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벨기에 리에주 극장 공동제작 〈나티보스〉
현대적 ‘비극’과 ‘희망’ 사이의 제의
이지현_춤비평가

 일상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길들여지지 않는 무의식에 있는 그 무엇은 과연 눈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안무가 아이엘린 파롤린(Ayelen Parolin) 안무의 명제는 실험적이고 현장적이며 그래서 공연이 주는 긴장의 강도가 강하다.
 올해 국립현대무용단(예술감독 안애순)의 해외아티스트 초청공연은 벨기에 리에주극장과 공동제작으로 〈나티보스〉를 자유소극장(7월 15-17일)에서 올렸다. 그간 해외안무가를 초청하여 국립현대무용단이 단독제작하는 방식이 안무가 중심의 컨템포러리 무용의 현실에서 해외 안무자에게는 유리한 조건이 되지만, 해외로 유통이 확산이 되지 않을 경우 막대한 우리의 제작비 지출이 일회적으로 소모된다는 많은 문제제기가 있은 다음이었기에 새로운 시도로 주목을 끌었다.
 게다가 리에주를 파트너로 삼은 덕분에 제작 전부터 올해 11월 프랑스의 브르타뉴 국립극장을 시작으로 벨기에 브뤼헤, 엔기스 극장과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극장, 그리고 12월에 다시 타뉴어 극장을 거쳐 제작극장인 리에주에서 12회의 투어 장정을 마무리하는 일정이 잡혀 유통까지 확산된 국립현대무용단의 제작능력의 한 단계 성장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특히 안무가로 선정된 아이엘린은 제의에 관심을 갖고 이미 제의적 방식을 현대무용에 적용한 공연을 올린 바 있어 여러모로 공연에 기대를 걸 수 있었다.


 



 4명의 남자 무용수(박재영, 유용현, 최용승, 임종경)가 각각의 정지포즈로 무대에 흩어져 있다. 일상복을 입었으나 무당인 듯한 한 남자(여성룡/ 타악, 구음)가 등장해 정지해 있는 남자들 사이를 흘러 다니며 순서대로 각자의 고뇌를 점치고 문제가 잘 해결되리라 덕담하고 공수(무당의 입을 빌려 신이 인간에게 의사를 전하는 일)를 준다. 그렇게 무당에 의해 부여받은 그들의 캐릭터는 그들의 생김새와 표정으로 미루어 본 그들의 현실적 고뇌- 가정사, 경제문제 등으로 우리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것들이다.
 그가 뒤편 중앙에 마련된 장구 2대와 징, 꽹과리가 놓여있는 자신의 자리로 가 앉으면 굿판의 진행은 무용수들로 넘어오고 최용승이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신음과 함께 빠르게 진행되는 비틀린 동작을 시작한다. 임종경에게 넘어온 무당의 역할은 최용승을 따라다니며 내가 다 해결해 준다고 했는데 아직도 뭐가 불편해서 그러고 돌아다니냐며 애 터져 하며 앞의 무당과는 달리 더욱 신기(神氣) 가득한 무당의 연기를 펼친다. 여자한복 치마만 걸친 유용현의 고시레를 훔쳐 먹는 얄미운 행동에 대한 핀잔, 박재영과 임종경이 무대 중앙에서 서로 따귀를 주고받는 행위 등이 만들어 내는 비논리적인 행위와 표정은 판을 논리와 합리로부터 벗어나게 만들기 위한 장치로 작용한다.
 전반부 경기도굿을 공부한 여성룡의 무당역할로 시작되어 무용수들로 확장된 굿판의 분위기는 우리 굿의 원형에 가까운 차용 장면으로 한국의 관객에게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니어서 작은 웃음과 이완을 만들어내긴 했으나 다음 장면과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못하여 관객의 논리적 긴장을 쉽게 풀어주진 못했다.
 하지만 이런 망설임 없는 본론으로의 진입은 4명의 무용수들이 보여주는 양식화된 상체동작 중심의 unison과 canon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조명은 별다른 변화 없이 밝은 상태로 모든 것을 훤히 비추는 가운데 오로지 음악과 무용수들만으로 비현실의 상태에 도달하고 점차 에너지를 높여 극한으로 나아가는 것을 통해 안무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춤의 제의적 능력을 통한 본성과의 접속, 그것을 통해 도달하는 ‘자기초월’의 지점이다.


