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해외 취재_ 제롬 로빈스 탄생 100주년 기념전
어느 춤대가를 오래도록 기릴 수 있는 이유
김채현_춤비평가

원작 뮤지컬을 다시 각색한 할리우드 영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한국에선 50년 전에 개봉되었다. 해외여행이 정부의 절대적인 허가 사항이어서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현지에서 직접 관람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고 또 가뜩이나 궁핍한 그 시절에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영화로나마 한국 청년들의 뮤지컬 호기심을 얼마간 충족시켰을 터였고, 당시 청년 세대가 노년층이 된 지금도 혹자는 그 이색적인 구성이 하나의 충격이었다는 소감을 내놓곤 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흐름을 일신한 것으로 말해지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안무가 제롬 로빈스(1918~1998)의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올 3월까지 반년 동안 뉴욕공연예술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는 문화적 인물의 탄생을 기념해서 자료를 나열하는 그런 의례적 방식을 탈피하여 제롬 로빈스라는 한 인간이 뉴욕이라는 어느 도시를 작품에서 어떻게 수용하였는지, 즉 그와 뉴욕 사이의 관계 내지는 교감을 주제로 살피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필자는 2월 중순에 현장을 방문하였다.




 

전시장 입구 ⓒ김채현



 

뉴욕공연예술도서관 전경 ⓒ김채현




 런던의 웨스트엔드와 함께 브로드웨이는 전세계 뮤지컬의 양대 메카이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문법이 구축된 때가 1920년대이므로 뮤지컬의 역사는 말하자면 100년쯤 된다. 더욱이 1927년 유성영화가 등장하면서 뮤지컬은 영화 뮤지컬(즉 할리우드 뮤지컬)로 확장될 길을 갖는다.
 1930년대부터 할리우드 뮤지컬이 줄을 이었고 진 켈리가 할리우드 뮤지컬 〈싱잉 인 더 레인〉(사랑은 비를 타고)을 안무·감독하고 출연해서 대성공을 거둔 때는 1952년이었다. 1957년 제롬 로빈스가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만들고 이를 다시 할리우드 뮤지컬로 각색하여 전세계에서 대대적으로 흥행한 것은 1961년이었다.
 진 켈리는 안무와 출연을 능란하게 겸할 수 있는 자신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뮤지컬에다 노동자 서민 계층의 풍모(風貌)와 정서를 과감하게 입힘으로써 신기원을 열었다. 뮤지컬의 이런 변화상을 배경으로 해서 제롬 로빈스는 뮤지컬에서 출연진 대부분이 ‘배우·가수·무용수’의 전문 재능을 두루 갖춘 모습을 뮤지컬 역사상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처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스틸 ⓒUnited Artists




 게다가 로빈스는 발레도 다수 안무하였으며 그의 발레 안무는 발레 장르에서 특히 미국 스타일을 개척한 의의가 크다. 그는 조지 발란신의 뉴욕 시티 발레(1948년 창단되어 지금껏 미국의 발레를 선도한 발레단)에서 조감독으로서, 때로는 공동 안무자로서 안무하고 출연했을 뿐더러 자신의 발레단도 잠시 운영한 바 있다. 그와 뉴욕 시티 발레는 오랜 관계를 지속하였다. 로빈스처럼 뮤지컬과 무대 예술춤을 오가며 양쪽에서 족적을 남긴 인물은 드물고, 주목할 점이 많다.
 이번 전시회가 열린 뉴욕공연예술도서관은 센트럴파크공원 옆 링컨센터 구내에 위치한다. 춤·음악·연극 분야를 망라하는 이 도서관은 우선 소장 자료 규모(50만 개의 문건 모음 폴더, 450만 점의 사진 등)를 기준으로 오늘날 공연예술 분야 세계 최대급 도서관으로 자타가 공인한다.




 


 

제롬 로빈스 탄생 100주년 기념전 ⓒ김채현




 1994년 제롬 로빈스가 생전에 자신의 자료 일체를 이 도서관에 기증한 것을 계기로 춤 부문의 모든 자료(장서 4만4천권 등)는 그의 이름을 내세운 ‘제롬 로빈스 댄스 디비전’이라는 분류 제목 아래 관리되고 있다. 제롬 로빈스의 자료가 일부분을 차지할 댄스 디비전에다 굳이 그의 이름을 앞세워야 하는지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제롬 로빈스가 기증한 그 자신의 자료 규모를 보면 납득이 갈 테고 또 그런 명칭(‘제롬 로빈스’ 댄스 디비전)이 환기할 상징성은 실로 크다.
 통계에 따르면 뉴욕공연예술도서관이 소장한 제롬 로빈스 기증 자료는 모두 800여개의 파일 박스이고 그것을 일렬로 늘어놓으면 100미터를 훌쩍 넘는다. 선뜻 믿기지 않는 규모이다. 이들 자료는 제롬 로빈스 개인 자료와 그의 예술 활동 관련 자료 그리고 그가 소장했던 당대 뉴욕 공연예술계 자료를 망라한 것으로 엄청 방대하다. 그에 관해 이만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므로 뉴욕공연예술도서관이 그의 100주년 기념전을 주최할 명분은 충분하다.




