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댄스씨어터 창 10주년 공연
시대 통증을 껴안은 특유의 움직임들
김채현_춤비평가

 댄스씨어터 창이 10주년 공연을 가졌다(9월 24일, 아르코예술극장소극장). 지난 10년, 댄스씨어터 창의 김남진은 독자적 움직임으로 유다른 춤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번 10주년 기념공연에서는 2014년도 창작산실 사업에서의 발표작 〈아이(Eye)〉와 신작 〈씻김-Play〉, 두 편을 올렸다.
 김남진의 유다른 춤 세계는 우선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사실성이 뚜렷하다. 관객들은 김남진의 춤에서 남북 분단, 환경 위기, 세상의 위선 등 상당히 직설적으로 묘사되는 현실을 자주 대면해왔다. 그의 춤이 환기하는 세계에서 뚜렷하고 또 다른 무용가에 비해 빈도가 높은 그 같은 소재들을 두고 그의 춤이 정치적이라 여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남북 분단, 환경 위기, 세상의 위선 등이 다른 무용가의 작품에서도 소재로 채택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이런 점에서 김남진이 형상화하는 춤 세계를 소재에 준해 정치적이라 판별하는 것은 퍽 일면적이다.


 



 김남진의 춤 세계에 정치적 경향을 굳히는 요인으로는 춤 움직임이 결정적이라 생각된다.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먹는 음식이 당신을 말해준다고 정리하였다. 유사하게, 움직임은 움직이는 자신을 나타낸다. 춤 움직임을 풀어가는 데 있어 김남진이 움직임을 읽어내는 독법(讀法)은 말하자면 남다르다. 김남진의 춤 세계가 강인해서 유별나 보이도록 뒷받침하는 것은 〈아이〉에서도 목격되듯이 그의 독법이다.
 〈아이〉는 아이의 눈이라는 중의적(重意的)인 제목으로 그 눈을 통해 세상을 그린다. 비정한 세상이라는 상식적 소재는 〈아이〉에서 매우 굴절된 모습으로 심화된다. 공연 처음부터 중견무용수 박재현은 팬츠 차림의 몸을 바닥에 밀착시켜 강한 스트레치를 기반으로 몸의 다양한 모습을 취하였다. 꽤 길게 펼쳐지는 이 부분에서 아이가 세상의 무엇을 보며 겪을지 강하게 시사되는 것은 물론이며, 이런 시사점은 공연을 시종일관 주도한다. 통상적 기법과는 거리가 먼 움직임들이 몸의 변형을 넘어 몸의 왜곡 그리고 심지어는 몸의 극한에 근접하면서 박재현은 〈아이〉가 놓인 심상치 않은 상황을 예고하였다.


 



 〈아이〉에서 마리오네트와 여배우 안연주는 박재현과 함께 무대에 섰다. 마리오네트가 순결한 영혼으로서 아이를 어루만지듯 하고 박재현과 안연주는 비정한 세상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태세다. 그들 셋을 통해서 아이의 상황과 시선은 복합적으로 처리된다. 박재현과 단신(短身)의 안연주가 때때로 뒤엉켜 함께 일궈내는 여러 양상의 움직임들은 밀도가 상당하다. 아이들과 사람들을 밀쳐내는 세상을 움직임으로 전달하는 독법으로서 김남진은 박재현의 극한적 모습과 박재현-안연주의 격한 뒤엉킴을 채택하였다.


 



 〈씻김-Play〉는 김남진의 독무로 진행된다. 유년기의 아버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회상이 섞이는 이 공연은 퍼포먼스 형태로 시작한다. 아이가 아빠와 나누는 말들이 들리고 김남진은 흰 백지에다 아버지 모습을 그린다. 백지를 치운 후 아버지 기일(忌日)에 독백을 읊조리며 자식은 술잔을 올린다. 이 두 모티브를 축으로 김남진이 펼친 것은 일테면 사부곡이다. 징-구음과 기타의 라이브 반주를 배경으로 그는 아버지를 위한 만가를 풀어내었다. 움직임의 격렬한 특성은 〈씻김-Play〉에서도 유지되었으며, 이 때문에 아버지께 바치는 그의 사부곡은 객석의 심금을 진솔하게 건드려 나갔다.


 



 어느 단체든, 10주년 기념 공연이라면 그간의 작업을 중간 결산하듯이 여러 면으로 짚는 무대가 마련됨직하다는 통념은 이번에 기대에 머물렀다. 그렇더라도, 〈아이〉와 〈씻김-Play〉 두 편에서 댄스씨어터 창이 지난 10년 동안 축적해온 바가 짚어진다. 이번의 두 편이 보여주듯이 퍼포먼스적 전개, 인체 변형, 직설적인 사회성 등은 김남진이 움직임에 대해 남다른 독법을 개발하도록 자극해왔다. 그 스스로 제시하는 연극적 무용도 이들 개념을 토대로 해석될 것 같다. 그리고 서사성과 현실성을 움직임의 배경 맥락으로 중시하는 김남진의 입장으로 미루어 그에게 춤은 움직임의 전시장보다는 움직임의 전장이라 비유될 만하다.
 흔히들 댄스씨어터 창에서 격한 움직임을 쉽사리 연상할지 모른다. 반면에 댄스씨어터 창의 2011년 공연작 〈기다리는 사람들 2〉에 등장하는 소녀들의 고무줄놀이는 아주 유려한 서정적인 춤이었다.
 사실 댄스씨어터 창의 춤에서는 이러한 서정성은 좀 예외에 속한다.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상식처럼 춤의 최소 단위로서 몸 또는 움직임은 그것대로 정치적 함축성을 품고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 2〉가 한국전쟁을 그린 작품이라는 사실을 배경으로 하면 앞서의 서정성에서도 정치적 함축성은 뚜렷해진다. 지난 10년, 시대의 통증을 자기 특유의 움직임 독법으로 껴안아온 댄스씨어터 창은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2016. 10.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