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 취재_ 미국 국립춤박물관 방문기(3)
큐레이터는 박물관·자료관·갤러리의 심장
김채현_춤비평가

미국 국립춤박물관이 산골 도시에 있는 것이 오히려 흥미롭고, 거기에 소재하게 된 연유도 소개되었다. 무용인들의 발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산골 도시의 지역 재생 계획의 일환으로 그 춤박물관은 설립되었다.
 20세기 중반 이래 숱한 산업의 변동, 인구 이동, 교통망 확충 등의 요인으로 크고 작은 지역 재생 계획이 추진된 것은 범세계적 현상이었다. 미국 국립춤박물관은 지역 재생 계획의 산물이다. 지역 재생 계획은 말 그대로 지역을 다시 일으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문화도 그에 기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다 보면 많은 사람을 불러들일 상업적·대중적 성격의 문화 프로그램부터 염두에 두기 십상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 국립춤박물관이 30년 넘게 진행해온 전시들에서 소개하고 조명한 것은 파인아츠(순수예술)로서의 춤이었다.




미국춤박물관 공식시그널




 미국 국립춤박물관에서 미국의 현대무용과 발레를 중심으로 영화와 뮤지컬에 구현된 춤 자료들도 다양한 형태로 엮이어 소개된다. 현대무용, 발레, 춤영화, 춤뮤지컬의 인물들과 레퍼토리들이 개별적으로, 또는 어떤 주제 아래 편성되어서 지난 30년 동안 200건 정도의 전시회로 구현되었던 것이다. 해마다 빠짐없이 이런저런 전시회를 산골 도시에서 추진하여 그 만한 규모의 실적을 쌓은 데서 미국 춤계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의 저력이 쉽게 감지된다. 국립춤박물관이 상업성과 대중성에 휘둘리지 않고 이렇게 품격을 견지하려면 지역 사회의 호응도 따라야 했을 것이다.
 어느 박물관에서나 자료는 당연히 필수적이다. 국립춤박물관도 초기에 전시를 기획하면서 입지를 다져나가고 단체와 개인들에게서 자료를 희사(喜捨)받아 많은 콜렉션들을 갖추었다. 20세기 이래의 미국 현대춤과 발레 관련 온갖 사진 이미지와 동영상, 무대 의상, 장신구, 댄스 슈즈, 포스터 등의 자료를 꾸준히 축적해온 결과 앞으로도 이런 전시회와 저런 전시회를 지속할 역량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립춤박물관은 산골 도시에 소재해 있어도 그 이름이 어색하지 않다. 산골 도시에서 방대한 자료를 소장하면 국립춤박물관이라는 이름은 유지될지 모른다. 그러나 자료 규모에 매달리는 규모의 신화로는 그 이름을 유지하기에 한계가 있다. 또한 애당초 미국 무용인들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산골 도시의 지역 재생 계획에 의해 이 박물관이 탄생한 사실을 다시 주목해 보면 그 이름에 충실하기 위해 보다 각별히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 노력들은 춤박물관의 전시들에서 간접적으로나마 확인된다.
 2월 방문한 미국 국립춤박물관에서는 앞서 소개했듯이 여러 전시회가 동시에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Gender Neutral’(젠더 중립) 테마전이 가장 눈에 띄었다. 남녀 구별이 없는 공연 활동들을 소재로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사례들을 들어 재조명하는 전시이다.




미국국립춤박물관 ‘춤과 젠더 중립’ 전시회


‘춤과 젠더 중립 전시회’에 소개된 마크모리스무용단




 뛰뛰를 남성들이 착용하거나 여성이 남성 역할을 하거나 남녀 무용수들이 기존의 고정된 젠더 역할을 넘어서는 활동을 젠더 중립이라 한다. 전시에서 소개된 모리스 베자르, 마크 모리스, 마츠 에크, 매튜 본의 사례뿐 아니라 17세기 이후 유럽, 20세기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젠더 중립을 추구한 공연은 더러 있었다.
 젠더 중립 공연을 의도적으로 가장 줄기차게 실현해온 단체로는 몬테 카를로 트로카데로 발레단이 손꼽힌다. 1972년 공연을 개시한 트로카데로발레단은 전원 남성 무용단이며, 2019년 현재 14명의 단원은 여러 나라 출신자들이다. 〈백조의 호수〉 〈동키호테〉 〈레 실피드〉 등 고전발레의 젠더 관행을 패러디하므로 트로카데로발레단의 공연은 코믹하며 유머가 넘친다. 트로카데로발레단이 결성될 1970년대가 게이 권리 운동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던 것을 상기하면 이 발레단의 의의는 그리 간단치 않다.