 

도서관이 소개하는 제롬 로빈스 관련 자료 ⓒ김채현, 제롬 로빈스의 그림일기 ⓒSTRAUSMEDIAS




 일반적으로 전시회라면 연상하겠듯이, 문건과 영상 자료들은 이번에 뉴욕공연예술도서관 구내 갤러리와 뮤지엄을 연결한 공간에 전시되었다. 웬만한 화랑 3개 정도 크기의 공간에 제롬 로빈스의 자필 문건 등이 진열되어 있고 대표작 하이라이트 영상들이 여러 모니터에서 시시각각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언에 따르면 제롬 로빈스는 평소 기록광(記錄狂)이었다 하며, 심지어는 1940~98년 사이 그의 소득 신고 장부 등 14개 파일박스의 개인 회계 자료까지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기록광이었다는 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게다가 매우 사적인 자료를 공적으로 기증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자신을 송두리째 노출시키는 것과 다름없을 터인데, 그의 솔직함이나 기개(氣槪)도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어디서 그런 기개가 나오는 걸까.




 

철두철미 정리된 스크랩북 ⓒ김채현




 생전에 그가 남긴 자료 규모로 보아 그는 기록광을 넘어 일반의 상식을 초월하는, 불세출의 참 어이없는 기인(奇人)이라 해야겠다. 그 방대한 자료에서 앞으로 그나 당대의 뉴욕에 관해 무슨 해석, 연구가 이어지거나 쏟아질지 예단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제롬 로빈스의 탄생 100주년 기념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모가 아니라 어느 중요한 부분이 집중 조명된 편이다.
 자신이 관람한 공연 입장권, 오려 모은 사진, 자필 문건에다 드로잉이나 수채화 등 그림까지 곁들여 만든 콜라주 식의 그림일기를 그는 중년기 14년 동안 만들었는데, 이번에 공개되었다. 이 그림일기를 이번 전시 큐레이터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제 홀로 걸어가는 인간에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제롬 로빈스가 브로드웨이에 입성하게 된 계기를 만든 〈팬시 프리​〉 영상 ⓒ김채현




 제롬 로빈스는 폴란드 이민 후손으로 뉴욕에서 태어났고 뉴욕에서 타계하였다. 그 세대의 대다수 안무가들처럼 그 역시 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10대 후반에 전문 학원에서 춤을 수련하였다. 발레와 쇼춤 등을 닥치는 대로 익힌 그는 10대 말부터 발란신이 안무한 뮤지컬에 출연하는 등의 활동 끝에 26살에 자신이 안무하고 출연한 〈팬시 프리〉(1944년작. 휴가 나온 세 수병과 두 아가씨의 에피소드)가 대중적 발레로서 크게 인기를 끌면서 안무자로 공인받고 브로드웨이 세계에 입성한다. 이후 뮤지컬과 발레 안무를 지속하는 가운데 마침내 1957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로써 완전히 입지를 굳히게 되고 이 뮤지컬의 춤을 응용해서 발레와 재즈를 결합한 〈뉴욕 수출품: 작품 재즈〉를 내놓게 된다.




 


 

제롬 로빈스 안무작 〈뉴욕 수출품: 작품 재즈〉, 뉴욕 시티 발레 ⓒPaul Kolnik, 뉴욕시티발레




 대개 첫눈에 느껴지지만, 제롬 로빈스의 춤은 무엇보다 현대의 도회적(都會的) 감성을 기조로 한다. 뮤지컬에서나 발레에서나 그의 춤들은 에너지와 파워를 갖춘 날렵한 움직임들과 강한 스트레치를 동반하는 각진 움직임들로 채워지며 몸 전신을 가동하면서도 몸의 균형을 유지한다. 또한 현저한 속도감 속에서 거듭되는 신속한 변화를 기조로 다양한 공간 패턴이 조성된다. 단적으로 운동 감각이 두드러지는 발랄한 움직임들이 관객의 운동 신경을 들썩임으로써 작품에 몰입하도록 유도하게 된다. 여기서 무대 출연진들은 관객을 의식해서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들끼리 움직임을 서로 주고받는 인상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자기들끼리 움직임을 재빠르며 조리있게 교환하는 과정에서 율동감은 물론 무대 위 출연진 사이의 유머 감각이나 상호소통이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고전발레의 틀을 완전히 벗어던진 제롬 로빈스의 발레를 ‘노 토슈즈, 예스 스니커즈’라 비유해도 무방하겠고, 이상의 여러 점들에서 발레는 관객들에게 아주 도시적인 것으로 각인되기 마련이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와 리허설하는 제롬 로빈스(왼쪽) ⓒ뉴욕공연예술도서관




