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김복희무용단 〈우담바라〉
맥락 엷은 모음으로 묘연해진 춤세계
김혜라_춤비평가

김복희무용단의 〈우담바라〉(3.5~6.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공연 현장은 근래에 보기 드물게 단정하게 머리를 올린 어린 학생부터 연세가 지긋한 관객까지 다양한 연령층부터 눈에 띄었다. 1971년 김복희·김화숙무용단 창단 후 〈법열의 시〉를 시작으로 50년간 창작을 해 온 김복희 안무자의 대표성을 띤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제자들과 함께하는 무대이다. 2021년도 원로예술공연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열려 그의 작품 세계를 집약하는 무대로서 기대를 모은 현장이다.

공연은 한국 여인의 삶에 내재한 한을 조망하는 1부와 불교적 세계관을 구현한 2부로 나뉘어 시연되었다. 서정주의 시를 원전으로 2006년 초연된 〈삶꽃 바람꽃Ⅳ-신부〉, 2016년 현대춤작가 12전에 선보인 〈거미집제례〉, 2014년 이청준의 소설을 토대로 한 〈삶꽃 바람꽃Ⅴ-눈길〉 그리고 남지심의 동명소설을 기반으로 2021년 최근작인 〈우담바라〉가 그것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문학을 토대로 극적 표현성에다 한국적 소재와 상징성을 집약한 방식이었고, 안무자의 불교적 조예가 반영된 삶의 화두가 스며있었다. 본 공연은 만 60세 이상이 50% 이상 참여해야 하는 원로예술인공연지원 사업의 규정을 충족시키기 위한 점도 있었겠는데 팸플릿은 장년층이 다수 무대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출연진들 몸에 축적되었음 직한 노련미가 공연 전부터 이번 무대에서 발현될 것 같은 예감부터 들었다.






김복희무용단 〈삶꽃 바람꽃Ⅳ-신부〉 ⓒ윤석호




무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첫 순서로 무대에 올린 〈삶꽃 바람꽃Ⅳ-신부〉였다. 서정주 시의 첫날밤 사연(첫날밤, 신랑이 오줌이 급하다며 변소를 가다가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고, 신랑은 신부가 급하고 음탕해서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아 당겼다고 믿고, “몹쓸 년”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을 소재로 한다. 신랑이 일방적으로 떠났어도 그 자리에서 그를 40년 동안 기다리는 신부의 진정성이 강조되는 시다. 과거 여인네들의 억울한 삶의 단면을 보여주며 한의 정서가 춤으로 구현된다. 유령 같은 존재(사회, 제도, 성별)의 비극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신부, 그 고난은 첫날밤에 발단되어 영원히 남는다.

무대 왼쪽 상수 한켠에 자리한 한지로 만든 소담한 방에서 무표정한 각시탈을 쓴 댄서(김복희)가 등장한다. 여리고 여성스러운 신부일 것이라는 필자의 예상과는 달리 조금 과장되게 본다면 여성성이 사라진 인간으로만 보이는 소략한 디딤과 몸짓이다. 반면 신랑(손관중)의 춤은 능동적이며 주도권을 쥔 동작으로 신부(김복희)의 춤은 수용할 수밖에 없는 관계로 듀엣을 한다. 하루아침의 날벼락처럼 신랑은 첫날밤을 치루지도 않은 채 떠나버린다. 신부는 신랑이 사라진 연유도 자신이 버려진 내막도 짐작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마냥 앉아 기다리는 것뿐이다.




김복희무용단 〈삶꽃 바람꽃Ⅳ-신부〉 ⓒ정석영





김복희무용단 〈삶꽃 바람꽃Ⅳ-신부〉 ⓒ최윤정




(오해로) 떠난 신랑을 기다리는 그 신부는 소복 같은 흰옷을 입고 깃발을 흔들며 무대 중앙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영문도 모른 채 신랑을 기다린 세월의 한을 푸는 살풀이 같아 보인다. 무대에서 신부는 이미 화석이 되었고 한 인간으로서 내면적 궁핍과 억울함이 토로된다. 시에서 전개되는 대로 40년이 지나 우연히 신부집을 찾은 신랑이 초야 때처럼 앉은 각시탈(신부)을 벗기는 순간, 신부는 초록 저고리와 다홍치마를 갈기갈기 찢기 시작한다. 찢긴 옷가지 사이사이로 검게 타버린 신부 마음이 검정 옷으로 절절히 전달된다. 잿더미 속 잔향조차도 신랑에 의해 멈춰야 했던 종속된 여인의 삶, 가부장적 문화에서 죽기까지 견뎌온 한 인간의 상처인 듯이 관객에게 실체로 다가온다.

비참함과 모순 속에 죽어가는 신부의 이야기는 홀로 삶의 상처를 감당해야 하는 아직도 이어지는 불평등한 여성의 삶까지도 환기시킨다. ‘순결한’ ‘여성다운’ 전형적인(stereotype) 신부 모습을 예상했던 필자도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이는 과거와 다르지 않게 우리 일상에 만연해 있다. 삶을 모조리 박탈당한 신부를 조명한 〈삶꽃 바람꽃Ⅳ-신부〉는 오늘 시점에서도 재해석될 유의미한 작품으로 보였다.








