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계룡산국제춤축제 & 대전뉴댄스국제페스티벌
20년 넘는 경험으로 올려세운 중부권 국제춤축제
김혜라_춤비평가

10월은 축제의 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계적 일상회복 시기를 앞둔 10월이지만 어느 정도 방역지침의 노하우를 갖춘 축제와 극장은 그간 숨을 고르던 공연의 포문을 활짝 열었다. 서울만이 아니라 지역의 여러 춤축제도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관람자 입장에서는 매일 골라 봐야 하는 판이다. 특히 중부권인 충남 공주와 대전에서 20년 넘게 어려움을 이겨내며 그 기틀을 다진 두 축제로서 26회를 맞은 ‘계룡산국제춤축제’와 20회째인 ‘대전 뉴댄스국제페스티벌’을 살펴보았다. 계룡산국제춤축제를 기획한 엄정자 총감독과 연출한 박일규 예술감독, 대전뉴댄스국제페스티벌을 기획하는 곽영은 메타댄스프로젝트 대표와 인터뷰를 통해 축제가 시작된 계기와 과정 그리고 향후 방향성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


수행(修行)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한 ‘계룡산 국제 춤축제’




  

신원사 마당 앞 사진전 ⓒ김혜라




‘계룡산국제춤축제’(10월 17일)가 열리는 공주시 신원사로 가는 길은 충청 지역의 젖줄인 금강을 지나 굽이굽이 좁은 시골길을 지나야 했다. 삼국사기에도 기록된 5대 명산 중의 한 곳인 계룡산의 기운과 아직도 누렇게 고개 숙인 벼들로 가득한 논길을 지나가며 그 운치에 일상의 번잡이 잠시 동안 잊혀졌다. 축제의 주제인 ‘空emptiness 無常impermanence’이라는 의미가 현장을 찾아가는 길목에서부터 마주한 듯한 인상이었다. 신원사에 도착하자 눈에 띄는 것은 석탑 근처와 절 마당 곳곳에 놓인 춤꾼들의 사진전과 드로잉 전시였다. 전년도 춤꾼들의 흔적을 사진과 드로잉 작업으로 묘사한 전시는 홀연히 춤추고 덧없이 사라진 춤꾼들의 무상(無常)을 환기시킨다. 뿐만이 아니라 축제 한 달 전부터 공주문화원 초대전 〈10명의 작가가 담아낸 계룡산국제춤축제〉(9.13~16.공주문화원 전시실)가 열렸으니 전년도 춤축제와 오늘의 축제를 잇는 징검다리 같아 보였다.




  

신원사 마당 앞 드로잉 전시 ⓒ김혜라




계룡산국제춤축제는 관객이 참여하는 이머시브(immersive)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왕실의 기도처인 중악단(조선 시대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유일하게 남은 유적지)이 있는 신원사의 영기와 역사성(백제 의자왕 11년, 651년 창건) 그리고 불교 수행의 과정을 결합한 축제 성격을 갖추고 있다. 다시 말해 단순히 보는 공연을 넘어 관객들과 사찰의 여러 곳을 함께 걸으며 각자의 번뇌를 떨쳐내는 과정 중심에 방점을 두었다. 엄정자 총감독은 춤이 주축이지만 인접 예술 장르까지 통섭하며 ‘계룡산’에서의 자연친화적인 야외 공연의 기틀을 26년간 단단히 하였고, 3년 전부터 박일규 예술감독을 초빙하여 축제는 지역의 춤축제에서 국제 춤축제로 확장되었다. 무엇보다 박 감독은 엄정자 총감독의 자연중심 예술축제에서 수행중심 예술축제로 심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축제 현장을 간단히 들여다본다.




