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연재_ 춤 관찰기: 다시 생각하는 아시아 춤 인프라(8)
3. 인도네시아 현대 무용의 창시자, 바공 꾸쑤디아르자
서정록_춤연구가

바공 꾸쑤디아르자(Bagong Kussudiardja, 1928~2004)는 인도네시아의 현대 무용가이자 화가이다. 그는 인도네시아 전통 춤의 보존과 현대적인 시각에서 이를 재해석한 인물로, 그의 작품과 업적은 인도네시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널리 평가 받고 있다.
 전세계에서 춤과 미술에서의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2017년 10월 9일 전 세계에서 1위인 검색 엔진인 구글(Google)에서 그의 89세 탄생을 맞이하여, 기념일이나 행사, 업적, 인물을 기리기 위해 구글 홈페이지에 있는 구글 로고를 잠시 바꿔 놓은 ‘구글 두들(Google Doodle)’을 통해 기념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이벤트는 당연히 사기업(私企業)인 구글의 마케팅의 요소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도네시아는 물론 세계에서 예술가 바공의 명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세계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그에 대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번 호에서는 바공은 어떤 인물이며, 그의 춤 예술 학교는 어떠한 곳인지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인도네시아 현대 무용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바공 꾸쑤디아르자(Bagong Kussudiardja, 1928~2004)



 

바공 꾸쑤디아르자의 89회 생일을 기념한 구글 두들





바공 꾸쑤디아르자의 춤 인생

그의 춤 인생은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1945년 이후 자바(Jave) 전통 춤 전승에 전설적인 인물인 아리오 떼조꾸수모(Ario Tedjokusumo) 왕자(Gusti Pangeran: ‘구스띠 빵으란’, Gusti는 ‘각하’ 혹은 ‘나리’라는 의미이며, Pangeran은 왕자 혹은 왕의 가족에 대한 호칭이다)에게서 춤의 배우며 시작한다. 당시 그 스스로가 자바 궁중 춤의 명인(名人)이었던 떼조꾸수모 왕자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급격한 서구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자바 궁중춤과 전통춤이 궁중에만 머물러 있으며 서서히 고사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였다. 그래서, 자바의 전통춤을 보존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당시로써는 매우 파격적이라고 할 만하게, 궁중 밖에 무용 학교를 세우고 궁정인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대상으로 춤을 전수하는 끄레도 벡소 위로모(Kredo Bekso Wiromo) 무용 학교를 건립한다. 이 학교를 통해 후에 인도네시아는 물론 국외에서도 무용 예술사적으로 유명한 이들이 많이 배출되며, 인도네시아 전통 춤의 산실 역할을 하게 된다. 이 학교를 졸업한 대표적인 인물로 예술 역사가로 ‘코넬 인도네시아 프로젝트(Cornell Modern Indonesia Project)’로 유명한 클레어 홀트(Claire Holt, 1901~1970) 같은 이를 꼽을 수 있다.
 이 학교에서 수학한 바공은 인도네시아 전통춤의 현대화가 시급함을 깨닫고,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현대 무용가인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1894~1991)에게서 현대무용(Modern Dance)을 수학한다. 1958년 인도네시아로 돌아온 그는 현대무용과 자바 전통춤의 결합을 위해 곧바로 바공 꾸쑤디아르자 무용 센터(Bagong Kussudiardjo Dance Training Center)를 세우고, 이후 수많은 무용가들을 배출하게 된다. 이 센터는 이후 그의 무용 철학(Pancasila, 판차실라: ‘원칙’이라는 의미)이 더해져서, 1978년 10월 3일 바공 꾸쑤디아르자 아트 센터(Padepokan Seni Bagong Kussidiardjo)으로 거듭난다. 이 센터는 인도네시아 전통 춤이 중심이 되어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인 가믈란 반주에 맞추어 공연하는 전통극인 끄또쁘락(Ketoprak),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의 하나인 까라위딴(Karawitan), 그리고 전통 성악(聲樂)인 신든(Sinden)의 모든 중요 요소들이 함께 하는 독특한 작품들을 선보이게 된다.




