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배정혜의 전통과 함께 ‘樂’
섬세하고 농밀한, 전통춤의 재해석
김영희_춤비평가

 5월 11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의 수요춤전에 ‘배정혜의 전통과 함께 樂’이 올려졌다. 근자에 배정혜는 창작춤이 아닌, 전통춤을 토대로 한 재구성 내지 창작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2년 전 ‘배정혜 춤 70년’(세종문화회관 M 시어터)에서 전통춤과 전통춤의 기법으로 안무한 22개 소품을 제자들이 공연했고, 작년에는 수요춤전(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의 명인명무전에서 <승무>와 <산조>와 <율곡>을 직접 추었다. 그리고 이번 무대에서는 <산조>와 <풍류장고>와 <살풀이춤>을 직접 추었고,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승무><바라춤><신노심불노>을 추게 했다.
 전통춤과 신무용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에서 그는 ‘결국 다시 돌아온 이 곳 전통춤에 흠뻑 빠져드는 이 心은 무엇인가… 귀향의 心 속에 새겨질 전통적인 무엇 하나라도 남겨지기를 바란다. 귀향은 떠날 수 없는 영원한 마음이라.’고 일련의 작업들을 설명했다. 그러나 전통춤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처음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리라. 긴 세월이 흘렀으니 춤의 호흡은 예전과 다를 것이며, 작품에 대한 뜨거웠던 기억들은 몸과 뇌리에 남아있어서 언뜻언뜻 춤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또 세상이 변하면서 춤 또한 변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윤중강(국악평론가)의 사회로 춤판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心을 먼저 <산조>(2014년 제자 김정민 초연)로 풀어냈다. 악사들을 무대 네 모서리에 둘러앉혀 둥글린 춤판을 만들고, 상수 아래 객석 쪽 방향에서 악사들 사이에서 등장했다. 마치 대청마루로 나서는 듯 사선의 뒷모습으로 등장하여 무대 중앙을 지나 하수 윗쪽에서 돌아서며 전면을 보이더니, 중앙으로 나와 옷고름 쥔 손을 아래로 짚으며 깊게 숙였다. 마치 말뚝을 깊이 박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겠다는 사인인 듯 했다.
 산조춤은 산조 음악에 어울러 추는 춤으로, 신무용에서 비롯되었으며, 다양한 정조와 개성을 그려낼 수 있는 춤이다. 배정혜는 고개를 들어 멀리 시선을 준다거나, 사선으로 앞을 열어가며 나아가기도 하였고, 가볍게 앉았다 뛰어일어나는 동작, 허리를 조금 뒤로 젖혔다 밀고 나가는 장면, 또 제자리에서 맴체로 빠르게 돌기도 했다. 그리고 잦은몰이에서 왼손은 옆치마를 잡고 오른손은 치마 자락을 가슴 즈음까지 올려잡은 채 옆모습으로 무대를 자분자분 가로지르다 농밀한 발놀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음악과도 긴밀하게 주고받았다. 춤의 첫머리인 진양 대목을 아쟁이, 중머리에서는 거문고가, 굿거리는 가야금이 반주했고, 자진모리에서 대금과 아쟁, 거문고, 가야금의 삼현이 함께 들어갔다. 마지막 마무리는 대금 독주로 여운을 남겼다. 각 대목마다 악기 반주자와 두세 장단씩 합을 맞추기도 했다.


 