  

박수정의 캘리그라피 ⓒ신성호,  사회를 보는 박일규 감독과 소원을 적는 관객 ⓒ김혜라




박수정 캘리그라피 작가는 타종 소리와 함께 무명천에 ‘무상無常’을 쓰며 축제의 서막을 기원한다. 제례 형식의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그녀는 신과 고행길을 연결시키는 매개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매 순서마다 작품의 의미와 과정을 안내하는 박일규 감독은 본 공연이 사성제(고·집·멸·도성제)와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 관객들이 쉼의 시간이 되길 독려한다. 신원사 길목마다 놓인 무명천 길을 함께 걸으며 중악단에서 엄정자 감독의 〈명성황후, 뜰을 거닐다〉 작품을 만나게 된다. 중악단 법당에서 걸어 나오는 엄정자 감독은 명성황후가 겪은 고통과 절규를 표현하며 왕후의 영혼만은 이 기도처에서 안식하기를 기원하는 춤을 춘다. 중악단은 고종 16년 명성황후가 외세침탈과 내정불안을 걱정하며 기도하는 산신각으로 재건립하였으니 이곳에서 명성황후의 명복을 비는 춤이 적절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 음악은 작곡 배경이 잘 알려진 바로 격정적인 춤곡을 이 작품에 선택한 의도가 의외였다.




  

캘리그라피 한 길을 걷는 관객들 ⓒ김혜라, 엄정자 〈명성황후, 뜰을 거닐다〉 ⓒ신성호



  

제임스전 〈바람처럼...Like the Wind〉 ⓒ신성호




다 같이 포대화상으로 이동하면 제임스전과 정운식의 〈바람처럼... Like the Wind〉이란 춤이 시작된다. 제법 찬바람이 부는 날씨의 영향도 있고 두 댄서의 자전적 삶이 투영되어 때론 산들바람처럼 때론 거친 바람처럼 다가온다. 작품에 사용된 곡(피아노 협주곡 5번〈황제〉중 2악장)도 베토벤의 귓병이 악화된 시기에 작곡된 역작으로 그의 시련과도 중첩되어 더욱 두 댄서의 춤이 심도 있게 보였다. 무엇보다 백발의 제임스전 춤은 언제 봐도 최선을 다해 춤추는 춤꾼의 모범이 된다. 제임스전과 정운식의 나이든 몸과 주름도 바람 같은 세월을 살아낸 흔적으로 자연 속에 융화되는 춤이었다.




  

안지석 〈제주의 악과 무!〉, 신용구 행위예술 〈2021. 바람을 안고 가다〉 ⓒ신성호




포상와대 옆에서 들려오는 구성진 소리에 발길을 이동한다. 천수관음전의 문턱과 문 자락에서 쉽사리 발을 내딛지 못하는 춤꾼 안지석의 눈빛과 몸짓은 중의적이다. 중생들의 고통을 들어주는 관세음보살 같기도 하고, 덧없는 세상을 간파한 중생이 추는 허튼춤 같기도 하다. 번뇌를 떨쳐낸 듯 안지석의 춤은 “꿈이로다~” 소리자락에 따라 돌바닥에 누우며 끝을 맺는데 이 축제의 ‘무아, 공’ 주제와 가장 적합한 춤으로 인상적이었다. 이어지는 신용구도 인생의 무게를 떨쳐내는 퍼포먼스로 바람에 내재한 상징성을 조각배, 한지 길, 실타래를 통해 한 올 한 올 풀어내었다. 유한한 것들의 덜어냄 내지는 비어냄이라는 일련의 퍼포먼스도 축제 방향성에 적절하였다. 서 있기만 해도 춤이 될 연륜을 갖춘 배정혜의 〈율곡〉은 80 가까운 나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의연하고 무엇이든 품을 수 있는 여유로운 춤이었다. 남창 가곡에 맞춰 느리게 움직이지만 그 느림 속에 땅의 기운과 바람과 공기를 끌어안은 에너지의 흐름(汩)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배정혜 〈율곡(汩曲)〉 ⓒ신성호




코로나 상황으로 파키스탄, 중국, 인도네시아, 러시아 참가자들은 신원사 대웅전 마당에 놓인 대형스크린에 줌(zoom)으로 연결되어 자국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이들의 춤은 다소 축제의 방향성과는 다른 모습이어서 참여 자체에 목적을 둔 공연이라 생각되었다. 첩첩이 쌓인 이런 계룡산 자락에서 열리는 춤축제가 26년이란 세월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위적인 것을 최소화하며 가장 본질적인 인간 몸짓의 고귀함을 모시는 마음으로 여겨지며, 자연과 합일(合一)하려는 축제의 방향성을 고수한 신념의 결과일 것이다.