 

바공 꾸쑤디아르자의 그림 〈승천〉 1983, 이 그림은 예수의 승천이 춤이라고 해석하여 표현한 작품이다



 

바공 꾸쑤디아르자 공연 모습




 여기서 우리에게는 제법 생소한 인도네시아 전통 공연 양식들인 끄또쁘락(Ketoprak), 까라위딴(Karawitan), 신든(Sinden)에 대해 잠시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끄또쁘락은 가믈란의 반주에 맞추어 하는 연극으로 자바 지역의 연극 장르 중 하나이다. 연극의 주된 레퍼토리들은 자바의 역사나 유명한 로맨스 이야기에서부터 힌두교의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Mahabharata)와 라마야나(Ramayana) 속 이야기들까지 매우 다양하다. 전통적으로 이들 공연자들은 한곳에 정주하고 있지 않고 자바섬 이곳 저곳으로 장소를 옮기며 공연을 하며, 토봉(tobong)이라고 불리는 휴대용 무대를 사용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남사당과 유사한 면이 있다. 다양한 농담과 흥미로운 이야기로 구성된 공연 때문에 주된 공연 분위기는 매우 명랑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이다.
 한편, 까라위딴의 경우 음악 양식에 하나이다. 까라위딴은 크게 3가지 형식으로 나뉘어지는데, 이들은 각각 까라위딴 세카(Karawitan Sekar), 까라위딴 겐딩(Karawitan Gending), 까라위딴 세카 겐딩(Karawitan Sekar Gending)으로 세분화 된다. 까라위딴 세카는 ‘세카(Sekar)’라는 말이 인도네시아어로 ‘시(詩)’ 혹은 ‘노래’라는 의미로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종의 성악곡(聲樂曲)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까라위딴 겐딩의 경우 ‘겐딩(gending)’은 음악을 뜻하는데, 이것은 기악곡(器樂曲)을 뜻한다. 그리고 까라위딴 세카 겐딩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성악곡과 기악곡이 어우러진 형태이다. 신든은 까라위딴의 가창을 담당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 쁘신덴(Pesindhen)이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모두 여성으로 주로 인도네시아 전통 그림자극인 와양(wayang)을 공연할 때 이야기를 서술하고 대사를 말하기도하는 창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신든은 한국의 판소리의 소리꾼과 유사한 면이 있다. 다만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여러 명이 가창을 돌아가면서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바공 꾸쑤디아르자 아트 센터




 바공 꾸쑤디아르자 아트 센터는 이러한 다양한 인도네시아의 전통 공연들의 요소들 즉 전통음악과 성악 그리고 연극적 요소를 하나로 모아 춤과 접목하여 새로운 인도네시아의 춤 예술 양식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그의 춤 작품들 가운데에는 전통적이면서 극적(劇的)인 것들이 많이 보인다. 여기에 더해서 이 센터는 바공의 예술 철학인 “창의성의 자유(Freedom of Creativity)”를 판차실라(Pancasila)로 삼고 있다. ‘판차실라’는 인도네시아어로 ‘원칙’ 혹은 ‘이념’이라는 의미인데, 즉 이 원칙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 센터는 인도네시아의 전통을 바탕으로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에 역점을 두며, 예술가들의 독창성을 키우고 발전시키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바공의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들어난다.


바공의 대표 작품, 〈상깃〉

바공은 인도네시아 전통 춤 좁게는 자바의 전통춤의 개척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생전에 100여편이 넘는 무용 작품을 창작하고 안무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그가 세운 학교의 원칙이자 그의 신념인 “창의성의 자유”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그의 무수한 작품 중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면, 1998년 4월 2일 초연을 한 〈상깃〉(Sanggit)이라는 작품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은 “해석”, “이해”, “설명”을 뜻하는 “Interpretation”인데, 사실 인도네시아어로 “상깃”은 “서로 부딪치다”, 혹은 “일치하지 않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공 꾸쑤디아르자 〈상깃〉(Sanggit)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의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인도네시아 신화에 등장하는 최고신인 바타라 구루(Batara Guru), 자바섬의 수호신인 바타라 이스마야(Batara Ismaya, 세마 Semar라고도 한다), 자문(諮問)의 신인 상향 웨낭(Sanghyang Wenang), 신들의 사자(使者)인 바타라 나라다(Batara Narada), 바타라 안타가(Batara Antaga, 토그 Togog라고도 불린다) 같은 신들이 등장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세상이 혼돈하고 불안한 시대가 이어져 바타라 구루는 근심이 늘어간다. 흰색(선 善)과 검은 색(악 惡)의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사람들은 웅크리고 불안에 떨고 있다. 그는 이러한 문제가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신인 바타라 이스마야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해결해 보고자 세심하고 지혜로운 신인 상향 웨낭를 찾아가 조언을 받아보지만, 여전히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사실 바타라 이스마야는 스스로 큰 고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예전에 그가 ‘지구란(Egg of Earth)’을 삼키고는 체하여, 토를 해보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바타라 구루는 마음을 고쳐먹고 바타라 나라다와 함께 혼돈스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이때 바타라 이스마야의 형제인 바타라 안타는 진실을 밝히고 감정에 북 받쳐 기절을 하고 만다. 이를 계기로 모두의 단결을 이끌어낸다는 줄거리이다.





