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원국발레단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의욕적인 시도, 부족했던 미감과 서정
방희망_춤비평가

 벨기에 출신의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1892년 출판되었고, 작곡가 포레는 이 작품의 1898년 런던 공연을 위해, 시벨리우스는 1905년 헬싱키 공연을 위해 각각 극 부수음악을 작곡하였다. 채 10년도 되지 않는 그 사이에 드뷔시는 동명의 오페라를, 쇤베르크는 교향시를 작곡한 것을 보면 프랑스 상징주의의 영향을 짙게 깔고 있는 이 작품이 당대 예술가들을 얼마나 매료시키고 영감에 사로잡히게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노원문화예술회관의 상주단체인 이원국발레단은 그 중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바탕으로 창작발레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올렸다(9월 4-5일,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필자 5일 2시 공연 관람).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선택한 것은 올해가 그의 탄생 150주년이기 때문인데, 클래식 공연계에서나 활발히 기념할 뿐 기타 장르, 특히 무용계에서 이런 시도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이번 이원국발레단의 공연은 특이하게 기록될 만하다. 이외에도 노원예술회관 개관 이후 최초의 주민 참여 공모공연이라는 점, 동화처럼 예쁜 일러스트를 넣은 홍보물 등이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초연이라는 점을 아무리 감안한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노원구의 터줏대감으로 이름을 알려온 이원국발레단이 이름값을 하기에는 부족했다라는 생각이 드는 공연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공연의 성격을 세심하게 규정하지 못한 채 기획한 티가 난다는 것이었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우리 식으로 거칠게 말하면 시동생과 형수의 불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성인 관객이라도 그들만의 세계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제대로 감상을 돕기 위해서는 희곡에 나와 있는 다양한 상징적인 장치들을 열심히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작품을 단순하게 왕자 공주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쯤으로 치부한다 해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환상적인 발레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지역민들, 특히 다수의 어린이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의 소재로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도 공연 내내 앞뒤의 어린이 관객들이 인물 간의 갈등 상황에 대해 물어볼 때 대답하기 난감해하는 보호자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을 꼭 무대에 올려야만 했다면 영화등급제처럼 관람가능 나이제한을 두어 기획하고 안내하는 편이 보다 성숙한 관람문화 조성을 위해, 작품성을 심도 있게 가지고 가기 위해 더 바람직했을 거라 본다.




 또한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 기념이라는 명분은 있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나태한 음악 선택이 발목을 잡았다. 영화나 연극에서 음악은 분위기를 더하는 양념 역할이고 그 자체가 절대적이지는 않다.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것도 ‘극 부수음악’으로서 어떤 대목에서 풍경을 스케치하거나 분위기를 고조시키거나 마무리할 때 잠깐 삽입할 것을 염두에 둔 것이지 연극 상연 내내 그 음악을 틀어둘 것을 계산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다른 작곡가의 작품에 비하면 신비스럽고 몽환적이라기보다는 굵직굵직하게 뻗어나가는 스케일로 작곡되어,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특유의 정적이고 꿈꾸는 듯 폐쇄된 관계와 공간에 대한 감성이 다소 실종된 감이 있다. 물론 이것이 어떤 면에서는 서사 위주로 풀어가는 이원국의 안무 스타일과 맞아떨어지기는 한다.
 그다지 질이 좋지 않은 스피커를 통해 시종일관 빵빵 울려대는 대형 관현악은 이원국발레단이 펼쳐내는 공연 규모에 비해서도 어울리지 않았지만, 쉬었다 가는 율려가 없어 피로감이 더해졌다(게다가 페이드아웃은 유독 거칠게 처리되어 뚝뚝 끊어지는 것까지 고스란히 들어야만 했다).
 이런 음악 선택은 작품 전개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는데, 등장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했고 결말이 이렇게 되었다는 평이한 서술만 겨우 이어나가는 식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남다른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하이라이트인 머리카락 씬(둘의 밀회와 교감은 멜리장드의 풍성하고 긴 머리카락을 통해 은유적으로 이루어진다)이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속도 빠른 음악에 떠밀려 날아가 버렸다. 이 장면을 주의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은 머리카락 대신 짧은 스카프를 대강 둘러 내렸다는 것에서도 드러났다.
 시벨리우스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관현악 모음곡을 A부터 Z까지 순번대로 정직하게 갖다 쓰는 것만이 그를 기념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볼쇼이의 〈황금시대〉 중 하이라이트인 두 주인공의 아다지오가 쇼스타코비치의 〈황금시대〉 음악이 아닌 그의 피아노협주곡 1번 2악장이라는 것, 로열발레단의 〈마농>이 마스네의 동명의 오페라 곡은 하나도 쓰지 않고 그의 다른 음악들을 모아 편곡해서 썼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필요에 따라 같은 작곡가의 서정적인 음악을 끌어올 수 있는 안무에서의 융통성과 음악적 센스가 아쉽다.




 비교적 우아하게 표현되어 원작의 성격과 가깝다고 느껴졌던 펠레아스를 제외하고는 주요 인물들의 성격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했고 주변 인물들은 오히려 군더더기가 많았다. 특히 두 남자 사이 갈등의 중심이 되는 멜리장드의 성격묘사가 거의 생략되어 아무런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는데, 골로가 멜리장드를 데리고 가서 소개하는 궁정 장면에서 그녀 혼자 신비로운 이국의 존재임을 드러낼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 낯선 곳에 홀로 남겨져 두려운 감정을 충분히 표현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는 펠레아스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복선을 깔고 있는 솔로 춤을 구성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한편 이 궁정 장면에서 골로와 펠레아스의 어머니 쥬느비에브를 등장시킬 때 이원국의 전작 〈멕베스〉에서 레이디 맥베스가 등장하던 장면과 오버랩 된다던지(압도적으로 화려한 비주얼로 인해 쥬느비에브 역할이 여주인공이냐고 묻는 어린 관객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골로가 부정한 두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징벌을 결심할 때 추는 춤이 뜬금없는〈스파르타쿠스〉풍이었던 것도 아쉬웠다.
 그래도 원작에는 없는 숲과 물의 요정 마샤 역할을 고안해서 다양성을 높이고,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반지를 찾으러 간 동굴에 의인화된 종유석 군무를 넣음으로써 미궁 같은 동굴의 입체감을 조성한 것은 효과적인 연출로 보였다.




 전반적으로 작품의 외골격은 어떻게든 갖추어내려고 애쓴 흔적이 드러나는 공연이지만 창작자만의 미감이나 시정(詩情)을 만끽하기에는 부족함이 느껴졌다. ‘창작 드라마발레’라는 표현을 내걸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고전적인 어법으로만 엮어냈는데, 규모 있는 발레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 강박처럼 작용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세트나 의상을 과감히 정리하여 모던하고 깔끔하게 연출하는 대신 인물의 감정과 갈등을 부각시키고 집중하는 쪽을 택했더라면 훨씬 밀도 높고 인상적인 공연이 되었을 텐데, 그저 보이기 위한 것이 우선순위는 아니었는지 되짚어 본다. 또한 지역 주민을 참여시켰다는 것이 어떤 동기로 시작되었으며 단체와 지역 사회 모두에 어떤 의의를 남기며 진행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겉으로 드러나기에는 군무를 보충하기 위한 역할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극 시작 전에 홍보성으로 집어넣은 프리젠테이션 동영상보다는 관객 손에 쥐어지는 팸플릿에 그런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들어가는 것이 더욱 좋았을 것이다.

2015. 10.
사진제공_노원문화예술회관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