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춤관람기 〈여우와 돌고래〉
아동 청소년의 자아 정체감 찾아가기
신채은·이슬기

2005년을 시작으로 올해로 17회를 맞이한 ‘아시테지 겨울 축제’가 1월 6일부터 24일까지 온·오프라인으로 개최되었다. ‘l’m still with you‘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된 이번 축제는 코로나19로 집에 고립되어 지쳐있는 아동·청소년 위한 프로그램으로 구성, 팬데믹 상황을 고려하여 소수의 관객만 허용하는 대신에 이틀 공연 중 하루는 네이버 후원을 통해 유료 생중계 스트리밍을 병행하였다.
 올해 축제에는 춤 부문에서 3편이 선정, 1월 13~14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고블린파티 〈여우와 돌고래〉, 16일~17일 문화공작소 상상마루와 스웨덴 지브라단스(ZEVRA DANS) 〈네네네〉, 22일~23일 종로 아이들극장에서 이상한댄스컴퍼니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무대에 올랐다.
 고블린파티 〈여우와 돌고래〉 공연의 1월 13일 현장 분위기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썰렁했다. 대학로예술극장은 방역지침 의무화에 따라 두 칸 띄어 앉기를 적용, 관객의 30%만 수용한 때문에 시끌벅적할 공연장과 달리 다소 삭막함이 존재했다. 어린이 관객이 비중이 높을 거란 예상과 달리 청년층 비롯해 아이와 함께 온 부모님, 춤계 관련 종사자 등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자리했다. 빨간 줄무늬 천으로 대체 된 빈 좌석은 띄어 앉기를 적용해 여전한 코로나19를 실감나게 했다.
 2021년 〈여우와 돌고래〉는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춤에 기반한 동화극이다. 하지만 초연 당시 이경구의 솔로 버전과 2020년 임진호와의 듀엣은 특정 연령대를 겨냥하지 않았으므로 이번의 〈여우와 돌고래〉는 원작의 변형된 형태라 할 수 있다. 올해는 고블린파티 단원이 대거 출연해 춤과 구연동화를 접목하여 재탄생됐다. 작품이 변화되어온 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여우와 돌고래〉는 성인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연출과 내용으로 보편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일례로 꼬리가 잘린 여우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여우들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꼬리를 자르도록 꼬드기는 장면은 잔혹 동화처럼 캐릭터의 비열한 성격을 드러낸다. 또 다름과 간극이라는 삶의 정서적 요소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살면서 한번쯤 공감하는 주제라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끊이지 않는 인기를 실감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부터 순수 미술작가들이 뛰어드는 일러스트레이터 영역 및 동화 작가로서의 도전은 장르를 불문하고 성인과 아동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상황과 추세에 근거해 기존의 〈여우와 돌고래〉를 특정 세대(아동과 청소년)를 겨냥하는 연출로 움직임, 스토리, 음악, 배경 등을 탈바꿈했다는 점에서 〈여우와 돌고래〉의 가능성은 주목할 만하다.




고블린파티 〈여우와 돌고래〉




 작품의 구성과 스토리(서사)는 어렵지 않다. 서사 초반, 이경구는 높은 절벽에서 바닷가를 구경하고 있는 거북이 도사님을 만난다. 이를 계기로 여우와 돌고래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고, 다름과 간극이라는 정서적 문제를 상상 가능한 새로운 의식의 열린 결말로 극을 맺는다. “도사님의 부모님이 그리우세요?”라고 말하는 여우에게 거북이 도사님은 촉촉한 눈가로 “부모님은 항상 그랬지”라는 말만 되뇐다. 작품의 끝에 등장하는 “아빠”라는 음성을 통해 〈여우와 돌고래〉가 말하는 간극이란 무엇인지 유추해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흐름 내내 노골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오히려 작품 내부에 존재하는 여우와 돌고래라는 가상적 캐릭터가 작품의 주를 이루며, 외부 세계의 관객과 아버지라는 현실적 인물은 미약하게나마 작품과 연결될 뿐이다.
 즉 작품의 구성과 서사가 어렵지 않다고 느껴지는 배경에는 다양한 연출 기법과 이경구 한 사람이 맡는 여러 역할(이야기꾼, 여우, 거북이 도사)이 관객의 상상 가능성을 무한히 펼친 때문도 있지만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는 최소한의 틀만 남겨놓고 비언어적인 요소로 틈을 메꾼 이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지 여우가 물어도 고래는 관객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과 언어로 화답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우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계기를 맞고 깨달음을 얻는데 이를 통해 관객 또한 나름의 포괄적인 해석을 마음 한켠에 품게 된다. 이처럼 단순한 흐름이 춤과 결합해 다양하고도 개인적인 해석을 낳아 작품의 주제(인간 개인의 정서적 문제)와 상응하는 면이 있다.