미국국립춤박물관 ‘춤과 젠더 중립’ 전시회




 이와 더불어 ‘젠더 중립’에서는 많은 사례들이 소개된다. 1930년대 미국 나이트클럽에서의 남성여장 행동, 일본 다카라스카 여성극단, 〈호두까기 인형〉에서 남성이 맡은 마더 진저, 남성이 연기한 〈고집쟁이 딸〉, 현대무용가 라르 루보비치가 1985년 에이즈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그린 〈협주곡 #622〉, 최근에 이르러선 2017년 뉴욕 시티 발레단의 두 창작물 등등 젠더 중립 춤 사례들이 사진, 춤영상, 장신구 등의 자료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테마전은 젠더 중립 공연 활동을 비교적 소상하게 제시하고 물론 해설도 덧붙였다. 테마전 전체를 꼼꼼히 음미하려면 1시간 넘게 소요될 것 같았다. 이처럼 젠더 중립 춤 흐름을 실물과 영상을 통해 직접 일별하는 과정에서 춤에서의 젠더 관념을 자연스럽게 돌이켜보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테마전에는 분명 있었다. 이렇게 미국 국립춤박물관은 각 전시마다 자료를 그냥 허접하게 늘어놓지 않았다. 일정한 지향점과 목표에 맞추어 역사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자료를 재구성해서 제시하는 입체성이 뚜렷하다.
 다시 말해, 미국 국립춤박물관은 여러 전시를 함께 진행함으로써 풍부함을 제공하고 특히 테마전과 특별전은 풍부함과 지적인 해설을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국립다운 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 국립춤박물관이 알찬 전시를 통해 국립다운 격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인 것은 그러한 전시를 수행해내는 큐레이터의 역할이며, 큐레이터는 소장 자료와 함께 이 박물관의 양축을 이룬다.
 박물관·자료관·극장을 세우는 것 못지않게 공간의 내실을 좌우하는 쪽은 큐레이터이다. 단언컨대, 큐레이터는 박물관·자료관·갤러리의 심장이다. 미술관과 (자연사)박물관만이 아니라, 시각예술이나 역사 분야가 아니라도 박물관·자료관·극장에도 큐레이터가 있어야 한다. 국내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큐레이터가 학예사라는 직책으로 활동하지만 큐레이터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우리 공연예술계에선 아예 없거나 퍽 미흡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군소 박물관들에서 큐레이터가 없는 게 예사이며, 대개의 전시가 소장품의 단순 나열에 그쳐 하품을 유발하는 것도 그런 때문일 것이다. 이참에 공연 전문 극장들에서 큐레이터가 있는지 잠시 상기해보라.
 뉴욕에 가는 사람들은 맨해튼 센트럴파크 옆 미국(American)국립자연사박물관을 한번쯤 들르기 마련이다. 수많은 입장객과 그 방대한 규모에 압도(?)당하며 깊은 인상을 받는 기분으로 전시물들을 대하곤 할 것이다. 연간 7백만명이 입장하는 미국국립자연사박물관 비슷한 규모로 입장하는 곳이 워싱턴 DC에도 있다. 여기 이름은 국립자연사박물관으로서 뉴욕의 것과 이름이 헷갈리게 만드는 곳이다. 입장객 수로는 워싱턴의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전세계의 자연사박물관 가운데 가장 많다는 지적이 있고, 어느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전세계 모든 박물관을 통털어 입장객 순위가 7번째라 한다.(첫번째는 810만명이 입장한 루브르였다.)




워싱턴 자연사박물관. 연어 서식이 위기에 처한 지구 환경을 알리고 있다.
이처럼 관람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름 해답을 제시하는 설명판이 박물관 도처에 널려 있다.




 나는 두 자연사박물관을 1주일 간격으로 방문하였다. 워싱턴 DC는 인구가 70만 이고 뉴욕시의 1/10도 채 안 되며, 2017년 관광객 수는 뉴욕이 6500만명으로 워싱턴은 그 1/3 정도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연간 입장객이 뉴욕의 그곳에 버금가고 또 워싱턴 DC 전체 인구의 9배 정도라는 사실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워싱턴 자연사박물관이 무료입장인 데 반해 뉴욕의 자연사박물관 입장료(기부 형식)가 20달러(아동 10달러) 남짓이어서 그런가?
 워싱턴 국립자연사박물관은 자연사 전문 과학자가 185명으로서 세계 최대 규모라는 사실을 들으면 워싱턴 국립자연사박물관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가 점차 납득되기 시작한다.(뉴욕의 미국국립자연사박물관도 전문 과학자가 200명에 육박하는 듯하다.)
 워싱턴의 국립자연사박물관은 전시물 소개에서 ‘입장객 관점에서’ 설명적이면서도 특히 전시물의 의미를 ‘오늘의 처지에서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내러티브가 박물관 전시장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런 중에서도 형이상학적인 또는 인식론적인 물음 같은 것을 전제한 후 자연사 유물에서 그 답을 찾아가는 실증적인 내러티브는 이 박물관의 내공(
內功)을 잘 말해준다. 그런 내러티브 이면의 역량은 이 박물관의 엄청난 자산으로 보인다.