 그녀의 <산조>는 섬농(纖穠)했다. 섬(纖)은 곱고 가는 무늬의 비단을 말하며, 농(穠)은 꽃나무가 무성한 모양이니, 섬농의 정조(情調)는 중국 당나라 시인 사공도(司空圖)의 시품(詩品)에 들어있다. “복사꽃은 나무마다 활짝 피었고, 바람 불고 햇볕 따스한 물가, 버드나무 그늘 밑으로 오솔길은 굽어들고, 꾀꼬리는 여기저기 날아다니네.(碧桃滿樹, 風日水濱, 柳陰路曲, 流鶯比隣.)”라 표현했으니, 그 풍경과 정조가 배정혜의 <산조>에서 떠오른다. 음악과 함께 다양한 구조를 보여주고, 춤사위들은 현란하지 않지만 세밀하게 계산되어 윗놀음 아랫놀음이 빼곡하다. 손사위보다 발사위가 눈에 띠며, 몸통의 표현들은 다양하고 역동적이다. 그래서 배정혜의 <산조>춤은 복사꽃(桃)들이 만발하여 한아름 풍성한 복사꽃나무가 핀 듯하였고, 춤의 굽이굽이에는 굽어진 오솔길의 갖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는 듯했다.
 이전 대극장 창작춤 안무에서 보여준 관객을 압도하는 스케일과 요동치는 에너지가 아니라, 빛 고운 여인의 섬세(纖細)하고 난만(爛漫)한 정감을 보여주었다. 다만 마지막 장면에서 두 번의 포즈는 부언(附言)인 듯하다.


 



 이어 리을무용단의 김현미, 이희자, 곽시내의 3인무로 <승무>가 추어졌다. 고 이매방의 데뷔 초창기에 <승무>를 배웠다는 배정혜는 아랫놀음을 중히 여기고, 춤꾼들에게 장삼 속에 바지저고리를 입게 했다. 3인의 춤꾼은 같은 동작이라도 몸을 트는 각도, 굴신의 깊이, 수건을 뿌리는 높이, 장단을 짚는 포인트가 모두 달랐다. 오랫동안 합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승무는 거의 홀춤으로 추어졌기에 여럿이 추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러한 시도를 보며 고 이매방의 승무를 시기별로 추어보고 해석해본다면 흥미로운 작업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배정혜의 또 다른 心을 담은 <풍류장고>였다. 그동안 리을무용단 멤버들이 아리땁게 추었던 <풍류장고>를 보았는데, 배정혜의 춤은 처음이었다. <풍류장고>는 신무용 장고춤으로, 신무용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었다. 거기에 오래오래 묵은 이 춤꾼은 놀음의 흥과 즉흥성을 보여주었다. 좌우로 움찔거리기도 하고, 장구채로 장구통을 찍으며 장단을 놀리며 관객들을 놀렸다. 한바탕 흥과 멋을 부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모란꽃 자수를 넣지 않은 치마저고리가 어울렸다. 이 장고춤을 어린 시절부터 추었고 많은 장고춤을 보았을 터, 그는 나이에 따라 이 춤을 어떤 마음으로 추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배정혜의 애제자인 김용철(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바라춤>을 추었다. 대구시 무형문화재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인 권명화 명인이 1966년 권명화 1회 발표회에서 이 춤을 처음 추었고, 이를 김용철이 전수받았다고 한다. 20세기 중반에 한성준의 제자인 장홍심(1914~1994)이나 박금슬(1922~1983)의 바라승무가 있었고, 권명화 명인이 굿판에서 바라춤을 추었기에 <바라춤>의 작품화가 낯설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용철의 이전 공연에는 석탑을 세우거나 불교적 영상을 띄워 극적인 구조를 분명히 했는데, 이번 춤판에서는 그런 장치 없이 추었다. 또 2년 전 강동아트센터의 공연과 달리 의상의 아래 부분을 치마처럼 돌렸고, 가사의 색깔이나 모양새도 분방하게 변형했다.
 목탁소리로 춤은 시작되었다. 하수의 위쪽에서 뒷모습으로 느리고 장중하게 전개되다가 굿거리로 넘어가자 능계가락의 날라리 소리 때문인지 세속적 느낌이 물씬 풍겼다. 엇모리에서는 무속적 느낌도 들었다. 이 <바라춤>은 춤사위와 동선에 있어서 기존 작법의 바라춤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춤의 동작들을 다양하게 사용했고 좀 더 기교적이고 장식적이며 활달하다. 바라를 머리 위에서 번갈아 돌리거나, 바라를 높이 들어 반짝거리게 흔들기도 하고, 바라를 부드럽게 뒤집었다 엎으며 어르기도 했다. 또 기마자세를 깊게 유지하며 여러 춤사위들을 구사했다. 후반부에서는 손목에 꼈던 끈을 빼서 바라의 가장자리를 들고 큰 포물선을 그리며 돌리거나, 어깨에 얹고 무대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김용철의 춤은 불교적 모티브들과 묘하게 어울린다. 창작춤에서도 그렇거니와 <바라춤>에서도 해탈한 듯한 분위기를 보여주며, 춤의 동작은 자유롭다가 바라를 크게 울려 불현듯 다시 일깨운다. 마지막 대목에 바라를 머리 위에서 돌리며 앉았다 일어났다 연풍을 돌때는 춤꾼이 춤을 추는지 춤이 춤을 추는지 모르게 망아의 장면을 보여주었다. 이 춤을 초연한 권명화 명인의 춤의 배경은 권번과 무속이다. 이러한 배경에 창작적 욕구가 더해졌을 것이며, 이는 20세기 중반 바라춤의 재발견이다. 김용철이 이 춤을 앞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주목할 만하다.


