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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춘천아트페스티벌을 마치고
스탭과 아티스트들의 재능기부가 만난 열린 축제
이윤숙_춘천아트페스티벌 기획홍보팀장

 휴가철, 도시는 텅 비고, 낮에는 개미마저 더운 숨을 쉬는 듯한 무더위의 8월. 춘천도 더위를 빗겨가지 못하고 뜨거운 태양 볕을 그대로 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여름의 한 가운데에 놓인다.
 매년 이맘 때면 어김없이 춘천아트페스티벌이 열리는 춘천시 효자동의 축제극장몸짓(이하 몸짓극장)에서는 스탭들의 분주한 움직임 속에 숨죽여 집중하는 아티스트들의 리허설이 진행된다.
 이 더위에 누가 공연을 보러 오겠냐는 걱정도 잠시,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지고 어스름이 깔리면 몸짓극장의 유리벽 너머로 불 켜진 로비가 들여다보이면, 한 낮의 더위를 견딘 시민들과 휴가를 맞은 관광객들이 몸짓극장으로 주파수를 맞추고 더운 바람 가르며 삼사오오 걸어오는 풍경이 그려진다.
 극장 외벽은 현수막 대신 신금용, 김재진, 김윤섭 - 세 젊은 작가들이 그림 기부로 참여한 ‘버밀리언 코미디’의 캐릭터가 포토존으로 장식되어 있어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멋진 기념 사진을 선사한다. 로비 안쪽에서는 축제 기념품들이 소개되고, 한편, 페스티벌 클럽에서는 시원한 아메리카노도 판매 중이다. 예약된 티켓을 찾으러 온 관객들과 티켓을 찾은 후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 그리고 왠지 긴장한 듯 분주한 스탭들의 모습은 여느 공연장에서도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이곳 스탭들이 만난지 불과 열흘이 안 된, 전국에서 모인 재능기부 스탭들임을 떠올리면 춘천의 작은 극장에서 벌어지는 춘천아트페스티벌이라는 축제가 만들어내는 아주 특별한 순간이 될 것이다.

 



 춘천이라는 곳은 이미 30년 전부터 마임 축제와 인형극제가 태동한 곳으로, 유독 공연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도시이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나 서울아트마켓 등이 15년 남짓의 역사를 가진 것을 생각하면 춘천은 단순한 지방의 도시가 아니라 뿌리 깊은 공연예술의 도시이다. 오늘날 춘천의 축제들을 거쳐간 많은 아티스트와 기획자, 스탭들이 그러한 환경 속에서 길러내졌음은 두말 할 나위 없을 것이다.
 특히 지금의 KT&G상상마당 춘천의 옛 이름인 어린이회관은 김수근 건축가의 붉은 벽돌 건축, 그리고 산과 호수가 자아내는 천혜의 야외 공연장으로 많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잔잔한 호수가 가로질러 보이는 무대, 야산이 감싸안은 듯한 객석의 형태, 그 위에 올라서서 보이는 ‘비상하는 학의 날개’를 닮은 건물 외관까지 한 폭의 그림 같은 야외 공연장이었다. KT&G가 인수하기 전까지 춘천시의 느슨한 관리 속에서 많은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공연 연습도 하고, 축제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비교적 나중에 생기긴 했지만 춘천아트페스티벌은 2002년부터 ‘춘천무용축제’의 이름으로 시작된다. 매년 이곳에 무대를 새로 깔아 20명 이상도 군무가 가능할 정도의 대형 야외 무용 전용 무대로 무용계에 인식되기 시작한다. 단연 국내 최대의 야외 무대였기에 무용인들에게 이 무대에서의 경험은 꼭 한 번쯤은 서 봐야 하는 무대로 회자되기도 한 것이다. 국내 최초의 민간 무용 기획사 MCT의 멤버들, 그리고 국내 최초 무대기술 스탭들이 뭉쳐 만든 주식회사 스탭서울컴퍼니가 주축이 되었고 그들을 둘러싼 이들이 뭐든 하겠다고 발벗고 나서면서 한여름 공연하는 사람들의 명절 같은 축제가 만들어진다.