김복희무용단 〈거미집제례〉 ⓒ최윤정




〈거미집제례〉는 인간 군상의 고통을 풀어 주는 진혼곡풍의 작품이다. 우리 삶의 터전이 거미집이라는 팍팍한 의미이며 저마다의 이유로 거미집에 걸려 죽어나간 원혼들을 대신하여 통곡해 준다. 신당 같은 분위기로 수렴된 무대는 전반부에는 추상적으로 애매하게(남녀 듀엣) 진행되다가 씻김과 정화를 의미하는 행위로 제례를 수행한다. 물을 적시고 뿌리는 반복되는 행위는 가팔라지고 그 열기에 힘입어 댄서(정혜진)는 영험한 물을 받아 놓은 돌그릇 위로 올라가 작두를 타듯 원풀이를 한다. 정결한 돌그릇에 올라가는 것에 멈추지 않고 물 안에서 온몸을 부딪쳐 씻김굿을 하는 공세적 발상이 파격적이다. 반면 누구를 위한 제례인지가 초반부터 모호해 자칫 굿을 위한 굿춤 다시 말해 자기도취적인 춤으로 보일 한계도 있어 보인다.




김복희무용단 〈삶꽃 바람꽃Ⅴ-눈길〉 ⓒ정석영



김복희무용단 〈삶꽃 바람꽃Ⅴ-눈길〉 ⓒ최윤정




〈삶꽃 바람꽃Ⅴ-눈길〉에서는 이청준의 자전 소설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눈길을 밟으며 귀가하는 어머니의 참담한 심경이 내용으로 차용되었다. 어머니와 아들의 사랑, 갈등, 아들의 외면, 그럼에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이 소설보다는 가벼운 듯한 단조로운 감정으로 다뤄진다. 소설의 내용을 춤으로 풀어내려는 아들과의 듀엣은 서사에 충실한 몸짓 동작으로 재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들과 일상적인 동작으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두 관계는 무대 공간에서 어머니가 감내하는 정서적 깊이가 옅어 보인다. 감정의 희로애락이 서로 포개지고 상충될 때 관객은 감정에 이입되고 능동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반면 〈눈길〉의 전개는 매끈한 서사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하여 말할 수 없는 아니 차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춤으로 만족할 만큼 전해지지 않는다. 단지 눈 내리는 밤 시골 노모(윤미라)가 길을 터벅터벅 걸어 나가는 뒷모습에서 ‘눈길’의 쓸쓸한 정취가 전해질 뿐이다. 그러나 일련의 전개된 춤보다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오히려 무대에 우뚝 서있는 가로등이다.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어두운 밤을 밝히는 어머니의 상징성을 드러낸 장치로 느껴지는 것은 아이러니다. 말하자면 소설 원전과 차별성이 있는 ‘눈길’의 춤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김복희무용단 〈우담바라〉 ⓒ윤석호




여성 인물의 심상에 주력한 세 작품과는 달리 〈우담바라〉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불교의 구도(求道) 과정과 의지를 숙고한 작품이다. 〈우담바라〉는 남지심의 동명 소설에서 발췌된 인물을 중심으로 우리네 삶속 얽히고설킨 관계를 풀고자 하는 여정이 묘사된다. 1장에서는 소설에 등장한 중생들의 삶이 오늘의 사람들로 투영되어 대조적인 시공간성을 반영한다. 수트를 입은 댄서들의 분주하고 일상적인 움직임들이 오늘의 모습을 반영하며 과거와 현재의 교차점은 적절한 대사와 연기로 의도 파악이 용이하다. 돌부처를 파면서 인고의 생을 살아가는 봉수의 현실과 그 내면에서 몽글몽글하게 피어나는 순수한 사랑이 2장에서 전개된다. 특히 얼굴에 화상을 입은 봉수(김남식)가 돌부처를 안고 묵언수행하듯 걸을 때 그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가는 젊은 댄서의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외형적인 다름으로 질시와 왜곡된 시선을 견뎌야 하는 고통스러운 삶, 대조적으로 그 내면에서 건강한 힘이 발현할 가능성을 짚은 양가적 시선이 흥미롭다.