엄정자 총감독 인터뷰
김혜라: 계룡산에서 26년간 축제를 열었다. 이곳에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
엄정자: 제가 1987년 서울 대학로 동숭동 거리에서 춤을 추고 다녔다. 그 당시 종로구청장이 동숭동 거리 운영위원으로 오라 할 정도였다. 1994년 대전 대덕대에 부임하면서 공주에 정신질환 범죄자들이 수용된 치료감호소에 일주일에 한 번 봉사를 몇 년 다녔다. 그 치료소를 가려면 계룡산을 지나가야 하는데 산길을 다니며 산의 정기에 반해 이곳에서 춤을 올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신중하게 시작했다.

첫 출발은 어떠했나.
처음에는 제자들과 들꽃과 바람에 관한 〈싸리꽃 이미지〉란 30분짜리 작품을 했다. 무대가 없어 마당에서 춤을 췄는데 당시 대전에서 무용하는 분들이 “상스럽게 마당에서 춤을 추느냐”고 뒷말이 많았다. 그래도 나는 87년부터 이미 거리에서 춤추고 다녔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해를 거듭했다. 2회 때는 발레와 현대무용도 함께했고 점차 축제에 서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제가 평상심을 잃을 정도로 아무나 세우지 않았고 ‘자연의 에너지를 활용’할 줄 아는 분만 모셨다. 심지어 몇 년째 당신을 세워달라고 요청을 해온 분도 있었고, 어떤 분을 세우면 고액의 운영비가 마련되는 것도 알았지만 거절했다. 힘들지만 철저하게 지켜온 철칙이다. 지방 축제를 가면 시끄러운 품바가 난무하는 장사판 축제가 많지 않느냐. 이 축제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지역의 품격 있는 춤축제로 만들려고 타협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10월 셋째주에 축제를 하는데 이시기는 등산철이라 우리가 공연하려고 소품 차를 운행하면 등산객과 산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새벽에 인적이 없을 때 공연 소품을 미리 옮겨 놓고 출연진은 모두 공연장에 걸어가게 했다. 그러니까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에너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축제를 이끌어 왔다.

축제에 참여하신 분들은 누구신가.
6회 때는 진도북춤을 추신 박병천 선생님을 모셨다. 제 스승이기도 하시고 적은 개런티로 함께 해 주셨다. 사실 한량이시라 개런티보다 선생님 술값이 더 들어갔다. 대전권에서는 임현선 교수가 단골로 오셨고 일본의 다케이씨가 자기 악단을 데리고 와서 울림 있는 공연을 했다. 인간문화재인 서산박첨지놀이, 케서린 조세프 등 장광열 선생이 연결시켜 주셨다. 김매자 선생도 4번이나 오셨고, 고 한상근, 고 김선미, 윤덕경, 남정호, 김용철, 남수정, 최지연, 최경실, 박봉준, 김동연, 문진수, 법우 스님, 오진숙, 문치빈 등 수준 있는 분들을 모셨다. 더불어 인접 장르인 사진, 미술, 시낭송 등 이 축제에 뜻을 같이 하시는 분을 동참시켜 왔다.




