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 취재_ 미국 국립춤박물관 방문기(2)
국립춤박물관 부동산 임대료, 단돈 천원
김채현_춤비평가

미국 국립춤박물관은 일테면 산골에 있다. 국립박물관이라면 으레 각국의 수도나 대도시에 있을 것이라는 통념은 여기서 흔들린다.(한국에서 국립박물관은 지역 중소 도시에도 여럿 있다.) ‘국립’박물관이 산골에 있다 해도 따지고 보면 문제될 일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라면 그 같은 통념일 것이다. 산골을 피하는 주된 이유라면 관람 접근성일 텐데, 교통수단이 원활한 오늘에 와서 그러한 통념은 더욱 낡아지고 있다.




미국국립춤박물관 전경




 이 국립춤박물관이 소재한 새러토가스프링스는 산골 도시라 함직하다. 주민수가 3만에 못 미치고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도 힘겨운 데에다 산간지대에 있어서, 이 곳을 산골 도시라 지칭하는 게 적절할지는 몰라도 어색하지는 않다. 그곳에 대중교통으로 가기가 퍽 불편한 이방인 처지와는 다르게 자동차 생활이 보편적인 미대륙의 현지인들에게는 그런 불편함이 통하지 않을 것 같다. 도시로부터 먼 산간지대에 대해 선뜻 힐링 장소라는 인상부터 갖기 쉬운 오늘날에는 국립춤박물관과 산골의 조합이 서로 간에 상승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국립춤박물관이 있는 새러토가스프링스는 겨울철에 내리는 암트랙 열차 승객도 드문 곳이다


먼거리의 미국국립춤박물관에 추운 겨울날에도 관람객은 온다




 한갓진 어떤 소읍이 국립춤박물관을 가지려면 그에 부합하는 무엇이 있어야 할 텐데, 그게 무엇인지 궁금하기 마련이다. 새러토가스프링스의 경우는 비록 소읍 규모였을지라도 춤 또는 문화와의 연관성이 그 만큼 있었고 지역의 고유한 천연자원도 크게 한 몫 하였다. 1986년 국립춤박물관이 개관하기 전부터 이 소읍은 나름 문화적 저력을 쌓아가던 중이었으며 자연 휴양지(休養地)로도 이름을 알리던 곳이었다. 20세기 후반에 휴양지를 문화예술 이벤트 개최지로 만드는 것은 이른바 선진국에서 시작된 상식적 흐름으로서, 세기가 바뀐 이제 그 사례를 모두 열거하기에는 명단이 차고도 넘친다. 복지 사회에서 문화예술과 레저·힐링의 결합은 당연한 일인 동시에, 그것은 일석이조를 훨씬 뛰어 넘는 다면적인 파급 효과를 기대받는다.




미국국립춤박물관 로비




 새러토가스프링스는 19세기에 개발되었다.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 각지의 도시들은 대개 그 시기에 불어났다. 이 소읍이 미네랄 워터라는 광천수(鑛泉水)로 이름나자 개발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그 효험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미 19세기에 광천수가 고갈될 지경에 이르렀고, 20세기 초에 뉴욕주 당국은 광천수의 추출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등 대책에 나섰다. 뉴욕주는 그 일대의 광천수 우물들을 매입하고 공중 광천(욕)탕을 여러 곳 건립하는 등 새러토가스프링스의 광천수자원을 공공의 자산으로 묶었다. 이후 새러토가스프링스에 세워진 워싱턴광천탕(鑛泉湯, Washington Baths)은 온천탕 못지않은 치료 효과로 명성이 자자하였으나 1970년대 들어 광천수 치료법이 퇴조하면서 폐장된다.
 몇 해 폐공장처럼 내버려진 워싱턴광천탕 현장을 산업 유산으로 보존하면서 문화 이벤트의 터전으로 재활용할 것을 결정한 쪽은 뉴욕주였다. 1980년대 전반에 이뤄진 이런 결정에 호응하여 새러토가스프링스는 뉴욕주에 국립춤박물관 건립을 제안하고 상호 협약을 맺는다. 협약의 주된 내용은 뉴욕주가 옛 워싱턴광천탕 건물과 그 일대의 주립공원 토지를 국립춤박물관에 연 1달러의 임대료로 20년간 양여하고 또 20년 후에 추가 임차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광천수로 명성을 유지하던 새러토가스프링스의 시위원회는 이미 1960년대에 들어와 광천수자원 보호 지역을 주립 공원으로 승격하는 동시에 젊은 층 중심으로 휴양객의 체류 시일을 늘리기 위한 대책으로 공연예술센터 건립을 추진하였다. 시당국은 물론 지역 예술인과 상공인, 시민, 아동들까지 공연예술센터 건립에 힘을 모으고 모금에 나섰다. 그런 끝에 민간의 적지 않은 자발적 성금에다 록펠러재단의 기금과 뉴욕주의 지역 개발 지원금이 합쳐져 1966년에 새러토가공연예술센터가 완공된다.
 새러토가공연예술센터에서는 센터 건립 직후부터 박차를 가하여 여름마다 7월에는 뉴욕발레시어터, 8월에는 필라델피아관현악단의 공연을 열었다. 이 센터에서 두 단체는 지난 50여 년간 해마다 10~20회의 공연을 가져왔었다. 한갓진 새러토가스프링스는 알고 보면 1960년대 중반 이후 문화예술적으로 전혀 한갓진 곳이 아니었다. 지금도 미국에서 필라델피아관현악단은 5대 교향악단에 들며 뉴욕발레시어터는 발레단은 물론 미국의 무용단을 통털어 최정상이다. 공연예술센터는 이 도시가 문화 도시로 발돋움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미국국립춤박물관 로비 천장 모서리에 발란신 등 저명 무용인들의 이름을 새겼다




