 판은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의 주된 작품인 ‘소녀상 일어서다’이다. 태극기 아지매(방영미, 이미화, 남지현)로 표상된 친일 세력과 결탁하여 쪽발이는 이 땅을 침노한다. 아구(손재서)는 쪽발이(정승천)와 한판 승부를 겨루나 싸움에 진다. 일제 침탈기에는 군사력, 1970년대에는 금력, 이제는 반성하지 않는 역사 왜곡으로 일본은 이 땅의 청년과 여성을 짓밟는다. 위안부 여성을 상징하는 소녀상(정기정)은 역사적 질곡과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일어나 춤춘다. 사방에 절을 하며 원을 풀어내고, 생명의 기운을 모아 액을 물리치고자 한다. 왜소한 몸에서 나오는 춤꾼의 몸짓은 세상을 뒤집어 놓을 듯 힘이 넘친다. 그러나 소녀상 혼자로는 역부족이다. 소녀상은 쓰러진다. 이 땅의 고통받고 억눌린 수많은 민중과 함께해야 온전히 일어설 수 있다. 이어지는 소녀상, 청년, 여성의 합동무는 연대를 통한 일어섬이다.
 한편 소녀상의 춤은 처용의 ‘포용’을 함축한다. 처용은 역신에게 아내를 빼앗기는 참담한 고통을 겪지만, 노래와 춤으로 역신을 포용하면서 물리친다. 포용은 곧 상생의 정신이다. 한 마디로 거리굿 ‘소녀상 일어서다’는 피해자인 우리가 주체가 되어 펼치는 우리 시대의 해원굿, 제액굿, 상생굿이다.




 




 셋째 마당은 천지강산 영가무도 풍류정인 새봉산목중춤이다. 영가무도는 소리오행의 원리에 따라 부르는 노래와 추는 춤을 뜻한다. 또한 영가무도는 오행에 따라 몸과 정신의 건강함을 되찾는 수련법이기도 하다. 언어(이름)는 세계를 창조하고 변형시킨다. 주술적 언어관에 따르면 바라는 바를 주술적 언어에 담으면 그것은 곧 실현된다. 팔목중춤을 영가무도라 부르는 것은 영가무도의 치유력이 이 땅에 구현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발현이다.
 철학자 들뢰즈는 ‘생성은 있음(A)에서 있음(B)으로의 변화’라고 했다. 기존의 맥락에서 다른 맥락으로의 재배치를 통해 새로운 의미가 생성된다. 봉산탈춤에서 독무였던 첫목중춤이 방위오행에 따라 오방신장처럼 다섯 목중들이 함께 춤추는 것으로 재배치됨으로써 그 의미는 변용되고 새로운 의미가 생성된다. 팔목중들이 강산의 좋은 경치를 만나 풍류를 즐기는 신명 마당인 기존의 봉산 팔목중춤이 주술적 언어와 재배치에 따라 새봉산목중춤으로 달라진 것이다.
 영가무도가 오행에 따라 몸의 질병을 치유하고 질서를 바로잡듯이 다섯 목중의 춤은 바로 이 땅의 뒤틀린 질서를 제대로 돌려놓고 온갖 질병을 치유하는 몸짓이다. 단순한 풍류가 아닌 우주의 운행 원리에 따라 세상을 바로잡는 혁명의 몸짓이다. 그러기에 8목중춤의 군무와 연이은 뒤풀이는 치유의 몸짓, 혁명의 몸짓에 놀이꾼과 구경꾼이 함께하는 신명풀이가 된다.  이번 공연은 세부 꼭지가 11개나 되는 난리굿이었다. 판소리의 구성 원리인 ‘부분의 독자성’, 탈춤의 ‘연산(連山) 구조’, 들뢰즈식 표현에 따른 ‘리좀식 짜임’이다. 각각의 꼭지는 독자적 의미를 띠면서 전 꼭지를 아우르는 면면한 흐름이 존재한다.
 각각의 마당을 보면, 첫째 마당은 여성과 문둥이의 번뇌와 살풀이, 둘째 마당은 일제 식민지 통치기 여성 수난의 형상화, 민족의 살풀이이자 굿, 셋째 마당은 뒤틀린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는 천지굿이다.
 그리고 면면한 흐름 속에는 생명 탄생, 생명 억압과 지속, 생명 회복, 생명력의 전 우주적 확장이 자리하고 있다. 즉 마고할미는 생명을 탄생시켰다. 역사 속에서 생명(여성과 문둥이)은 자신의 생명력을 저해하는 온갖 장애(사회구조적 모순, 신체의 뒤틀림 등)를 겪으면서도 생명 본연의 활동(살풀이와 신명)을 이어간다.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은 여성 억압의 역사이며 생명을 파괴하는 반생명적 작태이다. 무자와 소녀상은 여성의 한을 들여다보면서 동시에 질곡의 역사 속에서 막혀있던 본래의 생명력을 되찾기 위한 해원상생굿이다. 팔목중춤과 뒤풀이를 통해 반생명적인 사회의 질서와 생명 파괴적인 문명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공동체 굿판, 치유와 혁명의 천지굿판을 벌인 것이다.
 매년 펼치는 맞이굿 탈판에는 1970, 80년대 대학탈춤운동을 이끌었던 탈춤패 출신의 연희자들이 참여한다. 취업 준비에 매달리는 오늘의 대학가에서는, 시대적 고민을 이슈화하여 의견과 움직임을 나누는 공론장이었던 탈춤마당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백발이 되어가는 예전의 탈꾼들이 뜻을 모아 펼치는 맞이굿은 다시 한번 시대적 소명을 담아내는, 공동체성을 지닌 탈춤을 부활시키기 위한 절박한 몸짓이다.
 나아가 우리 시대의 과제를 형상화하여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그 아픔을 공유하면서, 해결을 향한 연대의 몸짓을 끌어내는 굿판이며, ‘우리 시대의 있어야 할 예술의 전형’을 만들어가는 힘찬 내디딤이다. 이러한 내디딤이 이젠 좁은 소극장을 벗어나 거리, 학교, 삶의 현장, 나아가 해외로까지 뻗어가길 꿈꿔본다.

서성준

국문학을 전공하고 탈춤패 활동을 통해 수영야류, 고성오광대 등 영남 지역 탈춤을 전수하였다. 극단 활동에서 마당굿 운동을 펼쳤다. 현재 민족미학연구소 이사와 극단 자갈치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의 악사로서 생명문화 운동에 힘쓰고 있다.​ 

2020. 4.
사진제공_창작탈춤패 지기금지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