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22회 창무국제공연예술제
느슨한 프로그래밍, 재수술 필요
방희망_춤비평가

 올해로 22회째를 맞이한 창무국제공연예술제가 6월 29일부터 7월 10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펼쳐졌다. 외적으로 특별히 내세운 슬로건은 없지만 창무회가 그간 견지해온 ‘전통의 전승과 현대적 수용’이라는 주제는 이번 축제에도 이어졌고, 한동안 무용제로 진행되어오던 것을 본디대로 ‘공연예술제’로 환원하여 경계를 넓혔다는 것이 특기할 점이다.
 그러나 스페인의 SAI Trio와 대만의 Legend Lin 댄스 시어터가 각각 개·폐막 공연으로 초청되었고 이외에 일본의 아티스트그룹 OrganWorks와 연주자 사가 하루히코가 참여했을 뿐 전체적으로는 한국의 무용단체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짜여있었다. 평자는 이중에서 7월 5일 김보라×김재덕의 원나잇 프로그램, 6일 OrganWorks와 마묵컴퍼니의 공연, 7일 창무회의 〈꽃제비노정기〉와 Ninety9 아트컴퍼니의 〈심연〉, 그리고 9일 무용단체와 음악가들의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관람하였다.


 



 5일과 7일의 작품들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는데, 모두 무대장치는 풍부하게 사용되었다. 여러 단체의 작품을 번갈아 올리면서 무대장치를 생략하고 다소 축약된 형태로 진행하기도 하는 다른 축제보다 안무가의 원래 콘셉트대로 연출할 수 있게끔 지원한 것은 바람직했다.
 아르코예술극장 로비는 의상디자이너 최인숙이 만들었던 안무가 김보라의 〈꼬리언어학〉의 이전 버전(이번에는 제목과 일부 오브제와 콘셉트만 유지한 채 다르게 시도한 새 작품을 공개했다) 의상을 공중에 매달아 꾸몄는데, 최인숙은 올해 초 창무예술원에서 주최하고 무용월간지 『몸』에서 수여한 무대예술상을 수상했었다. 5일 저녁 공연의 오프닝이었던 김보라의 솔로 〈각시〉는 바로 그 아르코예술극장의 로비에서 설치미술가 신제현이 수십 개의 콘돔을 풍선처럼 띄워 연출한 공간에서 펼쳐졌다.
 〈각시〉는 하회탈 중 각시탈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작품이지만 시종일관 탈을 써서 표정을 가리던 것에서 벗어나 부채를 무는 것으로 시집살이의 인고를 견디는 입매를 표현하며, 중간 중간 부채를 내려서 도발적이고 섬세한 표정변화를 보여주기도 하므로 사실 무대 위 공연보다 이렇게 관객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는 퍼포먼스가 이상적인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 곁들인 내레이션이 여성주의적인 내용과 그 반어법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들리지 않아 효과가 미미했던 점, 관객들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뷰가 확보되지 못한 상태에서 다소 어수선하게 진행되었던 점은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15분간 펼쳐진 〈각시〉의 퍼포먼스를 인트로로 삼아 〈꼬리언어학〉이 대극장 무대에서 바로 이어졌다. 이전 버전은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들의 신체언어를 모티브로 삼았던 반면 올해의 작품은 그보다는 몸과 언어의 일탈, 불일치를 보여주려는 시도로 이루어졌다. 이전에 두루마기 같은 큰 옷 오브제가 마치 동물들이 탈피한 뒤의 허물처럼 보였다면 이번에는 그것을 초원 위에 세워 각자의 영역과 개성이 유지, 숨겨질 수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추가시켰다.
 마지막에 장치반입구를 개방하여 무대를 환상성에 가두지 않고 현실과의 연계를 시도한 것은 로비에서 공연한 〈각시〉를 오프닝으로 연결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연출이었다. 새 작품의 작업기간이 짧았던 탓인지 대극장 무대를 채우기에는 여백이 많아 보이는 소극적이고 정적인 안무가 아쉬웠다. 앞으로 장기적인 작업을 통해 내용이 완성되리라 기대한다.
 김재덕의 모던테이블이 공연한 〈맨 오브 스틸〉은 지난 5월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 소개되었던 작품이다. 아주 약간만 톤을 달리한 두 가지의 회색 양복을 입은 남성 군무를 통해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가 물고 물리며 섞이는 사회생활 혹은 조직생활의 희비를 그린다. 여러 작품을 통해 익히 검증된 그의 음악적 능력 그대로, 여기서도 다양한 성격이 어우러져 때론 종잡을 수 없는 사회생활의 상황이 시원스럽게 이해된다.


