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현희 〈boys, don‘t cry〉
비약과 단정한 도발의 춤
권옥희_춤비평가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boys, don’t cry!〉(4월 9일, 대구봉산문화회관 가온홀). 무대 위 모든 춤에서 안무자(장현희, 전북대 강의전담교수)의 자아를, 자아가 또 다른 자아를 아우르며 현재를 그려내는, 인물의 설정과 그 배치가 매우 독특한 무대였다.
 무대 오른쪽에 쌓여 있는 정육면체 상자의 높이와 두께, 왼쪽에 놓여있는 십여 개의 의자가 주는 깊이와 넓이로 만들어진 볼륨감 있는 무대. 어둑한 조명, 상자 앞에 서 있는 군무진의 그림이 마치 설치미술 같다. 손을 가슴에 얹는 동작, 정지 또 다시 움직임으로 연결되는 군무. 이상열이 무대로 스며들 듯 들어와 의자에 앉자 어느 사이에 무대 위에 서 있는 장현희. 상열을 돌아본다. 다른 자아, 두 인격(남자와 여자)으로 보인다. 소음과 경적이 귀를 괴롭힌다.
 상열이 무대 중앙에서 추는 춤에 나른함이 묻어있다. 마치 물속의 자기를 들여다보듯. 이 이상한 자아(이상열)는 나르시시스트며 잃어버린 모든 것을 저 자신의 안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끌어안는 듯이 춤을 춘다. 그 춤이 비록 순정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혼자 애쓰는 춤. 이상하게 처연하다.


 



 최정홍과 최태현이 바닥을 기면서 나오자, 군무진이 따라 이동. 무용수 한 명이 군무진 사이를 지나가니 군무진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듯 머리를 싸안는다. 고통에 놀란 듯 돌아와 건네는 위로. 나도 아프고 저 사람도 아프니, 이 만남 또한 아프고 고독한 성질을 지닌 것이라 말하고 있는 듯. 군무진이 이상열 춤의 배경으로 선다. 상열이 나아가려고 하나 군무진이 공간을 이동하며 막아선다. 이상열이 의자 위에서 무너진다. 이어 천정에서 쏟아지는 조명, 비이거나 빛이거나. 또 다르게는 꿈이거나 기억일 수도. 형식적인 춤은 흐름을 끊기도, 반드시 춤을 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어지는 장현희의(주체) 솔로. 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는 것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듯한 춤이다. 물속 같은 시간을 반복해서 걸어갈 수 있는 여유와 그 용기의 리듬이기도. 혹은 춤으로 홀로 자신을 구하기도 패배하기도 한다고도 말한다. 그녀를 바라보면서 돌아서 있는 시선 둘(최정홍과 최태현)의 등. 둘의 시선은 아버지일 수도(‘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부제로 짐작하는), 혹은 장현희의 또 다른 자아일 수도. 장현희의 담담한 춤. 최정홍이 건네받는다. 등으로 추는 춤, 슬픔이 번진다. 좋은 재목의 무용수다.
 사회의 시선들, 장현희가 옷깃을 집어 들고 머리를 감춘 뒤 뒤돌아본다. 한 쪽 옷자락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가 다시 가리기를 반복. 팔을 뻗어 깃 가운데를 잡고 들어 올리니 헐렁, 머리가 사라진다. 불확실한 것들의 연출로 확실한 것의 존재를 짐작한다. 현실과 애무하듯이 옷자락을 이용하여 밀고 당기는 춤은 안무자가 부정(否定)한 것들조차 끌어안는 의미로 보인다. 현실이 또 하나의 현실과 겹쳐지는 공간을 그려내는 장. 여러 층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주체가 형태도 색깔도 없는 미래, 안무자의 곧 또 다른 자아의 미래. 다른 자아가 되는 주체만이 특별한 현재를 춤으로 그려낼 수 있다. 이렇듯 확실치 않는 미래와 연결되어 있는 이 현재를 춤으로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 춤적 시간이다.


 



 인상적이었던 마지막 장. 내리꽂듯 쏟아지는 빛 속에서 홀로 혼을 다해 추는 춤. 고독해보였다. 빛으로 가득했다가 어느 순간 암흑의 상태가 거듭되는 조명으로 이야기가 깊어졌다. 춤과 춤 사이, 장과 장 사이에 안무가(장현희)가 시제를 넘나들며 남겨놓은 투명한 구멍. 애초에 존재와 삶에 뚫려 있는 그 구멍들에 관한 이야기.
 젊은 안무가의 시선을 도입해 견고하고 완강한 세계(춤의 세계)에 균열을 가한 무대였다. 비약과 단정한 도발로 관객들의 마음을 들락거린 장현희의 춤. 그 춤은 위태하고 불안한 동시에 아름다움으로 관객을 도취시켰다. 몸에 맞지 않은 오버사이즈의 의상처럼, 불편한 감정을 쉽게 허물어뜨리는 동시에 순결한 춤추기로 자신과 춤의 존재감을 높인 작품이었다. 

2016. 05.
사진제공_장댄스프로젝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