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Body Concert’ 공연을 마치고
제2의 춤, 르네상스를 기대하며...
이태상_안무가

 

 나는 고등학교까지 부산에서 공부를 했다. 중앙대학교 입학이후 서울과 해외에서 약 21년간 활동해 오다 1년 6개월 전 신라대학교 디자인 예술대학 무용학과에 발령을 받고 본격적인 부산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번 공연은 부산으로 내려온 이후 두 번째 갖는 작품 발표였다.
 크고 작은 공연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 2015 ‘바디 콘서트’는 나에게는 좀 더 간절함이 더해진 무대였다. 지난해에 부산에서 처음 시작한 ‘바디 콘서트’는 공공 지원금을 받지 못해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공연을 강행했어야 했다. 하지만,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그나마 잘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올해는 부산문화재단의 지원금을 받게 되어 좀 더 구체적인 공연계획과 연습을 할 수 있었고 공연을 하고자하는 간절함 역시 더욱 강해졌다.
 이번 ‘바디 콘서트’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부조리와 모순을 각기 다른 이야기로 풀어낸 2개의 작품 <녹색개>와 <나방과 가야금>(Mens Ver.)으로 구성되어 있다. <녹색개>는 지난해 처음 초연한 작품이고, <나방과 가야금>(Mens Ver.)은 2008년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초연되어진 작품을 이번 기회에 남자 버전으로 그 패턴과 구성을 달리해 무대에 올렸다. 좀 더 다이나믹해지고 속도감과 에너지의 증폭이 강하게 변화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3년 전 폴란드 바르샤바 자비로바니아 댄스 페스티벌에서도 초청받아 공연 되어져 호평을 받은 작품이기도하다.

 



 <녹색개>를 연습시킨 후에 <나방과 가야금>을 연습할 때였다. 무용수의 허리는 늘 고질병으로 달고 다닌다고 하였던가? 2009년에 나는 허리 디스크 파열로 수술을 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연습도중 갑자기 쓰러지게 되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하였고, 모든 연습은 순간정지 되어 여러 무용수들의 애처롭고 걱정어린 눈빛을 느끼며 결국은 구급차에 실려 가야만했다. 119대원들은 학교 연습실까지 들것을 들고 들어와 나를 후송하여 응급실로 갔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그 순에도 나는 이번 공연이 어떻게 될지 걱정되며 헛웃음만 나왔다. 또 두려움 또한 함께 밀려왔다. 불과 열흘정도 공연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그렇게 입원을 해야만 했었다. 연습은 하지도, 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마음만 급해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 없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빨리 퇴원을 해야만 했고, 의사와 주변분 들은 입원을 좀 더 요청해 왔다. 난 관객과의 약속을 지켜야만 하는 책임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척추신경차단 수술을 하고 닷새 만에 연습에 복귀했다. 허리에 복대와 약을 수시로 먹어가며 연습을 해야만 했다.

 



 공연 당일 토요일. 엄청난 도로 정체와 억수같이 퍼붓는 폭우를 뚫고 많은 관객들이 우리를 찾아 주었다. 사실 공연 전 까지는 날씨가 너무 좋지 못한 관계로 관객이 많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할 때, 그제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 1, 2층의 객석이 꽉 차 있었다. 땀이 채 식지도 않은 채 로비로 달려가 오신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내 공연에 오신 모든 분들께 두 손을 꼭 잡고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어떤 일반관객은 “그동안 삶을 치열하게 살아오신 것 같다”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서 한동안 객석에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등등 고마운 반응을 전해주었다. 물론 좋은 말만 골라서 기분 좋게 이야기해주려는 배려(?)를 감안하고서 들은 것이지만---.
 이곳 부산에서도 좋은 작업들을 하고 있는 많은 젊은 무용가들이 있었다. 문제는 이들을 받쳐줄 수 있는 시스템이 조금 달라 보였다. 다른 시스템 때문에 젊은 예술가들이 부산을 떠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을 어떻게 하면 부산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지 부산의 예술가들과 문화재단이 진솔한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관객과의 소통을 위하여 모인 스태프들은 작품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식이 좀 더 필요해 보였고, 이들과 함께 부산 예술계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고 싶다. 지난해는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태프와 함께 일을 했었고 나는 최선을 다하였다.
 이번 ‘바디 콘서트’는 브뤼겔의 회화처럼 존재의 이유를 망각한 채 우스꽝스러움으로 가득 찬 우리 인간들의 삶에 대한 풍자를 무용작품으로 담아내려 고민하면서 평소 함께 일하던 서울의 스태프들과 작업하였다. 당연히 여기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고 재원 또한 더 소비되었다.

 



 그렇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많은 고마운 힘이 있었다. 늘 함께 하였던 제자이자 후배들이 내 주변에서 잘 버텨주었다. 나를 어려워하면서도 늘 연습실에서 최선을 다하고 진지함을 보이는 우리 제자들과 서울과 부산을 매주 오가며 즐겁게 그리고 힘들게 연습해준 무용수들과 스태프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여러 차례 공연되어진 작품이지만, 이 작품을 또 다시 공연할 기회가 있다면 해외의 무용수와 함께 해보고 싶다. 어떤 이들이든 어떤 세계이든 다른 문화와 또 다른 색깔을 가진 무용수와 함께 나방과 가야금처럼 삶에 대한 인간의 외로움을 희화적인 연출과 위트 있는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싶다.

 

4월 27일 월요일
신라대학교 인문관 315호에서
이태상

 

2015.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