 



 7일의 공연은 응어리진 슬픔을 상이하게 표출하는 두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창무국제공연예술제를 주관하는 창무예술원의 본진인 창무회는 최지연이 안무한 〈꽃제비노정기〉를 올렸는데, 생존하기 위해 생지옥을 통과해온 탈북 이주민의 경험담이 그로테스크한 여성 보컬 위에 내레이션으로 얹힌다. 그들의 고통은 표현주의적 입장을 취한 안무와 연기 속에 고스란히 배어나오는데, 특히 깊은 호흡으로 끌어올리는 에너지와 손바닥의 강렬한 흡입력은 창무회 만의 것일 게다(이것이 대체불가능하다는 것은 지난 6월 국립무용단이 올린 김매자 안무의 〈심청〉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어두운 색채로 일관하다 각설이 타령조로의 급작스러운 전환은 꽃제비들에게 언젠가 보상의 나날이 찾아오리라는 희망을 주기엔 뜬금없어 보이는 바도 없지 않았다.
 신예안무가인 장혜림이 이끄는 Ninety9 아트컴퍼니의 〈심연〉은 신세대다운 감각으로 ‘한’의 정서에 접근하는데, 그 정서에 무겁게 침잠하기보다 힐링의 과정에 초점을 둔다. 회전무대를 통한 원형적 구성, 의상의 통일감, 정주와 배 등 씻김굿의 요소들이 제의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물고기 떼처럼 몰려다니는 군무 등 반짝이는 신선함이 있었지만 안무 능력에서는 아직 지켜봐야할 점이 많고, 라이브 음악 등을 동원해 전체적으로 연출해내는 감각에서 후한 평가를 받아왔다고 느껴졌다.


 



 비교적 풍성하게 꾸며졌던 대극장 공연에 비해 7월 6일과 9일의 소극장 공연은 단체 섭외 면에서 아쉬움이 많았다. 6일 일본 OrganWorks의 작품 〈One line, Two positions, Three faces〉는 제목에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빤한 구성으로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거울이라는 오브제의 진부한 설정, 명확한 동기와 목적 없이 채우는 안일한 안무 구성은 과연 국제무용제에 초청할 만한 단체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했다.
 한편 9일 공연한 창무회 소속 김미선의 〈원〉은 앞서 공연된 〈꽃제비노정기〉와 북한이라는 소재, 사다리/그네라는 장치, 보컬과 악기 연주라는 차이만 두었을 뿐 비슷한 톤으로 전개된 음악, 붉은 색으로 포인트를 잡은 과장된 실루엣의 의상 등 여러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어 같은 단체의 두 작품을 굳이 한 축제, 그것도 창무에서 주최하는 축제에 꼭 편성했어야 하는지 의문을 낳았다.
 굿을 접목시킨 〈원〉의 경우 분단 상황이라는 소재에 그것이 그리 적절하게 들어맞아 보이지 않고, 어떤 위로의 측면에서 따진다 해도 상대방이 받고 싶은 위로보다 내 방식의 위로를 앞세운다는 인상이 들었다.
 2014년 12월에도 창무회 출신 두 중견안무가가 공공지원금을 받아 《쿠쉬 나메》를 소재로 한 두 작품을 나란히 선보인 바 있는데, 이것은 단체가 어떤 주제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방식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아이디어의 빈곤함을 스스로 내보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마묵컴퍼니의 〈누워있는 선〉은 동양적인 사상 특히 불교적인 관념에 천착하여 작품을 전개하는 윤민석 안무가의 작품이다. 불교와 관련된 춤 무대도 드문 편이지만 그것도 주로 의식무에 집중되어있는 것을 고려하면 안무가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구도자의 자세로 고집스럽게 창작품을 만들어온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 뚝심만큼이나 높은 밀도로 짠 안무는 경건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지만, 교자상이라는 오브제가 춤의 흐름에 꼭 들어맞는 것인지는 재고해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내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 명쾌한 발전이 없는 구성은 주제의식의 측면에서도 다소 답답함을 느끼게 했는데, 다음 작품에는 객석을 각성시키는 사자후가 담기길 기대해본다.