 그런데, 뉴욕시에서 차나 열차로 4시간 거리인 오지에 새러토가공연예술센터가 생기기 전부터 뉴욕주 하계예술학교의 발레 스쿨이 새러토가스프링스에서 열려 왔었고, 150킬로미터 떨어진 매사추세츠주의 제이콥스필로우와 인접한 지리 조건은 이 소읍이 춤과 연관을 맺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제이콥스필로우(여기 또한 유명한 휴양지이다)는 1942년 남성 무용가 테드 쇼운이 미국 최초 춤 전용극장이 세운 곳으로 해마다 여름에 두달 동안 제이콥스필로우춤제전을 열어온 곳이다.
 그러던 중 1966년 새러토가공연예술센터 건립은 새러토가스프링스와 춤이 연관을 맺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또한 당시 창설된 뉴욕 권역의 모던댄스협의회가 유수한 춤공연을 이 도시에 유치했고 뉴욕발레시어터의 조지 발란신은 여름마다 장기간 공연을 가지면서 해마다 초연작을 여기서 발표하는 등으로 새러토가스프링스의 춤 활동을 전폭적으로 후원하였다.
 이런 전력에 비추어 새러토가스프링스에 국립춤박물관을 건립할 명분은 납득할 일이었다. 문제는 국립춤박물관 조성 자금이었다. 뉴욕주는 옛 워싱턴광천탕 건물과 그 일대의 주립공원 토지를 국립춤박물관에 연 1달러의 임대료로 20년간 양여하는 이외의 추가 지원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 20년 전 새러토가공연예술센터 건립 당시 개발 지원금을 제공하던 때와는 달리 1980년대 중반은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가 고전하던 때였다. 결국 국립춤박물관의 건물 리모델링을 비롯하여 부속 시설 증설, 그 일대의 인프라 조성까지 새러토가스프링스는 자력으로 해결해야 하였다.
 여기서 새러토가스프링스 지역민은 또 한 번 힘을 모은다. 새러토가공연예술센터가 주동이 되어 지역의 유지를 물색하는 작업부터 폈고, 최대 500만 달러의 소요 예산 가운데 우선 지역 독지가가 거액을 쾌척하는 등 성금에 기대어 1986년 미국 국립춤박물관은 문을 열었다. 새러토가스프링스는 경마 도시로서 미국에서 상위권에 들며 춤박물관보다는 경마로 훨씬 잘 알려진 도시다. 이 도시의 경마산업 경영자인 휘트니 부부는 예술애호가로 활동하던 중에 춤박물관 건립에 65만 달러를 쾌척하였다 한다.(당시 화폐 시세는 현재의 1/3에 해당한다.) 그러고 보면 미국에서 경마 산업은 국립춤박물관과 이렇게 인연을 맺었다.




미국국립춤박물관 명예의전당에 소개된 건립 주역인 메리루 휘트니와 루이스 스와이어와 저명 무용인들




 미국 국립춤박물관은 2005년에 구내 소극장을 개장하였다. 박물관을 연 지 20년만의 일이다. 이 박물관은 개관 이후 부속 설비를 순차적으로 마련해 왔다. 단숨에 이루려 하기보다 꾸준한 인내를 나타내는 이 점은 특히 역사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어떤 심지를 보여준다. 역사를 이어가는 작업으로서 새러토가스프링스의 광천수자원 산업 유산을 곧장 폐기하지 않고 가급적 보존하려는 역사의식이 미국 국립춤박물관을 태동시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미국국립춤박물관 전시관


미국국립춤박물관 한켠에 보존된 워싱턴광천탕 설비


미국국립춤박물관이 소재한 새러토가스프링스는 북위 43도에 위치하며 그보다 낮은 곳에서도 강 표면은 얼음 천지였다




 역사를 하루아침에 이루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나, 역사를 이어가는 일만큼은 영속적일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 박물관을 만들어서는 방치해둔 채 거기에 머무르기보다 그것을 다듬고 보완해서 계속 충실도를 높여가는 후속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박물관이 바로 역사를 이어가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박물관을 마련하는 것으로써 역사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을 마련함으로써 역사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계속)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 ​

2019. 05.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