엄정자 총감독, 김혜라




미술장르와 융합하는 방식도 타 축제와의 차별성으로 춤이 주인공이 되어 타 장르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 일례로 작년 공연한 춤의 모습을 스케치한 전시가 상당히 설득력 있고 인상적이다.
잘 보셨다. 춤이 중심이되 인접 장르로 풍성하게 하려 했다. 사진은 2회 때부터 같이 했고, 드로잉은 11년 되었다. 도자기에 춤 몸짓을 그려서 전시하기도 했고 공주문화원 전시실에서 제가 춤을 추면 바로 드로잉해서 전시 및 판매도 했다. 나름 모든 것을 쏟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나 그 이상으로 발전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제가 1992년 춤의 해 때 박일규 교수님과 함께 공연하며 맺은 인연으로 총연출 감독으로 모시게 되었다. 박교수와 저는 일년 내내 축제와 관련해 맨날 카톡을 할 정도이니 우리 둘의 열정과 합이 잘 맞는 것 같다. 박교수가 축제수준을 높여주셨다.

그간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저는 프로그램 수준을 높이며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3회 때부터 받은 예산 2백이 해를 거듭해도 제자리였다. 제 교수 1년 월급을 쏟아붓고도 19회까지도 예산이 오백오십 정도였으니... 힘들었다. 19년이 지나고 공주 관내 이장님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했고, 운영위원회가 구성되어 20회 때부터 예산이 조금 오르면서 나아졌다. 아직도 마이너스다.(웃음) 우리 축제가 이 지역에서는 수준급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도 공주시장님과 관내 주요 인사분들이 다녀가셨으니 내년부터는 예산이 늘 것으로 기대한다.

내년에는 어떤 계획이 있는가.
축제를 꾸준히 지켜보시던 충남대학교 미술학과 오치규 교수가 미술파트를 전담할 계획이고, 10명의 작가가 축제 한 달 전 전시를 할 것이며, 도예 파트도 따로 분리시켜 진행할 예정이다. 이태묵 공주문화연구소 소장이 토크쇼(공주 공산성에서 이창동 감독과 같은 인물들을 모시고 하는 인문학 행사)를 주최했는데 우리 축제와 연결시켜 춤과 관련된 토크쇼도 모색 중이다. 그리고 신원사에서는 매해 추모제를 10월 둘째 주에 하는데 제가 해마다 가서 춤을 췄다. 그곳이 명성황후가 세운 제단이고 저도 명성황후 레퍼토리를 예술적으로 심화시켜 추모제와 축제를 연계시키려 한다. 계룡산의 중심인 중악단에서 시작해 동학사와 갑사로 이 지역의 유서 깊고 아름다운 산에서 펼칠 계획이다. 그러면 제가 꿈꾸던 예술 장르가 집결된 국제 춤축제에 더 가까워질 것 같다.


박일규 예술감독 인터뷰
김혜라: 2019년에 계룡산 국제춤축제 예술감독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박일규: 제가 1992년 춤의 해 때 초점을 둔 것이 전국순회공연이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 48개 해수욕장을 돌아다니면서 야외 공연을 시작했다. 그게 아마도 우리나라 야외 춤공연의 효시였을 것이다. 그 당시 현대무용만이 아니라 발레, 한국무용 모두 극장 안에 갇혀 있는 춤이었다. 극장에 사람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찾아가는 공연을 하며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춤은 어렵고 고급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에 대중화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중들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춤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후로 1994년에 세계무용연맹을 만들고 나서 여러 이유로 춤계에서 활동을 끊었었다. 아마도 계속했으면 여러 시도를 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엄정자 선생이 꾸준히 축제를 하고 있다고 연락을 하며 도움 요청을 했다. 하여 저도 정년퇴임 후 공주에서 축제를 보니 단체들만 초청해서 콜라주 식으로 엮는 축제는 별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야외 공연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다. 이미 처음부터 계룡산이라는 거대 자연 속에서 출발한 축제이니 만큼 신의 공간이자 인간이 만나는 공간의 주제를 부각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제를 부각시켰나.
3년간 ‘신들의 산’ ‘한국의 산’이란 주제로 해왔다. 첫해부터 신에 대한 접근, 만남으로 시작했다. 6팀의 외국팀들도 3분여의 신에 대한 제의와 관련된 작품을 요청했고, 한국팀들도 동일한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공연했다.