 



 9일 공연은 무버(남현우, 이재영, 서일영)가 음악프로듀싱 그룹 Live to the와, 김미선이 음악그룹 나무와 류가양과 함께 협연하였고 마지막에는 이 모든 출연진이 일본의 사가 하루히코와 더불어 즉흥무대를 꾸몄다. 무버의 〈흐름〉은 크게 두 장으로 구분되었는데, 상체의 근육을 모두 드러내면서 그 움직임이 잘 보일 수 있도록 각자의 신체를 긴장감 있게 끌고 가다가 중반쯤 근육을 전부 감싸는 의상으로 갈아입고 세 사람이 모여 움직임의 덩어리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춤실력으로는 뒤지지 않을, 각기 다른 전공을 지닌 이들의 신체 언어는 아직 그들만의 개성, 그것을 발산할 뚜렷한 방향을 모색해내지는 못했다.
 마지막 즉흥무대 역시 즉흥의 맛을 느끼기에는 함량이 상당히 모자랐다. 우선 평소에 자주 협연해보지 않은, 성향이 다른 음악가들을 한데 모아 즉흥연주를 시도한 것부터 무리수였다. 보통은 즉흥춤 무대에 전문적인 아티스트 한두 사람을 통해 음악은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두어 통제하고 그런 다음에 춤을 맡겨야 한다. 너무 많은 인원이 무대의 네 귀퉁이에 자리 잡고 서로 눈치만 보다가 끼어들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으며 연주는 결국 일본 아티스트 위주로 흘러갔다.
 즉흥춤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 다른 성향의 무용수들이 만나고 얽히는 데서 의외성이 생겨나고 그것을 즐기게 되는데, 이번 무대는 컨택 즉흥을 표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용수들이 서로 떨어져 열심히 자기에게 익숙한 동작들만 반복하는 양상이 되고 말았다. 철저한 준비와 설계가 없이 막연한 의욕만 앞세워 꾸민 즉흥무대가 얼마나 재미없을 수 있는지 목격하게 된 것이다.


 



 올해의 창무국제공연예술제는 치열한 고민 없이 느슨한 프로그래밍으로, 화제를 낳는 생산적인 축제로 탈바꿈하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국제’라는 타이틀이 무색한 외국 초청단체들의 면면도 그렇거니와 국내 작품들도 대부분 이전에 다른 축제나 무용제에서 소개되었던 작품들로 채워져 이 축제만의 색깔을 찾기 어려웠다. 축제기간 동안 경쟁이 될 만한 다른 공연이 없었음에도 눈에 띄게 비어있는 객석들, 무대가 끝날 때마다 출연진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서둘러내는 ‘안다’박수 또한 그나마 있던 여운도 없애고 공허함을 더할 뿐이었다. 작품 선정에 기준이 될, 축제의 테마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 탓이 크다고 본다.
 앞으로 남아있는 연계행사 중 7월 26~27일 양일간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로 가는 길목에 있는 청간정과 화진포에서 펼칠 야외공연만큼은 내실 있게 성공적으로 치러져 창무국제공연예술제의 든든한 자산이 되었으면 한다. 

2016. 07.
사진제공_창무국제공연예술제/김정엽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