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춤, 미디어를 만나다 15
춤, MZ세대에 플렉스하라
이단비_방송작가, 춤칼럼니스트

영화에서는 ‘감독판’이 있다. 개봉작이 제작사나 관객이나 그밖의 여러 조건에 의해서 탄생한다면 감독판은 철저히 감독의 시점으로 편집된 또 다른 버전이다. 이와 비슷하게 최근 방송가에서는 제작팀마다 온에어된 방송본 외에 새로운 버전을 하나 더 만들고 있다. ‘유튜브판’이다. 본방송 시청률이 아니라 OTT와 SNS의 조회수와 좋아요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버전이다. 이유는 하나다. MZ세대가 여기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모바일과 SNS로 소통하는 MZ세대 ⓒpixabay




MZ세대의 코드, 디지털과 콘텐츠

1980년대 초 ~ 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 ~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합쳐서 이르는 말, MZ세대. 왜 사회는 MZ세대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걸까. 방송가에서는 중요한 시청자이고, 기업에서는 가장 주목하는 소비자이며, 공연과 춤계에서는 현재와 미래의 관객이자 창작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특징과 니즈를 파악하는 건 이제 마케팅의 결정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MZ세대는 사회를 이끌어갈 주도세력이자 모든 상품의 주소비층이며 디지털 전환 핵심 키워드이다. 2019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MZ세대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3.7%(총 5142만명 중 1736만명)이다. 현재 주요 기업 구성원의 60%가량도 MZ세대다.
 144개국에 회원사를 둔, 세계적인 종합 회계·재무·자문 그룹 KPMG 인터내셔널은 ‘2019 Global CEO outlook’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글로벌 기업 CEO의 45.0%가 ‘밀레니얼세대의 요구가 기존 세대의 요구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38.0%가 ‘밀레니얼 세대에 맞춰 사업 비즈니스를 리포지셔닝’한다는 것이다. 사람인이 기업 271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도 ‘MZ세대 인재 유입과 장기근속’을 위해 49.1%가 별도의 노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떻게 놓고 봐도 MZ세대가 주력세대란 점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MZ세대 인재 유입과 장기근속을 위한 기업이 노력 ⓒ사람인




 따라서 MZ세대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다는 점이다. 특히 Z세대는 유년기부터 스마트폰을 가까이했기 때문에 디지털에 대한 적응은 누구보다 빠르다. 이런 점 때문에 미디어 자체보다는 그 미디어가 담고 있는 콘텐츠에 반응한다. 과거에는 진입 장벽이 높을수록 대접을 받는 직종이나 업종이었다. 공중파 방송국이 주목을 받는 건 이곳에 진출하는 데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었고, 그걸 통과한 사람들이 만드는 콘텐츠는 미디어의 위력을 가졌다. 시청자들도 여기에 반응했다. MZ세대가 유튜브에 반응한다는 건 미디어의 위상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유튜브는 ‘누구나’ 진입할 수 있는 채널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입지나 이름보다는 콘텐츠가 관건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TV보다 모바일에 익숙하고, 전체주의보다 개별적 성향이 중요한 MZ세대는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MZ세대가 주도하는 현재를 콘텐츠산업 지형이 소비자에 맞춰 본격적으로 변하는 최초의 시기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유튜브 이용률도 MZ세대인 20대~30대를 보면 현격하게 높을 것을 알 수 있다.




연령대별 유튜브 이용 현황 ⓒ한국언론진흥재단




 특히 숏폼(short form) 콘텐츠에 움직인다. 과거 마케팅의 중심에 신문, TV가 있었다면 MZ세대 마케팅의 중심에는 SNS가 있다. MZ세대의 SNS 사용 실태를 보면 인스타그램에 가장 주력하고 있다. 즉, 춤 마케팅도 어느 쪽에 무게를 실어야 하는지 답은 뻔하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숏폼 콘텐츠, 유튜브의 활용이 지금 MZ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MZ세대의 주요 이용 SNS ⓒ나스미디어




플렉스 문화로 대변되는 MZ세대

MZ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두 번째 키워드로는 플렉스(flex) 문화를 꼽을 수 있다. ‘플렉스 해버렸다’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데 귀중품, 비싼 물건, 명품 등을 사서 과시하거나 뽐내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MZ세대의 소비 패턴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꼽히는데 SNS를 통해 명품 언박싱하는 모습을 노출하거나 인증 쇼트를 올리는 것이 모두 플렉스의 한 가지라고 볼 수 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자기를 이렇게 내놓고 외치는 세대는 이제까지 없었다. 그럴 수 있는 플랫폼이나 기회가 없던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MZ세대에게는 마음만 먹으면 플랫폼과 미디어를 운영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
 그런데 2030의 젊은 세대의 주머니가 두둑할 리는 만무하다. 플렉스하고 싶은데 플렉스할 자본이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다른 형태의 소비 패턴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평소 사용하는 생필품은 저렴한 가격을으로 구입하고 대신 갖고 싶은 명품이나 자동차, 인테리어 용품, 가구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이제까지의 소비 형태와는 완전 다르다. 사람인이 2030세대 3,064명을 대상으로 ‘플렉스 소비 문화’에 대한 설문을 진행한 결과, 2030세대 52.1%가 플렉스 소비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들 중 54.5%는 앞으로 플렉스 소비를 할 의향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이유는 ‘자기만족이 중요해서’(52.6%, 복수응답)이기 때문이라는 결과도 나왔다. 실제 신세계의 명품 소비 매출 추이는 이런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걸 공연계와 춤계에 적용해 보면 이렇다. 춤 공연에 플렉스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신세계의 2030세대 명품 매출 추이 ⓒ신세계