박일규 예술감독, 김혜라 ⓒ신성호




지역의 춤축제를 국제 춤축제로 확장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춤이 비록 전통춤이라 해도 국제화로 그 의미가 빛난다고 생각한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가장 놀라웠던 점은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2달 동안 가부키 공연이 매진이었다. 베이징오페라가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과 중국의 전통춤은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데 한국춤은 그 당시 아무것도 없었다. 혹 한국춤이 공연을 해도 백화점식으로 공연물을 구성해서 교류하는 정도밖에 안 되었다. 그래서 춤의 해 때 예산 10억을 가지고 제대로 된 춤을 만들어 교류하려고 노력했었다. 적어도 주제가 있는 축제는 외국팀과 교류가 용이하다. 비용 측면에서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교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시도하고 있다.
 제가 그동안 무용계에서 활동을 안 하고 있는 동안 세계적인 교류를 활발히 하신 국제즉흥춤축제 장광열 감독과 서울세계무용축제 이종호 감독이 도와주고 있다. 작게라도 교류를 지속하며 춤의 본질을 찾아 나가다 보면 나아질 거라 믿고 하고 있다. 춤 형식도 구태의연하게 하기보단 오늘 본 것과 같이 이머시브 방식으로 하면서 메타버스도 도입하고 보다 더 영상을 사용해서 글로벌하게 하려고 한다.

자연 자체가 무대가 된 공간에서 신과 자연, 자연과 인간관계를 되새기는 수행적 접근이 타 야외 공연과의 차별점이 아닐까 싶다. 홍신자 선생의 안성 죽산국제예술제와 방향성이 닮아 보인다.
적어도 사람들이 와서 춤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이라도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춤축제 야외 공연은 그냥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공모방식과 극장공연이 야외로 이동된 공연형태라고 해야 할까.

저도 축제 과정마다 함께 여러 공간을 따라 걸으며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단순히 축제가 공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내면의 무언가를 건드리는 ‘판’이라는 생각도 잠시 하게 되었다.
동감이고 잘 참여하셨다.

그런데 오늘 영상으로 참여한 해외팀들의 작품 주제는 축제가 지향하는 바와 조금 맞지 않았다.
오늘 것은 잘 맞는 작품은 아니다. 주제에 맞는 작품을 요청하려면 예산이 필요하다. 오늘 본 파키스탄 Bina Jawward 카탁팀과는 3년째 교류하며 유대감을 쌓고 있다. 더불어 파키스탄과 인도는 신의 나라이지 않은가. 그래서 예산만 확보되면 주제에 맞는 작품을 요청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제가 메타버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앞으로 미래의 자연은 파괴되고 인류가 더 이상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에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메타버스로 가면 우리가 원하는 자연과 세상을 만들 수 있긴 하다. 그러한 미래의 메타버스 속에서 살고 싶은 세상과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연결시켜 예술가들이 모여 작업하면 큰 힘과 메시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덩어리를 살리기 위해서 또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려는 예술가 집단이 축제를 통해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고 있다. Lin Jiaxi 중국팀도 한국에서 공부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 중국의 선구자 격이 될 만하다. 1988년에 아메리카댄스 페스티벌에서 저와 같이 안무한 인도네시아 사르노도 친구와도 그곳의 신의 세계에 접근해 있는 예술가들과 지속적으로 함께할 것이다. 그러하면 한국에서 ‘국제’라는 명칭으로 하는 춤축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펼쳐질 것으로 예상한다. 여기가 계룡산이지 않은가.