고블린파티 〈여우와 돌고래〉




 또 극의 진행을 돕는 연출, 말하자면 조명, 배경의 영상, 음악, 이경구의 대사 등의 요소들이 어쩌면 춤 자체만큼이나 높은 중요도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통상 다뤄지는 춤 작품들과 대비된다. 특히 이경구가 구사하는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와 톤, 대사, 몸짓, 묘사적 움직임은 작품 전반을 지휘하듯 능숙하게 극을 이끌며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한다.
 작품 초반, 이경구는 “무용은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말해요”라고 말하며 아동을 겨냥한 세심한 안내로 극을 시작한다. 이후 졸음에 빠진 이경구는 거북이 도사님을 만나 400년 전의 여우와 돌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고 주인공 여우와 이야기꾼 역할을 바쁘게 오가며 서사를 이끌어간다.
 사냥꾼의 덫에 걸려 꼬리가 잘린 여우는 자신과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여우 무리에게 놀림당할 것이 무서워 숨어 다니다 한 가지 꾀를 낸다. 그것은 바로 거짓말을 하여 여우들의 꼬리를 자르게 할 속셈이었다. 숲속을 걷던 다른 여우의 꼬리가 덤불에 걸려 사냥꾼에게 잡혔다든지, 비대한 여우가 몸을 피하지 못해 구렁이에게 잡혔다든지, 사냥꾼이 탐을 내어 아름다운 꼬리를 잘라냈다든가 하는 꾸며낸 이야기로 여우 무리를 겁준다.
 이런 장면들은 대부분 손짓과 발짓, 제스쳐와 간단한 움직임만으로 표현되는데, 마치 이경구의 모놀로그 연기처럼 보인다. 임성은, 안현민, 이연주, 박소진, 김민주 등은 캐릭터를 구현하기보단 배경으로 존재하며 시각적인 풍부함을 더하는 역할로 등장하였다. 두려움에 떠는 여우들, 흔들거리는 바닷가의 산호초, 기하학적인 무늬, 때로는 단순히 춤의 테크닉을 군무로 도맡으며 무대를 채운다.
 하지만 이런 무언극으로도 충분히 스토리가 전달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연출의 상당 부분에 있다. 조명과 효과음, 음악이 분위기를 형성하며 드넓은 상상력에 최소한의 경계를 짓는다.
 겁을 먹은 여우(이경구)는 관객의 도움을 받아 거북이 도사님을 호출한다. 다시 이야기꾼으로 변한 이경구는 언제 극 속에 있었냐는 듯 관객석을 향해 더 크게 소리 질러 줄 것을 요청한다. 아동들은 이에 힘껏 응답한다.
 계속해서 거북이 도사는 괘씸한 여우에게 “썩 꺼져라”하고 쫓아낸다. 이윽고 이경구는 오래전 해안선에서 만나곤 했던 여우와 돌고래를 회상한다. 여우는 자신을 이해해 줄 돌고래를 찾아 여정을 떠나고, 해변가에서 만난 여우와 돌고래는 비언어적 대화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지워나간다. 이 과정에서 출연진들은 다시 한번 막대기를 이용해 산과 배를 형상화하거나 태양, 비행기, 꽃, 무지개를 그리는 등 공간들을 몸으로 구현해낸다.
 작품 후반부로 접어들면 친구가 되기 위해 고래 또한 자신처럼 꼬리를 잘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우에게 고래는 묵직한 음성으로 함께 하는 것이 꼭 같아지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그제 서야 여우는 다름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품어질 자아 정체감을 획득한다.
 작품의 후반, 음악에 총성이 섞여 울린다. 마치 아직은 간극을 해소하는 꿈같은 일 따위 벌어지지 않는다는 듯, 적나라한 현실이 암시된다. 이별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여우는 돌고래에게 매달리고 엉겨 붙지만 고래는 여우를 (현실 같은) 무대 바깥으로 끌고 나가려고 할 뿐 이전처럼 받아주지 않는다. 놀이공원을 연상케 하는 음악과 대비되는 처절한 여우는 돌고래 위에 올라가 헤엄치고 몸짓의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돌고래는 이전처럼 받아주지 않은 채 멈춰있다. 곧 “아빠”라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리며 극은 마친다.




