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최진한 모노댄스드라마 〈우물〉
헬조선 겨눈 서사 춤의 설득력
김채현_춤비평가

 여러 해 홀춤(독무)으로 춤판을 꾸려온 최진한이 이번 늦가을에 발표한 〈우물〉(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11월 25-26일)은 홀춤의 일환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번을 포함해서 몇몇 춤에 대해서는 스스로 ‘모노 댄스 드라마’라는 분류 호칭을 덧붙인 것을 보면 홀춤을 그가 상당한 의도를 갖고 추진해왔음을 짐작케 한다.
 홀춤으로써 특히 드라마를 추구하는 것을 기피하는 춤계 일반의 경향에서 비켜선 그가 도달할 드라마가 어디까지일지 예측은 쉽지 않으나 흥미가 곁들여진 관심사로 다가온다.
 제목 〈우물〉은 물 긷는 우물만 뜻하지 않는다. 최진한이 해석하는 우물은 말을 중얼거리는 우물거리다, 굼뜨게 움직이는 우물거리다,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우물(愚物) 등등 뭔가 자기 주장이 약하거나 처신이 명료하지 않거나 기분이 시원스럽지 않거나 잘 소통되지 않거나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등등의 상태도 함축한다. 이런 상태들과 인접한 우물의 모습은 또한 좁고 깊게 파인 어둠의 소굴 같은 그런 것이다. 시원한 물을 마실 우물과는 거리가 멀다.


 



 작품 〈우물〉에서 우리는 우물의 그런 여러 가지 칙칙한 분위기들 속에서 삶을 팍팍하게 견뎌가야 하는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음식점 배달용 철가방 크기의 종이 박스를 소극장 벽면과 로비에 한 가득히 쌓아올린 그곳은 우물 또는 어떤 감호시설 혹은 사방을 둘러싼 성벽(城壁)의 인상을 준다. 거기서 남자는 그런 인상의 벽면에 갇힌 갑갑한 상황 속에서 살길을 헤쳐나가려 분투하는 여러 모습들로 제시된다. 네오가 그 한 예이다.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네오의 미니어처가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 바닥 중앙에 놓여 있어 갑갑한 상황을 타개할 역할자가 등장할 것이라는 시사점을 환기하고 있었다. 작품의 말미에 최진한은 전사(戰士) 네오로 등장하여 이 세상을 향해 모종의 해결책을 감행하였다.


 



 어깨 축 처진 남자가 마침내 전사 네오로 등장하기까지 여러 과정을 〈우물〉은 물론 모노 댄스로 전개하였다.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들 과정에서 변신의 연유가 제시되지 않는 반면에 변신의 모습들은 별 어려움 없이 전달된다. 남자가 세상의 광대처럼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세상을 목격하고, 세상을 조심하고, 세상을 함구하고, 세상에 짓밟히고, 세상을 한탄하다가 유약함을 벗고 자신의 다른 역할을 다짐하는 여러 모습들이 그것들이다. 〈우물〉에서 그려지는 그 남자의 자화상은 우리 사회의 흔하디흔해버린 자화상이다. 갑갑한 상황 속의 그 남자가 변신할 연유가 제시되지 않아도 변신한 모습들을 객석이 별 어려움 없이 수용하는 때문에 〈우물〉은 이른바 헬조선을 향한 마음의 고소장으로서 위력을 갖는다.


 



 〈우물〉의 몇 대목에서 최진한은 퍼포먼스적 장면을 연출하였다. 목탄으로 1미터 너비 동그라미를 그려 그 속에서 경직된 기계적 동작을 취하고, 그 동그라미를 목탄으로 검게 채우며 눈썹과 눈꺼풀을 덧붙여 눈을 그려내고, 최진한 자신의 사진임이 분명한 손바닥 크기 얼굴 사진 수십 장을 입으로 물고 흩날려 바닥을 어지럽히고, 딸기 케이크의 생크림을 얼굴에 처바르고, 기관총 모양의 장난감 물총으로 바닥의 눈동자에 물감을 쏘아대는 일련의 모습이 그것들이다. 일반 춤 공연에 비해 퍼포먼스의 빈도가 높았어도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거부감 없이 수용될 수 있었고 작품의 사실성을 배가하는 효과가 있은 것으로 판단된다. 짤막하게 덧붙여진 김연준의 가곡 〈청산에 살리라〉와 애국가의 선율 또한 전자는 처연한 감성을, 후자는 현실감을 작품에 부여하였다.


 



 고립무원의 계층이 헬조선에 있다.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우물〉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무자비하고 싸늘한 헬조선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다. 말과 행동이 우물우물 안에서 놀기 일쑤인 다수는 어쩌면 최진한의 〈우물〉에서 자기들 정서의 대변자를 찾을지 모른다. 그럴 만큼 〈우물〉은 설득력을 갖는다.
 〈우물〉 이전부터 최진한은 대체로 자신의 자전(自傳)을 춤의 서사(敍事)로 채택하는 춤판을 열어왔었다. 그가 그의 춤이고, 그의 춤이 그 자신이다. 앞서 묘사된 바닥에 수십 장 흩날려진 후 으깨진 케이크에 영정 사진으로 꽂히는 얼굴 사진에서 유추되는 것처럼 이번에 춤의 서사로 채택된 헬조선 또한 그의 자전과 그다지 멀지 않아 보인다. 다시 말해 안무자 개인의 자전적 서사를 〈우물〉에서 우리가 공유할 현실의 서사로 치환해낸 것은 탁월한 점이다.
 “눈으로 마시는 술이 / 달에서 푸른 물줄기로 쏟아져 / 넘실거림으로 / 적막한 지평선을 침수시킨다...” 벨기에 시인 알베르 지로는 〈달의 취기〉(연작시집 『달에 홀린 피에로 Pierrot lunaire』)를 이렇게 열어간다. 100년전 아놀트 쇤베르크의 성악곡 〈달에 홀린 피에로〉 덕에 더 유명해진 시다(성악곡 관련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O5DNxRG2-ow). 인상적으로 평소 최진한은 달에 홀린 어느 피에로(광대)를 연상시킨다. 2014년의 모노 댄스 드라마 〈아! 맨〉에 이어 이제 그는 세상을 파헤치는 피에로를 자임한 듯하다. 알베르 지로와 함께 〈우물〉을 이렇게 읽어 보면 어떨까. 그가 그의 춤이고, 그의 춤이 그 자신이며, 그 자신의 서사가 우리를 침수시키려 한다. 

2016. 12.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