계룡산 자연이 터전이 되어 신과 연계된 주제가 명확한 축제를 만들겠다는 방향성으로 이해된다. 더불어 해외팀과도 주제에 적합한 작업으로 동참하게 해 국적만 다양한 외형적인 국제축제가 아니라 내실 있는 국제 춤축제로 심화시키고자 하는 것인가.
그렇다. 내가 여기를 떠나지 않는 이상은 그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산속에서 스님들이 수행하듯이 우리는 축제를 통해서 수행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코로나 이전에 동학사에서 했었는데 그때는 관객들이 500명이 넘었다. 계절이 좋은 시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나?
행정적 어려움도 있고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 이런 부분은 엄정자 총감독이 애쓰고 있다.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해외 팀을 섭외하는 일이다. 아시아 쪽은 어느 정도 있는데... 미국이나 유럽 쪽의 연결고리가 아쉬운 상황이다. 예전에는 스텝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오늘 공연을 보니 원숙한 장년과 노년 댄서들의 춤이 축제의 컨셉과도 잘 맞고 좋았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벌써 내년 것을 구상하고 있고 몇 군데는 섭외가 된 상태다. 내년에는 연기론(緣起論)에 대해서 할 예정인데 죽음과 환생에 관한 것이다. 또한 실내와 실외에서 이머시브로 심화시켜서 하고 싶다. 앞으로 10년만 지속하면 제가 계획한 그림이 그려질 것 같다.

오늘 축제의 성격으로 볼 때 감독은 불교신자이신가.
나는 불교라는 종교적인 믿음은 사실은 없다. 그러나 부처가 갔던 길은 따라가고 싶고 그것을 수행하고 싶다. 왜냐하면 예술이 이런 활동을 하지 않으면 인간을 구제할 길이 없다. 모든 것이 인간을 파멸시키는 길로 가고 있다. 인간도 인간을 파멸시키고 있고 종교조차도 권력화 집단화되어 있지 않은가. 사찰도 돈으로 칠해져 있다. 이런 세상에서 저는 예술만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하며 본질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제가 발리에서 느낀 점은 인구의 90%가 새벽과 밤마다 기도와 참회로 자기 삶을 정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단하지 않은가. 오늘 여기 다녀간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이 축제와 공연의 목적이 이뤄진 것이 아닌가 싶다.

계룡산 국제 춤축제가 수행과 치유의 길을 자처하는 플랫폼으로 그 역할과 희망이 이뤄지길 바란다.







젊은 창작자들에게 기회의 자리를 열다, ‘대전뉴댄스국제페스티벌’

계룡산국제춤축제가 자연친화의 수행 중심의 축제라면, 올해 20회를 맞은 ‘대전뉴댄스국제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혈기와 열정으로 가득한 젊은 현대춤 안무가들을 대전 지역에서 키워낸 터전이다. 서울보다 기회가 적은 대전 지역 젊은 창작자들의 목마름을 채워줄 비전으로 시작된 축제는 중부권만이 아니라 전국 모든 장르 창작자들에게 도전의 장으로서 기틀을 마련하였다. 코로나 여파가 무색할 정도로 거의 한 달여 간(9. 25. ~ 10. 23.)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축제는 20년간의 경험과 노력이 축적된 결과로 보인다. 필자가 참관한 ‘차세대 안무가 공모전’(9. 29. 대전예술가의집)에서 본 안무가들의 기량도 평균치를 넘었고, 무엇보다 그들의 안무가 현학적 사유나 추상적 모호함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해낼 주제로 접근해 허황되지 않아 좋았다. 축제 과정에 관한 여러 이야기는 그간 이 축제를 총괄 기획한 곽영은 메타댄스프로젝트 대표에게 듣는 시간을 가졌다.