고블린파티 〈여우와 돌고래〉




 본 작품은 확실한 결말을 내포하고 있진 않지만, 산과 바다를 누비며 진정한 관계란 무엇이고 그것이 자아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드는지, 그 성장 과정을 몽환적이고도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그 성장이란 꼬리가 잘린 여우가 때로는 주변 여우들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막막하고도 외로운 고립 끝에 고래와의 소통을 통해 진정한 자기(self)를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감정 이입과는 또 달리, 진정한 공감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타자가 완전한 타자가 아니라 나의 일부를 지닌 기쁠 줄 알고 슬플 줄 아는 한낱 위태로운 인간임을 깨달은 적 있을 것이다. 즉 나를 통해 타자를 보고 타자를 통해 내 일부를 발견한다. 이것은 아무리 사회가 복잡하게 변화할지라도 자아의식은 사람들과의 접촉,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발현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작품의 주요 대상이 아동과 청소년으로 설정됐다는 점에서, 〈여우와 돌고래〉는 미래의 커뮤니케이션상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물결처럼, 미리부터 긍정적 여운을 남긴다. 누군가의 몸이 되어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은 4~5세 무렵 완성되는데 일찌감치 신체성의 의식을 통해 ‘나’와 ‘자기’의 감각을 공연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런 차원으로 서사를 살펴보면, 마지막에 이경구(혹은 여우)가 “아빠”를 외치는 장면은 다름과 간극이라는 소재와 언뜻 동떨어진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증가하는 한부모 가정의 추세를 반영해 그 누구도 소외될 필요 없는 예술의 속성을 강조한다면 좋겠다. 하지만 여전히 지속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버지란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심리적 차원으로 개연성을 찾는다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성인과 아동의 경계가 흐려지고 아동 또한 체화할 수 있는 스토리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연이은 연령 계층의 분화에도 불구하고 경계 없는 스토리와 콘텐츠 생산은 지속적으로 시도되는 추세이다. 이럴 때 춤만이 돋보일 수 있는 그 자체적 능력을 다해 향유 가능한 감각을 확장하는, 값진 시도로서 〈여우와 돌고래〉를 바라본다면 해석 가능한 여지가 많다는 춤의 긍정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더욱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개연성을 갖추길 바라는 마음이 불현듯 생긴다.
 또 고블린 파티는 〈여우와 돌고래〉 초연 이후 2019년에는 이경구가 국립현대무용단에서 〈루돌프〉를 안무, 어린이 대상 공연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사를 사용하면서 춤과 연극의 경계를 넘나들고 무대에 영상을 투영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이제 이경구의 체화된 스타일로 보인다. 가능성 충만한 〈여우와 돌고래〉 또한 고블린파티의 레퍼토리로 안착하기를 응원한다.

2021. 2.
사진제공_고블린파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