인간됨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을 전제하고선
인간이 인간됨을 획득한 과정을 설명한다.


인간의 진화 과정을 여러 측면에서 설명한다.




 박물관이 세세한 설명만으로도 기본 역할은 충족하겠지만 워싱턴의 국립자연사박물관은 그에 머물지 않고 관람자와 적극 문답하려는 자세가 뚜렷하다. 그들은 고고학, 생물학에 맴돌기보다 인문학 전반에 걸친 자신들의 총체적 지식을 내러티브 속에 녹여내고 있었다. 그리하여 학교 바깥의 교육이 일반화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워싱턴의 국립자연사박물관은 하나의 방대한 아카데미로 받아들여졌다.
 워싱턴과 뉴욕의 두 자연사박물관 사이의 우열을 논할 일은 아니며, 다만 워싱턴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입장객 세계 최대급의 자연사박물관이라는 명성을 획득하는 데 있어 큐레이터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점은 재차 강조되어야 하겠다.




뉴욕 자연사박물관. 미생물이 비만에 끼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우주의 크기를 여러 물체를 통해 설명한다.




 돌보다는 뜻의 라틴어 쿠라레(curare)가 어원인 큐레이터는 오늘날 시각예술과 역사 분야 박물관·자료관·갤러리를 넘어 소장품을 비치하는 모든 분야 모든 유형의 박물관·자료관·아카이브 그리고 전문 기획이 늘 진행되는 극장에까지 그 폭을 넓히는 중이다. 심지어 커뮤니티 큐레이션이라는 활동도 대두한다. 또한 방대한 아카데미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심지어 큐레이터는 관람객들을 위한 익명의 멘토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큐레이터는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소장 콘텐츠를 선정하고 감식하며 해설하고 전파하는 사람을 통칭한다. 분야마다 특수성을 전제로, 큐레이터가 해당 콘텐츠를 만들고 전파하는 전문가라는 데 개념이 일치한다. 그 적극적인 예로서, 자신의 경험을 큐레이터라는 제목의 저서로 소개한 랜스 그란데는 시카고 소재 필드자연사박물관(연간 입장객 160만명)의 석좌 큐레이터이다. 그는 고생물학자로서 와이오밍주 사막 지대에서 40년 동안 현장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박물관 소장품 소개 프로그램들을 지휘해왔다.




워싱턴 자연사박물관


뉴욕 자연사박물관




 큐레이터 개념이 미약했던 과거를 딛고 이제 춤 분야도 큐레이터를 양성하는 데 나서야 한다. 춤 분야 큐레이터라면 무엇보다 춤 작품들에서 예술적·역사적 주제를 간파해서 조명하는 작업이 기본이다. 그러려면 춤의 흐름과 문화사를 꿰뚫는 역량이 물론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시라는 것이 무수한 관점에서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큐레이터가 실은 특정 문화예술 분야를 가리지 않는 해박한 지식과 역사·인문학·비평에 관한 식견을 두루 갖출 것이 요구된다. 그런 역량의 큐레이터를 양성하는 데 짧지 않은 시일이 소요될 터이므로 마음이 있다면 다소 서둘 필요도 있다.




미국국립춤박물관 ‘춤과 젠더 중립’ 전시회




 박물관·자료관·아카이브는 보존과 전시를 위해 존재한다. 보존은 있으나 전시가 맥빠진다면 자료는 사실상 잠자고 있는 셈이 된다. 보존의 궁극 목적은 전시를 통해 생명력을 갖는 것이고, 보존 못지않게 전시가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전시를 통해 기억(소장품에 깃든 그 모든 것)은 전수된다. 하지만 박물관 내 전시 내러티브가 다채로워지고 수준을 높여가는 세상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허술한 전시가 오히려 기억을 돕기는커녕 저해하고 실망을 사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목격한다. 미국 국립춤박물관은 말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박물관·자료관·아카이브의 설립에 열을 올리는 것은 응당 권장할 일이로되, 격 있는 전시로써 설립 취지가 완결(完結)될 것이다”고.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 ​​ 

2019. 06.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