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박은화의 〈달〉
우연과 필연의 접촉면을 춤으로 넓힌 춤
권옥희_춤비평가

 끝없이 모습을 바꾸는 이유로 생성의 세계를 상징하는 달. 그 자연을 대하는 감성이 무대에서 재분배되면서 춤(몸)이 하나의 진실을 소유하게 되는, 춤으로 진실을 만들어낸 작업. 박은화의 〈달〉(11월 23일,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을 본다.


 



 무대 위에 떠있는 바위덩이 같은 달의 조형물. 낯선 달이다. 달 아래 엎드려 있는 깃이 높은 흰빛 의상의 박은화, 붉은 드레스를 입은 바이올리니스트(백현경)의 둥그런 배, 몸 안에 달을 품었다. 아름답다. 달을 향해 입을 벌리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박은화.
 자신이 바라보는 시각에 질적 변화가 올 때까지 지켜보았을 달. 그 달이 정확하게 드러날 때, 마침내 발견되었을 새로운 춤(말). 그 춤은 이제까지 달을 말하던 말에다 다시 첨가하는 말이 아니라 기존의 말의 질을 바꾸어 달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킨 춤일 터.
 그 새로운 말은 장대에 매단 붉고 노란 천 조각을 펄럭이며 박근태가 그리는 원(달)이거나, 흩어진 달의 잔해 위에 눕는 (달)물의 처녀 안선희로, 물고기 형상의 달의 잔해를 머리에 쓴 채 발로 바닥을 두드리는 군무진의 춤. 또는 달빛을 받은 물고기의 비늘을 닮은,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조현배의 무심한 춤. 그가 뒤집어 보이는 바지 속주머니에서 툭, 튀어나온 달을 향한, 숨겨두었던 붉은 마음이기도.


 



 목이 높은 흰색의 민소매에 나뭇가지를 입에 문 박은화, 높은 자존의 은유로 읽는다. 달의 여신이기도. 인간의 생명의 실을 잣고, 그 길이를 정하고, 실을 끊는, 달이 가진 숙명의 힘을 가진 여신. 바닥(대지)을 치면서 뱉는 신음 같은 소리, 다리를 허공에 띄우고, 객석을 노려본다. 나뭇가지를 세워 짚고 일어선다. 죽음의 은유로 낡은 은유들을 정화하는 명상의 춤, 춤의 기운, 고요하면서도 강하게 내뿜는 춤의 에너지가 흰 꽃처럼 선명하다.
 달이 달과 닮지 않고, 입에 문 나뭇가지가 다른 나무와 더 이상 닮지 않을 때, 달과 나무는 자신을 포함, 모든 달과 나뭇가지의 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하나의 춤이 되어 독특한 박은화의 춤 언어가 된다.
 머리에 조바위(?)를 쓰고 검정색 짧은 팬티를 입은 군무진. 뒷짐을 지거나 앞 사람의 허리에 손을 얹고 무대를 가로 지르며 추는 강강술래. 명상음악으로 풀어낸다. 한 쪽은 모든 시대를 위한 은은한 춤의 언어로, 다른 한 쪽은 자기 시대를 위한 강력한 춤의 언어로 풀어낸 춤.
 파도소리. 모래가 깔린 붉게 물든 유리판 위에 선 두 사람의 발바닥과 여러 겹의 치맛자락 움직임을 보여주는 영상. 인상적이다. 유리판을 문지르는 발바닥, 표현과 생각 사이에 팽팽한 그물을 설치, 사실세계와 관념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춤. 박은화가 장대를 들고 나와 흔든다. 달과 소통하려는 듯. 움직이는 달 조형물 위로 입혀지는 영상. 발바닥으로 보여주던 춤을 무대로 옮겨놓는다. 사랑의 춤을 추는 남녀의 듀오. 여자의 어깨에 남자가 춤을 얹으며 풀어내는, 서로에게 빛이 되는 춤. 물이 드는 달. 그리움과 욕망으로 서로를 다스리고 감추고 길들여지는 춤, 달이 객석 쪽으로 이동, 커지는 달. (은박지)물고기 머리 형상을 닮은 달의 표피를 뒤집어 쓴 군무진의 도열, 여백이 많은 좋은 춤의 배치였다.


 



 다시 박은화가 가리키는 달. 어느 순간 달을 가리키던 팔을 거둬들인다. 왜 달을 가리키는가. 질문을 넘어 달을 가리키는 손을 본다. 묻지 않고 달을 본다. 변한 것이 없으며, 변할 것도 없다. 변할 것이고 또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하는 것은 ‘달’이 아니라 〈달〉을 그려내는 박은화의 춤(태도)이다. 그 변화는 미묘하고 섬세한데, 그것을 감지하는 시선에게만 박은화의 춤을 관통하는 주제들이 그 가치를 오롯이 드러낸다.
 달이 뜨고 지는 것 사이의 틈새를, 우연과 필연의 접촉면을 춤으로 넓혀놓은 박은화의 〈달〉이었다. 그녀가 가리키는 달이 부풀어 오르건 하늘을 보고 눕건 그것이 관객의 눈에 띄고 안 띄고는 우연일 뿐.
 여전히 무대에서 춤을 추는, 박은화의 춤(몸)은 춤의 몽상이 생산되는 자리이자, 그것이 진정한 것임을 말하는 춤의 현장이었다. 동시에 현실의 춤의 언어로 바꾸어주는 구체적 동력. 깊이가 있는 아름다운 춤이었다. 

2016.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