 



 이어서 김재득은 <신로심불로>를 추었다. 조택원 안무로 알려진 <신로심불로>와 동명이지만, 다른 춤이었다. 춤의 구성으로 보아 남성 홀춤인 ‘한량무’로 칭하는 게 적절할 듯하였다. <신로심불로>는 원래 1937년에 최승희가 초연한 춤이었다. 순종 황후인 윤대비를 위로하기 위해 인정전 서행각에 만든 가설무대에서 최승희가 10종의 춤을 추었고, 이 때 선보인 춤이다. 작품 설명에 의하면 한 노인이 책을 보다가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추는 춤이라 했다. 하지만 최승희는 이후에 추지 않았고, 조택원이 자신의 <신로심불로>를 추어 남겼다. 이 춤은 신무용의 유산이며, ‘身老心不老’의 테마는 동서고금을 망라하여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이니, 춤으로 풀어볼만한 하다.


 



 마지막으로 배정혜의 <살풀이>가 이어졌다. 작품 설명에 의하면 고 이매방의 살풀이춤을 근간으로 해서 선생의 해석을 보탠 살풀이춤이었다. 의상부터 색달랐다. 디자이너 진영진의 작품으로, 바지를 받쳐 입고 앞이 벌어지는 치마를 덧입었으며, 겹겹이 입었지만 안감이 비치게 디자인했다. 치마꼬리를 슬쩍 감아붙였고, 수건은 긴 사각형이 아닌 끝을 가늘게 뽑은 모양이다. 살풀이춤이라 하지 않고 살풀이라 한 점도 궁금하다.
 배정혜의 <살풀이>는 여인의 농염한 자태나 계면의 애조(哀調)를 보여주기보다 그저 음악에 마음을 얹어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표현했다. 춤사위들도 과장되거나 힘들이지 않으며, 현란한 기교도 쓰지 않고 편안했다. 팔을 일부러 많이 들지도 적게 들지도 않았으며, 칠십이 넘은 연령임에도 단전의 중심은 흐트러지지 않고, 다리 사위는 스르르 어디든 짚어냈다. 그리고 수건을 길게 쓰지 않았던 탓일까, 수건사위들은 날렵했다. 수건을 끝까지 들고 추며 별다른 의미를 담지 않은 듯 했으나, 마지막에 수건을 품에 안았다가 내려떨어뜨리고 애잔하게 바라보며 끝맺었다. 이 또한 배정혜 선생다운 구성이다.


 



 전통춤으로 돌아와 영원한 마음을 담고자 한다고 했지만, 역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천재소녀로 춤추었던 시기가 1950, 60년대였고, 이 시기는 신무용의 시대였다. 이후 한국 창작춤으로 가장 뜨거운 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춤의 내력이 이번 춤판에 그대로 묻어났다. 이러한 현상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펼칠 무용가 배정혜의 춤판에서 두 가지 범주의 작업을 기대하게 된다. 하나는 배정혜 선생이 그동안 추었고 보았던 전통춤과 신무용들이 새삼스럽게 드러날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 전통춤과 신무용들을 현재의 배정혜가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이다. 전자 후자 모두 흥미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2016. 06.
사진제공_국립국악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