 

와양(wayang)의 바타라 이스마야(Batara Ismaya)




 본래 이 이야기는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그림자 인형극인 와양(wayang)의 한 작품에서 그 줄거리를 가져온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다시 인도네시아의 전통 춤과 현대 무용을 결합하되 제목부터 내용까지 다소 모호한 구석을 남기며 관객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된 감성은 ‘불안’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이 초연할 당시인 1998년은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는 시기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1998년이 바로 ‘인도네시아 화교 학살(May 1998 riots of Indonesia)’로 알려진 사건이 일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화교 학살 사건(May 1998 riots of Indonesia)




 당시 인도네시아 내 화교(華僑)의 인구비는 5%인데 반하여, 인도네시아의 전체 부 가운데 85%를 차지하고 있었다. 소수의 화교가 대부분의 부를 독점하고 있으니 당연히 인도네시아인들의 이들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다. 여기에 이들 중 상당수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식민지 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인도네시아인들을 착취하였던 전력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인들 대부분은 이러한 상태가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의 화교에 대한 불만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므로 인도네시아인들과 화교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긴장과 대립이 오랫동안 존재하여 왔다. 그런데 때마침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인도네시아를 덮치자, 이러한 불만은 즉각 화교들에게도 모아진다. 자카르타 서부의 트리삭티에서 시작한 시위는, 수도인 자카르타에서도 이어지다가, 곧 폭동으로 발전하여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확산된다. 이 폭동으로 화교가 주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인식 때문에, 많은 상가가 공격의 대상이 되어 상당수가 불이 타고, 1000명 이상의 사망자(사실 사망자의 대부분은 화교가 아니라 인도네시아인들이었다)가 발생하는 참사로 이어지게 된다. 또 대부분의 화교들이 네덜란드 식민지 당시 기독교로 개종하고 있어 신앙으로 하고 있는 교회들도 공격의 대상이 된다.




 

바공 꾸쑤디아르자 아트 센터에 있는 그의 동상




 바로 이 작품은 이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한달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불안하고 혼돈스러운 인도네시아의 사회를 잘 들어낸다. 이것은 작품 제목인 “상깃(Sanggit)” 즉 “서로 부딪치다”, 혹은 “일치하지 않다”와 영어 제목인 “해석”, “이해”를 뜻하는 “Interpretation” 사이에 간극에서도 잘 들어난다. 이는 마치 스페인 출신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 – 1989)의 유명한 작품 ‘삶은 콩으로 만든 부드러운 구조물(Soft Construction with Boiled Beans)’, 우리에게는 ‘내란의 예감(Premonition of Civil War)’으로 더 잘 알려진 그림을 연상하게 한다. 달리의 이 작품은 비참한 내전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한데, 실제로 이 작품이 나온 후 6개월 뒤 스페인 내전이 시작되었다. 이 내전은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결국 세계 대전의 전조에 대한 불안감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확대 해석될 수 있다. 달리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대한 반감 덕분에 파시즘을 찬양하는 예술가로도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그의 여러 작품들을 살펴보면, 파시즘에 대해 비판적인 작품들도 상당하다. 그러므로 달리는 ‘창작의 자유’와 ‘예술적 상상력’에만 관심이 있는 작가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이것은 바로 인도네시아 현대 무용의 창시자인 바공 꾸쑤디아르자의 예술 정신인 “창의성의 자유”와 어쩌면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서정록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교수. 태국 Mahidol 대학교 국제대학 강사, 국립대만대학교 초빙교수, 런던대학교 SOAS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한국춤 연구를 통해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의 문화 교류에 대한 역사 연구를 하고 있다.​ ​
2019.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