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Blue Poet D.T. 예효승 안무 〈I’m so tired〉
과한 장치에 압도당한 안무

 사람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노동 강도에만 달려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육체적 정신적 노력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결실과 대가가 합당하게 돌아오지 못한다고 느낄 때, 잠재된 피로는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극심한 실업률과 물가의 고공 행진 속에 대도시의 아주 작은 공간에 몸을 겨우 붙이고 사는 노동자들의 피로는 적체된 지 오래다.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정치도 그렇지만, 짐승처럼 제 살 길만 찾아 움직이는 거대한 자본의 움직임은 이미 인간의 손 밖을 벗어나 있다는 생각에 우리는 힘들다.
 예효승의 〈I’m so tired〉(12월 22-23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매우 이끌리는 제목을 가진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이 2013년 창작산실 우수작으로 선정되어 2년 만에 재공연 지원을 받아 무대에 오르는 동안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체감하는 현실은 더욱 나빠졌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대한민국 땅이 긍정적이고 건강한 사회로 탈바꿈하여 이 작품에 큰 의미를 걸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면 좋았으리라.
 공연 예술가들 역시 척박한 환경에서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으므로 보통 사람들이 겪는 피로를 모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흔히들 예술은 개혁은 할 수 없으나 위로는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다소 힘 빠지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한 말이다. 대신 현실의 압축이면서 또한 일탈이 되기도 하는 무대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장의 현실을 개선할 수는 없지만 한두 시간 동안만이라도 고단함을 잊을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 하고 또 그런 것을 보려는 욕구도 큰 편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이 시간이 쉬어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안무가의 친절한 메시지가 흘러나온 것은 그런 일반적인 욕구와 기대에 부응하려는 것 같았다. 3호선 버터플라이에 음악을 맡긴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2013년의 버전보다 이번 공연은 도시 노동자의 이미지, 단순화되고 반복적인 일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박스와 테이프 등의 소품으로 무대 공간은 물류창고를 연상시켰는데 검정색 플라스틱 박스와 회색을 주조로 한 의상들까지 통일된 색감을 연출하는데 신경 쓴 것으로 보인다.
 막이 오르면서 눈에 띈, 바닥에 정렬된 100여개의 플라스틱 박스는 이런저런 조립과 배열을 통해 도시 공간을 형상화하려는 의도였지만 아쉽게도 공연 리플렛에 적힌 ‘세계 각지에서 모인 국내 최고의 무용수들’의 출연이 무색할 만큼 패착이 되었다. 실력 있는 무용수 예효승의 작품이라면 기대할 만한 특색 있게 이렇다 할 안무가 없이 8명의 무용수들은 플라스틱 박스 사이를 행진하고 그것을 쌓았다 해체하고 나르고 다시 조립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냉정하게 말하면 70여분에 달하는 러닝 타임에서 족히 3분의 1 이상은 덜어내야 할 정도라 생각한다).
 그런 연출이 실제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만 발전 없이 소모될 뿐인 노동자들의 일상과 무기력감을 액면 그대로 보여주려는 데서 비롯되었다손 치더라도, 무대 위 무용수들은 등장의 의의를 갖지 못한 채 너무나 평이한 움직임에 그치거나 때때로 정지된 채 그저 머물고 있다고 느껴졌고 움직임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 비하면 과한 숫자가 올라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만약 이런 생각으로 경영자들이 노동자들을 밥 먹듯 쉽게 자르게 된다면, 의미 있는 역할을 부여하지 못하고 구조를 잘 짜지 못하는 경영자-작품에서는 안무가 내지는 연출자가 될 것이다-의 탓일지 노동자의 탓일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특히 한 개의 옷을 두고 서로 걸쳐 입는 장면에서의 부딪힘과 밀어내기는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해 연습하는 과정에서나 도출될 법한 진부한 것이었고, 테이프로 한 명의 무용수를 결박하는 장면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투적인 시도였다. 전반적으로, 이 작품을 소화하는데 무용수의 전문적인 움직임이 그리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안무의 측면에서 아쉬움이 컸다.




 시각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만, 특히 어떤 한 순간 좋아 보이는 그림- 박스 위에 앉거나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거나 고층빌딩처럼 쌓은 박스 뒤에 가려진 인간의 몸을 제시할 때 등-을 만드는 데만 신경을 썼다는 인상을 주었다. 박스로 세운 벽 앞에서 고독을 표현하기 위한 춤도 역광으로 실루엣이 다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과한 장치에 압도당해 안무가 빈곤하게 된 것은 예효승이 작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돌파해나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물론 현실을 그저 달콤하게 잊을 수 있는 한 시간짜리 사탕을 만들려고 하지 않은 것은 다행한 선택이지만, 안무가가 ‘피로’라는 개념에 너무 피상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닌지. 이런 방식으로는 위로나 격려, 진단도 성찰도 되지 못한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도 변죽만 울렸을 뿐, 작품과 겉돌았다.

2016. 01.
사진제공_Blue Poet D.T.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