김복희무용단 〈우담바라〉 ⓒ손관중






김복희무용단 〈우담바라〉 ⓒ윤석호




이어 3장에서는 인간적 고뇌를 벗어나는 길로 바라춤을 제시한다. 바라춤 부분은 앞선 장들과 다음 부분을 연결하는 가교로서 수행과정을 의미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무대 중심 강렬한 빛 가운데에 등장하는 손관중은 강렬한 눈빛과 긴장된 몸짓으로 바라를 한다. 번뇌가 느껴지는 것이 분명한 한편으로, 번뇌를 비워내는 내적 다짐의 춤이라기보단 오히려 무언가를 더욱 갈망하고 채우고자 하는 의지로 다가온다. 여기서 〈우담바라〉의 흐름은 주춤한다. 몸의 힘을 뺀 강렬하지 않은 춤이 필요했고, 인고의 세월 속에 피어나는 우담바라의 꽃을 피울 씨앗이 되는 바라춤이 더 나았을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인간 군상 저마다의 돌부처는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 있고 구도의 행위로 내적 환희에 다다를 수 있음을 안무가는 말하는 것 같다. 순백의 의상을 입은 출연진들의 춤으로 성불에 다가가는 환희를 예비한다. 하지만 바라춤과 마찬가지로 군무는 춤다운 움직임을 보이겠다는 결연한 열기가 뚜렷하다. 열연의 군무는 관조(觀照)적 불교의 시각과는 그 결이 상충되어 보이고, 비워야 채워지는 내적 환희라기보다는 외형적 환희가 앞선 춤이 아닌가 한다. 작품 전반을 가늠해보면 1, 2장에서 시대를 아우르는 중첩된 관계의 문제적 시선이 바라춤(3장)에서 그 매개가 느슨해져 관계 회복을 염원하는 의도(4장)마저 희석된다. 이 듬성한 네 개의 장에서 주제 선은 선명하다 하겠으나 해법은 상투적이어서, 뼈대가 앞서고 맛깔은 덜한 앙상한 전개로 인하여 작품에서 공명할 심연은 깊지 않았다.






김복희무용단 〈우담바라〉 ⓒ최윤정




2021년도 원로예술공연지원 사업은 예술계에 기여한 원로를 선정한다고 소개한다. 이번 공연이 안무자의 이전 작품들로 채워진 데서 확인되듯이 원로예술공연지원사업은 원로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원로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자연히 초점은 되돌아봐야 할 지난날의 중요한 그 무엇에 맞춰질 것이다. 춤계에 기여한 원로의 창작을 되짚어보는 다소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번 무대가 김복희의 50년 춤인생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나 부분들로 구성된 것인지 의문스럽다. 안무자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온 ‘한국적 현대무용’ 기조를 이해하기엔 그 범위가 소략한 구성이었다.

‘한국적 현대무용’은 아마도 70년대 무렵부터 우리 춤계를 마치 무의식같이 따라붙은 화두이다. 김복희는 이를 의식적으로 추구해온 안무가로서 돋보인 편이고 이 화두와 김복희는 영원히 함께할 것 같다. 이 같은 화두를 이번 무대에 구현한 것은 한국 민간의 전통적 정서와 서사를 묘사한 작품들이었다. 공연작들은 그런 공통점을 보이는 데 맴돌 뿐 공연작들 사이를 잇는 맥락은 사실상 결여되었다. 김복희의 춤 세계에서 〈신부〉와 일례로 〈눈길〉은 무슨 연관성 때문에 이번에 한 무대에 올려졌는가? 한국적 현대무용을 추구해오는 동안 전통적 정서와 서사 이외에 김복희가 주안점을 두었거나 줄기차게 모색한 점, 아직도 해결책을 찾아 고심하는 점은 무엇인가? 한 무대에 오른 〈신부〉와 〈눈길〉을 함께 접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거나 시사 받을 답은 어디까지인가?

그 사람마다 그 사람의 춤세계가 있다. 그중에서도 오랜 세월 축적된 세계로서 춤계에서 유의미한 것을 가려 뽑는 원로예술공연지원 사업은 뜻깊다. 그 사람의 춤세계를 다시 짚어내고 함께 공유할 만한 자산으로 발굴해내고 재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적 현대무용’을 비롯하여 ‘한국성’ ‘한국적’이라는 어투를 자칫 고릿적 이야기로 식상해할 오늘 상황에서 그 사람의 춤세계를 톺아보며 오히려 재인식시키는 의지는 어떻게 실행되어야 할까?

이번 공연 관객들 중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발표된 현대무용은 어떠하였는지 궁금할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장년층이 주도하는 연륜의 무대에서 나이든 그들만의 몸적 발화에서 젊은이 못지않게 애써 구사하려는 테크닉보다는 젊은층은 필적할 수 없는 류의 춤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적 현대무용’이 모색되어오던 오랜 과정에서 김복희 춤이 가졌을 가치와 특성 그리고 메소드가 있었을 것이고, 충분하면 충분한 대로 미흡하면 미흡한 대로 그것을 오늘의 현장에서 적극 드러내고 소통하며 심지어는 전망하는 모습이 이번 무대에서 무척 아쉬웠다.

원로들이 회상하며 올리는 무대는 다양한 세대가 보며 저마다 되새기는 생생한 현장이어야 할 것이다. 멋진 회상은 새로운 창조에 못지않은 가치(제2의 창조)가 있다. 원로예술공연지원 사업이 원로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선을 넘어 동시대인들에게 그들의 춤세계가 알차게 공유되는 실천적 현장으로 다져가길 바란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2022. 4.
사진제공_윤석호, 정석영, 최윤정, 손관중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