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국립현대무용단 ‘아카이브 플랫폼’ 쌍방 〈삼인무교육부〉
안무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이세승_‘쌍방’ 공동대표

 '쌍방'은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 동안 자유소극장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의 창작공모전 ‘아카이브플랫폼‘ 공연에 최종 선정된 작품 <삼인무교육부>를 무대에 올렸다. 나는 이 작품을 창작하고 공연하는데 있어 참여한 여러 작업자 중 한 사람이다. 공연은 비록 3일이었지만 창작과정과 공모 지원을 하기 위한 구상까지 합치면 4개월의 짧지 않은 기간이 이 공연을 위해 지나갔다. 나는 창작과정과 공연준비 기간에 대한 기억과 인상들을 독자들과 나눠보고자 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은 '밑, 끝, 바깥'이라는 주제로 2015년의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여러 가지 사업 중 하나인 <아카이브 플랫폼>은 공모전 형식의 사업이었다. 나는 올해 2월에 웹상에서 공고를 발견하고 약 한달 반의 지지부진한 고민을 거쳐 지원 서류 접수 마지막 날 이메일을 통해 지원했다.
 내가 경험했던 모든 종류의 지원사업의 서류심사 기간은 기다림과 좌절, 드물게 환희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이번 ‘아카이브 플랫폼’에서는 인터뷰심사가 서류심사와 실연심사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서류심사에 통과한다 하더라도 작품창작의 실현화 작업, 즉 '연습'에 들어가려면 아직 먼 길이 남았었다. 많은 육체적 노력이 담겨 있지 않더라도 서류심사나 인터뷰심사의 당락에서 오는 기쁨과 슬픔의 양은 적지 않다. 특히 자신이 쓰는 글과의 싸움이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무용가는 더욱 공감할 것이다.
 인터뷰 심사에서는 지원자가 계획하는 작업에 대한 프레젠테이션과 평가위원들과의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대학재학 시절 말하는 연습을 많이 해놓으라는 은사님의 충고를 잊지 않고 가슴속에 지니고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사용이라고는 일상의 대화에서가 거의 전부인 나로서는 계획으로만 존재하는 작업을 내 입을 통해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평가위원들은 날카롭게 작업에 대한 질문을 했고 한편으로는 이 작업의 실현이 제대로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보여주었다. 또한 방대한 삼인무 작품들을 어떻게 아카이빙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답변을 원했다. 나는 동문서답으로 작업의 이유를 답했었다.

 



 집단 '쌍방'은 컨택즉흥(Contact Improvistion)을 포함한 여러 가지 움직임 방법론을 구성원들이 서로 공유하는 활동을 해왔다. 삼인무는 독무(Solo)나 이인무(Duet), 군무에 비해 주목받지 못해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를 그동안의 '쌍방'의 활동을 통해 직관적으로 느껴왔다. 왜냐하면 파트너십 워크샵을 진행할 때 셋이서 하는 방법은 전달하기가 애매모호하다. 그래서 이인무를 거쳐 삼인무에 이르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그렇다면 삼인무를 그저 이인무를 통해서 도달하는 결과이자 군무로 발전하기 전의 원인으로만 여길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이 의문을 두리뭉실한 느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통해 자세히 알고 개념을 명확히 하여 소유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인터뷰 심사를 마치고 일주일후 서류와 인터뷰 심사를 통과하여 실연심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작업 참여자들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실연심사까지는 3주정도 시간이 있어 다음날 바로 만나 작업계획을 세웠다. 이 작업계획에는 작업의 방향을 어디로 향할지 토의하는 일 외에 공포의 일정잡기도 포함된다.