 



 2004년 자신의 생일을 제목으로 한 〈25.06.76〉에서 자신 내면에 존재하는 갈등과 긴장을 고백한 작품 이래로 〈Troupeau〉에서는 개인안의 동물성을, 〈SMS and Love〉에서는 여성성과 여성들의 집단적 역동을, 〈DAVID〉에서 남성성 탐구를 이어간 안무가는 전작인 〈Heretics〉와 〈나티보스〉에서는 남성적 에너지를 가지고 “반대, 차이, 모순, 혼란을 통해 극한의 한계에 몰린 인간의 인내와 인내가 바닥나는 지점에서 깨지고 벗겨지는 무엇인가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런 욕구의 배경에 존재하는 그녀의 관점은 “심하게 체계화(codified)되어 있어 차갑고, 수익성과 생산성, 효율만을 향해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공동체의 와해와 실패, 그것의 불가능성”이라는 비극적 상황이다. 그녀가 생존을 위한 유일한 희망으로 삼는 것은 제의의 방식을 통한 집단의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제의성을 공유함으로써 공동체의 와해 속에서 희망을 향한 “숨어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무의식이 처한 막다른 골목에서 반드시 어딘가 길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길을 떠난 안무가는 그 길을 찾기 위해 ‘트랜스(trance)’ 상태에 주목한다. 안무가의 가계혈통의 뿌리이기도 한 인디언과 남미의 제의적 전통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이번에 ‘한국의 제의’에 대한 연구까지 더해져 여러 문화권의 제의에서 그녀가 고안한 트랜스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은 ‘긴장을 높여가는 날카로운 예각(銳角)을 만드는 동작을 반복하고, 그 반복을 통해 체력적 한계에 도달하도록 지속하는 것’이다.


 



 〈나티보스〉에서 4명의 무용수는 객석을 향해 정면직립한 채 팔을 접어 얼굴 앞에서 두 손끝을 모아 삼각형을 만들고 다시 떨어뜨려 공기를 베는 동작을 횟수를 세며 반복하고, 하체동작은 하지 않은 채 반동에 의해 몸통이 옆으로 돌아가는 정도로만 확장 변형시키면서 에너지를 상승시켜나가는 시퀀스를 보여 주었다. 손가락, 주먹 뿐 아니라 팔뚝에 온몸의 에너지를 실어 건반 뿐 아니라 현을 두드리는 강렬한 타법으로 연주되어 타악기 본성을 보여준 피아노와 장구, 징, 꽹과리가 반복되는 굿 장단이 강한 시너지를 일으키며 상승되어 가는 가운데 이 집요하고 반복적인 시퀀스가 끝났을 때, 무형의 무엇인가가 정적을 타고 객석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이 작품의 현장적인 생동감은 바로 트랜스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성공했다면 그 전과 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가 그 현장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안무가가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싶은 것도 자신이 세운 방법론으로 그것에 도달할 수 있는 지를 확인하는 것일 것이다. 내가 본 17일의 마지막 공연에서 〈나티보스〉에서 4명의 무용수들이 하나의 단일체로 조화와 상승을 통해 트랜스로의 길을 가는 길은 그리 순조롭진 않았다. 전작인 〈Heretics〉에서는 남성 2인무였기에 에너지를 상승시키는 상황이 단순하였고 서구인의 우람한 체형과 예각 중심의 기하학적인 상체 동작이 잘 어울렸으나, 〈나티보스〉에서는 4명의 무용수들의 다른 질감이 쉽게 하나로 합쳐지지는 못했다. 개체 수에 따른 많은 변수를 통제하지 못한 점 그리고 무엇보다 제식훈련처럼 각진 동작으로 단일화 하는 방식이 우리 무용수의 감성에 적합치 않은 등의 문제는 안무가에 의해 새롭게 고민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P.A.R.T.S.에서 수학한 최용승은 건장함을 바탕으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연료로 작품이 원하는 트랜스 상태를 안정감있게 끌고 나갔으며, 말레이시아 무용가인 유용현은 강한 얼굴표정 연기와 어우러진 춤동작의 조화로 색다른 신비감을, 프랑스의 Ex Nihilo와 오랫동안 투어 경험이 있는 박재영은 잘 달궈지지는 않았으나 성실함이 돋보였으며, 임종경은 자신의 한계에 두려움 없이 몰입하여 안무가가 원한 자신의 틀을 벗어난 자기초월의 맛을 보여주었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기초적인 무용교육을 받은 뒤 몽펠리에에서 컨템포러리 예술에 대해 새롭게 눈뜨고 현대무용의 메카인 벨기에의 리에주와 타뇌르 극장의 레지던스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이엘린이 유럽을 넘어 미국, 남미까지 수많은 콜을 받고 있는 이유는 현대의 본질을 포착해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에두르지 않는 예술적 해법을 고민하며, 인간에 대한 깊은 탐색을 표면이 아니라 전통의 켜를 파고들어가 찾는 자기만의 방법론을 가지고 모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급하지 않은 호흡으로 자신의 실험을 현재진행형으로 가져가고 있는 것에서 그녀의 가능성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지켜보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이다. 2016년 피나 바우쉬 재단의 펠로우로 선정되어 2015년 국립현대무용단 초빙안무가로 〈그림문자〉를 안무한 요헨 롤러와 여러 문화를 넘나드는 현상과 거칠고 순수하지 않은(impure) 언어에 대한 협업을 준비하고 있는 아이엘린.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은 12회의 투어공연 동안 〈나티보스〉를 어떻게 완숙한 실험으로 만들어 나갈지, 한국의 무용수들이 ‘자기초월’의 힘으로 객석에 “숨어 있는 길”을 보여줄 지 자못 기대가 크다. 

2016. 08.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