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블린파티 〈옛날 옛적에〉
전통 소재 몸짓과 소도구의 매력적 융합
김채현_춤비평가

 웃는 일은 동물에게는 없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다움의 대표적 징후이다. 웃음을 유도하는 적극성의 표현으로서 해학, 익살, 풍자는 한 장르를 이루며 예술에서도 윤활유 이상의 유력한 양식의 구실을 한다. 국내 춤에서 해학, 익살, 풍자는 결핍되어 있고 심지어는 기피 사항이 아닌지 물을 정도이다. 고블린파티는 이런 일반적 경향과는 대조적인 춤 활동을 꾸준히 보여 왔고, 이번 〈옛날 옛적에〉에서는 해학의 대상으로 전통이라는 과거를 선택하는 선으로 진전하였다(12월 8-9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옛날 옛적에〉에서는 도포를 입고 상투를 틀어 갓으로 차림을 한 세 양반이 노닌다. 멍석을 활짝 깔은 무대에서 양반들은 그들의 소품으로 갖고 노닥거리며 익살을 만끽해 보였다. 딱딱한 양반을 멀리하고 맘껏 너스레떠는 그들은 한량에 가깝다. 어떤 장면은 조선시대 풍속화를 디지털 스틸로 옮겨둔 듯이 선명하다. 그런 차림의 남성들이 지을 모양새를 다양한 몸동작으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옛날 옛적에〉는 양반이라는 전통의 전형을 점차 해체해나갔다.
 비극과 희극을 가르는 경계는 내용보다는 내용을 구체화하는 형식에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고블린파티가 양반의 차림새와 모양새에서 익살의 몸동작들을 착안하고 작품 분위기를 잡은 것은 적절해 보였다. 작품의 상당 부분에서 춤꾼들은 양반의 거동을 강조하는 움직임을 반복하되 허세부리며 잠시 아장아장 걷거나 심지어 밑을 닦는 과장되거나 우스꽝스런 몸짓들을 양반의 고정된 모습을 대체할 만큼 연속적으로 구사하였다.


 



 이와 함께 고블린파티는 여러 소도구에 힘입어 무수한 몸짓을 추가해나간다. 세 개의 쥘부채로 양반들이 슬로모션으로 다투는 모습,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처럼 백조가 너울대는 모습, 대낮에 양산을 받쳐들은 모습, 곤장치는 모습, 쓰레받기 빗질하는 모습, 북치는 모습 등이 연출된다. 곰방대를 갖고서는 몽금포타령 조에 맞춰 때로는 지팡이, 때로는 작대기처럼 놀려댄다. 장고와 북은 의자 등 여러 용도로 쓰이는 가운데 뒷발로 툭툭 쳐대고 꽹과리까지 모아 일테면 타악 합주를 곁들인다.
 이번 공연에서 대부분의 해학적인 에피소드는 모자이크 방식으로 구성되었으며, 움직임과 몸짓 또한 모자이크 식으로 엮였다. 장면 구성이 많아도 무방할 수 있는 모자이크 방식에서 이번엔 장면들 간의 연결 고리는 느슨한 편이었고 얼마간 산만한 점도 엿보였다. 장면의 수와는 무관하게, 장면의 연결 고리를 든든하게 할 필요가 있다.


 



 〈옛날 옛적에〉처럼 전통을 소재로 몸짓과 장고, 북, 꽹과리, 징 같은 소도구를 유기적으로, 때로는 절묘하게, 융합한 사례는 아마 전무한 것으로 기억된다. 이것만으로도 〈옛날 옛적에〉는 꽤 매력적인 작품으로 주목될 만하다. 고블린파티 공연에서 몸짓과 소품의 결합은 이 단체가 그전부터 연마해 보여준 아크로배틱이 강한 몸짓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몽금포타령, 강강술래, 곽씨 상여 나가는 대목(심청가) 등이 반주로 쓰였고, 프랑스인의 현장 반주도 곁들여졌다. 이런 반주 구성은 단체 스스로 소개하듯이 이번 공연이 양반 몸짓의 해체와 함께 한국 전통에 대한 참신한 접근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말해준다. 전통의 단순 재현에 맴돌지 않고 이처럼 전통의 미감을 해체 재구성하려는 의지가 춤계 전반에 있는 반면에 그 시도는 활발치 않다.


 



 전통의 재구성에서 대전제는 전통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고착 의식부터 탈피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에 대한 피상적인 경험을 벗어나 전통의 부분들을 곱씹는 것도 한 방편일 것 같다. 〈옛날 옛적에〉는 갓, 상투, 두루마기, 부채 등등의 전통 소재들을 ‘해체’ 시각에서 주시하여 상상력을 발휘해서 아크로배틱을 닮은 몸짓과 융합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대춤 계열에서 의지는 있으나 실행 사례는 드문 이른바 전통의 재창조 측면에서 〈옛날 옛적에〉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국 전통 소재들은 현대적 감성의 시각에서 해석되고 고블린파티 식으로 재활용되었다. 다시 말해 전통은 포착되어 오늘의 것으로 제시되었다. 〈옛날 옛적에〉는 한국 전통 소재를 주목한 결과로서 전통을 미소 지으며 접촉하고 그 미감을 일깨움으로써 현대춤 계열의 지평을 다소 풍요롭게 해주었다.

2016. 12.
사진제공_고블린파티, 김채현 *춤웹진