 이번 전시회 제목은 〈Voice of My City: Jerome Robbins and New York〉이다. 제롬 로빈스가 한평생 생활하고 작품 활동을 한 그 도시 뉴욕의(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전시라는 뜻이 제목에서 감지된다. 제롬 로빈스에게 뉴욕은 그와 한 마음 한 몸인 실체라는 것이다. 오늘의 뉴욕은 그가 살은 시대에 비해 겉으론 더 화려해졌을지 몰라도 삶의 조건이 악화되는 등 현격히 차이가 나는 사정으로 미루어 그의 목소리가 오늘의 뉴욕 현지인들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궁금하지만, 그런 가치 판단은 이번 전시에서 유보된 것 같다.
 전시장 초입 벽면에 제롬 로빈스가 20대 청년기에 쓴 시의 구절이 마치 이번 전시의 대본인 양 대형 패널로 걸려 있다. 여기에는 뉴욕이라는 공간 속에서 실제 생활하는 청년의 눈에 비친 뉴욕의 모습과 그가 품은 상념들이 집약되어 있다. “내가 사는 도시, 두 줄기 강 사이 작은 섬의 그곳... 거대하며 들쭉날쭉한 도시, 금색 타워 돌판 타워들이 섞인. 벌레들 터널 같은 길들이 벌집처럼 얽힌 곳... 질식하는 도시 인조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 앞서 언급된 ‘제 홀로 걸어가는 인간’도 이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시 구절에선 콘크리트와 강철로 조성된 거리 사이사이에서 자동차와 불빛이 명멸하고 인간들이 저마다의 개체로 서식하는 거대도시 특유의 여운이 짙게 묻어난다.




 

제롬 로빈스가 청년기에 쓴 시가 이번 전시회에서 마치 테마처럼 쓰였다 ⓒ김채현




 뉴욕, 더 정확히는 맨해튼 섬이라는 거대 도회를 절절하게 그리고 어떤 면 외로이 살은 한 예술인에 초점을 맞춘 이번 기념전은 퍽 실존적이다. 자기가 살은 도시를 작품과 생활 양면에서 스스로 집요하게 기록하고 표현해야 했듯이 뉴욕은 제롬 로빈스의 존재 이유였다. 뉴욕을 자기 분신처럼 살았기에 그가 공연작들에서 뉴욕의 정서를 나름 거침없이 풀어낼 수 있었던 것 같고 공연작들은 제3자가 뉴욕을 대하거나 느낄 때 의존함직한 제롬 로빈스 방식의 시각을 담았다(예술은 보는 방법을 제시한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지명도와는 달리 제롬 로빈스는 국내에서는 사실 춤계에서마저 생소한 인물이다.(〈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작곡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1944년 〈팬시 프리〉 준비 과정에서 제롬 로빈스가 발굴하였고, 같은 해 태생으로서 함께 활동한 둘 가운데 나중에 번스타인이 훨씬 유명해졌다.) 그가 무용인으로서나 인간으로서 걸은 생의 여정은 알고 보면 여기저기서 우리의 시선이 머물도록 한다. 제롬 로빈스는 그저 브로드웨이의 히트작 몇 편을 남긴 인물에 머물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도 그는 때때로 이야기될 것이다.
 제롬 로빈스의 기념전은 예술인을 제대로 기리려면 그에 필요한 토대가 무엇인지 새삼 묻도록 한다. 개인의 예술적 업적은 물론이려니와 자기 자료를 철두철미 스스로 간수 관리하는 행동, 그리고 자료에 열린 마인드로 접근하는 공공기구의 식견과 포용력이 어느 춤대가(大家)의 삶(그리고 활동)을 특정 측면에서 주목한 장기간의 전시회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저력’인 것을, 〈Voice of My City〉는 전한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9. 03.
사진제공_김채현, 뉴욕공연예술도서관, 뉴욕시티발레, STRAUSMEDIAS, United Artists, Paul Kolnik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