 



 나는 리허설 일정을 잡는 것은 무용작업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 선제작 단계에서 꽃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지하다시피 대부분의 무용가들은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해야 하고 그 일들은 제각기 다른 시간을 점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습일정을 맞추는 일은 때로는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 양보와 이해가 필요한 미덕이라고 당사자들은 알면서도 때로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해야만 한다.
 <삼인무교육부>는 공동안무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 나의 역할은 안무, 출연 그리고 총괄이었다. 공동안무는 공동작업이라는 말로 바꾸어 쓸 수도 있겠다. 한국의 무용작업에서 '안무'라는 역할은 상당히 포괄적인 범위를 보여준다. 말 그대로의 안무는 물론이고 연출, 극본, 훈련, 조명, 의상 등 많은 일을 하는 초인간적 역할을 한마디로 '안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초기 작업방식의 큰 방향을 바라보는 입장에서의 나는 공동안무라는 불확정적 성격을 띈 단어를 작업방식에 연결하였다. 여기에는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까지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아카이브 플랫폼’ 공모전에 지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문서로 구체화하여 심사인터뷰까지 치룬 것은 나였다. 즉 <삼인무교육부>작업을 시작하는 데 있어 최초의 아이디어 제시자는 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임하고자 하는 작업이 공동안무의 작업이라면, 누군가가 언제 어느 작업에 착수하였느냐의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이 그 작업에서의 역할을 결정하기도 한다. 어느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그 작업이 자신에게 지니는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공동안무라는 작업방식에 절대적인 왕도는 없다. 한 작업이 시기에 따라 여러 가지 창작의 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 창작 작업에 참여한 우리 셋(김승록, 이세승, 주혜영)은 토론을 거쳐 한 번의 리허설에 각각 한 가지 재료를 준비하기로 했다. 이 재료들은 각각 다른 성격을 띠는 것인데 첫째는 삼인무 작품이며 우리가 따라할 수 있는 것(따는 자료), 두 번째는 삼인무 작품이며 우리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터는 자료), 세 번째로 무용에 관련은 없어도 셋의 구성에 관한 것(뜬 자료)들이었다.
 이 리서치 방식은 실연심사 후 공연을 준비하는 단계의 작업에서는 무용계 안에 속한 것(In), 무용계 밖(Out), 무엇이든 '3'에 관한 것(Alpha)으로 변화했다. 우리는 이 방식을 다채널 방식으로 불렀다. 짧은 기간에서 다량의 재료를 수집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재료들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탐구하기에는 효과적이지 않다는 단점을 지닌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연심사 후 최종 선정작으로 채택되어진 작업들에 대해 ‘아카이브 플랫폼’ 제작 측에서는 공연 전까지 2회의 쇼케이스를 요구했다. 내부 쇼케이스라고는 하지만 작업 참여자 외에 다른 이들 앞에서 작업을 보인다는 것은 언제나 긴장되는 일이다. 또한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작업을 선보이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은 큰 부담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제작 방식이 공연을 올리기 위한 창작물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한번은 채찍, 다음엔 당근과 같은 피드백 의견을 받음으로써 우리 작업자들은 작업에 제동을 걸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듯, 창작 작업에 왕도가 없다는 말은 공연제작에도 유효하다. 작업자에 따라서 중간점검이 필요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공연 날이 가까워짐에 따라서 '참 먼 길 왔다'는 생각이 자주 떠올랐다. 그만큼 작품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그 생각에 이어 바로 떠오르는 생각도 있으니, '아직도 갈 길이 먼데'이다. '작업'이라는 짧은 단어로 칭하지만 이 하나의 '작업'안에는 다른 성격들을 가진 여러 작업들이 있다. 수 백개의 조각들을 맞추어 완성시키는 퍼즐에 비유할 수 있다.
 이번 작업은 여러 사람이 한 퍼즐을 같이 맞추는 것이라는 조건이 붙었었다. 한 사람이 끈기 있게 퍼즐을 완성하여 성취감을 맛보는 것과 같은 작업이 있고, 티격태격하면서 더디지만 여러 해프닝을 겪게 만드는 작업도 있다. 이번 작업은 후자에 가까웠다. 다음 작업은 어떤 퍼즐인가?

 

2015. 08.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