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창단 15주년 LDP 3개의 신작 Jarek Cemerekㆍ길서영ㆍMicha Purucker
몸짓과 연출, 그리고 오브제
이만주_춤비평가

 2001년, 현대춤의 다양한 실험과 새로운 방향을 모색코자 발족한 젊은 춤패 LDP가 어느덧 창단 15주년을 맞아, 지난 9월 4-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5회의 공연을 펼쳤다. 이번 공연에서는 LDP 출신의 안무가 한 명과 두 명의 외국인 안무가의 춤 작품 세 개가 추어졌다.
 실험적인 세 작품 모두, 주제는 비슷했다. 작품들은 현대문명 속의 소외된 인간의 모습, 자본주의 체제 속의 유리된 타자들인 인간 군상을 그렸다. 그러면서도 세 작품은 각각 다른 개성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순서로 공연된 체코 출신 안무가 Jarek Cemerek의 작품 제목인 〈Heaves〉는 폐공기증 또는 호흡곤란을 나타내는 의학용어라고 한다. 안무가는 숨막히는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 내면의 소통 없이 겉도는 인간관계의 외로움을 숨의 헐떡거림으로 상징화하려했다. 춤은 스피디하고 박진감 있게 전개되었다. 격렬함이 반복되는 춤에 안무의 디테일이 살아 있어 민무대에서 벌어지는 춤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무대로 흡인시켰다.
 두 번째 순서로, 길서영이 안무한 작품 〈Social Factory〉는 입체적인 연출과 안무의 효과를 시도한 작품이었다. 까만색의 큼직한 남자 수트 정장을 입은 무용수들의 키와 몸집이 과장되어 있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안무자는 수트 정장만을 오브제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오브제의 개념을 확장시켜 무용수들 자체를 오브제로 사용했다. 인간 본연의 주체성과 정신적 가치를 상실한 자본주의 속, 껍데기 삶을 강조해서 표현하고자 큰 수트 정장 위에 얼굴을 아예 없앴다.
 양복을 입은 큰 사람 둘 사이에 한 사람이 끼어 허공을 걷는 듯한 동작, 공중에 떠서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 같은 동작, 한때 유행했던 로봇춤 같은 춤으로 자본주의 속에서 헛돌고 있는 삶의 무의미성을 상징화하는 의도를 보였다.




 독일 출신 안무가 Micha Purucker의 작품 〈Murmurs and Splotches〉는 억지로 번역을 시도하자면 ‘소곤거림과 얼룩들’이라 할 수 있다. 안무자에 의하면 추상적인 제목의 ‘소곤거림과 얼룩들’은 ‘예술의 공식적인 출발점의 두 자질인 불분명과 출현’을 의미한다고 한다. 안무자는 ‘동양과 서양의 이상을 융합하고자 하는 목적’, ‘비언어의 방식으로 추는 춤’, ‘완벽한 실험적 놀이터처럼 보이는 춤’ 등 애매모호한 안무의 변을 보탰다. 그런 알쏭달쏭함과 모순된 주장에도 불구하고 작품 〈Murmurs and Splotches〉는 다양한 시도가 엿보이는 실험적인 작품으로 주목할 만했다.
 막이 오르기 전, 한참 동안 타악의 소리를 들려주다가 관객석의 조명을 서서히 꺼가는 연출이 예사롭지 않았다. 흔들음과 눕는 동작, 팔 잡고 서로 끌어당겨 돌음, 유인원이 네 발로 걷는 듯한 동작, 모든 무용수가 무대 바닥을 발로 구르는 것 등, 작품은 우선 춤의 안무에서 많은 특이함을 보였다. 무용수들의 나옴과 들어감, 모임과 흩어짐에서 산만함이 느껴지는가 하면, 동시에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 같은 정교함이 느껴져 놀라웠다. 작품에서 수학의 순열, 조합의 정치성(精緻性) 같음이 느껴짐도 신기했다. 음향, 조명의 변화도 안무와 마찬가지였다. 작품에는 분명 동서양의 문화가 어울려 있었다.




 세 작품은 각각 현대춤에 있어서 실험의 대표적인 줄기들을 들추어 보여주었다. 〈Heaves〉는 춤의 원초적 명제인 몸짓과 현대춤의 창작적 춤사위라는 줄기를, 〈Social Factory〉는 현대춤에 있어 연출의 효과와 오브제라는 줄기를 들추어 보여줬으며, 〈Murmurs and Splotches〉는 ‘과연 춤 작품은 철학이나 사상을 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그 철학이나 사상을 어떻게 안무와 춤으로 구현하여야 하는가’를 곱씹어 생각케 했다.

 세 작품은 크게 보면 국제적인 콜라보레이션이었고, ‘세계 속의 춤, 한국 춤의 글로벌 네트워킹(Global Networking)’이라는 모토를 표방하며 현대춤의 다양한 실험을 추구하는 젊은 춤패의 고민과 노력을 담고 있었다.

2015. 10.
사진제공_LDP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