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특집] 이순열을 말한다(3)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
남정호_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살면서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이순열 선생님은 아직은 가까이서 배울 수 있는 환경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선생님이다.
 이순열 선생님을 만나면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에 나오시는 강의전후의 자투리 시간을 염치불구하고 내가 차지한다.
 운이 좋은 날은 까다롭기로 정평 난 선생님이 나의 두서없는 질문에 상세히 대답해 주신다. 나는 한 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아 재빨리 종이를 찾아 노트를 한다. 영어, 한자가 동원되어야 하는 숨 가쁜 시간이 지나간다. 선생님은 황송하게도 나의 철자법도 고쳐주시고 한자도 알아보기 쉽게 다시 한 번 써 주신다. 불필요한 자존심 따위보다는 무지함을 인정하는 겸손한 학생이 되어보는 순간이다.

 그러나 가끔 시간이 지나고 그 메모들을 다시 보게 되면 육성의 마술이 사라진 그 글들이 이상하게도 맥이 풀린 낱말들로만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게도 된다.
 어쩌면 세라자드가 펼치는 끝없는 이야기처럼 한번 들으면 또 다시 듣고 싶어지는 선생님의 강의는 육성으로 들을 때 그 진가를 최대한 맛볼 수 있는 것 같다. 한때 시사영어사가 직영하던 현대외국어 학원에서 토플 명강사였다는 사실과 동시에 KBS FM에서 오랜 기간‘명곡의 전당’의 명해설자로서의 왕좌를 누렸다는 신화를 수긍할 수밖에 없다.
 어린 학생들도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 같다. 큰 소리치지 않고도 철없고 게으른 요즈음 아이들을 제압하는 기술을 가지고 계신다. 앞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미 다 꿰뚫고 있는 여유 있는 호흡 안에서, 단어 하나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며 정확하게 발음하면서 어느 사이에 그대로 글로 옮겨 써도 무엇 하나 덜거나 보탤 필요 없는 완성된 문장에 도달한다.
 부러운 경지이다!

 그러나 나는 이순열 선생님을 글로 처음 만났다.
 대학원 학생 시절, 무용자료가 빈곤하던 70년대 중반 에 무용의 정체를 알고 싶은 허기를 채워주던 <춤>잡지가 오아시스처럼 나타났고 거기에서 발견한 경이로운 글의 필자이다. 여태껏 읽은 춤 비평과는 다른 리듬, 다른 어휘를 가진 다른 세계에서 본 춤에 관한 글. 감히 건드리기 힘든 어른들의 춤의 세계를 신랄하게 파 헤쳐 난도질한 무모함이 신선하고 통쾌하였다.
 프랑스에서 돌아 온 후 조동화님의 추천으로 85년에 결성된‘한국무용평론가회’의 창단멤버의 일원이 되면서 나는 드디어 이순열 선생님을 대면하게 되었는데 지면을 통해 감지한 날카롭고 냉소적인 느낌과는 다른 부드럽고 감각적인 인간적 면모도 접할 수 있었다.
 선생님과의 만남도 이제 거의 30년이나 되고 무용계의 다른 이들보다는 비교적 자주 뵙는 사이가 되어버렸지만 아직도 궁금한 것이 많다.
 학벌위주의 한국 사회에서‘외국어대 불문과 중퇴’의 학위로 이 땅의 수많은 강단에서 강의하고 주옥같은 글을 쓰는 이순열 선생님,
 어떻게 외국어를 그렇게 잘하시는지. 영어뿐 아니라 불어, 독어, 일어를 적절하게 불러 내어 하나로 연결시키는 화법의 비밀을 알고 싶다. 그리고 들을 때마다 눈이 번쩍 뜨이는 그 방대한 양의 지식- 무용 뿐 만이 아니라 음악, 미술, 건축 등에 관한 해박한 내용들은 어디에서 나온 건지.
 그런데 어떻게, 왜 무용에 관한 글을 쓰게 됐는지요?

 춤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차원 높은 예술이기 때문에 ‘나는 숲을 거닐며 춤을 봅니다. 오르페우스가 피리를 불거나 리라를 탈 때면 나무도 그리고 바위나 야수들도 춤을 추었다지요. 나무의 모습이 언제나 황홀한 것은 그때 춤추었던 그 모습으로 응고되었기 때문이랍니다. 내가 숲에 취하는 것은 숲이 춤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장의 낡은 LP판 사진에서 흐르는 춤을 보았습니다. 나는 춤을 볼 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상, 랭보, 보들레르, 나츠메 쇼세끼등을 가장 좋아하신다고 한다. 대부분 요절한 이 천재들과 자신 안에 앉아 있는 보들레르의 광기와 랭보의 낭만과 고독을 공유하는 선생님을 같은 수평선상에 놓는 것이 무리일까? 어쩌면 이 상이 요절하지 않고 마음을 잡고 바람직한 반려자를 만나 평균수명을 유지했더라면 탄생시켰을 법한 인물형이라고 상상한다. 선생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젊은 시절에 대충 거쳐지나가는 이 로맨티스트들의 심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 흘러가는 시대를 개의치 않으며 그들과 같은 선상에서 예민하게 느끼며 도취하며 때로는 분노한다.

 청담동에서 퇴촌 시골로 들어가 농부의 삶으로 돌아가시더니 농사도 곧잘 지으신다. 가끔 갖다 주시는 신선한 푸성귀는 상당히 오랫동안 신선함을 유지하는 고귀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이전에는 키가 큰 선생님과 이야기를 할 때는 턱을 들어야 했는데 요즈음은 등이 조금 구부러지셔서 적당히 마주볼 수 있는 높이가 되어 편안하다. 언제 뵈어도 잘 손질 된 고급 재질의 양복아래 햇볕에 그을린 피부가 어울려 대부분의 같은 세대의 한국 남자들에게 보기 힘든, 어쩌면 포기해 버린 멋을 유지하고 계신다. 이씨 왕조후손의 품격이라고 할까.
 음악에 관한 글을 쓰다가 무용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는데 음악평론가, 무용평론가라는 직함이 늘 어색하다고 하신다. 어쨌든 무용 평론계에 이순열 선생님의 존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까다로운 어른 하나쯤 있어야 긴장할 것이 아닌가.

 선생님이 무용에 관하여 쓴 글을 모아 책을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고 마치 숙제를 다 한 안도감이 생겼다. 천만다행이다. <음악동아> 편집장으로 계신 이력 때문인지 음악에 관한 책은 여러 권 내셨는데 무용에 관한 책은 한권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 동안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를 전율시킨 그 글들을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긴다고 생각하니 마치 옛 애인을 만나는 심정으로 벌써부터 설렌다.

2012.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