곽영은 대표, 김혜라




김혜라: 대전뉴댄스국제페스티발을 소개하면.
곽영은: 대전뉴댄스국제페스티벌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안무가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한계감을 느끼고 그들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충청권에 있는 젊은 안무가들로 시작해서 중부 인근 지역으로 확장하여 언젠가부터는 전국의 젊은 안무가들이 올 수 있는 페스티벌이 되었다. 이외에도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안무가들의 초청공연 및 해외안무가 초청공연, 그리고 안무가들의 좌담, 워크숍, 일반인 참여 부대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하며 중부지역의 대표적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특히 차세대 안무가들에게 공연 기회를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해외 페스티벌과의 MOU체결을 통해 젊은 안무가들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연결의 역할이 되어 국제교류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공모 참여는 어떠하며 선정이 되는 인원과 혜택은 무엇인가.
매년 20~30팀 안쪽으로 참여하고 8팀을 선정하여 소정의 작품제작비를 지원하고, 무대, 조명, 영상, 사진 등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중 우수 작품들은 상금도 주고 뉴욕 덤보댄스 페스티벌, 디트로이트시티 댄스 페스티벌, 멕시코 La Serpiente 페스티벌과 연계시켜 내보낸다. 2016년부터 세 곳의 축제와 꾸준히 교류하여 저희 페스티벌을 통해 안무가들이 해외 활동을 하였고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비대면으로 교류하고 있다.

20년간 진행하면서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나?
20년 동안 많은 안무가들이 참여했고 페스티벌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특히 초창기 페스티벌에 참여한 안무가 중에는 현재 피핑톰무용단원으로 활동하는 정훈목씨와 국내외에서 많은 작품 활동을 하는 밝넝쿨씨 등이 대표적 창작자들이다.

20년간 축제를 지속하며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이다.
20회를 진행해오면서 현재처럼 페스티벌을 크게 열 수 있었던 건 2015년 14회부터 제대로 된 지원금을 받게 되면서 공연장에서 공연할 수 있었다. 그전에는 야외무대 또는 소극장에서 ‘차세대 안무가전’ 한 가지 프로그램으로만 했었다. 그때는 대전시 기금지원으로 소극장에서 했었고 이후 아예 지원금을 받지 못했던 시절에는 야외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직접 참여자들을 섭외해서 진행했는데 많을 때는 8팀이 공연하기도 했지만 초창기에는 안무자들에게 지원해줄 여건이 아니었다. 이런 시간들이 인정받으면서 14회 때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금을 받기 시작, 페스티벌을 확장할 수 있었고 기획팀도 들어오면서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초창기에 페스티벌을 만드셨던 최성옥 예술감독께서 어떻게든 이 페스티벌을 이어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직접 사비를 들이거나, 야외공연장이라도 마련하여 젊은 안무가들이 설 무대를 갖게 되었다.

최성옥 예술감독이 충남대에서 후학을 양성하시니 제자들의 자립을 위한 발판으로 유지시킬 수밖에 없었겠다.
그렇다. 당시 주어진 상황 안에서 해보려 노력했고 예산문제 외에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지금은 참여도 많이 해주고 지역에서 오랜 기간 유지해 온 페스티벌이라 주위에서 응원도 많이 해준다.

올해 프로그램 구성을 보니 기간이 한 달여나 된다.
대면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기간은 8일이지만 온라인으로도 페스티벌을 진행하여 업로드되는 기간까지 포함되어서 기간이 그렇다.

젊은 창작자에게 집약된 프로그램 구성이다. 이 페스티벌은 젊은 인재 양성만이 목적인가.
초청공연이나 부대행사 등 프로그램이 다양한데 그 중 중점적인 프로그램은 차세대안무가공모전이다. 지역의 젊은 신진 안무가를 키우자는 초심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초청공연의 경우에는 중견 안무가들의 작품도 선보이곤 했었는데 작년부터는 이전과 다르게 호평을 받는 30~40대 안무가들을 초청했다. 상을 받은 안무가들은 해외만이 아니라 국내 무대로 연결시켜 줄 방법으로 후년도 초청공연에 세운다. 이들과 서로 간 교류를 위해서 인정받는 안무가들의 작품을 주축으로 초청해 매칭시키고자 한다.