 



 춘천아트페스티벌이 구) 어린이 회관이 아닌 축제극장몸짓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이다. 낙후된 시설을 보수한다는 명목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KT&G에 건물이 매각되면서 공연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예전의 야외 무대는 없어졌지만 매년 재능기부 아티스트와 스탭을 공모하고 인력을 넓혀 가면서 십시일반으로 재능기부를 하여 축제를 만든다는 근본정신을 잇고 있다.
 춘천아트페스티벌의 프로그램은 진정한 예술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작품성 뛰어난 공연예술들로 꾸려지고 있으며, 이러한 한결같음이 무용 불모지나 다름없는 춘천에서 10년이 넘게 이어오며 축제의 고정팬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2015 춘천아트페스티벌 이모저모

 춘천아트페스티벌은 지난 5월부터 6월 한달 간 작품 공모를 통해 참가작을 선정하였고, 음악 4팀, 신전통춤 1팀, 현대무용 5팀으로 프로그램이 짜여졌다. 8월 6일 신정톰춤 공연은 전북도립국악원무용단 예술감독 김수현이 이끄는 김수현과 춤벗들의 ‘춘천나들이’ 공연이었다. ‘춘천나들이’는 전통 창작춤 1세대인 배정혜, 강선영, 정재만, 임이조의 대표작을 각 2편씩 만날 수 있는 공연으로, 김수현의 배정혜류 <궁>과 <흥푸리>, 조성란의 강선영류 <즉흥무>와 <태평무>, 이미희의 정재만류 <허튼시나위>와 <허튼춤>, 김진희의 임이조류 <교방살풀이>와 <입춤>이 차례로 선보였다.

 



 8월 7일에는 현대무용 4편의 공연이었다. 뉴욕라이브아츠(Newyork Live Arts)의 상주 안무가를 역임하고 주로 해외에서 활동해오다 최근 국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안무가 장혜진의 <이주하는 자아, 그리고 그 문의 속도>는 물리적 시간과 인식의 시간 간극 안의 자아의 혼란을 그린 작품으로 독특한 미장셴, 말과 몸을 섞은 안무 등 장혜진만의 독특한 안무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올 10월 열리는 공연예술마켓의 팜스 초이스(PAMS Choice) 선정된 JJBro와 고블린파티의 두 작품은 소위 가장 핫한 공연이었다. 제이제이브로는 지난 해 서울댄스컬렉션에서 안무상을 수상한 <지미와 잭>을, 고블린파티는 미국으로 떠나는 전효인과의 마지막 호흡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 <올바르며, 슬기롭게>를 공연하였다. 이날 마지막은 아지드 현대무용단원이었던 조선영이 이끄는 무브먼트 제이의 <짝:짓기>가 장식했다.

 



 8월 8일은 현대무용단 리케이댄스가 춘천 관객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선물” 공연이 이어졌다. 이경은 안무의 <모모와 함께>, <사이>, 그리고 단원 윤가연의 〈EXCUSE ME〉는 가족과 함께 온 관객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레퍼토리 공연들이었다.

 



 춘천아트페스티벌은 내년에 15회를 맞이한다. ‘재능기부’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 최근에 남발되고 있는 아마추어들의 재능 기부 공연들로 인해 형성된 선입견 등 춘천아트페스티벌이 짊어지고 갈 숙제도 많지만, 춘천아트페스티벌은 태생부터 독특한 축제이고 앞으로도 이 독특한 생명과 DNA를 이어가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춘천아트페스티벌은 재능 많은 프로페셔널들의 여유와 배려로 만들어지는 축제이다. 동시에 자신의 작업을 가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축제이기도 하다. 춘천이라는 곳, 여름이라는 시간, 무용이라는 춤을 이야기할 때, 춘천아트페스티벌을 떠올려 주기 바란다. 

 

2015. 09.
사진제공_이도희·우종덕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