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연재_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23)
한국춤의 원류를 보다: 덩실덩실 그리고 너울너울
채희완_춤비평가

 우리춤을 묘사하는 언어 관행에 ‘덩실덩실’과 ‘너울너울’이라는 의태어가 있습니다. ‘덩실덩실’, 어떤 동작을 두고 덩실덩실이라고 했을까요? 

 춤추는 모습을 여실하게 하여 덩-실, 덩-실 하듯 음절을 각각 분절해 발음할 때에는 ‘덩’은 2로, ‘실’은 1로 하는 삼분박으로 발음해야 합니다. 즉 이분박으로 춤추는 것이 아니라 삼분박으로 춤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덩실덩실 했을 때 춤추는 모양은 몸이 올라갔다가 내려앉는 상하운동 동작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덩실덩실은 무릎의 굴신을 통하여 회음혈과 하단전이 이끌어내는 오금과 도듬새로써 온몸이 상하운동을 하는 모양입니다. 물론 상하운동만이 아니라 덩실덩실할 때 팔 동작이 좌우로 벌여지는 양상도 어감상 느낄 수 있습니다.
 ‘너울너울’은 상하보다는 팔동작이 좌우로 펼쳐져 수평적인 동작이 많은 듯한 느낌을 줍니다. 물론 너울너울도 몸이 상하로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도 합니다.
 덩실덩실과 너울너울이 다같이 상하운동이고 수평운동이지만은 덩실덩실에서 수직적인 운동감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면, 너울너울에서는 수평적인 몸 움직임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수직적인 동작과 수평적인 동작이 서로 이중적 교호 관계에 놓여있지만 어떤 것은 수직적인 것에 더 강하게 가 있고, 어떤 것은 수평적인 것이 더 강하게 되어있는 그런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러기에 ‘기우뚱한 균형’이라는 것입니다. 수직, 수평이 같이 어울려드는 조화롭고 균형관계에 있되 기우뚱하게 어느 한 쪽이 더 강하게 넘나드는 그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상체와 하체가 서로 어울려드는, 말하자면 수족이 상응하는 모양을 덩실덩실과 너울너울이라는 용어 속에서 생각해 보게 되지요.

 삼한시대에 제천의식을 살펴볼 때 춤 용어 속에 수족상응이라는 말이 있었지요. ‘수족상응’의 모습이란 ‘덩실덩실과 너울너울’의 복합체가 아닐까요? 물론 그 토대는 ‘답지저앙’입니다. 답지는 땅을 밟고, 땅에 발을 디디고라는 뜻입니다. 나아가선 ‘발로 땅을 구르고’입니다. 저앙이란 곧 무릎을 ‘굴’해서, 오금을 죽여서, 몸을 가라앉혀서 땅에 가까이 다가가게 한 다음에 무릎을 펴서 도듬새를 하는 그런 하체 동작의 모양을 갖게 됩니다. 이와 함께 가슴을 펴서 중단전의 활동으로서 수족이 펴지면서 다음 동작이 얹혀져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즉 하체를 토대로 해놓고 그 위에 상체를 얹어 몸짓을 하는 그런 양태입니다. 그것이 또 덩실덩실이고 너울너울입니다. 


 춤 움직임의 몸 부위를 이야기할 때 하체동작은 회음혈, 하단전의 활동이고, 상체 중심의 동작은 중단전, 상단전이 관장을 한다고 합니다. 4개의 단전이 동시에 같이 작동하는 예를 덩실덩실과 너울너울에서 우리는 육체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것은 오그리고 펼치는 것, 나고 드는 것, 오르내리고, 지펴서 발하는 수렴과 확산의 ‘2중교호적 얽힘’인 것입니다. 

 우리말에 신나고 신들리고 신오르고 신내리고 신지핀다는 말이 있지요. ‘나고 든다’는 수평이동으로 들락거린다는 것입니다. ‘오르내린다’는 상승과 하강, 수직동작이지요. ‘지핀다’는 불이 지피듯 속에서 타고 올라 바깥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소지가 됩니다. 신명이란 바로 그러합니다. 그것이 동학에서 얘기하는 ‘기화신령’입니다. 몸 안에 있는 신령스러운 존재인 한울님(內有神靈)이 바깥으로 기화(外有氣化)함으로써 사람마다 본원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음을 스스로 알고 있는(一世之人各知不移者也), 모심(侍)의 뜻과 발맞춰 있습니다.
 덩실덩실, 너울너울은 상하좌우, 수직과 수평, 사방, 팔방, 시방으로 에너지가 넘나드는 신명난 사람의 춤동작을 일컫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그것이야말로 ‘弓弓乙乙’을 옆으로 눕힌 태극선의 모양이지요. ‘궁궁’은 조금 복잡한 단계의 것으로 원이 3각점으로 돌아가는 삼태극이고, ‘을을’은 2각점으로 돌아가는 이태극입니다.
 이태극과 삼태극의 모양으로 동작하는 춤사위의 것으로 ‘너울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너울질은 파도치는 듯 엎어치듯 제치듯 만물을 출렁이게 하고 또 생성시키는 에너지원으로서 태극의 활동상입니다. 태극이 활동하고 있는 너울질의 이런 모습이 바로 덩실덩실이고 너울너울입니다.

 우리 춤은 생명의 근원에 맞닿아 있는 춤이라고 합니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춤, 하늘의 운행과 더불어 같이 하는 춤입니다. 그러기에 사(事)이면서 ‘동사(同事)’입니다. 한편 공경하고 섬기면서도 파트너쉽으로 동무해서 더불어 세상일을 해나가는 것이지요(主者稱其尊而與父母同事). 그리고 그것은 원효 스님의 대중교화처럼 수순중생(隨順衆生)이나 동사섭(同事攝)하는 것과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늘과 만나지 않는, 생명의 근원과 맞닿아 있지 않는 춤은 우리춤의 진정한 의미를 포기한 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그것이 많이 훼손되고 변질되었다면 다시 회복되어 마땅하겠지요.
 ‘회음혈-하단전-중단전-상단전’은 기가 움직이는 자리를 적은 것인데, 회음혈에서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으로 순차적으로 넘어가지 않고 건너뛴다는 것입니다. 회음혈에서 중단전으로, 다시 내려가서 하단전에서 상단전으로, 그리고 다시 회음혈로 내려가는 흐름이 바로 태극선의 라인이죠. 여기에 적합하게 맞추어서 추는 춤은 바로 덩실덩실, 너울너울로 표기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는 덩실덩실, 너울너울, 이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몸의 반응대로 추는 춤은 어차피 이런 순서를 밟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궁궁을을’, ‘태극’은 1860년 음력 4월 5일 11시에 수운 선생이 용담정에서 득도하면서 하늘의 뜻을 깨치고 형상을 얻었다는 신비체험의 이야기에서 따왔습니다. 그때의 그 모양이 궁궁을을과 같고, 그 내용이 태극과 같다고 하였는데, 이를 통해 우리 춤의 일면을 한번 풀어봅니다.

채희완

현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 ​ ​ ​ ​ ​ ​​ ​ ​ ​ ​ 

2020. 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