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 제49회 정기공연 〈만덕〉
정갈하고 호방한, 춤의 통일성
문애령_무용평론가

 제주도립무용단이 김만덕의 일대기를 다룬 <만덕>(11월 24일,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을 공연했다. 김만덕은 조선 최초의 여성 의인 혹은 거상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신임 상임안무자 손인영과 전국에서 모인 최고의 스태프가 협업한 이번 작품은 내용의 상징적 묘사력이 뛰어났고, 각 장의 시각적 차별성이 명확하면서도 연결성이 단단했다. 김만덕의 일생(1739-1812)은 고아, 기생, 양곡, 의인, 궁궐 등의 단어와 밀접하고, 이런 명확한 이미지는 특히 언어가 배제된 무용에서 대단히 매력적인 소재다.
 ‘좌초된 꿈’, ‘열하나의 걸음’, ‘거상’, ‘피폐한 삶’, ‘김만덕’, ‘그렇게 빛이 되다’로 나뉜 6장 구성 〈만덕〉은 1976년 건립된 김만덕기념관의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무덤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이고, 매년 ‘김만덕 제’와 ‘만덕 봉사상’을 수여한다니 김만덕에 대한 지역민의 사랑이 매우 특별한 듯하다.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은 제주도립민속예술단(1990)으로 창단, 제주도립예술단(1997), 제주도립무용단(2004), 그리고 2008년 이후 현재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제주문화사절단 역할을 담당”하는 단체로 김희숙 김정학 양성옥 김정희 양성옥 배상복에 이어 2016년 손인영이 상임 안무자로 부임했다.
 춤 언어의 수용 폭에서 차별성을 자랑할 만한 손인영은 한국 전통춤은 물론 미국 포스트모던 안무가의 작품까지 체득한 흔치 않은 인재다. 뿐만 아니라 서울예술단과 인천시립무용단 등지에서 전문적 안무력을 축적한 진지한 노력파다. 이번 작업에 대해서도 “열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넓은 연습실이 나를 반겨주는 매일… 이렇게 행복한 작업을 한 적이 많지 않다”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으니 타고난 예술가가 아닌가 싶다.


 



 막이 오르면, 아름다운 한 여인과 파도치는 해안 풍경이 보인다. 바다로부터 굴러 나오는 검정 의상의 군무는 풍랑과 좌초를 묘사한다. 대본에 의하면, 1장은 1795년의 기근과 육지에서 보내온 구휼미가 바다에 빠진 기록을 다뤘다. 김만덕을 의인으로 만든 중요한 사건이므로 1장과 4장에 중복 배치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흉년에 부모를 잃은 어린 만덕이 기녀의 수양딸이 되는 장면이 줄거리의 시작점이다. 제주도 방언 대사를 통해 춤 선생은 땅의 음기를 발 디딤을 통해 동체로 연결시키도록 주문하고, 이 교습과 연결된 기생 8인무가 이어진다.
 3장은 기녀 시절의 인기와 번뇌, 양인으로의 환원, 그리고 거상이 된 김만덕의 모습을 담았다. 2장에서 착용했던 기생 치마와 머리 장식을 제거하면서 신분 변화를 암시했고, 관객에게 과자를 나눠주며 떠들썩하게 객석을 장악한 봇짐장수 행진을 통해 상인 김만덕의 성공을 설명했다.
 붉은 색상이 주를 이룬 4장에서는 첫 장의 고난을 재연했다. 바닥기기나 어깨걸기처럼 주로 뭉쳐 다녔던 첫 장과 달리 개별적 도약과 회오리 형태의 군무를 강조했는데, 팔을 굽혀 앞뒤로 흔들며 잔발 스텝으로 굴신하는 현대춤사위가 독특했다. 쓰러진 군무를 차례로 일으켜 세우는 것으로 의인 만덕의 공적이 설명되고, 그녀가 도열한 여인들 사이를 지나 배경 막 뒤로 사라진 장면은 정조 임금 알현과 금강산 여행에 해당된다. 에필로그는 당연히 김만덕을 숭배의 대상으로 끌어 올리는 민중의 찬양에 할애되었다. 그녀의 초상화를 반복적으로 막에 투사하는 방식으로 과거와 현대의 교감을 유도했다.


 



 불과 몇 달 만에 준비한, 30명 이상이 출연한 70분 정도의 긴 작품 〈만덕〉이 완벽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가장 중요한 ‘양곡’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 상대적으로 이해가 쉬운 전반부에만 대사를 구체적으로 사용한 불균형, 기근 장면을 두 차례 반복한 것에 반해 그것을 극복한 의인의 기개나 활약상이 구체적이지 않았다는 점은 재공연을 통해 해결할 과제로 보인다.

 반면 〈만덕〉은 이런 과제를 덮을 충분한 매력도 지녔다. 과거 예기들의 이미지를 재연한 춤사위의 깊이와 잔잔한 흥취가 돋보였고, 쌓아놓은 봇짐 구조물이 무너지면서 우환이 시작된 4장 도입부의 연결 효과도 좋았다. 정갈하거나, 호방하거나, 굳센 춤 스타일이 통일성을 지녀 안무가에 대한 신뢰를 높였고, 김만덕 역을 맡은 조예은의 기량도 탁월했다. 또한 어두운 배경의 군무에서 마저도 혼신의 힘을 다하는 단원들의 의욕적인 모습이 생동감의 원천이 되었다.
 하루 공연에 그쳐 아쉬웠던 〈만덕〉은 앞으로 완성도를 더욱 높여갈 예정이다. 공연 후의 간담회에서 만덕기념관 김상훈 관장은 당시 여자들이 뭍으로 갈 수 없었던 ‘출륙금지령’을 초월한 명예로운 나들이가 작품의 절정에 놓여야한다는 의견을 냈다. 김선화 도의회의원은 〈만덕〉에 담긴 현대적 감각과 단원들이 새롭게 체험했을 춤 영역을 높이 평가했다. 창작품을 옥죄는 민속적 매너리즘을 지적한 공무원의 시각이 반가웠다. 공연관람은 물론 간담회 자리를 끝까지 지키며 논제를 제시한 원희룡 도지사의 적극적 관심도 인상 깊었다.
 제주도가 국제적 수준의 예술 향유를 위해 고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자리다. 유럽이나 미국의 주요 무용단들은 대개 사회 지도층의 과감한 판단에 힘입어 크게 성장했다. 제주도의 역동성에 부응한 무용작품이 대한민국 최고의 공연물 중 하나로 부상하기를 기대한다.

2016. 12.
사진제공_제주사진문화공동체 '비춤'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