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춤, 미디어를 만나다: 첫 번째 만남
SNS와 함께 춤을
이단비_방송작가. 무용칼럼니스트

지난 2009년, 방송가는 무척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냈다. 국회에서 미디어법이 통과되고 종합편성채널이 허가됐기 때문이다. 케이블방송국들과 신문사들은 종편 채널권을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편, 광고주들에게 마의 시청률 1% 달성에 성공할 수 있다는 각종 카드를 제시하며 광고 수주에 열을 올렸다. 공중파 방송국들에서는 ‘종편 이후의 대처 방안’에 대해 조사할 특별팀을 꾸려 시장조사와 연구에 나섰다. 1이라는 숫자가 그렇게 위대한가 싶을 정도로 시끄럽던 그 시기가 지나가고 종편채널들은 예상 외로 선전하며 방송가의 판도를 바꾸었다. 이 신흥세력에 맞서 여전히 힘을 거머쥐고 있는 공중파. 그런데 이 신구의 대결 구도를 흔드는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가 등장한다. 바로 유튜브를 비롯한 개인 미디어.




 

미디어의 새로운 다크호스, SNS ⓒWikimedia Commons




핫튜브, 핫스타그램, 그 속에서 무용은 찬밥?

90년대 이후 인터넷과 모바일의 급속한 발달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s/sites), 소셜미디어(Social Media)는 우리 사회의 핫이슈가 되었다. 최근에는 귀신이 목격됐다는 흉가들도 SNS에 올라오면서 해당 흉가에 방문객들이 몰린다는데 SNS 때문에 귀신들도 시끄러워 도망 다녀야 할 판이다. 혹시 모른다. 그걸 즐기는 귀신들은 방문객들의 카메라 앵글에 일부러 출몰해서 SNS의 스타가 될지도. 취업시장에서는 구직자의 SNS를 통해 평상시 이 구직자가 자신의 기업이나 기업의 테마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는지 체크해서 묻지마 지원자를 가려내는데 활용하고 있다. SNS가 갖는 부정적인 부분도 있고, SNS는 ‘Sigan Nangbi Service(시간 낭비 서비스)’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다른 어떤 미디어보다 마케팅 도구로도 플랫폼으로도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 독일의 온라인과 마켓 리서치 회사인 Statista가 발표한 올해 1월 전 세계 SNS 이용자 통계만 봐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1월 전 세계 SNS 사용 순위(단위: 백만) ⓒStatista




 페이스북 사용자는 22억 명을 넘어서고 그 뒤를 바짝 쫓는 유튜브도 사용자가 19억 명에 달한다. 숫자 그대로 ‘억’소리가 난다. 하루 유튜브 이용자들의 총 시청 시간도 10억 시간에 달한다고 한다.
 반면에 공연예술 시장에서 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떤가. ‘억’소리가 나는 게 아니라 해마다 ‘억장’이 무너질 지경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8년 공연예술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공연시장 매출액은 8,132억 원으로 전년(7,480억 원)보다도 8.7% 늘어났다.




 

2018년 공연예술 실태조사 - 규모별 공연시장 매출액 ⓒ문화체육관광부




 하지만 무용은 여전히 최하위를 기록한 것은 물론 그나마도 1%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1.9%의 비중이었는데 2년 만에 1%를 겨우 유지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자칫하면 내년에는 1%도 무너질 위기에 봉착했다. 발레와 합쳐서 보더라도 2.6%. 뮤지컬 시장이 57%를 넘는 상황에 무용은 여전히 찬밥 신세다. 공연은 올리는데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2018년 공연예술 실태조사 - 공연 장르별 티켓 판매 수입 및 비중 ⓒ문화체육관광부




 무용 공연 현장에 가면 이런 상황을 피부로 느낀다. 관객의 3분의 1은 무용 평론가와 기자들, 3분의 1은 무용과 선배, 후배, 동기, 그리고 제자, 나머지는 가족이나 무용과 전혀 상관없는 친구와 약간의 마니아층 관객들로 채워진다. 대체 순수 유료관객은 몇 명이나 될까? 이제 새로운 관객들을 좀 만나보자.


