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창무큰춤판’ 한명옥 〈새로운 고전을 찾아서-전통의 재발견〉
한국춤의 미학과 법고창신(法古創新)
이만주_춤비평가

 “한국과 멕시코는 세계에서 전통춤의 자산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이상한 두 나라다.” 독일 뒤셀도르프 탄츠하우스(Tanzhaus) 전 예술감독인 베르트람 뮐러(Bertram Muller)의 말이다.
 창무회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창무큰춤판’ (10월 4일-12월 28일 포스트극장, 평자 22일 관람). “한국전통춤을 토대로 한 오늘의 한국춤을 창작, 모색한다”는 창작춤(또 다른 명칭, 한국창작춤)의 역사가 어언 한 세대 하고도 순년이 지났음을 뜻한다.
 우리 전통춤의 자산도 대단하지만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와 비슷함을 공유하면서도 제각기 다른 개성의 꽃을 피운 창무회의 창작춤 자산도 거방지다. 창무회 창작춤 40년, 이제 그만 ‘최승희 콤플렉스’도 벗어난다.
 오늘날의 창작춤을 보면 소위 현대무용에 많이 닮아 있다. 자유와 임의성(任意性)이 예술의 속성일진데 그럴 경우, 요즘 전 세계에서 창작으로 추어지는 춤에 대해 나라를 구별하지 않고 두루 ‘컨템포러리 댄스(Contemporary Dance)’라 칭하니 우리 창작춤도 넓은 의미의 컨템포러리 댄스에 포함시키면 될 것이다. 어떤 한국창작춤들은 부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런 현상이 이상할 것도 없다. 문화란, 예술이란 교류하며 서로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창작춤에 대해 다시금 근원적인 고민을 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본래 한국춤을 전공한 한명옥은 뒤늦게 올해 한예종 무용원 교수가 되기 전, 여러 종류의 한국춤을 섭렵했고, 국내외 춤 세계를 편력했으며, 실로 춤의 재조(在朝)와 야전(夜戰)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한국춤의 미학과 전통 계승, 그 현대적 수용 내지는 창작을 깊이 사색한 것 같다. 그런 그녀가 한국창작춤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정립하여 보여주는 ‘변주(變奏)’라는 이름이 붙여진 춤들이 흥미롭다. 내가 본 것은, 지난 11월 22-23일, ‘창무큰춤판’에서 〈한명옥_새로운 고전을 찾아서-전통의 재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오른 여섯 작품의 변주 시리즈였다.


 



 첫 번째, ‘미인도의 변주’인 〈바람의 화경〉은 네 명의 무용수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느껴지는 조선시대 여인의 단아한 멋과 아취를 그렸다. 무대에 혜원의 풍류가 살아났다. 두 번째, ‘살풀이춤의 변주’인 〈살·푸·리―혼푸리굿〉은 기교와 꾸밈을 많이 걷어내어 이매방류 살풀이춤에 바탕을 두었다고 하나, 여자 무용수가 추는 춤에서 남성적인 담백함이 느껴졌다.
 태평소를 포함하여 다섯 명의 악사가 생음악으로 국악을 연주하며 보여준 세 번째, ‘소고의 변주’인 〈버꾸춤과 소고의 만남〉에는 활달하면서도 멋스러운 흥취를 배가시켜놓았다. 단원 김홍도의 ‘부벽루 연화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네 번째 작품, ‘평양검무의 변주’인 〈도화연(刀化緣)〉은 격정적이면서도 여인의 애절함이 배어 있었다. 다섯 번째 ‘미얄의 변주’인 〈다 벗어 버리다〉는 탈춤의 변용이자 현대화였다. 익살과 선정이 재미를 주면서도 인연이라는 깊은 주제를 표현했다. 현대 복장을 한 남성무용수와 여성무용수 둘이 추는 3인무는 탈춤으로 추어지는 멋진 ‘파 드 트르와(pas de trois)’였다. 여섯 번째, 다섯 명의 여자 무용수가 무구인 칠성방울과 빨간 부채를 들고 활달하게 춘 ‘무당춤의 변주’인 〈넋, 드림 2016〉은 흥과 신명, 그 자체였다.


 



 한국인은 태생적으로 영성적(spiritual)이다. 한반도의 빼어난 산천경개가 오랜 기간 한국인의 심연에 ‘멋’이라는 미의식을 심어주었다. 대륙과 해양 사이에 위치해 북방계 문화와 남방계 문화의 교직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것이 한국춤이다. 우리 춤꾼이 추는 한국춤에는 남방계 농경문화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이 녹아 있어야 한다. 그런가 하면, 북방계 유목문화의 호방함과 흥(興) 또한 들어 있어야 한다. 신명은 흥의 확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실험적이고 반항적인 작품이 세월이 지나면 고전이 되듯, 전통춤이란 것도 지금은 전통춤이라 하지만 그 당시로서는 누군가의 창작춤이었을 것이고 어쩌면 시간을 따라 내려오며 변형되어 정형화된 창작춤이었을 게다.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새것을 창조해 내면서도 옛것에 근거를 두는 법고창신(法古創新).” 전통춤의 근본을 존중하며 이루어지는 한명옥의 일련의 ‘변주’ 작품들은 한국창작춤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녀의 변주에는 한국전통춤의 특성적인 아름다움이 짙게 배어 있어 좋다. 

2016. 12.
사진제공_김정엽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