희소성에 반응한다, ​오픈런과 리셀

MZ세대의 명품 소비가 증가하면서 다른 문화도 생겼다. 오픈런과 리셀 문화다. 명품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서서 기다리는 ‘오픈런’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수고를 하는 이유는 이런 물건들은 후에 웃돈을 얹어 리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몇몇 물건들은 중고상품이 신상품보다 높은 가격에 리셀 되기도 한다. 한정판 운동화를 구입해 비싼 가격에 되팔아 수익을 얻는 투자, ‘스니커테크’는 대표적이다. '스니커즈'와 '재테크'를 합성한 신조어로, 젊은 세대에게 가장 흔한 리셀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MD상품으로 나온 스타벅스의 서머레디백은 웃돈을 얹어 고가로 ‘되팔이’된 사례도 유명하다. 스타벅스 관계자와 마케팅 전략에 대해 방송을 제작,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스타벅스 내에서도 서머레디백에 대해서는 이런 반응까지 나올 줄 몰랐다며 놀라움을 표현했다. ‘되팔기’를 통한 ‘테크’는 MZ세대의 주요한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MZ세대 덕분에 2012년 1조원 수준이던 중고 명품 시장은 작년 말 기준 7조 원까지 커진 상태다.
 오픈런과 리셀의 핵심은 ‘희소성’에 있다. 그 시점이 아니면 살 수 없는 물품. 자신만의 독특한 취미와 취향을 공유하는 것을 즐기는 MZ세대는 희소성 있는 물건에 플렉스하고 그것 SNS에 공유함으로써 자신의 취향을 과시한다. 이런 점을 문화와 예술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MD상품과 관련 마케팅을 벤치마킹해보면 어떨까 싶다. 요즘 공연 현장에 굿즈 판매는 흔한 일이 됐는데 굿즈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마케팅의 주요한 지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 ​


예술에도 플렉스, 아트테크

이제 MZ세대는 명품뿐 아니라 예술 작품에 플렉스하기 시작했다. 미술 시장에서는 일명 ‘아트테크(Art-tech)’가 MZ세대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테사, 아트앤가이드, 아트투게더 등 아트테크 플랫폼, 미술품 투자 플랫폼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테사(TESSA)의 경우 지난 5월,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유니크 피스 작품을 공모해서 일주일만에 판매 완료했는데 해당 공모에 참여한 2,000여 명 중 68%가 30대~40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친필 사인 작품 총 3점을 공모했는데 오픈 3분만에 완료됐다. 총 340여 명이 참여한 이번 공모는 전체 참여자 중 30대가 42.77%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며 다시 한 번 MZ세대의 플렉스의 위력을 가늠하게 만들었다.




아트테크 플랫폼 ‘테사’의 뱅크시 작품 공모 ⓒTESSA




 이런 공모는 일종의 ‘분할 소유권’ 구매이다. 공동투자 개념이라 1,000원만 있어도 투자는 가능하다. 이 작품으로 수익이 날 경우 소유권을 가진 사람들이 투자한 만큼 나눠가지는 방식이다. 같은 방식으로 음악에도 적용된다. 플랫폼에서 음악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을 사면 저작권에서 나오는 수익을 받을 수 있다. 음악과 재테크의 결합, 뮤직테크인 셈이다. 대표적인 플랫폼은 세계 최초 음악 저작권 플랫폼인 뮤직카우다. 뮤직카우의 누적 회원 30만 명 중 MZ세대의 비율이 70%에 달한다는 점에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술, 음악 시장의 이런 조각투자나 아트테크가 춤 공연에도 적용이 가능할까.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 투자하고 수익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그만큼 그 희소성이 소유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와야 한다는 선결과제가 있다. 예를 들어 뮤지컬의 경우 전체 공연계 매출 수익의 50%를 넘는 만큼 가장 빠르게 아트테크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소비자들을 보호할 만한 법적 제도가 없다는 점 때문에 이런 투자에 대한 위험성도 지적되고는 있다.
 중요한 건 이런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이전과는 다른 MZ세대의 소비와 문화 향유 패턴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춤 공연도 주력 세대와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마케팅 접근법이 논의되어야 한다. 배고픈 예술가, 아는 사람만 오는 춤 공연에서 벗어나 ‘춤 테크’도 고려해 볼만한 시점이다. 다행히 MZ세대는 기성세대가 ‘악착같이’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것과 달리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을 중시한다. 예술적 경험의 기회가 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이나 예술 장르를 만난다면 얼마든지 기꺼이 공연장을 찾고 예술을 향유할만한 세대란 뜻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과감히 플렉스하고 오픈런할 수 있는 이 사람들이 공연과 춤에 플렉스하고 오픈런할 수 있도록 이슈와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단비

방송작가, 춤칼럼니스트. KBS 교양 프로그램에서 방송작가를 시작, SBS 보도제작국, YTN 보도제작국, MBC 시사교양국 <문화사색> 작가를 거쳐 현재 한국경제TV 산업부 작가로 일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발레를 전공한 담임교사를 만나 발레 실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춤 경험과 방송작가 이력의 융합으로 공연예술 다큐멘터리 제작, 발레와 무용 칼럼 집필 작업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춤 공연 기획과 드라마투르그 작업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

2021. 7.
사진제공_pixabay, 사람인, 한국언론진흥재단, 나스미디어, 신세계, TESSA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