미코노미(ME+ECONOMY) 시대, ‘나’를 자극할 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프레임워크(framework)’라는 개념이 있다. 조선일보를 집는 사람과 한겨레신문을 읽는 사람은 각자 다른 프레임워크를 갖고 있다. 미디어를 선택할 때 이미 자신만의 틀이 있다는 뜻이다. 점점 더 선택지가 많아지는 세상에 이런 프레임워크는 어떤 식으로 작용할까. 최근에 등장한 ‘플로팅 세대(floating generation)’라는 단어로 설명이 되겠다. 플로팅 세대는 콘텐츠, 직장, 거주지까지 자신에게 맞는 선택지를 끊임없이 찾아다니기 때문에 애초에 내 관심 밖에 있는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사람들이다. 마음에 안 들면 안보면 그만. 차단도 얼마나 간단한지, 터치 한 번이면 끝. 이렇게 난공불락의 견고한 프레임워크가 있을 수 있을까. 애초에 춤이나 무용 공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나 이런 공연을 해요’ 라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나’라는 키워드에 답이 있다.
 전자상거래 기업 이베이코리아는 '2019 이커머스 트렌드(E-Commerce Trend)'로 '미코노미'(ME+ECONOMY)를 꼽았다. '나'를 위한 소비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소비 트렌드가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 무용계는 어떤가. 춤의 세계를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이 시대의 평범한 회사원, 주부, 학생들에게 유혹적인 손길을 뻗은 적이 있었을까. 때로는 공연 자체보다 공연 소개글이 더 해독 불가능한 경우도 허다하다. 이것은 바로 당신의 이야기라는 유혹이 필요한 상황에 나만 혼자 진지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무용 공연은 진지하기 때문에 거부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것을 재미없게 포장해서 내놓기 때문에 애초부터 눈길을 못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춤도 콘셉팅이다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싶다.
 첫째, 요즘 유행하는 언어유희를 살짝 빌리자면 ‘이제 SNS 들이셔야 합니다’라고. 이제 무대는 눈앞에 보이는 극장 뿐 아니라 SNS의 플랫폼도 하나의 무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SNS는 가장 확실한 멍석이다. 개인 미디어와 SNS의 활황은 그동안 어디에 어떻게 홍보를 하고 마케팅해야 할지 몰랐던 안무가나 무용수들이 장벽 없이 자신을 내어놓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문제는 멍석을 깔아줬지만 멍석 위에서 뭘 보여줘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최근 다양한 업계에서 ‘콘셉팅(concepting)’이라는 단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김난도 교수팀이 『2019 트렌드 코리아』를 통해 ‘마케팅하지 말고 콘셉팅(concepting)하라’는 분석과 제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기획과 마케팅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하는 크리에이터들에게 확실한 해답을 던져준 것이다. 무용계도 마찬가지다.




 

SNS는 크리에이티브 상자 ⓒWikimedia Commons




 두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방안은 포스터를 제작하거나 작품 홍보를 할 때 분명한 콘셉트를 갖고 접근하라는 점이다. 무엇을 이야기하느냐에 못지않게 누가 이 작품을 보면 좋은지 먼저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예시로 든 한 여행사 광고가 좋은 사례다. 과거 여행상품 광고는 관광지역에 포커싱이 되어 있었지만 방향을 틀어 그 주체를 where가 아니라 who로 바꾼 경우다. 20~30대 여성들이 어머니와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온 수요가 지난해보다 30%가량 늘었다는 통계에서 착안한 광고인데 단순히 광고만 내세운 게 아니었다. 이 여행사는 엄마와 딸을 위한 테마 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계획도 함께 갖고 뛰어들었다. 콘셉트 하나 잘 잡아서 기업 이미지도 올렸고 이후 상품 개발에도 연계해 판매율을 높이는 효과를 거둔 사례다. 누가 봐도 잊고 있던 어머니 생각이 떠오르고 함께 여행가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지 않는가.




 

어머니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는 콘셉팅으로 주목 받은 여행사 광고 ⓒ하나투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만 집중하지 말고 내가 하는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과녁을 쏘아야 한다. 단순 홍보가 아니라 정확한 타깃팅, 그리고 포장과 연출의 기술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야 된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무용인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눈 감고 귀 막고 오로지 연습실에서 피땀 흘리며 수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미친 듯이 돌고 뛰고 그렇게 단련한 몸뚱이 하나 들고 세상에 나왔는데 세상이 너무 변해있다. 일종의 배신감도 느껴지는 세태다. 그 참담하고 막막한 심정을 백번 이해한다. 하지만 무용인들은 이미 1인 크리에이터 시대에 대처할 자질을 충분히 갖고 있다. 안무를 하고 춤을 추면서 이미 1인 크리에이터로 무대에 선 경험이 차고 넘치지 않는가.




 

다양한 소셜미디어 플랫폼 ⓒWikimedia Commons




 다큐멘터리와 방송물을 제작하면서 만난 안무가들과 무용수들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다. 춤을 계속 춰야 하는지 고민될 때 우연히 유럽의 무대에 설 기회가 있었는데 무용 관계자들이 아니라 일반 관람객들이 그렇게 많이 온 걸 처음 봤다고. 그들의 환호와 반응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고 계속 춤을 춰야겠다는 결심을 그때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안무가는 박수 소리가 크든 작든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는 그 순간의 기쁨이 춤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커튼콜 때 박수 하나가 무대에 계속 서게 만든 이유가 되고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 소리에 무용 관계자들이나 마니아층 외에 일반 관객들의 손뼉이 더 많이 더해졌으면 좋겠다. 온오프 라인이 서로 자극을 주는 시대다. SNS가 당신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당신의 오프라인 무대를 더욱 빛내주는 또 하나의 무대가 되기를 바란다.

이단비

KBS를 시작으로 SBS, MBC를 거쳐 다양한 매체에서 방송작가로 활동 중이다. 발레를 비롯한 공연예술 다큐멘터리 제작과 집필에 매진하고 있으며, 발레와 무용 칼럼을 쓰면서 강연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2019. 03.
사진제공_문화체육관광부, 하나투어, Wikimedia Commons, Statista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