프로그램을 보니 ‘차세대 안무가들의 좌담’이 있던데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친구들의 고민과 이슈가 궁금하다.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안무가의 여러 지역적 상황을 공유한다. 매회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는데 예를 들어 ‘국제무대 진출 방안’ ‘지원금 받는 방법이나 생계형 무용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등 젊은이들의 고충과 작품을 향한 열정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매회 기록을 통해 매거진에 싣기도 하고 올해는 ‘코로나 시대에 대처하는 안무가들의 자세’라는 주제로 진행하였다.

‘차세대 안무가 공모전’과 ‘나도 차세대 안무가’ 프로그램 차이가 무엇인가.
‘나도 차세대 안무가’는 올해 새로 만든 프로그램으로 현재 대학생들이 직접 만든 작품으로 설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는 프로이다. 6팀이 지원을 했는데 대학생들의 사고가 생각보다 굉장히 신선했다. 이 중 2팀의 우수작품을 선정했고 향후 4년 이내에 ‘차세대 안무가 공모전’에 프리패스 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식으로 지속적인 연계를 시킨다.




김용흠 〈파동〉 ⓒ대전뉴댄스국제페스티벌



김종신 〈기생〉 ⓒ대전뉴댄스국제페스티벌




공모전에서 누가 상을 탔으며 ‘방구석 힐링댄스’는 무엇인가.
〈파동〉을 안무한 김용흠과 〈기생〉을 안무한 김종신이 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 ‘방구석 힐링댄스’는 일반인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댄스이다. 춤의 학교로 오랜 기간 일반인들과 호흡을 맞춰 오신 최보결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일반인을 모집해서 진행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대전의 명동이라 불리는 은행동 문화의 거리에서 일반인들과 함께하였는데 올해는 ZOOM을 통해 비대면으로 진행하였고 유튜브에 상영된다.

페스티벌 준비 기간은 얼마나 되나.
저희 기획팀이 10명인데 이 페스티벌을 위해 일시적으로 꾸려지는 팀이다. 매년 같은 역할을 맡고 있으며 페스티벌을 위해 3~4개월은 집중적으로 일을 하고 1년 전부터 해외초청 팀 섭외를 한다. 이번 해외 공연 팀은 저희 기획단원들이 sns나 유튜브를 통해 외국작품을 직접 섭외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해외 강연은 독일 출신 아힘 프라이어가 해주셨는데 나이가 80이 넘으셨다. 국내에서는 국립극단에서 〈수궁가〉를 총연출하였고, 2018년에는 〈니벨룽의 반지〉를 아시아 버전으로 제작하여 국내에서 공연하신 분이다.
 최근에는 ‘차세대 안무가 공모전’의 경우 작품의 범위를 현대무용이 아니라 창작작품으로 장르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런데 아직 현대무용 페스티벌로 인식해 한국무용 지원자들이 참여를 안 한다. 올해는 대구에 있는 한국무용 전공 친구들이 지원했다.

당연하다. 장르의 구분은 폐지되어야 한다. 내년에도 유사한 형식으로 진행되는지?
올해는 예산문제로 무산되었지만 대전이라는 키워드와 연결해서 대전출신 현대무용가 3남매(정수동, 진아, 건)의 공동작품을 내년에는 꼭 진행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대전뉴댄스국제페스티벌의 비전을 말해 달라.
지역을 활성화하는 축제로서의 의미와 각 지역의 신진 안무가들에게 세대를 이을 발판을 마련해주는 의미가 가장 큰 것 같다. 그리고 꼭 서울을 거치지 않더라도 국제무대로 진출할 매칭의 역할로 페스티벌이 갖는 의미도 크다고 본다. 이러한 방향성을 지키는 비전을 갖고 열심히 하고 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그렇다. 서울과 국제사회와 유연한 교류는 유지하되 ‘지역의 독자성과 자율성’으로 자립하여 오히려 중앙과 타지역 인재를 역수용하는 단단한 ‘글로컬(glocal)한 플랫폼’이 되길 응원한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 ​ ​​​ ​​

2021. 11.
사진제공_김혜라, 신성호, 대전뉴댄스국제페스티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