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박경랑 〈심중소회〉
경계없이 과용된 굿
방희망_춤비평가

 영남교방청춤을 알려오고 있는 무용가 박경랑이 올해는 〈심중소회(心中所懷)〉라 제목의 공연을 올렸다(2월 18일, 국립극장 KB하늘극장).
 평자는 한 번도 그의 공연을 본 적이 없었지만, 과거 공연 이력을 살펴보면 전통춤 영역에서는 드물게 시와 음악을 한 데 엮어 어떤 콘셉트를 잡고 연출을 해왔다는 점이 특이하고 또 그의 교방춤에 대한 평이 대체로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사뭇 기대를 안고 관람하게 되었다.
 선비와 기생 역을 담당한 이들이 무대 가장자리에 술상을 두고 앉은 가운데, 변진심의 시조창 〈녹수청산 깊은 골에〉, 〈매화가〉와 최영희의 춤이 어우러지면서 이 공연의 프롤로그 역할을 해내었다. 이때만 해도 교방춤으로 이름을 알린 박경랑의 특색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무대라고 생각하였다.


 



 이어진 본무대 첫 번째 순서에서는 김소월의 〈초혼〉을 바탕으로 안중근 의사와 춘사 나운규, 최승희 세 사람의 혼백을 위로하는 무대를 꾸몄다. 일제시대 인물이었다는 점을 제외하고 공통점이 별로 없어 보이는 세 사람을 엮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음악을 맡은 그룹 ‘바라지’가 특기로 하는 진도씻김굿 시나위 소리에, <신칼대신무>와 남해안별신굿의 <용선춤>까지 혼합시키고 거기에다 무궁화를 든 어머니 강습생들의 군무까지 얽혀진 다소 산만한 구성이었다.
 양쪽에 술을 단 신칼의 부피를 비교적 잘 통제하는 박경랑의 날렵한 움직임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초혼 대상자들을 영웅시하여 막연하게 애국심에 호소하는 연출, 무용수들이 등에 걸고 나왔던 초상이 프린트된 천들이 바닥에 떨어져 구겨진 모습은 차라리 초혼의식을 아니함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누구를 초혼의 대상으로 삼고 어떤 방식으로 연출하던지 그것은 예술가의 자유라 할 수 있지만, 그럴만한 연고 없이 또 대상에 대한 진중한 접근 없이 가볍게 처리되는 초혼의식은 오히려 망자를 욕되게 할 수도 있다.


 



 조지훈의 ‘승무’를 주제로 가져왔다는 두 번째 춤판은, 앞무대와 같은 콘셉트로 태극기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듯한 의상에 장삼의 양쪽을 각각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물들여 포인트를 주었다. 박경랑의 <승무>는 느리고 깊은 호흡의 번뇌는 생략된 것이었다. 바라지의 음악 〈비손〉을 주조로, 욕망으로 달그락거리는 마음을 무조건 타인의 안녕과 복을 열심히 기원하는 것으로 덮어버리려는 듯 휘몰아치는 춤이 되었다. 박경랑의, 장삼을 뿌리고 거두어들이는 몸짓의 야무진 매무새는 눈여겨볼 만했다. 그러나 <승무>의 장중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처음부터 아예 새로운 노선의 <승무>로 가기로 정한 것이었다면, 굳이 이미지가 강한 조지훈의 시를 언급할 필요는 없었을 듯하다.


 



 세 번째 춤판에서는 바라지의 <무취타(巫吹打)〉로 시작, 후에 박경랑이 징, 바라, 소고, 장구 등의 악기를 번갈아 들고 춤을 추었다. 앞 무대도 표면에 다른 옷을 입혔을 뿐 본질은 굿에 두었다고 느껴졌기에 굿판인 이 무대가 어쩌면 진짜 박경랑의 ‘심중소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징을 세워두고 어르는 퍼포먼스는 굿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진도씻김굿의 축원에 북청사자놀음(거기에 창작으로 꼽추춤이 들어갔다)을 이어붙인 2부에서는 대보름을 앞두고 액막이를 하면서 객석에 바구니를 돌려 헌금을 유도하기도 했다. 재수 좋다는데 인정상 만 원짜리 한두 장 바구니에 넣고 받는 것은 어르신 세대에 별로 어렵고 낯선 일은 아닐 수 있겠지만, 애초에 굿을 하는 것으로 약속된 것도 아닌 서울 한복판 공연장에서 벌어지는 풍경으로 과히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우리 민속예술의 자산에 굿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렇게 경계 없이 과용되어도 괜찮은 것인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교방춤을 본령으로 삼아온 박경랑이 왜 이번 공연에 내리 춤판이라기보다 굿판을 펼친 것일까. 바라지의 단독 콘서트 프로그램이라 불려도 무방할 만큼 그네들의 음악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춤은 주인공이 되지 못하였다. 협연자를 바라지로 정하면서 춤의 구성이 거기에 따라간 것 같은데, 음악을 휘어잡을 만큼 춤의 기운과 배포가 부족한 것이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창의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잡탕처럼 뒤섞은 춤과 놀이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번 공연장에서 목격한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보존회 전국지회들의 숫자와 관객 동원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잡다하게 한 상 푸짐히 차려 흥겨운 분위기로 밀어붙이는 것이 관객을 즐겁게 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지만, 이런 형태의 공연은 자칫 근본 없는 양식을 양산해내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

2016. 0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